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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3.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6) / 추수감사주일 - 조영진 목사
"감사가 샘솟는 가정"
에베소서 3:14-21
행복한 인생이란 어떤 삶을 말합니까?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가 샘솟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는 서로를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찾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감사가 샘솟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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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감사의 계절은 찾아왔습니다. 사시사철, 일년 내내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땅을 찾아온 믿음의 선배들이 추수감사절을 지키기 시작함으로 일년에 한번이라도 잊혀졌던 감사를 되찾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인생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감사는 인생을 살맛 나게 만들어 주는 명약입니다. 감사는 인생에 행복을 안겨주는 비방입니다. 감사가 사라진 인생은 메마른 삶입니다. 감사가 떠나간 인생은 바로 낙원을 잃어버린 삶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입니까?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입니까?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침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행복한 인생이란 감사의 샘을 갖고 있는 인생입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감사가 샘솟는 가정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넓은 땅에 호화로운 집을 짓고 살아간다 해도 그 인생에, 그 가정에 감사가 없다면 행복과는 먼 거리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좁은 공간, 단칸방에 산다해도 삶 속에서 감사가 넘쳐나고, 가족들 간에 서로가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면 그 인생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 가정 행복한 가정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해 또 남편이 아내를 향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당신을 만나 결혼한 것이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 행복한 부부 아닙니까? 자녀가 부모를 향해, 또 부모가 자녀를 향해 서로가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면 그 가정 행복한 가정 아닙니까? 그 부모, 그 자녀, 부러운 가정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많은 가정들이 이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서로를 향한 고마움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감사하기 보다는 탄식과 불만이 불끈 불끈 치솟고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보다는 비난과 책임을 떠넘기는 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 진정한 감사의 회복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본래적인 모습을 시급히 되찾아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I.
이런 숙제를 안고 대하게 된 말씀이 오늘 에베소서 3장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써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편지는 무엇을 믿는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는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 제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기도 제목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 될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사도 바울은 3:16의 말씀대로 에베소 교회 교인들, 아니 우리들의 속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지으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케 만듭니다.
(2) 둘째는 3:17에 기록된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모셔드리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인생 속에 오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됩니다.
(3) 셋째는 3:17 후반절부터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 임하는 온갖 충만함으로 충만케 채움 받기를 기원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충만케 하심을 맛보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2000여 년 전 에베소에서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 제목이며 그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바로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기원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그의, 아니 우리 주님의 간절한 기도이며 바램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샘솟는 복된 가정의 회복도 이 말씀 속에서 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이 벽에 부딪치고, 가정에 어려움과 탄식이 찾아오게 되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는 서로가 자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의 사랑도 자라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자란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한다는 것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내게 익숙하고 편했던 삶의 모습을 깨뜨리고 포기해야 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을 기꺼이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변화의 아픔, 사람이 성숙해지는 길을 외면할 때, 가정 안에서 감사의 샘은 메말라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탄식과 후회가 우리의 가슴속에 밀려올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Flexibility, 유연성입니다. 변화의 아픔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Openess, 열려있는 마음입니다. 보다 성숙한 사랑을 향해 자라가는 노력입니다. 이 열린 마음이 없으면 가정은 쉽게 권태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기대와 흥분이 떠나간 자리에 씁쓸한 후회와 안타까움만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사랑은 자라야 합니다. 성숙함을 향해 끝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II.
그런데 이렇게 부부가 성숙함을 향해 자라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은 우리 인생에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능력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보다 성숙한 인생, 보다 성숙한 가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믿음은 바로 내 생각, 내 주장을 상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절대적임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자기 주장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면 사랑의 성숙도, 문제 해결의 길도 까마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위에 서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의, 우리의 생각보다 더 권위가 있고, 더 진리임을 깨닫고 믿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그분의 사랑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살피고, 돌이켜보고 무릎 꿇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변화를 향해 가슴을 열 수 있습니다. 보다 성숙한 사랑이 무언지를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가정의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으라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배워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네 차원,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사랑의 네 차원, 우리가 배우고 자라가야 하는 사랑의 네 가지의 모습을 함께 찾아 보시겠습니다.
(1) 첫째로 사랑의 넓이란 사랑의 폭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넓이에 한이 없으셨습니다. 그 넓이가 얼마나 넓으신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그 원수를 위해서 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이 폭넓은 사랑을 가정에서 배워가야 합니다.
