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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2. 문형일 전도사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요한 1서 4:9-10
사랑만큼 흔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쉽게 버려진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만큼 강한 것도 없습니다.
아니 사랑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 모두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사랑없는 십자가 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여기 있다.
사랑하다가 힘이 드셔서 사랑하기를 포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우리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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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이 아침 고백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여러분 모르게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괜히 기분도 좋아지고 기다려집니다. 여자입니다. 그리고 집사람도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이 여인과의 만남을 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립니다. 한아름에 가면 이 여인이 언제나 먼저 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장금입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장.금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대장금 비디오는 아직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딱 한번씩 비디오 가게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55.8%의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대장금. 한국 국민 두 명 중 한 명이 보고 있는 셈인 이 드라마 대장금은 조선 중종 때 왕의 여의사로 기록에 나오는 의녀 장금의 이야기입니다. 이 대장금이 다른 사극과 다른 것은 사극 그러면 늘 왕과 왕비들의 질투 이야기만 보는 것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왕의 음식을 준비하던 수랏간 상궁들, 궁녀, 내시, 의녀, 정육점, 붓, 벼루 등을 파는 문방구 등 평소에 왕과 왕비 뒤에 병풍처럼 서서 무대 배경이 되었던 주변인들과 일반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에 있습니다. 초반에는 장금이가 있던 수랏간, 왕의 음식을 담당한 궁녀들이 매일 왕에게 올리는 처음 들어보는 궁중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재료를 소개하면서 얼마나 맛있게 소개가 됐는지 저녁을 먹고 시청하는 시청자들을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주부들이 매일 매일 부엌에서 하는 평범한 일,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콩나물을 무치는 일도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면 그것은 더 이상 밥이 아니고 약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평범함 속에 마음이 들어가고 정성이 들어가면 그것이 비범함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휴대전화 벨소리로부터 음식점, 떡집, 쌀의 이름까지 모두 이 대장금의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비싼 로얄티를 지불하고 대장금을 따라하고자 대한항공에서는 기내식의 메뉴를 궁중 식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후반으로 가면서는 의녀가 된 장금이를 통해 동양의학이 가진 좋은 점들이 소개되면서 보통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병의 증상과 거기에 필요한 약재, 그리고 일반 건강 상식까지 친절하게 서비스하고 있는 이 대장금의 인기는 드라마 허준이 세운 63.7%를 넘을 것이라 보고있습니다.
대장금 인기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매일 신문, 방송을 통해 폭로되고 있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일으키는 부정과 비리와 거짓말에 가슴이 답답해진 사람들에게 바보처럼 정직한 장금이는 막힌 가슴을 시원케 하는 청량제, 약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믿는 진실 하나에,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고집불통 장금이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성공을 위해서라면, 진실 앞에 눈을 감아버렸던 우리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강한 자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상식과 양심은 버리라고 말해주는 거짓말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아니야 그것은 진짜가 아니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포기해 버리고 싶은 정직, 성실, 사랑, 우정, 진실, 눈물, 용기, 인내를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깜깜한 동굴 같은 현실 앞에서, 이제 끝장이야 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호미를 들고 씨앗을 뿌리는 장금이는 NO. 라고, 오랜 경기침체로 조기은퇴, 청년 실업, 그리고 취업포기를 선언한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Do not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Do it again!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고 외칩니다. 장금이는 꿈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장금은 큰 사람, 능력 있는 사람, 강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을 도우며 한 뿌리 잡초처럼 밟으면 밟을수록 더 끈질기게 살아가는 낮은 자로 높은 사람들을 섬겨 그 사람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자기 부모를,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원수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니 그 원수의 발을 씻기고 약을 처방해 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다 포기하라고 그만두라고 하는데도 묵묵히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얼굴이 예쁜 사람을 뜻하는 얼짱 보다 아름다운 몸매를 뜻하는 몸짱 보다 마음이 아름다운 맘짱, 맘짱 장금이는 그야말로 그 이름 앞에 The Great 큰, 대 (大) 자를 붙여 줄 만 합니다.
