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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2) - 조영진 목사
"복음 안에서 모여"
사도행전 2:29-42
오늘 우리 교회가 모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주일마다 모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입니다.
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쁜 소식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내 삶 속에서 복음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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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회를 태동시킨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운동이었습니다. 암흑기라고 불리우는 중세기의 교회와 역사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운동이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을 통하여 교회는 새로운 역사,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은 몇 가지 중요한 명제를 내걸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교회의 결정에서 성경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직 성서로만, Only Scripture라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구원은 행함이나 공덕을 쌓은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루어짐을 외쳤습니다. 오직 은혜, Only Grace라는 주장입니다. 셋째는 사제들만이 제사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제사장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만인사제설, Priesthood of all Believers라는 주장입니다.
이밖에도 몇 가지 중요한 명제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교회론, 교회에 관한 이해의 문제였습니다. 제기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루터의 교회가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Catholic교회는 거슬러 올라가서 사도 베드로로부터 시작되어서 이어지는 교황들을 통하여 사도직이 계승되어 왔는데, 루터의 교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라고 묻고 공격했습니다. 이같은 질문에 대하여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된 교회의 표지, Mark로서 제일 먼저 복음이 증거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밖에 성례전이 바로 시행되고 있는가? 교우들의 Discipline,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통하여 참된 교회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단히 적절한 주장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서 모이게 되었습니까? 왜 오늘 이곳에 함께 모였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왜 교회는 이 세상 속에 있어야 합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 때문에 교회는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바로 복음의 기초 위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의 사명 선언(Mission Statement)은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까? 어떤 의미에서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까?
I.
이 아침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성령강림 후 새로운 능력을 힘입은 사도 베드로가 외치는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그들이 경험한 성령강림의 역사는 구약성경 요엘서 2장에 기록된 말씀의 성취임을 밝힌 후에, 유대백성들이 십자가에 못박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음을 외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다윗도 그가 기록한 시편 말씀 속에서 예언하였으며, 사도들은 바로 이 부활의 증인임을 밝힙니다. 베드로는 그의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문자적으로 말하면 기쁜 소식, 복된 소식입니다. 여러분, 이 기쁜 소식의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복음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룩하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심을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죄한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님을 죽음에서 풀어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제자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영원히 떠나신 줄 알았는데, 오늘도 그들과 함께 하심을 성령강림을 통하여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경험한 제자들은 절망과 좌절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흩어져 도망갔던 수치와 연약함을 딛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복음의 선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새 생명을 체험한 신도의 수가 그날에만 3,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응답한 사람들이 함께 모임으로 교회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세대, 세대를 거쳐서 전파됨으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II.
여러분, 우리도 복음 때문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53년의 역사를 면면히 지켜온 것은 바로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명선언에서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모였다는 이 선언은 우리들이 왜 모이는가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시는 이유가 무엇이십니까? 조금 좁혀서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여러 동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 만나러 오실 수 있습니다. 미국생활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기 위해 나오실 수 있습니다. 이민생활 정보를 얻기 위해 교회에 나오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분명히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이유들이 아무리 절실하고 급박하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친구 만나는 사회생활이 중요해도 복음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오는 것이 중요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더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복음 때문에 세워졌음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둘째로, 앞에서 복음의 의미를 간략히 말씀드렸습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십시다.
1) 여러분,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나타나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셨으니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살맛 나는 인생, 참으로 행복한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 그리고 이 풍성한 생명의 삶을 우리는 그 은혜에 대한 응답,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하여 누리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배운 것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생김생김이 시원치 않아도 괜찮습니다. 가정 배경이 변변치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믿으시면 됩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복음 앞에 마음을 여시면 됩니다. 이렇게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복음은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하여 응답하신 여러분들로 우리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3) 그러기에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참으로 즐거운 소식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복음 때문에 정말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이 기쁜 소식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정말로 기쁜 소식이 되고 있습니까? 오늘 나하고는 먼 거리에 있는 옛날 이야기처럼 느끼시지는 않으십니까? 그저 덤덤하게, 그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 정도에 머물러 계시지는 않습니까?
