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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14. 목적이 이끄는 삶(3)-조영진목사

"거룩한 공동체"

요한일서 4:7-16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의 하나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과연 교회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제목 밑에서 드리는 연속 설교의 세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먼저 우리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 지음 받은 존재임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를 이 땅에 존재케 하신 하나님, 하나님 뜻안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믿을 만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쳐주는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은 너무 하나님 중심의 일방적인 목적 같지만, 우리 인생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일깨움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의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으로서 인생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우리는 예배자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배는 주일에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의 예배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 앞에서의 복종, Surrender입니다. 우리는 산제물로 주님께 바쳐지는 하루 하루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I.

오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두 번째 길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목적을 추구함에 있어서 교회와의 관께는 필수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있어서 교회와의 관계가 필수적이라는 말씀 앞에서 어떤 분들은 질문을 갖고 계실 지 모릅니다. 교회와의 관계 없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가능하지 않은가?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는 오히려 영광을 가리우고 있지 아니한가? 교회에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는 상처를 받기가 쉬운데, 꼭 교회에 나아가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라고 말하는데 이같은 이야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과 교회를 나누어 생각하는 이면에는 성서적인 생각보다는 오늘의 문화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만연하는 개인주의는 이같은 생각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내 개인적인 결단일 뿐, 이웃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보는 신앙의 사유화 혹은 개인화 역시 문제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같은 생각을 만연시키는 것은 교회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니다.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과 일상 생활과의 거리, Gap입니다. 저렇게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삶이라면 내가 왜 교회 생활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게 됩니다. Nietzsche는 이렇게 적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로 하여금 그들의 구속자를 믿게 하려면 보다 나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의 제자들이 보다 구속받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같은 원인들이 믿음 생활과 교회와의 거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생각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찾아 그 기초위에 우리 믿음의 삶을 세워야 합니다. 비록 오늘의 교회가 부족하고 모자라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더 신실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끝없이 자라가도록 스스로를 갱신해야 합니다.

II.

먼저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을 되찾기 위하여 우리 모두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결코 사람들이 모여서 세운 어떤 조직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이지만,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조직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존재이면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늘도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이끌어 가십니다. 교회가 심히 타락해서 세상의 비난을 받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해도 우리는 이 교회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셨고, 오늘도 주님께서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오늘도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가 타락하고 생명을 읽어갈 때는 언제나 한구석에서 갱신 운동이 일어나서 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Martin Luther와 John Calvin의 종교개혁운동은 대표적인 것입니다. 영국 성공회에 속했던 John Wesley 사제의 감리교회 운동도 교회갱신 운동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이어져온 부흥 운동은 교회를 새롭게 세우고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비록 못마땅하고, 부족한 구석이 많아도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교회이기에, 참고 기다리면서 교회가 교회되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목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해서 교회는 필수적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세워가는 base, 기지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세상속에 펼쳐가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려는 뜻은 무엇입니까?

(1)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속에서 불러내셔서 거룩한 공동체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다르다, 구별되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세상속에서 부르셨습니다. 교회라는 말의 뜻도 Call out, 불러 내었다는 뜻을 갖습니다. 여러분, 왜 불러 내셨습니까?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부르셨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믿음, 다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갔습니다. 구약 성경 속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거룩한 삶을 항해 끝없이 자라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뜻을 깨닫고 응답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서로 돕고 붙들어 주는 사랑의 공동체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 백성들이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삶은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험한 인생길 헤쳐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서로를 붙들어 주고, 서로 격려해 주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랑의 삶은 잠시 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3) 셋째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사명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거룩함의 공동체이며, 그들이 서로를 붙들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해야할 일을 갖고 모인 사명의 공동체입니다. 그 사명은 바로 복음의 중인이 되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응답하게 해야 합니다. 더 넓은 세상속에 하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돌아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사명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큰 기쁨입니다.

교회는 거룩함의 공동체이며 사랑의 공동체 그리고 사명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사람들과 이 세상을 새롭게 세워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곧 부름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진정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위해서는 교회와의 깊은 관계를 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세우신 교회를 신실되이 섬기고 세워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III.

이제 주님의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랑의 삶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교회안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합니까?