한국은 지난 세월 무엇이 강합니까? 물으면 총과 칼이 강합니다. 대답하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 것이 지나고 무엇이 가장 강합니까? 물으면 수출과 경제 성장과 목표달성과 성공이 강합니다. 그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무엇이 강합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세상의 재미를 보는 것이 가장 강합니다. 지금 그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세상은 총과 칼 가진 사람, 성공한 사람, 쾌락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잘난 사람이 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두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느라 마음속에서 외치는 사랑을, 의리를, 진실을, 정직을, 깨끗함과 인내를 포기하고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로 만들어버린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그런 사람이 바보입니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보입니까?
부정과 폭력과 살인과 비리와 불륜과 거짓말도 성공을 위해서라면, 돈이 된다면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야 성공 할 수 있어. 그것이 똑똑한 거야! 칭찬하는 사회를 살고있는 우리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와 목사와 평신도들도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는 것이, 가장 높아지는 것이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래 바로 그것이 예수 믿는 이유라고 믿고있지는 않습니까? 인내와 순종과 거룩함과 경건함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름도 없이 봉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보가 되어버린 그런 시대에 살고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바보로 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거꾸로 가는 세상을 따라가기보다 거꾸로 가는 세상을 거꾸로 가고있다고, 바로 가자고. 더디더라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리로 가면 죽는다고 말하는 그런 바보들로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세상에서 강한 것이 총과 칼입니까? 미움과 성공과 쾌락입니까?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강한 것 같지만 강한 것이 아닙니다. 총과 칼은 더 많은 총과 칼을 만들어냅니다. 총과 칼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총과 칼은 더 많은 피와 더 많은 파괴를 가져옵니다. 총과 칼이 있는 한, 전쟁과 미움과 힘 겨루기는 끝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미움과 성공과 쾌락이 강합니까? 미움과 성공과 쾌락이 주는 힘은 강해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남도 죽이는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라고 외치며 쫓아가던 그 모든 세상의 강한 것들이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어쩌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 모릅니다.
오늘 읽어주신 요한 일서 4장의 말씀을 개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시면, 그냥 우리의 죄를 다 사해 주시지 왜 아들 예수님을 화해의 제물로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가장 강한 하나님이 왜 가장 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왔습니까? 가장 강한 하나님이 어떻게 초라하게 가장 약한 모습으로 모욕과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달릴 수 있습니까?
오늘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변화 산에 오르셔서 그 몸이 희게 빤 옷처럼,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신 것을 기념하는 Transfiguration Sunday 변화주일입니다. 이제 이 변화 주일이 지나면 수요일 흔히 Ash Wednesday라고 하는 재의 수요일, 또는 성회 수요일부터 Lent,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열흘을 뜻하는 한자 순(旬) 이 4번, 즉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빼고 40일 동안을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주님께로 돌아가는 절기입니다.
왜 십자가를 지셨어요? 왜 그렇게 하셔야만 하셨어요? 왜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세요? 주님께서는 묵묵히 마음을 보이십니다. 사랑하니까 그래,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까. 내 마음에는 너희들 밖에 없어서 그래.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하고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보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며 살겠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이순영이라는 분이 가명으로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 쓰신 실제 생활 수기를 소개합니다.
