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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8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3) - 조영진 목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
데살로니가전서 4:1-8
복음 안에서 모여서 무엇 할 것입니까?
우리는 거룩한 삶을 향해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거룩함을 향해 자라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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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부터 저희 교회는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의 꿈을 안고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저희 교회 사명선언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주보 표지에 나와있는 이 사명선언을 함께 읽어 보십시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 균형 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키고 믿음을 전승시켜 내일을 드린다." 이 사명선언은 단순한 statement가 아닙니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해보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명은 우리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꿈입니다. 목표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며 추구해 나갈 푯대입니다.
새해를 맞아서 저는 새로운 사명선언을 중심으로 연속설교를 시작했습니다. 1월 첫 주일에는 전체 주제가 되는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에 대하여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복음 안에서 모여"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이 복음에 응답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복음 안에서 자라가도록 주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오늘은 금번 연속설교의 세 번째 주일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1-8에 기록된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경에 실려있는 사도 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초기에 기록된 편지로 꼽힙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데살로니가의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1장에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여러분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역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일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골치 아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갓 세워진 교회였기 때문에 당시의 문화, 특별히 성적인 타락과 향락문화의 영향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유혹하고 위협해 왔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권고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행을 멀리하여야 합니다.(4:1,3)
이 말씀 속에서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밝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성결케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거룩함의 요청은 새로운 명령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성경 레위기 19:2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그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거룩한 백성, 성민(聖民) 혹은 거룩한 무리, 성도(聖徒)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요청은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거룩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함의 추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정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룩함 이란 말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거룩함을 원하시는데, 거룩해 진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거룩함의 뜻은 무엇입니까?
"거룩함"이란 말은 'different, 다르다 혹은 set apart, 떼어 놓다, 구분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백성이라고 말할 때,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 구별되는 백성임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서도 세상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면, 우리는 그 믿음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자기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십시다.
(1) 그리스도인이 거룩하다는 말은 우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인생의 주권을 우리 주님께 이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주님의 소유이고, 주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내 인생의 길과 지침은 나의 지식, 나의 지혜에 있지 않고, 내 인생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구별된 백성, 거룩한 백성입니다.
(2) 우리는 소속이, 주인이 다르다는 면에서 거룩할 뿐 아니라, 이렇게 소속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감으로 거룩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는 넓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 좁고 힘든 길을 걸어갑니다.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목적, 다른 가치관, 다른 우선 순위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4:4 이하의 말씀처럼 우리는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중함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과 같이 색욕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의 향락문화에 휩쓸려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물질제일주의 풍조에 떠밀려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본문 4:7 이하의 말씀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이 뜻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목사를,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거룩함이란 인간의 노력과 수련의 열매가 아닙니다. 도를 닦아서 이르는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의 거룩함이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함으로 맺게되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살라고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러기에 이 거룩함의 여정을 신학자들은 "What the Holy Spirit does in us,"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역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거룩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거룩함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II.
여러분, 지난 주일 저는 "복음 안에서 모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서 모여서 무엇할 것입니까? 모여서 무엇을 추구할 것입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달려 갈 것입니까? 우리는 사명선언 속에서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히 대답하였습니다. 복음 안에서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갈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여서 함께 자라갈 것입니다. 거룩함을 향해 함께 기도하며, 함께 격려하며, 함께 노력해 갈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함께 모이고, 함께 훈련받고, 함께 자라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왜 모이셨습니까? 무슨 기대를 안고 모이셨습니까?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공부하면서 무엇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까? 그저 습관처럼 왔다갔다 하시는 단계를 이제는 넘어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왔다갔다 하시는 모습도 이제는 벗어버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 거룩함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 안에서 모여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음으로 제기되는 물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거룩함에 이를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교우 여러분들이 거룩함에 이를 수 있도록 어떤 기회를, 어떤 채널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여러 가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몇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첫째는 개인적인 경건의 훈련입니다. QT, Quiet Time이라고 해도 좋고 무엇이라 불러도 괜찮습니다만, 우리의 주인되시는 주님 앞에 무릎꿇고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말씀을 펼치는 것입니다. 여러 해 교회를 섬겨오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여러 해 교회를 다녔다해도 주님과 나와의 만남과 교제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대하는 이 경건의 훈련이 없이는 우리의 믿음은 결코 자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경건의 훈련이 없으면 신앙은 지식의 조각으로만 남아 있고, 삶의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는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에 머물고 맙니다. 저는 이 경건의 훈련을 거룩한 습관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거룩한 습관이 없이는 결코 거룩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2) 둘째는 예배입니다.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물론 예배는 예배드림에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고백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비록 예배드림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 해도,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거룩함을 향해 자라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배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치기도 하시고, 신앙의 감격을 체험케도 하시며, 변화시켜 주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으로 함께 드리는 예배는 거룩함을 향한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길입니다.
(3) 셋째로 신앙교육 프로그램들입니다. 모든 성경공부, 신앙훈련 프로그램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룩함을 향해 자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되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가꾸어 가면서, 참으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훈련합니다. 새로운 5년 계획을 시작하면서 저희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저희 교회 신앙교육 프로그램들을 재정비하는 일입니다.
