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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4. 조영진 목사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1)"

마태복음 13:31-33

우리가 믿는 복음의 생명은 말이나 이론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복음 안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200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희망과 기대를 안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시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기회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금년부터 저희 교회는 "복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서 5년간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기록해 갈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사명선언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읽으십시다. "복음 안에서 모여 거룩함을 향해 함께 자라가며 균형있는 선교로 세상을 변혁시키고 믿음을 전승시켜 내일을 드린다."

앞으로 펼쳐질 저희 교회의 역사를 생각하면 신이 나고 흥분을 느끼게 됩니다. 복음의 능력안에서 인생과 역사를 변혁시켜가는 이 일은 분명히 신나는 일입니다. 흥분을 느낄만한 뜻있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겨 주신 숙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터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복음의 기지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를 이 사명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모두가 깨어 일어나 이 사명에 충성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앞으로 5 주간에 걸쳐서 저희 교회의 사명선언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5년간 저희 교회가 추구해 갈 중요한 과제는 복음안에서의 변혁, Transformation입니다. 예수믿는 열매, 그것은 바로 변화된 인생입니다. 그 변화된 인생을 통한 변화된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논리나 이론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 본질은 바로 인생과 세상을 변혁시키는 능력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복음이 간직하고 있는 이 변화의 능력을 새롭게 되찾아야 합니다. 그 변화된 능력을 우리모두 새롭게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참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이 세상을 새롭게 세워가는 변혁의 Agent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읽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가 집중적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부터 시작해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밭에 숨겨놓은 보물의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우리에게 이 비유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인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갖는 변화의 능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작은 씨앗가운데 하나입니다. 또 가장 작은 것을 말할 때 사용되는 관용적인 표현으로도 쓰여졌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작은 것을 말할 때, 눈꼽만큼이라는 표현을 씌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저는 아직 성지를 못 가보았습니다만 겨자씨를 본적이 있습니다. 몇 해전 Washington D.C.에 있는 성공회 국립 대성당을 가면, Museum Shop에 겨자씨를 넣은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에게 그 목걸이를 소개하면서 겨자씨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면 10 Feet 그러니까 3미터 가까이 되는 나무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이 겨자씨의 한 알처럼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을지 모르지만,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룰 것을 주님께서는 이 비유 속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미래를 내다 보셨습니다. 보잘 것 없이 보이는 12제자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주님께서는 가슴속에 이 희망, 이 비전을 품고 계셨습니다. 이 희망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갈릴리 한 구석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운동은 로마를 뒤엎고 세계속으로 퍼져갔습니다. 오늘도 이 복음은 땅 끝을 향하여 힘있게 선포되어 지고 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이 비유는 역사속에서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도 이 비유는 실현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섞어 놓은 누룩, 보이지 않고 미미해 보였지만, 이 누룩은 가루 서말을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가루 반죽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가루 서말이란 바로 인간의 지, 정, 의 세가지 요소를 뜻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만, 꼭 그렇게 기계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누룩의 비유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갖는 변화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 복음은 단순한 학설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인 교훈의 차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복음은 인생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역사를 변혁시켜 왔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안에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안에서 나라와 민족의 역사도 거듭나 새로운 페이지를 기록해 가고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갖는 변화의 능력을 가르쳐 줍니다. 그 복음안에서 임하는 새로운 인생, 새로운 역사를 증언해 줍니다. 우리 모두도 이 복음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세상 만드는 일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II.

이제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1)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달라지는 것은 관계입니다. 관계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관계는 수평적인, 평면적인 관계가 전부였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직장과의 관계, 사회 생활속에서의 관계 이런 것들이 전부였습니다. 인간, 직장 혹은 소유와의 관계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또 하나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우리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입체적인 관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란 여러 관계 속의 한가지 관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 수직적인 관계는 모든 관계를 세우는 기초입니다. 근본입니다. 자녀와의 관계, 부부사이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이 모든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빛에서 재조명되고 다시 정립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다면, 그분과의 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면, 이 하나님과의 관계는 모든 관계의 근본입니다. 모든 관계를 세우는 기초입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바로 이 하나님 때문에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information, 지식의 한 조각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갇혀지는 하나의 사상 체계도 아닙니다. 물론 이론도, 교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론, 그 교리의 내용이 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의 사귐은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관계입니다. 내 인생이 세워지는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관계에 변화가 없다면, 그 하나님은 돌아가셨던지, 아니면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이 관계는 내 인생에 혁명을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에 변화의 물결을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2)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안에서 변혁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입니다. 가치관입니다.