30여 년 전, 나는 그 시대의 어느 딸처럼 생계와 아들의 출세를 위해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접어야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공장에서 일했지요. 밤이면 중학교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몰래 공부했지만 그것도 잠시, 시골로 내려와 농사나 지으라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했습니다. 배추 심고, 고추 따고 그렇게 젊은 날의 반을 보내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폭력 조직에 몸담았다는 소문이 있는 데다 고향에 돌아와 간척지 농사에 투자했다가 망한 그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게다가 열 남매 중 막내인데도 시부모님을 모셔야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그런 그를 못마땅해했지만, 나는 이미 그의 까맣게 탄 얼굴도 텁수룩한 머리도 좋기만 했습니다. 나도 이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정비사 자격증이 있으니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겠다는 그에 대한 믿음으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 집안은 엄청난 땅 부자이었지만, 형제간의 불화 때문에 시부모님이 막내아들 몫으로 겨우 남겨놓은 동네 끝자락 쓰러져 가는 초가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물 한 방울도 아끼는 시어머니 눈치가 보여 남들 다 자는 밤중에 빨래를 했고, 또 제사는 어찌 그리 많던 지요. 몸은 고달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 힘을 냈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첫째 딸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20여 년 객지로 떠돈 버릇 탓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먹고 운전해 교통사고를 내기도 여러 번, 의처증까지 생겨 어린 딸 앞에서도 툭하면 나를 때렸습니다. 다 같이 죽어버리자는 남편의 협박에 떨던 어느 날 따로 살자는 편지를 썼지만 차마 남편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같이 죽자며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다행히 나와 딸들은 남편을 피해 집 뒤 비닐 하우스에 숨어있었습니다. 세 살 밖에 안된 둘째딸은 그 사이 소리 없이 우는 법을 터득해 심하게 헉헉대며 눈물을 흘렸고, 다섯 살 된 첫째 딸은 동생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울지 말라 다그쳤습니다. 활 활 불타오르는 집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린 딸들에게 너무 일찍 아픈 세상을 보여준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첫째 딸의 일기장에서 가슴을 도려내는 말을 보았습니다. 이제 고작 한글을 뗀 아이가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 죽고 싶다라고 쓴 것입니다. 아!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딸들의 고사리 손에 의지하며 살 듯이, 딸들도 내가 있었기에 그나마 의지하고 살아올 수 있었음을... 나는 그때 스스로 희망을 찾아 나서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 희망과 함께 셋째를 갖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직 위태위태했지만 조금씩 달라지려고 애썼고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셋째를 낳기 전날 남편은 벼를 베다 콤바인에 손가락 세 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수술로 붙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펴지지 않는 그의 오른손 손가락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 뒤로도 남편은 술을 먹고 운전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 사고가 이어지고, 양계장 지을 때 받은 융자금 독촉과 남편이 선 보증이 잘못돼 집이 경매에 붙여지는 등,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이 가슴속에 쌓여 풀 길이 막혔는지 언제부턴가 가슴이 떨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저는 정신과 병원에서 지어준 수면제를 먹어야했습니다. 그런 것을 아는지 어린 딸들은 아빠가 외출하면 따라가 술 먹는 것을 말리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갖은 애교로 기분을 맞춰줍니다.
이제 큰딸이 대학교 1학년, 둘째딸이 고 2, 셋째 딸이 중 2입니다. 나의 꿈도 잃고 눈물로 살아온 세월이지만, 잘 자라난 아이들을 보며 내가 가진 행복을 헤아려봅니다. 언젠가 딸들이 준 사랑한다는 말이 담긴 편지, 그리고 성질이 불같은 남편이 쑥스러운지 내던지듯 건네준 꽃다발..., 그 속에서 고단한 세월이 녹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디선가 “성공은 얼마나 많은 시련을 이겨냈느냐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말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면 또 술을 먹고 오는 건 아닌지 가슴이 떨립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힘들게 객지 생활을 하고, 많은 형제 속에서 외톨이로 자란 남편의 아픔을 알기에, 그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임을 알기에, 서로의 상처를 안으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 어머니의 마음 이해가 되십니까? 이 아내의 남편에 대한 마음이 바로 이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과 오래 참음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성공은 얼마나 많은 시련을 이겨냈느냐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는 이 여인의 말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남편의 모든 잘못된 행동과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이 여인의 말, 주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손과 발에 못을 막고 모욕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그 말씀으로 저는 들었습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구절이 시편 121편 3절입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너를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우리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느라 눈이 빨갛게 되어 잠 못 주무시는 하나님. 제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에게는 역시, 그래. 바로 그거야!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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