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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4. 강림절 셋째주일/청지기 주일 - 조영진 목사

"향기 가득한 헌신(2)"

마태복음 26:6-13

본문 속의 여인은 예수님께 향유를 쏟아부었습니다.
향기 가득한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이란 어떤 것입니까?
향기 가득한 헌신이란 어떤 삶을 말합니까?

지난 주일 저는 오늘 청지기 주일을 앞두고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을 남긴 한 여인의 행적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주간을 보내실 때입니다. 저녁식사를 하실 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값진 향유를 쏟아 부었습니다. 300데나리온, 미국 화폐로 계산하면 $12,000에 해당하는 값진 향유였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을 놓고 제자들은 낭비했다고 책망했습니다.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위를 옹호하셨습니다. 내 장사를 예비했다고 그 의미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행적도 기억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도 소개되었습니다. 향기 가득한 헌신의 모습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오늘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이 여인의 향기 가득한 헌신의 모습 속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이란 어떤 삶을 뜻합니까? 이 여인의 헌신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멧세지를 전해줍니까? 한번 사는 인생,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I.

지난 주일 저는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여인은 값진 향유를 쏟아부었는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제물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시간을 드린다는 것은 바로 생명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재물의 헌신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는 주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 재능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기도입니다. 이같은 네 가지 헌신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새워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동참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재정적인 봉헌과 사역한마당에 한 분도 빠짐없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재능과 은사, 재물과 시간을 우리는 바로 써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맡겨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드려서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날 주님 앞에 서실 때 이럴 줄 몰랐다고 탄식하는 분이 우리 교회에는 한 분도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우리 주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이것이 인생 성공입니다. 영원한 인생 성공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의 설교에 이어지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무엇을 드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드릴 것인가? 향기 가득한 헌신이란 어떤 헌신을 뜻하는가?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시겠습니다.

II.

(1) 무엇보다 먼저 이 여인의 헌신 속에서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은 3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향유를 주님께 쏟아 부었습니다. 어쩌면 이 향유는 여인이 가지고 있는 소유의 전부였습니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모으고 간직해 온 값진 보배였습니다. 여인의 재산 목록 1호였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것, 이 값진 것을 주님께 쏟아부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님께 바쳤습니다.

향기 가득한 헌신이란 부담스러울 만큼 드리는 것입니다. 내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은 진정한 헌신이 아닙니다. 내게 귀한 것, 참으로 드리기 아까운 것을 드리는 것이 향기 가득한 헌신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헌신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게서 별 볼일 없는 것이나 받으시는 그런 하찮은 하나님이시라면 믿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런 하나님 믿어서 뭐 하시겠습니까? 괜히 부담이나 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선을, 가장 좋은 것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최선을 받으시는 분이기에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희 교우 가운데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목사님, 이제 은퇴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 깊이 남아있는 가슴 뿌듯한 헌신의 추억은 그 바빴던 시절, 직장 일로 그렇게 분주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잘라서 전도폭팔 훈련을 받으며 헌신했을 때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은 재고하셔야 합니다. 내 인생 속에 부담을 주지 않는 하나님이시라면, 그런 시시한 하나님 믿어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십자가의 부담을 원하시지 않는다면,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인생은 부담을 기꺼이 받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시라는 존재 앞에 부담스럽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부담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길,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은 결코 아닙니다. 참된 헌신은 참으로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부담스러울 만큼 드리는 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향기 가득한 헌신입니다. 이 여인은 우리 주님께 그렇게 드렸습니다.

(2) 둘째로 향기 가득한 헌신이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려지는 헌신입니다.

여러분, 향기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웃에게 기쁨을 안겨줍니다. 저는 향기야말로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적절한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편지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향기나는 헌신, 아름다운 헌신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봉사하면서도 그 봉사가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경우 그 이유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 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 안에는 Adler가 지적한 것처럼 Will to Power, 권력이나 지식이나 경제적인 힘을 추구하여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의 동기에서 헌신한다면, 그 헌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 앞에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세상의 인정보다는 우리 주님의 알아주심을 기대합니다. 세상의 칭찬보다는 우리 주님의 칭찬을 기대합니다. 세상이 안 알아주어도, 목사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교우들이 칭찬해 주지 않아도, "우리 주님이 다 아시는데" 하면서 만족해 하는 사람이 바로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이 쓰신 "두메꽃"이란 시입니다.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 산중에
    값 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만 내 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서 숨어서 피고 싶어라