이 아침 우리는 요한1서 4:7-16에 기록된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한1서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 처럼 사랑의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편지 안에 사랑이란 단어가 약 43회 나타나는데 4:7-5:3에 이르는 말씀에서만 32번이나 나옵니다. 이 말씀속에서 우리는 사랑함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된 표식임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일찍이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

(1) 첫째로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들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일깨우면서 본문 4:11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도 주님처럼 먼저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도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우리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관심을 표해오니까, 그제서야 마음의 빗장을 푸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다리시지 말고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손을 내미시고, 먼저 관심을 보이시고, 먼저 따뜻한 미소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먼저 베푸는 사랑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3) 그리고 주님의 사랑은 사랑 받을 자격의 유,무를 따지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보여 주어야 할 사랑도 바로 이러한 사랑입니다. 물론 성격적으로 혹은 배경이나 사회적인 신분 때문에 더 가까운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합니다. 자격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으려면 이 한계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4) 한가지 더 사랑의 삶을 위하여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랑이전에 적어도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가십, 험담을 통하여 상처받는 일은 사라져야합니다. 오늘의 한인교회가 사랑이전에 해야할 일은 상처주지 않는 일입니다. 책임없이, 확인없이 하는 말 한마디가 불신과 의혹, 상처와 아픔을 주는 일을 이제는 넘어서야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침례교회를 섬기시는 박성근 목사님께서 작년 7월 크리스챤 투데이라는 신문에 기고하신 “험담은 위험한 게임” 이라는 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사상을 논하고 평범한 사람은 시사를 논하며 천박한 사람은 사람을 논한다.” 이것은 로리 팰라트닉과 밥 버그가 최근에 쓴 <험담>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험담하기를 즐겨한다. 왜 그럴까? 첫째는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칭찬이나 덕담을 하면 좋긴 하지만 그것이 고소하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씹는 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상대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동안만은 자신이 상대보다 뛰어난 사람 같이 느낀다. 물론 착각이지만 말이다. 셋째로, 다른 사람들이 귀를 쫑긋하며 자신 주변을 둘러싼다. 마치 기자 회견장의 유명인사 같이 비밀 보따리를 풀어놓을 때 그는 스스로 중요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험담을 즐기는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험담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한다. 위다가 말한 것처럼, “잔인한 이야기는 바퀴를 타고 굴러가고 모든 사람은 그 굴러가는 바퀴에 기름칠을 한다.” 그래서 한번 시작된 험담을 멈추지 않고 그 반경을 넓히며 번져 가는 것이다.

탈무드에 의하면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첫째는 말하는 당사자이다. 험담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죽는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사용하라고 말을 주셨는데 그것을 사람들을 이간시키고 상처주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험담을 계속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해가 돌아온다. 험담을 늘어놓으면 순간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 같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눈 밖에 벗어나게 된다. 둘째는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죽는다. 그 정보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일단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은 회복이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된다.

필자가 아는 목사님 한분이 얼마전 교회를 사임하고 한국으로 나가셨다. 착실하게 목회를 잘 하시던 분이었고, 교회도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 안에서 이상한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다. 여자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름과 상황까지 거론이 되었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결국 목사님은 사임하시게 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루머는 누군가가 재미 삼아 던져 본 것이었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치명상을 입은 목사님은 회복이 불가능했고, 그 후 교회는 혼란 속에서 분열이 되고 갈라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인데 뭐 어때?” 그렇지만, 그게 아니다. 이미 던져진 말은 그것을 취소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셋째로 험담을 듣는 사람이 죽는다. 탈무드는 험담을 하는 것 보다 듣는 것이 더 나쁘다고까지 말한다. 관련된 세명의 당사자들 중 듣는 사람만이 그 말을 멈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은 이미 악담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상황을 제어할 능력이 없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친절”이다. 참 사랑은 함께 먹고 시간을 보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최선을 말해주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고전 13:5)

뉴욕에서 목회하시는 김상모 목사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아름다운 주제, 꽃이나 산 혹은 물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은혜롭지 않겠는가 했더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유, 목사님도 그런 말씀 마세요. 사람 이야기하는 맛에 교회 나가는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 이야기 안하고 살 수 있나요. 저는 사람 이야기 안하고는 못 사는 개성을 가졌거든요.” 또 다른 한분은 “목사님, 여성들만 모이면 어디 그런가요. 얘기를 하다보니 다 그런 거지요. 그런 것도 여성미라고 생각해 두세요.” 목사님은 그런 개성은 개 같은 성미, 그런 여성미는 여우 같은 성미라고 속으로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데이 라는 사람은 “세 황금문”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세 황금문을 지나게 하라. 다 좁은 문들이다. 첫째문은 “그것은 참된 말인가?”, 둘째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네 마음 속으로 참된 대답을 하라. 마지막으로 가장 좁은 문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이다. 이 세문을 지나왔거든 그말의 결과가 어찌될 것인지 염려하지 말고 크게 외쳐라.

IV.

우리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한 가족이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진실되이 사랑함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특별히 덕스러운 언어생활은 이웃 사랑의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를 썼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하나님께서는 교회안에서 서로 뜨거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뜨거운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의 길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뜨거운 사람으로 오늘 살아가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