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Greater Washington - KUMC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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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1. 김상근목사

"이제, 어디로?"

창세기 32: 9-10

야곱이란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형의 복수가 두려워 고향을 등진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밧단아람이란 낯선 곳에서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저 요단강만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고향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목에서, 지팡이 하나 달랑 들고 건넜던 요단강을 굽어보며,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와싱톤 한인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도 마지막이고, 회중을 섬기는 목회자의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는 것도 마지막이고, 지난 12년동안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1, 2, 3, 4 부 설교를 마치고, 바로 덜루스 공항으로 가서, LA 공항을 거쳐, 내일 새벽 0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제게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와싱톤 한인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도 마지막이고, 일선목회의 현장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내일부터 저는 제게 주어진 또 다른 인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내일부터 저는 강의실에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실과 도서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씌고 있는 책들을 뒤적이며,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제일 쉬운 일이 공부하는 일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목회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제일 자기 착각에 빠지기 쉬운 일 중에 하나가, 공부하는 일이고,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보람되고 기쁜 일 중에 하나가 목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조금 복잡한 것 같은데, 그냥 "목회자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섬기겠다"는 뜻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르치는 일을 목회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내일을 향해 떠납니다.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나는 절 위해서, 생각나실 때 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막 40이 된 저의 나이를 고려해 볼 때, 저는 아마 앞으로 25년정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될 것 갔습니다. 1년에 100명씩 가르친다고 계산해보면, 저는 앞으로 25년동안 2,500명의 젊은 청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즈음 앞으로 만나게 될 이 2,500명의 젊은 청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제 가슴은 기대와 흥분으로 두근거립니다.

그 2,500명 중에서 십분일, 250명만 건질 수 있다면, 아니 2,500명의 백분의 일, 스물 다섯명만, 정말 멋진 사람으로 만들수 있다면, 그 스물 다섯명을 진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수 만 있다면, 그 스물 다섯명을, 한국의 교회, 아니 한국 사회를 위해, 하나님 기뻐하시는 미래의 재목들로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습니까? 저는 그 스물 다섯명의 청년들을 찿아서 먼 길, 떠납니다. 저는 그 스물 다섯명을 찾아서, 태평양을 건너, 왔던 길을 되돌아 갑니다. 그 스물 다섯명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

여러분, 야곱이란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자기 형을 속였던 그 유명한 야곱을 기억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야곱은 고향을 등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는 형의 복수가 두려워서, 밧단아람이란 낯선 곳으로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멀고 기력이 쇠하여진 아버지 이삭을 떠나야 했던 사람입니다. 사냥이나 좋아하고 성깔만 까탈스러웠던 큰 아들, 에서 때문에 언제나 시린 가슴을 쓸어내리시던 어머니 리브가를 남겨놓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독한 사람도,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법입니다. 언제가는 돌아가야 할 곳, 내 사랑하는 어머니, 내 사랑하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신 곳,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곳입니다. 야곱은 그런 고향을 언제나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낯선 땅, 밧단아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식구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눈 앞에 보이는 요단강 건너편으로 멀리 고향이 보입니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뛰놀며 자랐던 곳, 내 사랑하는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꿈에도 그리던 고향이 바로 지척에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전에 맺었던 온갖 인연들의 기억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향에 좋은 기억만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전에 맺었던 가슴아픈 인연들, 분노의 인연들, 배신의 인연들이 함께 남아있습니다. 야곱의 기억속에 두려움으로 남아있는 것은, 형 에서의 복수였습니다. 형 에서가 배신의 기억을 되씹으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장한 부하 400명을 거느리고 형 에서가 달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옛 기억 속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그는 반드시 형 에서를 다시 만나야 합니다. 야곱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저 요단강만 건너면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향땅인데, 바로 저 너머가 내 고향인데, 그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형 에서의 복수의 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단강 강가에서 드렸던 야곱의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얍복강가에서 밤새워 천사와 씨름하면서 드렸던 기도보다 몇시간 먼저 드렸던 기도였습니다. 얍복강가에서 드렸던 기도는 "밤의 기도"였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도는 요단강 너머, 고향을 바라보며 드렸던 "낮의 기도"였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족에게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