이 변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지게 되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변화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 움직이게 되면,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가치관, 가치 체계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이전에 좋던 것이 이제는 값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내가 집착하고 구하던 것이 복음 안에서 변화를 체험하고 보면 별 볼일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 가치의 변화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변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은 좋은데, 지금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이 가치관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이대로 세상의 가치관 따라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수십년 믿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과도 별로 다를 것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치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대로 따라가고,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 그대로 즐긴다면,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시간을 쓰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여러분 예수 믿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왜 쓸데없이 교회 오셔서 시간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인생의 가치관을 새롭게 세우실 뜻이나 결심이 없으시다면 우리의 믿음 생활은 아직도 성숙과는 먼 거리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 생활은 이미 누리고 있는 것 위에 더 많이 받고, 더 많이 추가하기 위하여 걷는 길이 아닙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길이 믿음의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안에서 체험하게 되는 변화입니다. 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참으로 가슴으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우리 인생에 가치의 혁명을 가져다 줍니다. 이 가치와 혁명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변화입니다.

(3) 셋째로 겨자씨와 누룩 같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일어나야 할 변화는 삶의 변화입니다. 인생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어쩌면 가장 힘든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직도 생각이나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상을 넘어섭니다. 믿음은 생각을 넘어섭니다. 믿음은 삶입니다. 믿음은 삶 속에서 고백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런 역사도 낳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손과 발에 이르는 거리라고. 무슨 말입니까? 생각대로, 믿음대로 산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한탄만 하며 세월 보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입니다. 첫 걸음을 내 딛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작은 미미해도 좋습니다. 보잘 것 없어도 좋습니다. 첫 걸음을 내딛으시면 달라집니다. 믿음으로 내딛는 그 걸음을 우리 주님께서는 귀히 보십니다. 그 걸음을 우리 주님께서는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삶 속에서 위대한 변화를 이룩하실 수 있습니다. 새 삶,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에 정성껏 예배드리는 것, 하루에 한번씩 성경을 읽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 속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출석하는 것, 성령께서 감동하실 때 선을 위하여 순종하는 것... 이같은 것들은 작아 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여러분의 인생과 역사를 바꾸어 놓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시작하는 삶의 변화도 그렇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순종의 삶을 계속해가면 여러분의 삶은 달라지게 됩니다.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여러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부터, 지금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복음 안에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변화는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삶 속에서 보여져야 합니다.

III.

하나님의 복음은 오늘 우리 인생 속에도 변화를 낳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변화를 맛 보아야합니다. 우리도, 나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관계가 변화되고, 가치가 바뀌고 삶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깨닫게 되는 또 한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겨자씨도, 누룩도, 죽어야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죽을 때 잎이 피어나고 가지가 뻗어가게 됩니다. 누룩도 가루 속에서 퍼져서 제 모습이 사라져갈 때 부풀게 하는 변화를 낳습니다. 여러분, 변화를 낳으려면 내가 깨어져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깨어져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자기포기, 자기 부인이 없으면 결코 변화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왜 예수를 믿는데도 변하지 않습니까? 왜 여러 해 교회를 다니는데도 변하지 않습니까? 나의 옛 사람이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의 깨어짐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깨어져야 새 생명이 피어납니다. 깨어져야 변화는 싹터옵니다. 옛사람이 죽어야 새 생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겨자씨가 깨어지듯, 누룩이 형태를 잃고 스며들 듯, 우리도 그렇게 깨어져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앞에서 깨어져야 합니다. 그때 새 인생은 시작됩니다. 그때 생명이 변화되는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 변화된 생명을 통하여 이웃이, 세상이, 지구의 한 모퉁이가 변화되는 역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 변화의 역사를 추구해 갈 것입니다. 이 변화를 낳는 산실로 자라갈 것입니다. 변화된 삶을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시켜가는 새날을 준비하고 열어갈 것입니다. 얼마전 연합감리교 홍보국에서 발해하는 격월간지 '섬기는 사람들'에 실렸던 한 권사님의 고백을 소개해 드리며 제 설교를 줄입니다.

외로움! 나는 이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내가 9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드신 후부터 나는 "외로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자라면서 뼈가 저리도록, 꼼짝못하도록 이 외로움이 나를 휘감아 버렸다. 나에게 그렇게 잘 해 주시던 아버지마저도 새 어머니에게 흠뻑 빠져 버린 뒤, 아버지의 야단을 맞으며 외로움과 야속함에 차라리 죽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열 아홉 살 되던 때에 결혼을 한 나는 5년만에 남편과 사별을 하게 되었다. 결혼의 행복이 진정 무엇인지도 모를 때였다. 외로움은 나에게 더욱 찡하게 다가왔다. 졸지에 네 살 짜리 아이가 딸린 24살의 청상과부가 된 것이다. 정말로 정신없이 이 아이를 키웠다. 이렇게 자란 딸이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내 외로움도 끝이 나나 싶었는데...어쩌면 이 딸 내외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 아닌가?

