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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5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4) - 조영진 목사

"균형있는 선교"

사도행전 1:6-11

교회는 선교입니다.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성서적이고 건강한 선교란 어떤 것입니까?
우리 교회가 추구해 갈 균형있는 선교란 어떤 것입니까?

자주 파선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볼품없는 작은 인명 구조소(Life Saving Station)가 있었습니다. 건물이라곤 오두막 한 채 뿐이었고 보트도 작은 것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몇 명의 회원들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그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밤낮으로 바다에 나가 실종자들을 찾아 구하였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이 훌륭한 작은 구조소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그래서 이 본부는 유명해졌습니다.

구조된 사람들 중 몇 사람과 또한 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생명구조소와 관계를 맺고 이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의 시간과 돈을 제공했습니다. 새로운 보트들을 더 구입했고, 새로운 구조대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작은 구조소는 점점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생명 구조소에 가입한 새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건물이 너무 볼품없고 시설이 빈약하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바다로부터 구조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편안한 장소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비상용 간이 침대를 훌륭한 침대로 갈아 치우고, 확장된 건물 안에 좀 더 훌륭한 가구들을 갖다 놓았습니다. 이제 그 구조소는 그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모임의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일종의 클럽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그곳을 아름답게 다시 장식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제 회원들은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점 더 관심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생명 구조원을 새로 채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 구조소의 주제는 여전히 클럽 장식들 가운데서 돋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회원이 클럽에 가입하는 예식이 거행되는 방에는 여전히 예식을 위한 구조선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회합 때, 클럽회원들 가운데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클럽의 생명 구조활동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닌데다가 클럽의 정상적인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구조활동을 그만두기를 원했습니다. 회원들은 생명을 건지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하면서 계속 생명 구조소라고 불리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투표결과 결국 패배하였으며, 만일 그들이 그 지역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조하기를 원한다면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 나름의 생명 구조소를 새로 세울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생명 구조소는 옛날 구조소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조소도 일종의 클럽으로 발전해 버렸고, 그래서 또 다른 생명 구조소가 새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으며, 만약 우리가 오늘날 그 해안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그 해안에 서로 배타적인 수많은 클럽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바다에서는 여전히 파선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간 저희 교회 표어인 "복음으로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교회"라는 제목 밑에 드리는 연속설교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저희 교회 Mission Statement, 사명선언문을 함께 외워 보십시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 균형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키고 믿음을 전승시켜 내일을 드린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모였습니다. 복음 안에서 모였다는 사실 때문에 교회는 동창회나 향우회 혹은 다른 어떤 모임과도 구별됩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응답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모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여서 무엇합니까? 무엇하기 위하여 모입니까?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다르고,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목적, 다른 가치관, 다른 우선 순위를 갖고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구별된 백성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은 아닙니다. 여러분, 거룩함을 향해 자라서 무엇할 것입니까?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습니까? 끼리끼리 모이는 클럽과 교회는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교회가 끼리끼리 모이는 클럽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I.

오늘 아침 우리는 사도행전 1:6 이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이 모습 저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가, 땅 위에서의 사역을 매듭지으시고 하늘에 오르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서 압제를 받고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은 그리던 꿈이었습니다. 또 제자들은 주님의 나라가 회복된다면 그래도 한자리씩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구름에 쌓여 승천하셨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흰옷을 입은 두 사람- 아마도 천사 일 것입니다- 은 이렇게 하늘로 올라오신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의 증인되는 일, 선교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8:18 이하의 말씀을 보아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일은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며 21세기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결코 Option,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복음의 증인되는 일은 마음에 들면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가 지켜야만 하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John Piper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 교회는 성장하기 위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참 교회가 되기 위해 선교하는 것이다. 선교 없이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은 우리의 힘, 우리의 능력, 우리의 계획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룩해야 하는 어떤 업적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분명히 일깨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복음의 증인이 되기 전에 먼저 있어야 할 일,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능력을 힘입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을 때만이 증인이 되는 역사가 시작될 수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실한 주님의 이 약속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후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에 힘쓴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드디어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있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을 향해 복음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2000년 역사에서 복음은 계속 땅 끝을 향하여 퍼져 갔습니다. 21세기 워싱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어 땅 끝을 향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하다는 이 메시지는 선교에 대해 우리 모두를 일깨워 줍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은 내 계획,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주체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아닙니다. 어느 교단도 아닙니다. 선교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한 모퉁이를 맡아 참여하는 도구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쓰임 받는 도구일 뿐입니다.

II.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이 주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이 사명에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우리는 앞으로 5년 동안 균형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켜 나갈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균형있는 선교란 네 번째 5개년 계획을 준비해 갈 때, 저희 교회의 선교 전반을 점검하고 방향을 정립한 선교협의회 보고서에서 인용한 표현입니다. 선교협의회 보고서는 저희 교회의 복음증거사역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사명을 받아, 가까이서 그리고 나가서, 입술로 그리고 사랑의 손길로, 우리 교회 자체로 또는 다른 교회와 연대해서 구원의 복음을 세상 속에 증거하는 균형있는 선교를 펼쳐 나간다."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균형있는 선교를 위하여 먼저 요청되는 것은 선교에 대한 Holistic Understanding, 통전적인 이해입니다. 선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해들이 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선교를 우리는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도록 전하는 전도도 포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역을 선교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비록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모든 일들은 선교의 영역에 포함 될 수 있습니다. 선교에는 대사명(Great Commission),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일과 대명령(Great Commandment),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Wesley 신학교의 James Logan교수의 주장을 통전적인 선교 이해의 적절한 표현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2) 이렇게 선교의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 됨이 입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 그리고 돈지갑까지도 포함되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은 입술만 거듭나게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인생 모든 영역을 새롭게 변혁시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증거는 입술과 손과 발이 균형있게 참여해야 합니다. 손과 발의 참여만 강조해서 입술로 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도 온전치 못합니다. 반면에 입술만으로 복음 전하는 일도 온전치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는 한 그리스도인이 빈민가에서 진실된 사랑으로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한 아이가 이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Are You Jesus' wife?(당신이 예수님 아내입니까?) 입술만으로 전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입술도, 손과 발도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3) 셋째로 균형있는 선교란 가까이 그리고 멀리가 균형을 이룸을 뜻합니다.

