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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4) - 조영진 목사

"기다리는 사랑"

누가복음 15:11-24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자녀를 양육함은 많은 도전과 과제를 가져다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자녀 양육에서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자녀 양육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라는 제목 밑에서 드리는 연속 설교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가정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드렸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 가운데 하나인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서로 다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자녀 양육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몇 해 전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2학년-5학년 어린이들 676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 조사를 해서 분석 정리한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부모의 말 10가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공부 좀 해라 공부 좀(32%); (2) 동생이 뭘 배우겠어? 네가 잘해야지(19%); (3) 커서 뭐가 될래(12%); (4)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10%); (5) 한번만 더 그래 봐라 가만두지 않을 테니(8%); (6) 옆집 아이는 이번에도 일등했다더라(7%); (7) 내가 못살아(5%); (8) 어디서 말대꾸야(3%); (9) 왜 그렇게 버릇없이 구니?(1%); (10) 넌 왜 맨날 돈타령이니? (1%). 자녀들에게 말하는 것도 정말 생각해서 해야함을 깨우쳐 주는 통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자녀를 바로 기르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자녀들은 전혀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열기만 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란문화는 자녀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을 잃어가는 오늘의 세상 속에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는 기준이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민자로 이 땅을 찾아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미국과 한국의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자녀들과의 대화의 벽이 쌓아져 가는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 자녀 양육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건강하고 올바르게 양육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자녀 양육은 어떤 면에서 달라야 합니까?

I.

이같은 질문 속에서 대하게 된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유명한 탕자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사실 탕자의 비유란 제목은 적절한 제목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집을 떠난 탕자에 있지 않습니다. 초점은 바로 집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의 제목은 탕자보다도 "Waiting Father(기다리는 아버지)"가 보다 정확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흐르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15장 전체의 주제가 바로 사랑입니다. 15:1을 보면 당시에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에 철저히 율법을 지키기로 소문난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이같은 비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 그리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를 통하여 한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죄인이라고 버림받고 손가락질 받은 사람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으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부르시고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고치시고 싸매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다시 찾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 실수하고 그 인생이 망쳐졌어도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는 사랑 때문에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키우는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는데 참으로 중요합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기다리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 가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와 자녀들을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넘어지고 깨어진 자녀들에게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 진실한 사랑이 바로 자녀 양육의 핵심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처럼 흔하고 널리 알려진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처럼 실제로 practise, 행하기 어려운 것도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아니 어떻게 하면 참으로 우리의 아들 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먼저 자녀들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합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지녔던 그 눈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식들은 내 아들, 내 딸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차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부부 사이를 통해서 태어났지만, 바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자녀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 우리 부부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의 소유자(owner)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양육의 책임을 부여받은 청지기(Steward)에 불과합니다. 부부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작품이며, 또한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127:3에서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자식이라는 생각과 주님의 자녀라는 생각 가운데 어떤 생각이 자녀의 존엄성을 더 존중해 주는 고백입니까? 어떤 생각이 우리의 자녀를 더욱 귀히 여기는 고백입니까? 두 말씀 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의 품을 떠났지만, 비록 가지고 있던 것 다 탕진하고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들도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방황하고 있지만, 그 아들도 하나님의 자녀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녀를 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진정한 자녀 사랑은 우선 자녀에 대한 이해가 바뀌는 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자녀를 보는 눈이 바뀌면 참으로 자녀를 잘 양육한다는 의미도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를 바로 키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양육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까? 어쩌면 대답은 간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나의 자녀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라면, 그들을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르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육함이 최선의 길입니다. 이 길은 오늘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자녀 양육의 철학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1등 하는 것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재능을 힘껏 발휘하여 최선의 그릇으로 키워 가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공부만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자라 가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몇 달 전에 신문에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칼럼을 쓰신 분은 유명한 음악 경연대회에 관계되신 분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그분이 한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왜 한국사람들은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지 못하고 2등이나 3등을 하면 우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2등이나 3등을 해도 기뻐서 환호하는데, 한국사람들은 많은 경우 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음악도 1등, 성공에만 집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땅이 좁고 경쟁이 심한 역사를 거쳐왔기에 져서는 안되는 문화에 익숙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1등, 성공에 매어 달리면서 더 중요한 삶의 여유와 진정한 삶의 가치를 잃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인생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가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진정한 성공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설 때 주님께로부터 칭찬 받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온 천하를 얻고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그 인생 실패한 것 아닙니까!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그렇게 양육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참으로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 부모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비록 세상의 문화와 가치를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신앙인의 가치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쳐야 합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본문 속의 아버지는 그릇된 길임에도 불구하고 떠남을 주장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수 할 수 있는 공간, 혹은 가능성을 허락 한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이 공간을 허용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할 때 경계선 안에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모범생으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모든 자녀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경계선 밖으로 뛰쳐나가는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아픔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경계선 안에 붙들어 두려는 부모님과 이 경계선을 뛰쳐나가려는 자녀들 사이에 언제나 다툼, 갈등과 번민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고 요청한 것은 참으로 무례한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 계신데 그 몫을 요청한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그 아들이 그 재산을 갖고 떠나면 망할 것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줍니다. 실패의 길로 가는데도 속수무책 떠나 보냅니다. 무력한 아버지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왜 집에 가두지 못하는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떠남을 허락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실수 할 수 있는 공간까지도 허락해 주는 사랑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 이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는 자녀를 둔 저 자신도 많이많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경계선 밖으로 뛰쳐나갈 때 꾸짖고 달래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고생할 것이 뻔한데도 그 길을 고집할 때 실수 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이 공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실수함으로 그 앞길이 닫혀지고 고생을 하게 되더라도, 어떤 때 우리는 이 공간을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붙든다고 뛰쳐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붙들 수 있는 만큼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달래도 권고해도 속수 무책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그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 붙들려고 할 때 관계만 더욱 나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2) 둘째로 실수의 공간은 위험이고 비극일 수 있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가 그 인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실수의 공간은 또한 아주 귀한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 경험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한때의 실수는 두 걸음을 앞으로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실수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어져야 합니다.

