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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1. 강림절 넷째주일 - 조영진 목사

"회개하여라"

마태복음 3:1-12

우리 주님을 맞이할 최선의 준비는 무엇입니까?
2000여 년 전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세례자 요한은 외쳤습니다. 회개하라고.
회개는 주님을 맞이할 최선의 준비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가정에, 오늘의 역사에 주님을 모셔드리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주님 앞에 열고 돌이켜야 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쇼핑센터마다 세일을 알리는 광고로 고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Shopping Mall의 주차장은 차를 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습니다. 방송은 주말마다 금년도 매상 실적이 어떤가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분위기에 떠밀려 무언가 흥분을 느끼게 되는 즈음입니다.

그러나 이 상업화된 크리스마스 속에서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뜻보다는 선물이 어떻고, 미국 경제가 어떻고 하는 것이 더 큰 이슈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만일 성탄절의 주인공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의 성탄문화를 보신다면 어떻게 느끼실는지요. 아마도 통곡하시면서 가슴 아파 하실 것 같습니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계절이라고 얼굴을 돌리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성탄의 참 의미를 되찾을 길은 없습니까? 성탄절의 진정한 뜻을 지켜가야 할 오늘의 교회,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계절이 요청하는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타락되어 버린 오늘의 성탄절 문화를 향해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참으로 뜻깊은 성탄 축하를 위하여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I

이 아침 우리는 마태복음 3장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쯤 전에 태어난 세례 요한, 그는 당시에 혜성 같은 존재였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기 이후 오랜만에 등장해서 예언자의 맥을 되살려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서 시달려온 유다 백성들, 구원자, 메시야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세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는 유대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외침으로 메시야,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사야서에 기록되어있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소개했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자신을 구원자, 메시야가 아니고, 그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은 세례를 주어서 그들의 새로운 인생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라고. 그리고 주님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준비는 바로 자신을 돌이켜 보고 회개하는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사역의 한계도 알았습니다. 끝까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서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은 세례 요한의 사역 때문에 본문 말씀은 늘 강림절 기간 중에 읽혀졌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스스로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 기쁜 성탄의 계절에 회개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눈치없는 설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지간히 상황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성탄의 준비는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향해 다시 한번 돌아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 없는 성탄절은 근본을 잃어버린 성탄 축하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성탄절, 문화적인 축제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회개의 의미를 살펴 보십시다. 진정한 회개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슬퍼하고 뉘우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회개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돌아선다(Turn)" 혹은 "삶의 방향을 돌이킨다(to reverse completely the direction of one's life)"는 뜻을 갖습니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회개에는 '지,정,의'의 측면이 있습니다. 지적인 측면은 생각의 변화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나는 탕자가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이와 함께 참된 회개는 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떠나있는 자신의 모습을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는 의지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목적의 변화입니다. 죄에서 돌이켜서 새로운 삶의 길을 추구하는 의지적인 결단입니다.

참된 회개는 후회하고 뉘우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뉘우침을 넘어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돌이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이렇게 회개의 의미를 이해할 때, 회개는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관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회개는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만을 믿고 살아오는 인생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그저 벌어서 먹고 입고 마시면서 살던 인생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인생으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도덕적인 혹은 법률적인 의미에서 죄인됨을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말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서 바라봅니다. 세상의 법이나 윤리, 도덕의 거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서있는 인생이기에 자신의 뜻을 꺾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 웨슬레 선생님은 회개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불러 주시는 선행적인 은총에 대한 우리의 응답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이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진정한 회개, 돌이킴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직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밝은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는 방안에 얼마나 먼지가 많은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괜찮아 보입니다. 그러나 밝은 빛이 비치면 수 없는 먼지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 주님의 놀라운 사랑의 빛 앞에 서고 보면 우리 인생의 허물과 죄악을 보게됩니다. 깨달음이 오게 됩니다. 내가 오늘 주님 앞에서 어디에 서있는지 보게 됩니다.

회개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새로운 인생은 시작될 수 없습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깊고도 넓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서 어두움과 죽음의 인생길에서 빛과 생명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복음의 진짜 맛을 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3) 그런데 오늘 세례자 요한의 멧세지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중요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회개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더욱 혹독하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온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 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너희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3:7b-9)."

세례자 요한은 당시에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회개의 멧세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들 편이고 구원은 자동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비하여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외쳤습니다. 책망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회개하라고.

