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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21. 목적이 이끄는 삶(4)-조영진목사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스겔 47:1-6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그 분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자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얼마나 자라고 있습니까?
주님을 닮아가는 일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학생들이 각자의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교수가 되고 싶다고,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각각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앉아서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도 물었습니다. 너는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그때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커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되는가에는 관심이 많지만,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신학대학을 다닐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되지 못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맡게되면, 맡은 본인은 물론, 그 사람의 영향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게 됩니다. 히틀러가 그냥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며 한평생 보냈더라면, 2차대전의 아픈 추억이나 유대인 600만명이 개스실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역사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되지못한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다 보니 그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못된 사람이 회사 사장이 되면, 직원들이 수없이 많은 고생을 하게도 됩니다. 정말로 사람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제목 밑에서 드리는 연속설교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경이 일깨워 주는 인생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예배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통하여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이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 다른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며 거친 세상을 함께 손잡고 헤쳐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와 자매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세우는 일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다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어떤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까?

I.

오늘 우리는 에스겔서 47:1-6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에스겔서는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하던 주전 593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로 활동했던 에스겔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출신으로 주전 597년 첫 번째 바벨론 포수때 잡혀왔습니다. 그는 암울한 조국의 내일을 바라보면서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망한 조국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되는 날이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에스겔서에는 많은 환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에스겔서 37장의 환상은 대표적인 것입니다. 골짜기에 쌓여있던 마른 뼈들이 큰 군대로 일어서는 이 환상은 지금 바벨론 땅에 잡혀와 마른 뼈처럼 희망도, 내일도 잃어버린 유대 백성들이지만, 머지안아 큰 하나님의 군대로 다시 일어설 것을 보여주는 희망의 멧세지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돌 하나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져 버린 예루살렘 성전이지만,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성전의 회복된 모습을 봅니다. 그 성전 속에서 물이 솟아 나와 흘러갑니다. 주의 사자 줄자를 가지고 동쪽으로 1,000자(아마도 1,000feet에 가까울 것임)를 잰 후에 건너라해서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 찼습니다. 다시 1,000자를 나가서 건너보니 물이 무릎에 찼습니다. 1,000자를 다시 나아가 건너보니 물이 허리에 찼습니다. 다시 1,000자를 나아가 건너려 했더니, 이제는 헤엄을 쳐야만 건너는 큰 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흐르는 강물은 흘러가면서 생명을 살리고 사해 바다도 고치는 역사를 이룩했습니다. 물고기가 살아나고 강가에는 각종 나무들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이룩하실 새로운 회복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무참하게 망하면서 유대왕은 두눈이 뽑혀서 끌려가고, 많은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성전은 무너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더 이상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절망과 좌절 속에 빠져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들에게 회복의 날을 주실 것을 이 환상 속에서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가시는 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학문적인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목회의 경험 속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인생도 은혜의 생수, 강물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나아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는 삶의 모습을 향해 자라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더욱 충만케 하시는 은혜로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을 향해 자라갈 수 있습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성전에서 솟아나오는 물은 1,000자를 동쪽으로 재면서 간 후 건넜더니, 그 물이 발목에까지 차 올랐습니다. 이 첫 번째 단계는 발목에 힘을 얻어 말씀을 듣는 일에 관심과 열심을 내는 단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 믿음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열심을 낼 때, 그 첫 번째 sign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발목에 힘을 얻어 주일예배와 말씀을 배우고 듣는 일에 열심히 참석케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로마서 10:17에서 기록한 것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생활에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변화의 모습은 바로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는 것은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모습입니다. 전에는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빠지는 횟수가 더 많던 사람이 이제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게 됩니다. 주일을 쉬고 즐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사람들의 다름이 잘 드러나는 때가 언제입니까? 주일입니다. 구약에서도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된 중요한 표징임을 예언자들은 일깨웠습니다.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데 쓰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이 주일을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쓰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 미국교회의 Newsletter에서 읽은 글입니다. Mr. E.X. Keuses라는 사람이 목사님께
드리는 공개 편지입니다.
친애하는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주일예배와 주일학교 성경공부반에의 참석이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
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경우 그 횟수만큼은 목사님께서 이해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탄절 전과 후 두주일,
독립기념일(July 4th)을 낀 한주일, -이때는 아무도 집에 있지 않습니다.
노동절을 낀 한주일, - 집을 벗어나 주말을 즐깁니다.
현충일, Memorial Day를 낀 한주일, - 집을 방문해야 합니다.
School Closing 하는 한주일- 자녀들에게 휴식이 필요합니다.
School Opens, 개학하는 주일- 마지막 여행을 합니다.
Family Reunions- 가족이 모이는 주간 2주일
Sleep Later, 토요일 늦게까지 파티하다가 늦잠자는 4주일
Vacations & "Long" Weekends- 휴가라든지 Long weekends 4주일
Bad Weathers-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안개가 껴서 날씨가 나쁜 6주일
Ball Games가 있는 4주일
Unexpected Company, 예기치 않은 손님이 올 때, 손님만 놔두고 교회 갈 수 없는데 이런 주일 5번
Time Changes- Day Light Saving Time이 시작하고 끝날 때 2 주일
Specials on TV- Super bowl같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날 4주일
목사님 이렇게 모두 제하니까 일년에 두주일이 남습니다. 3월 셋째 주일과 8월 첫째
주일은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그때 뵙기를 바랍니다. E. X. Kenses 드림.