그렇습니다. 햇님만 내님만 보신다면야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만 보신다면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 여인의 헌신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제자들은 책망하고 비난했지만, 우리 주님은 알아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 속에서 최근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여인이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을 갖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값진 향유, 기름을 부음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 곧 그리스도, 구원자이심을 나타냈다는 해석입니다. 대단히 적절한 이해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향기 가득한 헌신은 그 섬김, 그 헌신을 통해서 우리 주님만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같은 헌신이 참으로 향기로운 헌신입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과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영광과 인정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나는 안 보여도 좋습니다. 나의 헌신은 이름도 빛도 없어도 좋습니다. 주님이 아시는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니 그것으로 충분할 뿐입니다. 이러한 봉사, 이러한 섬김이 향기 가득한 헌신입니다.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헌신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헌신입니다.

(3) 셋째로 향기 가득한 헌신은 헌신의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헌신을 미루지 않습니다.

그당시 여인이 남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향유를 쏟아 붓는 헌신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미루지 않았습니다. 연기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 여인이 연기했더라면, 이 여인은 예수님께 향유를 쏟아 부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틀 후로 다가온 유월절을 앞두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을 주님 앞에 헌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헌신을 미루는 것입니다. '오늘은 안돼, 내일 하지'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좋은 세월을 다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순종의 연기가 순종입니까? 불순종입니까? 헌신의 연기가 헌신입니까? 아니면 헌신하지 않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일, 내일로 미루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평생 제대로 헌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삶을 끝내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전희근 장로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방사선과 의사로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의사로서 신학도 공부하고 또 목소리 훈련을 받아서 성가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선교에 대해서 눈이 열리면서 깊은 감동을 받고 주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주님, 이 다음에 제가 은퇴한 다음에는 열심히 선교에 참여하겠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전 장로님의 가슴 속에 말씀하셨습니다. "Why not now?(아니 왜 지금은 안되냐?)"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때부터 전 장로님은 휴가를 모아서 인도네시아 케냐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거창한 일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 다음으로 미루시는 분들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Why not now?"

최근 한국 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고 있는 광염교회 그 교회 건물 아래층에 자리잡고 있는 감자탕집 때문에 감자탕교회로 더 널리 알려진 이 교회에 관한 책 속에서 읽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실한 집사님 한 분이 전도를 하기 위해 어느 아파트에 갔습니다. 습관대로 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눌러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서려는데 마음속에서 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냥 떠나지 마라."
집사님은 다시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아무 응답이 없자 그는 포기하고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강한 음성이 울렸습니다.
"포기하지 마라."
집사님은 계단을 거슬러 올라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문을 마구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는 문 두드리기를 멈추고 이제 그만 이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몹시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요!"
퉁명스럽게 쏘아붙입니다. 전도하러 나왔다고 말하자 집주인은 다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일 없으니 딴 데나 가보시오."
집주인은 문을 쾅 닫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집사님은 낙심하여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그때 다급한 음성이 또다시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집사님은 다시 돌아가 그 집 초인종을 한참 눌렀습니다. 집주인은 화난 표정으로 나와서는 거친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고, 집사님은 그저 전도지를 건네주며 간신히 한마디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시오!"
그날 밤, 집사님의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저는 오늘 오후 집 앞에서 당신을 매정하게 쫓아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이 찾아왔을 때, 삶의 의미를 잃고 지쳐 있던 저는 죽기로 결심하고 막 목을 매려던 순간이었습니다. 초인종 소리를 들었지만 방해 받기 싫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빨랫줄을 목에 걸고 의자에 올라선 후 의자를 발로 차버리려는 순간, 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그는 가버리는 듯했습니다. 이제는 됐다 싶어 다시 굳게 마음을 먹고 의자를 발로 차려는데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누가 이렇게 나를 애타게 찾는 것일까? 죽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한번 보고나 죽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보니 당신이 서 있었습니다. 전도하러 왔다는 당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저는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 생애의 마지막 계획을 또다시 방해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당신이 건네주는 종이 한 장을 무심결에 받아들고 별 생각 없이 종이에 적혀 있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글을 읽고 있노라니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예수라는 사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종이에 적혀있는 당신의 전화번호를 보고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수라는 사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집사님은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감동과 부르심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헌신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고 세울 수 있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로 미루라는 유혹의 속삭임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헌신의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4) 넷째로,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헌신을 가능케 하는 동기입니다. 이유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인들 왜 그 향유가 아깝지 않았겠습니까? 무엇이 이 아까운 마음을 넘어서서 주님께 쏟아 부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다른 동기가 아닙니다. 오직 그 사랑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감사해서 쏟아 부었습니다. 감사하기에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크면 헌신도 크기 마련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빈약하면 헌신도 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왜 오늘 우리의 헌신이 빈약합니까? 우리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 드리는 봉사와 섬김의 삶이 초라합니까? 내 가슴속에 주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인색함을 넘어설 수 없을 만큼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내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고 믿으십니까? 바로 이 믿음, 이 깨달음 때문에 감사가 넘쳐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향기 가득한 헌신은 자동케이스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감사의 마음이 시원치 않기 때문에, 이 뜨거운 감사의 가슴이 메말랐기 때문에, 우리의 헌신도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가슴을 진단해 보십시다. 감사의 마음이 넘치면 헌신은 기쁨입니다.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의 마음이 없으면 헌신은 짐입니다.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III.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깁니다. 그러나 이름 석자 남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 석자 속에 담겨지는 삶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오늘 어떤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까?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의 역사에서 여러분은 어떤 이름, 어떤 삶의 내용을 남기고 가실 것입니까?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이야말로 남길만한 인생의 내용입니다. 뒤에 오는 우리의 후손들이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런 삶의 자취를 남기고 있는 한 분의 삶을 소개하며 제 설교를 줄입니다.

