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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7. 강림절 둘째 주일 - 조영진 목사
"향기 가득한 헌신(I)"
마태복음 26:6-13
지금까지 걸어 온 내 삶의 자취를 살펴보십시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우리는 얼마나 응답해왔습니까?
맡겨주신 시간과 재물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진실되고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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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5일 저는 여러 해 동안 한인 YMCA를 섬기셨던 고 정준영 총무님의 발인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정 총무님의 장례일정에 참여하면서 저는 많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인생의 종점에서 과연 희망은 어디에 있는지,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그분은 집 한 칸 남기지 못했습니다. Savings Account에 별로 남기지도 못했습니다. 남긴 것이라고는 신던 운동화, 입던 잠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또 두 아들이 정서장애자였기에 자식 덕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많은 사람들, 특별히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귀한 일깨움과 가르침을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하관예배를 끝내고 관을 내린 후, 가르침을 받았던 젊은이들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손을 마주 잡고 정 총무님이 늘 즐겨 부르셨던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젊은이들 아니 이제는 중년에 이른 제자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저는 솟아나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한인 YMCA 일을 하는 동안 월급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그분이었습니다. 그저 주기만 하고 어떻게 보면 무능한 남편, 무능한 아버지로 살아간 그분이었습니다. 약삭빠르게 계산 하지도 못했고 제 몫을 찾는데 무던히도 관심 없어 했던 그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세상을 떠나고 보니 달랐습니다. 여러 번의 장례예배에 참석하고 또 예배를 인도해 보았지만, 이번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한 예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만큼 많은 젊은이들을 본 때도 별로 없었습니다.
여러분, 성공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입니까?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인생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한번 살아가는 인생을 정말 뜻 있고 보람있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I.
오늘 마태복음 26장의 본문 말씀은 교회 역사에서 잊혀진 적이 없는 한 여인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 여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죄 많은 여인이라고도 하고, 마리아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어떻게 보면 생각 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왜 쓸데없이 그 향유를 낭비하는가 하고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옹호 하셨습니다.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그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치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여인에게 귀한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의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2000년 교회의 역사에서 복음의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도 전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을 되새기면서 믿음 생활에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도, 이곳 워싱턴에서, 이 여인의 향기 가득한 헌신 앞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이 여인이 쏟아 부은 향유는 인도에서 생산되는 '나드'라는 향유로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 이었으니까, 오늘날 화폐가치로 계산하면 시간당 $5로 쳐도 한 데나리온이면 $40, 300 데나리온이면 $12,000의 가치에 해당이 됩니다. 어쩌면 이 향유는 여인이 그동안 모아온 재산의 전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귀한 향유를 하루 저녁에 예수님께 쏟아 부은 것입니다. 당연히 낭비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귀한 것을 너무 한순간에 쏟아 부었다고 비판하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 이 여인의 행동을 분명히 낭비였습니다. 치밀한 계산이나 신중한 생각 없이 그냥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쓸데없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 쏟아 부은 낭비였습니다. 우리 주님께 비쳐진 아름다운 헌신이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Paul Tillich의 표현대로 이 낭비는 Holy Waste, 거룩한 낭비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위한 낭비에 무척이나 인색해져 있습니다. 주님께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는 부탁과 청원의 기도는 많이 하지만, 드리겠습니다. 드리겠습니다. 하는 바침과 헌신의 기도는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편안하게 살 것인가 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충성할 것인가 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을 위한 낭비에는 풍성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낭비, 거룩한 낭비에는 인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II.
이 여인은 주님께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 아니 가지고 있는 전부를 드렸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칭찬 받은 헌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 걸쳐서 저는 이 여인의 헌신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참으로 뜻이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오늘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이 물음을 오늘 생각해 보고, 다음 주일에는 참된 헌신이 갖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문 말씀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은 주님께 값비싼 향유를 쏟아 부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아니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어떤 제물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1)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귀한 예물은 바로 시간입니다. 생명입니다.