(2) 발목까지 찬데서 1,000자를 더 나가서 재어보니 물이 무릎에 찼습니다. 무릎에 힘을 얻어서 기도생활에 열심을 내는 단계입니다.

발목에 힘을 얻어 열심히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드리게 되면 다가오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하나님과의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무릎에 힘을 얻어 기도생활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기도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information이 아닙니다. 머리 속에 담겨지는 지식의 조각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는 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사귐이며 교제입니다.

신앙을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해 예수님을 믿어도 삶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붙들고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경외감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둘째는 기도생활이 빈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면 믿음이 자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께 말씀드리고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이 기도의 묘미, 기도의 깊이를 모릅니다.

이런 분들은 성령 안에서 무릎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이 힘을 얻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믿음, 변화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릎에 힘을 얻지 못하는 한 우리의 신앙은 추상적인 논리나 information으로서의 신앙에 머물 뿐입니다. 내 인생의 transformation, 변혁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3) 셋째로, 거기에서 1,000자를 더 나갔더니 강물은 허리에 까지 차올랐습니다. 이 단계를 우리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단계를 우리의 인격의 변화가 시작되는 단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겸손의 덕을 향해 자라가는 단계입니다.

성경에는 허리와 관계된 여러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제게 깨달음을 준 말씀은 베드로전서 5:5의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젊은이들에게 권고하면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합니다. 또 허리를 숙인다는 것은 겸손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허리까지 찼다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라가면서 겸손의 덕을 배워가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릎에 힘을 얻은 기도 생활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될 때 우리가 깨닫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의 부족함입니다. 모자람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괜찮지만, 하나님 앞에 서고 보면 우리는 한없이 부족한 인생들입니다. 모자라기 이를데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제대로 깊어지는 사람은 겸손의 덕을 배워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 교회에 오셔서 신앙강좌를 인도 하셨던 김동길 교수님의 말씀 속에서 기억되는 것이 있습니다. 김교수님께서도 나이 들어가면서 깨달은 것이라고 고백하셨는데, 그것은 “세상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못난 맛에 산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잘났다면 왜 그리스도가 필요합니까? 못났으니까, 부족하니까,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못난 것을 깨달을 때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의 자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도 교만한 사람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신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같은 본체이시지만 이 모든 영광과 부귀를 버리시고,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또 자신을 낮추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추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신 주님을 믿고, 배우는 우리가 어떻게 교만해 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배우는 사람이라면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강물이 무릎에서 허리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낮아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서 겸손해 지게 됩니다.

(4) 넷째로 허리까지 찬 거기에서 1,000자를 더 나아가서 건너려 했더니 이제는 큰 강물이 되었습니다. 헤엄을 쳐야만 건너갈 수 있는 깊은 강이 되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른 성숙한 모습은 주님 앞에 온전히 항복하고 맡긴 인생, 성령님의 지배아래 사는 인생입니다.

저는 아직 수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에 뜨는 것까지는 배웠습니다. 한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 청년들과 함께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여름 수련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수영을 못하니까 청년들이 자꾸 골탕을 먹여서 수영 좀 배우자고 했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뜨는 것만 배우시면 되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뜨냐?” 라고 물었더니 “그냥 물에 몸을 맡기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에 혹은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을까 염려하다가 보니 도대체 뜨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물이 들어가면 들어가리라 하는 각오로 물에 몸을 맡겼더니 아닌게 아니라 떴습니다. 이렇게 해서 뜨는 것을 배웠습니다.

헤엄할 물이 된 깊은 강물에 이른 단계는 우리의 삶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모습입니다. 성령님께서 다스리시도록 주님께 바친 삶입니다. 이 단계야말로 성령 충만한 단계이며,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게되므로 성령의 열매, 곧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가라 앉을 것 같지만 뜨는 인생, 망할 것 같지만 살게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III.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 인생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향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꾸준히 자라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온전한 인간됨을 바라보고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의 여정은 우리의 결심,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의 샘물, 곧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거룩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이끄시고 인도해 주심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거룩한 존재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거룩함을 향한 끝없는 전진을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어가는 이 여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예배드리며 바라보는 스테인드 글래스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말씀드린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전을 지으면서 이 스테인드 글래스를 설계할 때, 그 주제는 성화(Sanctification) 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의깊게 보시면 스테인드 글래스들이 밑에는 어두운 색깔이 많은데 위로 올라갈수록 밝아지는 것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또 십자가의 배경 벽도 밑의 어두운 색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밝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테인드 글래스에는 연합감리교를 상징하는 불꽃의 모형도 담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표현들을 통해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바로 거룩함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불꽃, 성령을 통하여 점점 더 밝고 점점 더 빛나는 삶을 향해 변화되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믿음 생활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함을 향해 자라가는 우리 모두의 여정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것입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실 것입니까? 예배드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교회를 세우며 사랑의 삶을 살아감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거룩함을 향해 끝없이 자라가는 변화된 인생이 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인생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안고 거룩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우리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오늘 거룩한 존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