여러분, 성숙한 사랑은 장점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단점도 이해하고 받아드립니다. 마음에 드는 모습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폭은 대단히 제한적이고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폭넓은 사랑은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사랑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 잊어버리는 것이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건망증에 대하여 질책하거나 비꼴 수 있습니다. 설교나 훈계로 나무 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단을 치지만 실상 야단치는 본인도 잊어버릴 경우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몇 해전 연합감리교 Congress on Evangelism이 McLean에서 열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Denver에서 오신 한 참석자께서 이런 농담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80세 가까이 되어 홀로 사시던 할아버지가 마음에 드는 할머니를 만나서 사귀다가 용기를 내어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Yes"라고 대답해서 한껏 신이 났던 할아버지는 몇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가 "Yes"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프로포즈한데 대해서 할머니가 Yes했는지 No 했는지 궁금해서 견딜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프로포즈 한 것에 대해서 Yes 했는지 No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내가 오전에 프로포즈를 받고 분명히 Yes했는데, 누구한테 Yes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넓이란 부족한 점, 모자라는 점, 단점을 포용하는 폭을 말합니다. 이 폭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 폭이 넓어져야 합니다.
(2) 둘째로 사랑의 길이의 차원입니다. 길이란 사랑의 불변성,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이 없는 사랑의 모습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사랑이 퇴색되어가고 메말라 가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져 갑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이 사랑을 배우고, 이 성숙한 사랑을 향하여 자라가야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 속에 그리며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
그런데 70대에 가서야 고마워서 산다면 여러분, 문제가 아닙니까? 송길원 목사님의 책 속에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남자의 청혼이 있을 무렵에는, 여자가 기침만 해도 남자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그대는 악성 코감기에 걸린 것 같소. 당신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한다오. 오늘 당장이라도 입원해서 종합건강 진단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이미 내가 잘아는 분께 부탁을 해두었소." 그리고 결혼에 골인한 다음에는, "여보,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올테니." 그리고 한해가 지난 후부터는, "아니 아스피린이나 하나 사먹지 뭘 하고 있어?" 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는, "아니 이러다 아이한테 감기 옮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리고 세월이 조금 더 지난 다음에는, "여보, 분별이 좀 있어야지, 애들에게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마루 정리라도 한 후 좀 누워있는 게 좋지 않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슨 말이 나올까? "아니 무슨 여자가 그렇게 약골이야, 오뉴월에는 개도 감기에 안 걸린다는데, 내 팔자도 말이 아니야." 이래서 결혼은 거짓말로 더불어 시작된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길이의 차원에서도 자라가야 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 사랑이 변함이 없고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3) 셋째로 높이의 차원이 있습니다. 높이란 주는 사랑, 사랑이 갖는 희생적인 차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사랑은 언제나 희생의 차원을 갖기 마련입니다. 많은 경우 부부의 갈등은 서로가 받으려는 데서 생깁니다. 왜 나의 필요를 상대방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가? 에서 불평과 불만이 싹틉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바로 이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로마서 5:8에서 사도 바울이 외치는 것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해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늘 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바로 결혼생활에서도 Golden Rule, 황금률이라는 말씀입니다. 똑같이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은 TV보면서 쉬고, 아내는 식사준비하고 설거지하고 집안 정리해야 한다면, 여러분,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아내가 음식준비 한다면 설거지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설거지 해주는 남편의 모습 앞에서 쫌스럽다고 비웃을 아내가 있겠습니까? 물론 시어머니는 좀 다르실 지 모르지만.
사랑의 높이, 고귀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사랑의 높이가 없다면 그 사랑은 입술에만 머물고 말 것입니다. 구호에만 그치는 사랑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은 높이의 영역에서도 자라가야 합니다. 이 높이의 차원이 자라갈 때, 진정으로 성숙한 관계, 서로를 고마워 할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4) 넷째 차원은 깊이입니다. 깊이는 사랑이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서 전인격적인 사랑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우쳐 줍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단순히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는 생각하는 이성과 행동하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고민하며 슬퍼하셨지만, 십자가의 언덕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전인격적이어야 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사랑의 깊이를 우리로 배워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가슴 뜨거운 사랑은 길어야 2년에 머문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이 식으면 사랑도 식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랑의 관계에서 감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정이 사랑의 전부는 결코 아닙니다. 감정은 부분일 따름입니다.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The Road Less Traveled'란 책을 쓴 Scott Peck 같은 사람은 감정은 오히려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까지 말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상대방을 향한 배려나 책임보다는 자신의 욕구 충족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 보다는 상대방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책임있는 배려임을 강조합니다. 부부의 관계에서도 사랑은 이 차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감정도 중요합니다. 정이 떨어지면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보다 깊은 차원, 전인격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깊이 있는 사랑을 향해 자라가야 합니다.