기쁜 소식 때문에 모였다면 정말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복음 때문에 기쁨과 감사를 느끼셔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이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모자라는 인생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인됨에 대한 깊은 자각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신학자는 기독교의 복음은 good news, 기쁜 소식이기 전에 sad news, 슬픈 소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Sad News임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good news의 가치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 주고 약 준다고 말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됨을 바로 깨닫게 될 때, 참으로 기쁜 소식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죄인됨의 절망과 좌절을 체험한 사람이 복음 안에서의 희망과 새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4) 넷째로, 복음 안에 모였다는 고백은 바로 교회는 공동체임을 말해줍니다. 여러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는 혼자 믿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함께 믿는 공동체였습니다. 함께 복음을 나누고 함께 복음 안에서 자라 가는 공동체였습니다. 복음의 능력 안에서 모든 벽을 무너뜨리는 공동체였습니다. 복음은 이 공동체 안에서 체험되어지고 또한 나누어졌습니다.
시카고 교외 지역에 있는 Willow Creek교회는 바로 이 공동체의 회복을 꿈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Bill Hybels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그날도 뒷자리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팔을 포갠 채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Gilbert Bilezekian 교수님은 20대의 Bill Hybels 청년의 영혼을 울리는 말씀을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한 성도들의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렬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쓰고있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크리스천 동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했습니다. 사회 경제적인 장벽이 사라질 때까지, 많이 가진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성별과 인종 차이를 뛰어 넘어 서로 하나가 되었고 문화 차이를 즐겼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삶의 비전을 제공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담대하고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Bilezekian 교수님의 호소 앞에서 Bill Hybels 목사님의 영혼은 뒤흔들리고 눈물을 쏟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의 그 아름다움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현대 교회에서는 왜 이런 힘이 보이지 않을까?
그리스천 공동체가 그 잠재력을 다시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 꿈을 안고 Bill Hybels 목사님은 1975년 Willow Creek Community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교회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교회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모였으면 우리도 그렇게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도 복음의 능력이 창출하는 공동체를 꿈꾸어야 합니다. 진정한 공동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III.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안에는 인생과 역사를 변혁시키는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복음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때문에 오늘도 존재합니다. 이 복음 때문에 우리는 모입니다. 모여서 복음 안에서 자라가고, 복음을 나눌 것입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나아가 미국 사회 안에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가 바로 복음이 안겨주는 희망과 변혁의 증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땅에 진정한 기쁨, 진정한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 안에 뿌리를 튼튼히 내린다면, 이 꿈은 반드시 실현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진정 이 시대의 희망, 이 시대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영국의 한 도시 복판에서 생동하는 사역을 펼쳐 가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교회는 mission church로 세 교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매해 첫 주일이 되면 본 교회와 이 세 교회가 연합해서 성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교교회 안에는 강도, 도적, 폭력범 등 범죄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성찬에 참여함은 복음의 능력을 증언해 주는 힘있는 증거였습니다. 어느 해 주일 목사님이 보시니까 강도였던 한사람이 영국대법원 판사와 나란히 성찬대에 무릎을 꿇고 성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판사는 바로 그 강도를 감옥에 보내 7년형을 살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강도는 감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새사람이 되어 이제는 사역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사도, 과거의 강도였던 사람도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 대법원 판사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자기 옆에 무릎 꿇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는가 하고. 그러자 목사님은 자신은 알았는데, 판사께서는 모르셨던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판사가 대답했습니다. "정말 은혜의 기적입니다." 목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표시하고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기적임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판사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누가 기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사님은 그 거듭난 강도야말로 은총이 낳은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목사님은 강도를 생각했지만, 판사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은혜의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판사가 자신이 기적이라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무슨 뜻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때 판사는 대답했습니다. "강도가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범죄의 기록 때문에 감옥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죄인됨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믿어서 기쁨과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믿는 가정에서 자랐고, 말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가서 성찬예식에 참여하고, 기도 드리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Oxford 대학을 졸업했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판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내가 저 강도와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의 교만과 자기 기만을 용서 받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도 저 강도와 다를 바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이렇게 깨우쳐 줍니다. 이 복음 때문에 우리는 모였습니다. 이 복음 때문에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세워졌습니다. 이 복음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어갈 것입니다. 이 복음 안에서 우리는 자라갈 것입니다. 세상에 희망이 되는 교회로 자라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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