1979년 외동딸의 초청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결국 나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딸을 보고 미국에 온 셈인데... 이 길이 나를 완전히 고독의 감옥에 가두는 직행길이 되고 만 것이다. 딸네 두 내외가 출근하게 되면 텅 빈집을 혼자 지키는 외로운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에 나는 교회가는 날만 기다리며 살았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사람들과 어울리며 수다를 떨어야 좀 숨통이 트이고 했기 때문이다. 내게는 열심히 신앙생활했던 남동생이 있었다. 이 동생이 6.25당시 학병으로 참가했다가 부상당해 후방 병원에 이송되었다. 당시 나는 하나님이 동생을 살려주실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동생은 죽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하나님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버님은 교회에 출석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돌아가셨지만, 나는 건성으로 아버님 성화에 못 이겨 교회에 가곤 했었다. 이런 내가 미국에 와서 열심히 교회에 가는 날자만 손꼽게 된 것이다. 그놈의 외로움 때문에...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교회에서 생활할 때는 괜찮은데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와 더욱 못견디게 나를 괴롭혔다. 교회에서 많이 듣던 평강, 기쁨, 사랑이란 내 생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덧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매일 밤 술을 마시게 되었다. 증상은 점점 심각해져 수면제를 복용해야 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1988년 원망과 불평, 미움과 좌절에 방황하던 나를 불쌍히 여기던 주님은 선한 목자 상동교회로 인도하셨다. 담임이신 장순창 목사님을 통해 말씀에 눈을 뜨게 하시더니 성령님을 알고 싶고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게 하셨다. 그때 마침 교회에서 성령체험을 위한 기도학교 8주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었다, 6주 째 주님의 기도를 공부하던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대목에서 반세기동안 서모인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내가 보였다. 공부를 마치면서 나는 눈물로 그 밤을 회개하고 지새웠다. 울어도 울어도 어디에서 그토록 많이 나오는지... 공부시간에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진정한 회개라고 배운 말씀이 생각났다. 새 어머니께 용서를 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들어와 전화기 앞에 앉았다. 그러나 50평생을 증오하며 살던 분께 전화를 건다고 생각하니 손이 전화기에 가지 않았다. 또 막상 전화가 된다고 해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도 문제였다. 괜히 망신만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얼마를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해라, 해라!"라는 내 마음을 때리며 내 손을 전화기 다이얼로 옮기는 듯 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머니의 음성이라고 즉각적으로 깨닫게 될 때, 나는 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내 입에서 "어머니, 저예요." 라고 간신히 말하고는 울음이 북받쳐 올라 그냥 흐느껴 울고 말았다. 한참을 울다보니 저쪽에서도 같이 울고 있었다. 50년만의 어머니와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폭포수와 같은 평강과 기쁨이 쏟아져 내려왔다. 너무나 벅차 감당할 수 없었다. 불우한 운명, 고독한 내 마음을 모두 주님 앞에 내어 놓고 주님을 영접하니 금방 날아 갈 것 같은 자유함이 벅차게 가슴에 메워왔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이 일 후에 나는 완전히 변했다. 당장 술이나 수면제가 필요 없어지고 잠 못이루어 힘들었던 밤이 누우면 바로 단잠에 빠지는 꿈같은 밤으로 변했다. 원망하던 입술이 찬송의 입술로, 외로움에 떨던 시간들은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시간들로 바뀌었다. 마음은 항상 즐겁고 기쁨이 충만하며 감사가 샘물같이 솟아나는 나로 변한 것이다. 89년 예수님의 딸로 새로 태어난 후 지금까지 새벽제단을 지키면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뜻하지 않은 유방암 선고에 잠시 방황했지만, 주님 전에서 목사님과 기도하니 불안한 마음은 밀물처럼 밀려가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믿어졌다. 담대함과 평안함이 안개처럼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느낌 속에 수술을 받고 속히 완쾌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암환자들을 찾아 위로하며 용기를 줄 수 있는 사역자로 사용하시려는 뜻이 있으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 98년에는 오랫동안 드렸던 나의 기도를 마침내 응답해 주셔서 어머니나 잘 믿으시라던 딸과 사위가 예수님께로 돌아왔다. 지금 내 나이 72세, 그러나 우리 교인들은 Miss Kim 이라고 부른다. 사랑방 기도후원자로, 사랑방 리더와 식구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기쁨, 한나 전도회 (60세 이상 여성) 회장으로 교회의 어머니 사명을 감당하는 보람, 영접부원으로 처음 나오는 분들을 반기며 내 모습을 통해 기쁨을 주시는 주님을 소개하고 그 분들을 안내할 때 나는 행복하다. 그 무엇보다도 외로운 사람을 보듬어 안고 살아 갈 때, 나는 생애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