경기도 송산면 앞바다에는 '형도'라는 섬이 떠 있습니다. 이 섬은 물이 빠지면 가끔 뻘밭으로 육지와 연결되기도 하는 작은 섬입니다. 거기는 28가구 98명의 섬 주민이 살고있고 그 섬 언덕바지에는 쬐끄만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는 이동목이라는 전도사가 한 분 있습니다. 그분은 비록 교육적인 배경은 없지만 고향에서 남부럽지 않게 농사를 짓고, 동네 이장이었으며, 고향 교회의 장로였으나 어느날 부흥강사로 오신 목사의 설교 중에서 어느 섬마을에 교회가 있는데 목사들 중 누구도 부임하기를 원치 않아서 문을 닫고있다는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지원, 장로에서 전도사로 그 교회에 부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되돌아 올 길을 차단하기 위해서 가산을 남김없이 정리하고 아내와 5남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섬으로 와서 오직 28가구의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재산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불타는 사명감에 비해서 한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가고 나중에는 호구지책이 어려웠습니다.

섬으로 들어온 지 4년만 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개펄에 나가서 조개를 캐던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졌으나 병원에 한번 데려가 보지를 못하고 불구의 몸이 되어 방에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큰 딸, 성애가 순전히 고학으로 서울 청산여상을 졸업하였으나 아버지의 희생적인 신앙과 영혼을 아끼는 마음에 감동, 아버지를 도우려고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누워있는 엄마를 돌보고, 섬마을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동네 청년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성애의 활동으로 섬마을이 밝아지고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녀는 '형도의 보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동목 전도사는 딸이 고마웠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딸의 앞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통신으로 신학대학 과정을 공부하도록 권했고 성애가 좋아했습니다.

1982년 1월16일, 성애는 통신 신학 원서에 부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육지로 나갔다가 부정기적인 배편이 그날 따라 뜨지를 않아서 돌아오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녁 집회와 주일 예배가 있으므로 육지에서 지체할 수가 없는 성애는 저녁에 마침 물이 빠진 뻘밭으로 건너오다가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성애의 시신은 한 달이 훨씬 지난 뒤에 물길로 30리쯤 떨어진 대부도의 해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 그녀의 시신은 상한 곳 없이 잠자는 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날 평생 처음으로 단발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이동목 전도사의 오열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로서는 아내의 중풍과 딸의 죽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시신을 거두어 묻은 후에 아무도 없던 교회에 마을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이동목 전도사의 희생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난한 섬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여 온 이동목 전도사 의 기도는 그 아프고 쓰라린 상처 위에 응답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애가 지녔던 하나의 생명에서 35명의 새 생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동목 전도사 가족들이 험난한 역경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섬마을에 심은 지 10년이 지나서야 어느 잡지 기자의 발견으로 이들의 숭고한 믿음, 그들이 세운 십자가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제까지 내일, 내일로 미루실 것입니까? Why not now? 왜 지금은 안되십니까? If not now, when? 지금이 아니면 언제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