이 말씀은 오늘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 심각한 경고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자부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무조건 O.K.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책망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도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우리도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도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우리 인생 속에 태어나시도록 열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목사도, 장로님들도, 권사님들도, 집사님들도,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모두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살피고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여야 할 것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는 오늘 이 시대 속에서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과 세상을 향한 관심에 쌓여서 주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일에는 아낌없이 쓰면서 주님을 위한 일에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지녀야 할 중심이 세상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른 일들을 위해서는 시간을 곧잘 내는데 주님의 말씀을 읽고 주님께 무릎 꿇는 일을 위해서는 왜 이렇게 시간을 내지 못하는지... 여러분, 우리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주관하시지 않고 세상 속에 중심을 빼앗기다 보니 찾아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피상적인 믿음생활입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껍데기만 그럴듯해 보이는 믿음생활에 머물고 있습니다. 신앙의 감격도, 주님을 향한 감사도 껍데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있지만 믿음의 깊이도, 능력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 빼앗긴 마음, 이 얄팍한 믿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피상적인 믿음의 생활, 겉모습에만 머물고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은 주는 것을 잃어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자기 이익, self-interest가 절대화 되어가는 그릇된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 해 전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들이 오늘의 미국사회를 진단하면서 가장 큰 특징을 Individualism, 개인주의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주의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자기 이익의 추구에 몰두해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 앞에 우리의 이익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내 이익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이익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이용하고 짓밟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비즈니스 거래를 한다면 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눈감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비즈니스를 사고 팔 때, 예수 믿는 사람한테서 샀더니 틀림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비즈니스를 사고 팔 때 자기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상대방을 속이고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마음이 아파집니다. 여러분 거짓을 통해서라도 얼마를 더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정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얼마를 밑졌다는 것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그 거래에서 과연 우리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왜 한인 사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한테 속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야 합니까? 물론 예수 믿는 사람이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 self-interest를 넘어서지 못하기에 교회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인 사이의 거래에서 갈등과 아픔이 생겨나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우라 아야꼬의 글 속에서 감동받은 것이 있습니다. 빙점이란 소설로 데뷔하기 전에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 비슷한 가게가 있었습니다.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남편은 미우라 아야꼬 여사에게 가게 물건을 점점 줄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손님이 물건을 찾으면 저쪽 가게에 가보라고 권면하라고 합니다. 처음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장사를 하려는 건지 안 하려는 건지 분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다른 사람 가게는 점점 잘 되어가고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빙점 소설의 당선으로 가게를 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다 이렇게 사업해서 문 닫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 때문에 자기 이익에 매이는 이 삶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3) 셋째로 회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매어있는 우리의 믿음생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내용이 될지 모릅니다만,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시간과 공간에 매여있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당에서 믿음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그러나 주간 중 가정, 직장에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믿음의 능력은 주일에만 드러납니다. 믿음의 고백은 교회에서만 보여집니다. 가정에서, 세상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홀연히 증발해 버린 것처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이중생활을 이제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주일날 예배당에서만 주님 노릇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어디에서든지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이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청산하지 않는 한, 회개하지 않는 한, 한국교회, 한인 그리스도인의 내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쏟아 부어지는 비난의 목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 출입금지를 써 붙여 놓은 우리 인생의 영역이나 시간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언제든지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 태어나시는 성탄의 계절이 되도록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이 회개 없이는 성탄의 참된 축하가 이루어 질 수는 없습니다.

III

여러분, 회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있다고. 회개를 미룬다면 그만큼 주님 앞에 불충성하는 세월은 연장될 것입니다. 그만큼 훗날 후회하게 되는 시간은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는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꼭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주님께서 다 찍어서 불에 던져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회개는 해야만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생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스스로의 생명을 사랑한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늦추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Roy Robertson이란 해군 병사가 있었습니다. 1941년 12월 6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한 함정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복무하던 그는 360대의 일본기 습격을 받고 수라장이 된 현장에 있었습니다. 로버트슨은 기관포로 달려갔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연습용 탄환뿐이었습니다. 실탄이 보급되기까지 15분이 걸렸습니다. 15분 동안 그는 기관포에 앉아 소리만 내고 싸우는 시늉만 했습니다. 가짜의 무력함과 허무함을 톡톡히 맛보았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어느날 그는 성경공부 그룹에 참석했습니다. 열명 쯤이 둘러앉았는데 인도자가 성구 한 구절씩을 돌아가며 외워보라고 했습니다. 로버트슨 병사가 암송하는 성구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을 앞선 사람이 외워버렸는데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도 같은 성구를 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교회 한 구석에 앉아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나는 가짜다."(I am fake)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도 가짜였고 애인 노릇도 가짜였습니다. 실탄 없이 공포를 쏘고 있는 자기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며칠을 반성하고 결심하고 진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진실하게 예수믿고 진실한 친구, 진실한 애인, 진실한 인간이 되기를 힘썼습니다. 로이 로버트슨은 한때 빌리 그레함 전도단의 일원이었고 그후 트로트만(Dawson Trotman)과 함께 내비게이터(Navigators-청년 신앙훈련 단체)를 창설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을 통하여 fake, 가짜 인생을 살아가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회개하고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니 나는 어떻습니까? 나도 fake, 가짜는 아닙니까? 겉모습만 그럴 듯하고 알맹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 오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 우리 인생 속에, 우리 가정 속에 태어나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 맞이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주님을 맞이하는 최선의 준비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해 세례요한은 이 아침 외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할 때입니다. 겉모습만의 믿음, fake 믿음을 회개할 때입니다. 참으로 회개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