오늘날 한인교회가 받는 비판 중에는 해외선교, 멀리가는 일을 위해서는 많이 투자하면서도, 가까이 있는 미국을 위하여, 더 좁혀서 한인동포사회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는 일에는 인색하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다와 사마리아 또 땅 끝을 향해 나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땅 끝을 향해서는 열심히 나아가는데, 예루살렘과 유다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있지만, 땅 끝, 해외는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든지, 혹은 이곳에는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신통치 않지만, 해외에는 조그마한 투자로도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가까운 곳, 예루살렘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이 다 복음화 된 다음에야 유다로 간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 사마리아로 뻗어간 것은 가까운 곳이 다 복음화 되지 않았지만, 함께 이루어져 간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멀리 가는 일에 집중하느라고 가까운 곳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인동포사회의 아픔을 싸매어 가는 한인봉사센타나 가정상담소를 보면 정기적으로 돕는 교회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멀리도 나가야겠지만, 가까운 곳, 이곳에도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기관들은 봉사기관이니까 선교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선교의 의미를 너무 좁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가까이"와 "멀리"의 균형을 추구해 갈 것입니다. 이미 복음 증거 사역에서는 국내, 또 한인사회를 향한 선교를 강화할 계획을 안고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의 더 많은 기도와 지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4) 넷째로 우리는 자체교회로 혹은 다른 교회와 함께 손잡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균형을 추구해 갈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자기 교회 이름을 내는 일에 집착하느라고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속한 연합감리교단은 Connectionalism, 연대성을 큰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개체교회 중심이 아니라, 모든 연합감리교회들이 서로 Connect,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연대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한 개체교회로는 할 수 없는 일도 모든 교회들이 함께 손을 잡으면 위대한 역사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연합감리교단을 통한 선교를 위하여 보내는 예산이 1년에 10만 불이 넘습니다. 금년부터는 VA연회 안에 20여 개 교회를 개척하는 Building in Faith 계획에 3년 동안 3만 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또 지난 성탄절에 바쳐주신 헌금 가운데서 UMCOR, 연합감리교회 구호위원회를 통하여 $6000을 이란의 지진피해를 돕는데, 또 $3000을 통일위원회를 통하여 북한의 한 고아원을 돕도록 보냈습니다. 우리는 미국 교회들과 함께, 또 다른 한인교회들과 함께 손잡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에 힘을 모을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손잡고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우리 교회가 갖는 힘과 역량을 모아서 독자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도 펼쳐갈 것입니다. 혼자 혹은 함께 손잡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균형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III.

오늘 이 시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복음을 전하기가 힘든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여 나만 잘 믿으면 되지 않는가? 생각하는 경향이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기적인 신앙성향은 Post-Modern, 현대 후기사회의 종교다원주의와 맞물려서 복음증거의 열정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전도하기 보다는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종교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자고 합니다. 물론 전투적인 선교전략은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 선교의 열정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가 깊이 살펴 보아야 합니다.

종교의 공존을 말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교인들처럼 열심히 전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 선교사가 천주교를 포함해서 16만 7천명쯤 되는데 반해, 이슬람선교사는 10배가 넘는 176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막강한 오일달라로 이슬람교를 전하는데, 지난 50년간 기독교는 47%가 성장을 보인데 비해, 불교는 63%, 힌두교는 117%, 이슬람교는 500%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자녀를 많이 낳는데서 오는 자연증가율도 높습니다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의 긴박성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대속물로 내 주셨습니다..." 디모데전서 2:4 이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균형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켜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의 변혁은 바로 나의 변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미미해 보여도 괜찮습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십시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해 나아가십시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혁시키는 일을 힘써 이루어 가십시다.

해변가를 나이 많은 노인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앞에서 걷는 한 젊은이가 무언가를 집어서 자꾸 바닷물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젊은이를 붙들고 노인은 물었습니다.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바닷가에 밀려나와 있는 star fish, 불가사리가 아침해가 뜨면 죽게 되니까 지금 집어서 바닷물에 던지고 있다고. 노인이 되물었습니다. 이 해변의 길이가 수마일이나 되고 수백만 마리의 불가사리가 나와 있는데 그 몇 마리 집어 던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때 젊은이는 자기 손에 있는 불가사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적어도 이 한 마리에게는 의미가 있지요. 그리고는 바닷물 속에 던졌습니다. 오늘도 생명을 살리는 복음증거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세상입니다. 적어도 한 생명을 살리는 이 역사, 지구의 한 모퉁이를 변혁시키는 역사는 오늘도 여전히 의미 있습니다. 오늘도 계속 펼쳐가야 할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와싱톤한인교회에 맡겨주신 사명입니다.교회는 선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