저는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마지막 말씀을 전하면서, 지난 12년의 미국 생활을 오늘로 마감하면서, 내일 새벽 0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내 고향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이렇게 읽어보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김희수 목사를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김윤주 목사를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께서 이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12년전 태평양을 건널때, 가진 것이라고는 책가방하나 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저는 야곱의 마음을 조금 알것 같습니다. 왜 야곱이 이런 기도를 드릴수 밖에 없었는지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하나님께서 지난 12년동안 제게 베푸신 그 모든 은총을 감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2년전, 이 곳 미국 땅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은 제게 낯선 땅, 밧단아람이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작은 책가방 하나, 야곱의 지팡이와 다를 것없는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제가 거느리고 있는 한떼가 펜실바니아로 이사짐을 옮겼습니다.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제 처는 당분간 이 곳에 남기로 했기 때문에, 저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오늘 예배를 마치고 그곳으로 이사하게 됩니다. 이삿짐을 실는데, 왜 그리 짐이 많은지… 분명히 12년전에는 작은 손가방하나 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두 떼를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지, 왜 이렇게 감당못할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지…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번 곰곰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야곱과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으십니까?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으십니까?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말재주가 뛰어난 그런 뻔지르르한 기도말고, 진짜 내 인생을 걸어놓고 드릴 수 있는 기도, 더듬거리만, 내 인생의 눈물과 땀을 걸고 드릴 수 있는 감사, 여러분은 그런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눈물 젖은 빵을 앞에 놓고, 여러분 기도해 보신 적 있습니까? 몸서리치는 인생의 비극 앞에서, 이제 끝이다 싶을 때, 그냥 포기하고 말자 싶을 때, 우리인생의 밑바닥에서 그래도, 눈을 들어, 주님 바라보실 수 있으십니까?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를 두개 사서 아내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으로 한끼를 떼워야 했던 한 젊은 유학생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시절 그 부부는 정말 가난했습니다. 그 부부는 소다 사먹을 돈이 없어서, 항상 치즈버그를 그냥 공짜로 주는 물과 함께 먹었습니다. 치즈버그를 물과 함께 먹는 그 니글니글한 맛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치즈버그에 질려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피자 헛에가면, 1 불내면, 3개 주는 Breadstick 이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한끼를 떼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공짜로 주는 치즈가루를 잔뜩 발라서 먹었습니다. 이 젊은 유학생 부부는 1불짜리 치즈버그와 Breadstick으로 유학생활 초창기를 견뎠습니다. 교회 전도사로 일하던 남편은 주중에는 학생 기숙사 경비를 섰습니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졸리는 눈을 부릅떠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밤경비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요리에 서툰 아내는 멸치국물에 미역만 잔뜩 넣고 삶은 것을 미역국이라고 내놓기도 하고,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 물에 파를 조금 썰어놓고, 계란 한개를 풀어서 계란국이라는 검소한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 아내역시 열심히 살았습니다. 오전에는 교수비서로 일하고, 점심시간에는 Subway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저녁시간에는 한국사람이 경영하는 가발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국 유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점심값도 절약하고, 점심시간 두시간 일하고 15불을 번다고 좋아하던 아내의 모습을, 남편은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 가난했던 유학생 부부는 이런 노래를 함께 자주 불렀습니다. "외로운 사람아, 너와 나는 눈물을 흘리지말자. 비바람부는 날, 너와 나는 뜨겁게 두 손을 잡았다. 그대여, 그대여, 가진 것 없는 우리들, 그러나 젊었다.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 정말,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두 손 잡고 함께 기도하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가 이제 여러분 앞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나의 된 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 식구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께서 제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을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저와 저의 가족에게 이렇게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이런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기도가 기도로만 끝이 난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의 회복이라면, 그 수직적인 관계의 회복은 반드시 수평적인 이웃과의 관계회복으로 나타나야합니다. 기도는 삶의 실천으로 열매 맺을 때,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메아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메아리는 반드시 우리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요단강가에서 드렸던 야곱의 기도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결단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미래의 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과거에 대한 감사는 다가오는 미래를 향한 다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저 요단강을 건너올 때, 지팡이 하나뿐이었던 사람이 두 떼나 이루었으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 요단강을 건너올 때, 형제에게 아픔을 주고 떠났다면, 저 요단강을 다시 건너서, 마땅히 그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 할 것입니다. 저 요단 강을 건너올 때, 인간적인 계산만으로 살았다면, 이제 저 요단강을 다시 건너 갈 때는 하나님 뜻 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해야합니다.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달라야합니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제와 내일이 변치않고 똑 같다고 하면, 그런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제게 이런 큰 축복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그냥 저를 이렇게 살다가, 조용히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시옵소서" - 이런 기도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런 기도를 듣기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을 하신 것 같습니까? 그렇지않습니다. 지팡이 하나 뿐이었던 사람에게 두 떼나 베풀어 주셨으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어찌된 영문인지,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와싱톤 한인교회 교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대단하신 분들이십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대단한 분이시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도 대단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는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세상을 향해서 선언 하셨습니다.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화도 아니고 변혁시키겠다고 저렇게 큰 플랭카드를 내거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각과 계획을 넘어서는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것, 편한 것, 안정된 것에 머물러 있지마시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서,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요단강을 건너 가시기를 바랍니다. 강가에서 보면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멋진 저녁노을만 감상하시면서 계시겠습니까? 이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할 때가 아닙니까?

저는 오늘 설교를 마지막으로, 제 앞에 놓여있는 요단강을 건너 갑니다. 요즈음 저는 거울 앞에 설때마다 이렇게 힘차게 외칩니다. 대한민국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스물 다섯 명의 청년들아, 기다려라. 내가 곧 가마! 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한 참 폼을 잡고 있는데, 옆에 서서 거울을 쳐다보고 있는 제 아내가 자기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코가 너무 낮으니까 한국에 가면 코를 잘 세우는 성형외과를 좀 알아봐 달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조국을 바로 세우겠다고 큰 소리치는데, 또 다른 사람은 자기 코를 바로 세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도 참 문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인생의 요단강가에 서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요단강이 앞에 놓여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야곱은 요단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에게서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졌던 저는 저의 요단강을 건너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25명의 청년을 만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 갑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요단강가에 서 있습니까? 여러분은 언제 여러분의 요단강을 건너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