3) 셋째로 실수의 공간을 허용함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범생일 때만 사랑하고 실수할 때는 사랑하지 못한다면 과연 진정한 사랑이겠습니까? 비록 기대에 어긋나도, 부모가 원하는 길에서 벗어나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까? 참 사랑은 바로 이 실수의 공간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 실수의 공간마저도 품을 수 있을 때 진정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넷째로 실수의 공간을 허용함은 결코 포기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허용은 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 허용은 바로 하나님의 손에 맡김을 뜻합니다. 주님,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주님 손에 맡깁니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실수의 공간을 허용하는 우리가 갖는 믿음입니다. 내 양육의 한계를 고백하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이 공간, 이 가능성을 허용하였습니다. 비록 이 위험한 공간을 걸어가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실수의 공간은 훗날 제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품이 얼마나 귀하고 풍성한 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낮아져 회개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 실수의 공간마저도 허용함을 뜻합니다. 실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4) 넷째로 진정한 사람은 기다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들이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서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떠나 보냈지만 오래 참고 기다려 왔음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아들이 돌아오는 그날을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아픔을 가져다 줄 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는 그날을 희망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가장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늘도 역사를 낳습니다. 하는 행동이 미워도, 그 존재를 미워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마시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침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기도의 눈물이 있는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곧 그날이 올 것입니다. 방황 속에서 부쩍 성숙해진 모습을 보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놓치지 마시고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III