III.
감사가 샘솟는 가정, 어떻게 이룩해 갈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 사랑의 넓이와 길이, 높이와 깊이에서 자라가면 우리는 감사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네 차원에서 끝없이 자라가는 성숙한 사랑을 가꾸어 갈 때 우리의 가정, 부부의 관계는 감사로 채워져 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고맙고, 그를 만나 함께 살아가게 된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이런 가정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의 모습입니다. 아니 이렇게 서로를 고마워 하며 감사가 샘솟는 가정을 이루라고 주님께서는 결혼제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금번 연속 설교를 끝맺으면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남자입니다만, 남편들이tl여 가정이 회복되는 이 일에서 먼저 앞장 서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역할도 먼저 회복해 가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남편을 아내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에게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순종과 남편의 사랑은 선후를 따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따진다면 남편이 먼저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먼저 사랑하셨기에 교회가 순종하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남편은, 아버지는 가정의 회복에서 앞장서야 합니다.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마음을 열고 성숙한 사랑을 향해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남편들이 먼저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느끼고 고마워하는 아내는 순종하지 말라고 해도 순종할 것입니다. 아내의 수고를 인정해 주고 먼저 사랑한다면 진정한 가정의 회복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한종 목사님께서 쓰신 '홈·스위트홈'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으로 한창 전도 유망하던 여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 주부가 된 뒤, 제2의 인생을 살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맡은 일을 잘 끝내면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내 수고를 인정해 줄 때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런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어깨가 으쓱해지고 온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고 집에서 살림만 하며 사는 지금, 나는 가슴 깊은 곳에 뭔가 텅 비어 있음을 느낀다. 아무도 옛날 내가 잘할 때 내 수고를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던 직장 상사의 자리를 채워주지 않는 거다. 가끔씩 남편이 집에 오면 팔을 붙잡고 방금 닦은 마루를 보여 주며 말하고 싶다. "자, 봐요. 내가 하루 종일 윤이 나도록 닦은 이 마룻바닥을. 당신과 아이들이 생각 없이 그냥 밟고 지나간 이 마루가 왜 이렇게 깨끗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밥상으로 데려가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자, 봐요. 한번 맛을 봐요. 바깥의 음식들을 수없이 많이 맛보며 늘 반찬 투정하는 당신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내가 수없이 고민하고 손이 부르트도록 애써서 만든 이 음식들을!" 왜 모든 사람이 내 수고를 다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이어서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남편들이여, 직장에서 상사가 당신이 집에서 아내에게 하듯이 오래도록 당신이 수고한 것에 무관심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벌써 오래 전에 그 회사를 때려치웠을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밖에서 하는 '위대한 일들'에 비해, 아내가 집에서 하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남편들에게 권합니다. 한번 역할을 바꿔서, 일주일 아니 단 하루라도 하루 종일 집에서 청소하고, 아이를 보고, 빨래하고, 밥하는 살림을 해 보십시오. 저도 집사람이 출타할 때 이틀 혹은 사흘 해보는데, 여러분,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은 서로를 고마워하며 감사가 샘솟는 가정입니다. 여러분, 사랑 안에서 끝없이 자라 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남성들이 먼저 이 일에 앞장 서 자라 가십시다. 그때 가정은 회복될 것입니다. 낙원은 다시 찾아질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찾아 올 것입니다.
송길원 목사님께서 쓰신 가정의 팔복을 소개하며 제 설교를 줄입니다.
가정의 팔복
결혼 전과 결혼 후의 관심과 사랑이 변함없는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상대방의 성장이 더디어도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이요
서로가 서로를 세워 주며 섬기며 신앙 안에서 성숙해 가는
부부들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먹고 마시는 일과 현재 살고 있는 주택에 불평 없이 만족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부부들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시어머니를 긍휼히 여기고 자기보다 못한 이들과
가정들을 돌아보는 이들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임이요
과거를 논하지 않고 편견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부부싸움과 다툼으로 받은 상처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먼저 화해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가정의 어려운 일과 위기(실업, 건강 악화, 자녀 문제 등)가 닥쳐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 속에서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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