여러분, 산다는 것은 사간이 주어졌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주님께 드리기를 가장 주저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간입니다. 사실 주님께 시간을 드리지 않음으로 그 시간을 값있게 쓰는가 하면, 많은 경우 그렇지도 않습니다. 시간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 기뻐하시는 역사를 이룰 수 있고 남아있는 시간도 바로 쓰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 드리지 않고 자기가 붙들고 있음으로 세월을 참으로 뜻 있게 쓰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시간은 쉴새 없이 흘러갑니다. 결코 정지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흘러가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간을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보람있게 쓰지 못하는 분들을 뵈올 때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시간을 즐겁게, Joyful하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뜻 있게, meaningful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시간을 뜻 없이 쓸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 주님께 시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드려서 주님을 더 깊이 아시고, 시간을 드려서 더욱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누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 붙들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드릴 수 있는 것은 내게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또 태어날 때 능력과 재능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은사와 재능으로 섬기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대하십니다. 받은 달란트를 파묻어 두는 어리석은 사람, 악하고 게으른 종의 인생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우리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다음 주일에 갖는 사역 한마당은 바로 이같은 섬김의 삶에로의 부름을 소개해 드리는 기회입니다. 여러분께서 받으신 은사와 재능 혹은 경험과 능력에 따라 앞으로 1년 섬기실 사역을 선택하셔서 다 써 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섬김의 삶은 교회 안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오늘 이 세상, 정말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지구상의 모퉁이들이 모두 섬김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뜻 있게 살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좀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시다가 그냥 가실 것입니까? 오늘 나의 삶의 모습이 과연 주님 앞에 설 때 칭찬 받을 수 있는 삶입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이 끝나는 때가 있고 그날은 주님 앞에서 결신의 날인 것을 믿으십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무언가 다르게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도 궂은 일은 내가 맡겠다는 그런 섬김의 모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와싱톤 한인교회 교인이라고 하면서, 한가지도 섬기는 사역이 없는 실업자로 교회생활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 서시는 날 이럴 줄 몰랐다고 후회하신다면 이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뜻있게 살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려는 노력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3) 셋째로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은 재물입니다. 우리의 소유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재물의 주인이 아닙니다. 관리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의 고백이 분명치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의 헌신에서 인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재물이 정말 내 것입니까? 어떤 분들은 내가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그것이 하나님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그렇게 벌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왔습니까? 태어날 때 갖고 나오기로 결심하셨습니까? 그 벌 수 있는 능력과 건강, 우리 주님께서 주신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내면의 세계에서 예수님께서 주인 되신 것은 환영하지만, 물질의 영역, 소유의 영역에서는 주인 되심을 거절하고 살아갑니다. 십일조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입니까? 재물이 바로 하나님의 것임을, 우리 주님께서 재물에서도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이 아닙니까? 혹시 십일조 말고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물의 영역에서도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보다 충성된 대안이 있다면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Minimum인데,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신 분들은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성전 연보궤 옆에 앉으셔서 많은 사람이 바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동전 두닢을 바친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바쳤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재물을 드리시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주님 앞에서, 주님 보시기에 칭찬 받을 수 있는 헌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지갑을 여는 일에도 여러분, 풍성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Bill Hybels 목사님께서 쓰신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Willow Creek 교회를 시작했을 때 이 교회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만 이루어졌었습니다. 교인 가운데 직장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정한 소득이 있는 성인 교인을 확보하지 못하면 교회가 파산하게 될 위험성이 있음을 깨닫고, 이 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사업가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예배당에 들어왔습니다. Hybels 목사님은 드디어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가 생각되어서 잔뜩 기대에 부풀게 되었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은 그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나는 이 교회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내가 이번 주에 당신에게 점심을 대접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목사님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드디어 내 기도가 응답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는 9미터 가까이 되는 커다란 캐딜락을 타고 와서 목사님을 태우고는 고급 식당으로 데리고 가더니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주문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자존심을 팽개치고 아주 비싼 것을 주문했습니다. 식사하면서 그는 교회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후식이 나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새로운 교회가 아주 맘에 듭니다. 내가 뭐 도울 일이 없습니까?" 목사님께서 원하던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오, 물론 당신은 모든 방법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좀더 노골적으로 물었습니다."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대답했습니다. "음, 당신은 새로 온 사람이고 우리의 문제를 그다지 알고 싶어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심각한 재정 위기에 봉착해 있어서 매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봉급 생활자가 없습니다. 몇 주나 더 교회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목사님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한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 문제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한번도 교회에 뭔가를 기부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교회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당신은 이번 주에 내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커다란 기대에 차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주 내내 아침마다 그의 편지가 왔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우체통으로 달려갔습니다. 주말 즈음 드디어 그것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이거야! 우리의 보물선이 도착했어!' 간절한 마음으로 개봉한 봉투 안에는 10달러짜리 수표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거의 의식을 잃을 뻔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의 은색 캐딜락을 부숴 버리는 상상과 싸워야 했습니다.
여러분, 재물을 드리는 이 헌신에서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소유를 드림에도 향기 가득한 헌신의 모습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4) 넷째로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릎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로 섬기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간을 드림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무릎의 헌신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머리에 담겨진 지식의 조각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나도 살고,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도 살릴 수 있습니다. 기도의 헌신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가 능력 있게 사역을 펼쳐 가는 밑거름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기도 없이는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능력 있게 나타날 수 없습니다.
목회의 햇수가 늘어가면서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기도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정말 기도가 없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발견할수록 그만큼 무릎의 헌신이 필요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릎의 헌신을 통해 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눔 속에서 누가 득을 봅니까? 바로 기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아닙니까? 중보기도 사역팀만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기도의 헌신 속에 담겨진 이 엄청난 보화에 눈이 열려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손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손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무릎의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이 기도의 헌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기도의 무릎도 향기 가득한 헌신으로 바쳐지기를 빕니다.
III.
오늘 말씀을 마치기 전에 한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교회에 대한 헌신의 관계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서 두 극단은 피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극단은 교회를 섬기는 것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만이 거룩한 것이고 직장이나 가정의 일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성서적 이해가 아닙니다. 반면에 교회 생활은 세상의 여러 영역 가운데 하나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입장, 이것도 우리는 넘어서야 합니다. 오늘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또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도전을 받는 것이 바로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세우셨고 주님께서 머리가 되시는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훈련시키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땅끝까지 펼쳐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위한 헌신에서 교회를 위한 헌신은 분리시킬 수 없으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진정한 헌신을 못하는 사람이 주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합니다. 비록 부족하고 모자라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헌신은 중요합니다.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주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사는 것입니까? 향기 가득한 헌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향유를 쏟아 부은 여인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간과 주신 은사와 재능, 또 재물과 기도를 쏟아 붓는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민 운동을 일으키신 김용기 장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 풍산면의 10,000평 땅위에 가나안 농장을 세우 실 때 장로님께서는 이런 원칙을 세우시고 실천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자신이 사는 집은 흙벽돌로 짓고,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가축들의 집은 시멘트 벽돌로 짓고, 주님께 예배드리는 건물은 제일 좋은 붉은 벽돌로 지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섬기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께 먼저 제일 좋은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향기 가득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제일 좋은 것을 나를 위해서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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