지혜 엄마라는 분이 쓰신 '아이가 돌아 올 때까진 문을 잠그지 마세요'란 책을 읽었습니다. 초등하교 6학년 되면서부터 변해 가는 딸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방황하고 가출하고 무너져 내릴 때 겪은 아픔과 번민, 고뇌와 한숨의 세월들을 적은 책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정혜가 딸 지혜를 괴롭히기 시작하고 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자 딸은 다른 학교로 옮겨 달라고 호소합니다. 하는 수 없이 30-40분 버스 타고 다니는 학교로 옮겼지만, 전학한 지 며칠 후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대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매를 맞으면서 반항기가 더욱 싹이 튼 딸은 마침내 가출해서 나온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딸의 간청으로 1년만에 다시 처음 다니던 중학교로 돌아 왔는데 이제는 완전히 노는 아이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한테도 매를 맞고 나중에는 가출해서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먹고 담배 피고 남자친구 사귀고 끝없이 굴러 떨어져 가는 딸 앞에서 어머니는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달래도 보고 하소연도 해보고 야단도 쳐봤지만 딸 아이는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찾아가 기도를 하면 그저 눈물뿐이었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속상해서 미치겠어요. 저 아이가, 저 아이가 어떻게 될지, 정말 바르게 자랄지, 어떻게 자랄지 모르겠는데, 하나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변화 좀 시켜주세요. 하나님 고쳐주세요. 이대로 둬서는 안 되잖아요. 아버지." 울면서 기도하면서 솔직하게 다 쏟아내었습니다. "하나님, 어떨 땐 저 아이가 차라리 식물인간이 되어서 누워있으면 좋겠어요. 진짜 죽여버리고 싶어요. '죄 짓고 사느니 그렇게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차라리 죽어서 내 눈에서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라고까지 기도했습니다. 제 마음이 그래요. 그런 끔찍한 말까지 할 정도로 제 마음이 답답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님께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무엇보다 딸에게 둘러싸인 어두운 장막을 벗겨 주시기 기도 드립니다. 딸 주변 아이들도 너무 미워요. 미워하고 싶지 않지만 진짜 미워요. 그래도 제 나름으로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제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주님..."

그런 중에도 딸은 근근히 공부하여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그러던 중 엄마는 자궁의 혹이 커져서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받습니다. 사실 엄마는 처녀시절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정말 기도하는 가운데 고침을 받고 은혜로 이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딸이 헤매고 방황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남자친구 오토바이에 타고 학교에 가기도 했으니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 상상 할 만 합니다. 처절한 아픔과 절망 속에서 엄마는 청소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또 치유상담과정에 등록, 배움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한계상황에서 엄마는 딸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 안에서 딸을 키우려면 진짜 하나님께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함을 깨닫습니다. 딸 아이를 마음으로는 포기하지 말자. 그러나 행동으로는 강요하지 말자. 하나님께 맡기고 내 자리를 지키고 사랑하자고 다짐합니다. 정말 하나님께 맡기고 참고 기다리며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딸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미술을 공부하면서 점차 눈을 뜨게 됩니다. 교회에 나가겠다는 말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성적도 좋아져서 2학년 기말시험에는 소묘, 수채화, 학과에도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서 3학년 때는 다른 학생들은 공부한다고 교회에 안나오는데, 자진해서 중.고등부 회계를 맡아 봉사하며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이모네 집을 방문,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딸아이는 식사 후 동생들을 데리고 노래방을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조카 경민이가 지혜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이모 이제 언니 걱정 안해도 되겠어. 이젠 언니가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애. 철 난 것 같애. 어제 언니가 우리한테 노래방에서 그러는거야.' 니들도 알다시피 언니가 말이야 안 해본 게 없이 다 놀아봤잖아. 진짜 열심히 놀았어. 그런데 남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니들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해라. 니네 잘하고 있는 거 알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해' 언니가 그렇게 말했어. 그러구 언니가 마실 것도 사줬어. 이모, 이제 이모 걱정 끝났어."

여러분, 주님 붙들고 기다리는 사랑이 낳은 또 하나의 역사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은 오늘도 약효가 있습니다. 사랑만이 새 생명을 낳습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주님 의지하며 기다리는 사랑은 오늘 방황하는 우리의 자녀를 고치는 특효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