현재 저희 교회는 100단위 과정에서 신앙의 기초를 세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200단위 과정에서는 주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맺도록 돕고 있습니다. 300단위 과정에서는 부름 받은 제자의 삶과 사역에의 헌신을 준비하도록 가르치고, 400단위 과정에서는 복음증거 사역에 참여하는 훈련을 실시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재의 과정들이 과연 효율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고 있는지, 또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도록 뒷받침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새롭게 정비해 갈 계획입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야 합니다. 이만하면 난 그만 배워도 된다는 단계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실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면 자라갈수록 우리는 더욱 부족함을 느끼고, 더 많은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우리 교회가 효율적으로 거룩함을 향해 자라 가는 공동체가 되도록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4) 넷째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는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속회입니다. 적은 인원이 함께 모이는 속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속회를 "제자로 자라 가는 나눔의 공동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여러분, 속회에 모여서 뭐 하자는 것입니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취미생활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속회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같이 예배를 1부, 2부, 3부, 4부 네 번을 드리고, 교우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속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습니다.
4년 전부터 속회를 새롭게 시작해 오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도, 갈등도 느껴 보았습니다. 또 의욕을 갖고 시작되었던 속회가 문을 닫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힘들게 움직여 가는 속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회를 통하여 많은 교우들이 변화를 경험하고 거룩함을 향해 자라 가는 가슴 뿌듯한 열매도 보았습니다. 이같은 경험 속에 새롭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속회야말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는 가장 중요한 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속회에는 교제가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합니다. 나눔도 있습니다. 함께 예배도 드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안에서 거룩함을 향해 자라갈 때, 경건의 시간을 갖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공부를 통해서 거룩함에 이르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Powerful한 배움의 채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있는 교우들, 작게 말하면 속원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속원들을 통해서 배우기보다는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도 또한 배움과 성숙을 향해 자라 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을 중시하고 형제와 자매들과 함께 자라 가는 이 속회에 아직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뜻인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는 중요한 길과 기회를 놓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저는 여러분께서 이 속회를 통하여 거룩함을 향해서 함께 힘있게 자라 가시게 되기를 빕니다. 이 중요성 때문에 5년 계획 기간 중 우리는 꾸준히 속회의 갱신과 지원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III.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복음 안에서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갈 것입니다. 여러분, 한가지 여쭙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 속에서 자리잡고 있는 가장 강한 열망은 무엇입니까? 무엇에 대하여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 또 그 일에 시간을 쓰고 계십니까? Freud가 말한 것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열망입니까? Alfred Adler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힘을 - 지식의 힘이든, 돈의 힘이든, 권력의 힘이든 - 소유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송을 받고 싶은 열망입니까? 무엇이 제일 강한 열망이며, 이 열망을 위하여 어떻게 시간을 쓰십니까?
저는 기도합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 교우들의 가슴 속에서 다른 열망도 다 귀하고 중요하지만, 거룩함을 향해 자라가려는 이 열망이 불타오르시기를 기도합니다. 누구보다도 예수 잘 믿고,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본받아 살겠다는 이 거룩한 열망이 불타오르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거룩한 열망의 포로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취임하시는 열 한 분의 권사님과 두 분의 장로님들, 여러 가지 꿈도, 계획도, 다짐도 많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4:1의 말씀처럼 어떻게 살아야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인지를 배우시고 또 실천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도 거룩함입니다.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누구보다도 이 거룩함에 대한 열망에 불타오르시기를 바랍니다. 이 열망의 포로가 되어 거룩함을 향해 자라 가는 일에 성도들의 본보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해 이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도 여러분을 향해 이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는 일에 앞장서시기를 바랍니다.
J. 베일리가 드린 "뉘우침의 기도"는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 가는 우리 모두에게 일깨움과 길을 밝혀 줍니다. 이 기도문을 소개하면서 제 설교를 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나의 영혼과 생활 전체를 주님께 바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죄에 끌리어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며 애통해 합니다.
세상의 쾌락에는 한없는 애착심을 가지고 있으나 영적인 일에는 너무도 등한합니다.
나의 육신을 만족시키는 일에는 그렇게도 민첩하오나 나의 영혼을 양육하는 일에는 너무도 태만합니다.
현재의 향락은 갈망하오나 영원한 행복에는 무관심합니다. 게으름을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하며 노는 일에는 빠르오나, 기도에는 느립니다.
자기를 섬기는데는 활발하오나 남을 섬기는 데는 태만합니다. 재물을 얻는데는 열중하오나 남에게 주는 데는 인색합니다.
나의 믿음의 고백은 매우 고상하오나 나의 실천은 적습니다. 그렇게도 풍성하고 또 좋은 뜻을 가졌으나 그것을 이루는데는 도리어 뒷걸음칩니다.
내 이웃에 대하여는 가혹하오나 나 자신에 대하여는 매우 관대합니다. 남의 과오가 발견되면 냉소하면서 나의 과오가 드러난 때는 격분합니다.
큰 사업에 대하여는 감당할 힘이 약하면서도 작은 일은 업신여겨 태만합니다. 역경을 당할 때에는 약하오나 번영할 때에는 의기양양하고 자기 만족에 빠집니다.
주님을 떠나면 매우 힘없는 자이오나 아직도 주님께 매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다시금 나에게 용서를 베푸소서. 슬픔에 찬 호소를 들으시고 주님의 크신 긍휼로써 나의 모든 불의를 주님의 기록에서 소멸하소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주님께서 거룩한 분이심을 알게 하시며 그것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공의에서 기쁨을 얻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공로보다 주의 공로를 의지하여 날로 날로 당신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나의 뜻도 예수님의 뜻과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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