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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6.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3) - 조영진 목사
"당연히 다르지요"
창세기 1:26-31
결혼은 서로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과 하나됨입니다.
서로 다름 속에서 우리는 갈등과 아픔을 경험합니다.
이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렇게 우리는 다름을 넘어서서 조화와 하나됨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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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7일 주일부터 저는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라는 제목 밑에서 연속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주일에는 "기초가 중요합니다"라는 제목 밑에서 우리 가정의 기초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10월5일 주일에는 아브라함이 충성된 늙은 종을 보내어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택한 창세기 24장의 말씀 속에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배우자 선택의 문제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여덟 번에 걸쳐 말씀드릴 계획이었던 금번 연속설교는 11월에 김해종 감독께서 저희 교회를 방문하시게 되었고, 또 장 목사님의 이임예배 관계로 여섯 번으로 조정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웨딩마치가 울려 퍼질 때 많은 부부들은 행복에의 기대로 한껏 부푼 가슴을 지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 생활에 부딪치면서, 가슴 속에 품었던 기대와 부풀은 꿈은 많은 경우 깨어지고 아픔을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는 실망감도 생기고 좀 심해지면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암담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웨딩마치에 "속았구나 속았구나"라고 가사를 붙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기대가 무너질 때도 있고, 기대가 무너지면서 오는 실망감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의문 부호를 부쳐보기도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 지금 당신이 생일 선물로 내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주는 꿈을 꿨어요. 그것이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건 당신의 생일이 되면 알게 될거야." 아내의 생일날 남편은 작은 상자를 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아내는 기뻐하며 그 상자를 열었습니다. 여러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겠습니까? Freud가 쓴 '꿈의 해석'이란 책이었습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 이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노래한 이 말씀을 보면 인간의 창조가 여섯째 날에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되는 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남녀에게 땅 위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식물로 주시고,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을 맡겨 주셨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은 매일 그날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끝을 맺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여섯째 날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우리가 사용했던 개역 성경은 "심히 좋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우주와 만물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우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만 지으신 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면 그것은 분명히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다름이, difference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 똑같다면 구태여 두 사람을 지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또 서로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르다는 것은 이미 창조 때부터 이루어진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부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아주 먼 옛날부터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살아갈 때, 어떻게 하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인가? 입니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어도 둘 사이에는 다름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다름이 없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II.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십시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서 생겨나는 difference, 다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무엇이, 어떤 차이와 다름들이 우리의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가져다줍니까?
(1) 첫째로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성(性), 남자와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벌써 많은 다름을 갖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남자와 여자의 성 차이가 좁혀져 가는 시대입니다. 여성 해방운동과 함께 남성이 독점해 오던 영역에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졌습니다. 예전에는 금기처럼 여겨지던 투기, 권투와 프로레슬링 같은 종목에도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성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Body Building에도 여성들이 진출하여 튼튼한 근육을 과시하는 사진들도 우리는 종종 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지으셨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는 점도 있습니다만, 어떤 때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부부 관계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성 차이에서 오는 다름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 문제를 다룬 책으로 John Gray 박사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라는 책이 있습니다. Gray박사는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산다는 것은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이 함께 사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부부 사이에 가치관이 어떻게 다른지,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많은 것을 이루게 하는 방법,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친밀감의 욕구에 대한 차이 등 여러 분야에서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결혼생활에서 서로에 대한 기대가 깨어지면서 방황하는 많은 가정들에게 서로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 주었습니다.
또 Willard Harley라는 사람도 'His Needs, Her Needs'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남편과 아내가 갖는 need의 차이를 보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자가 원하는 중요한 다섯 가지 바램은 Affection(정감어린 돌봄), Conversation(대화), Honesty(정직함), Financial Support(재정적인 뒷받침), Family Commitment(가정에 대한 헌신)입니다. 반면에 남자가 원하는 다섯 가지 바램은 첫째가 Sex(성적인 만족감), 둘째가 Recreational Companionship(함께 즐김), 셋째는 Attractive Spouse(매력적인 배우자), 넷째가 Domestic Support(가사를 돌보는 것), 다섯째는 Admiration & Respect(존경받는 것)입니다. 남자가 더 동물스러워 보이지만, 이것은 이것이 더 고상하고 저것이 덜 고상하다고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정말 서로간의 필요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2) 둘째는 남녀간의 성 차이와 연결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을 느끼고 전달하는 언어의 다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Gary Chapman 박사가 'The Five Love Languages(5가지 사랑의 언어)' 라는 아주 좋은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우리가 사랑을 느끼고 전하는 언어가 5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육체적인 접촉입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갖고있는 사랑의 언어, 즉 요즈음 말로 말하면, Code를 알지 못하면 자기 나름으로는 열심히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랑이 전달되지 않고 또 상대방이 사랑을 못 느끼니까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에서 사랑을 느끼는 아내에게 선물을 사다 줘봐야 사랑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선물을 준비했는데도 상대방이 별로 고마워하지 않으니 주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또 육체적인 접촉에서 사랑을 느끼는 사람에게 인정하는 말만을 하면 무언가 허전하고 모자람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부부 관계에서 서로 사랑의 code가 다른 것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처럼 만에 촛불을 켜고 은은한 불빛 아래 식사를 하고 싶어서 준비한 아내에게 "아니 이 밝은 세상에 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야단이야"고 말한다면 code가 안 맞는 것이 분명합니다.
(3) 셋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격차이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성격 차이 때문에 아픔을 겪고 이혼에 이르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이번 주말, 금요일 저녁부터 갖는 성격유형상담 세미나에 많이 오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MBTI란 Meyer Briggs Typology Indicator란 말의 약자로서 우리의 성격을 대개 4가지 카테고리에서 봅니다. 외향성인 사람과 내향성인 사람, 감각형(Sensing)과 직관형(Intuition), 사고형(Thinking)과 감정형(Feeling), 판단형(Judging)과 인식형(Perceiving)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외향성인 사람은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내향성인 사람은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 성격 차이에서 오는 여러 문제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금번 세미나는 바로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많은 참석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성격 차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7월 초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세미나를 인도해주신 오제은 교수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성격차이란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격 차가 없는 부부는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격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격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나 자신에게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깊이 되씹어 보아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넷째로 부부 사이에 갈등을 초래하는 중요한 다름은 성장 배경의 다름입니다. 특별히 각자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서 형성된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이해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은 성장과정에 영향을 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부부사이가 원만하고 아름다운 가정에서 자랐을 때는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에 대해서는 원만한 이해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을 경우는 남편과 아내의 올바른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번 전교우 수양회를 인도해 주신 정태기 교수님의 고백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줍니다. 정 교수님의 아버님은 1년 중 8개월만 집에 머무시고 나머지 4개월은 또 다른 어머니와 사셨다고 합니다. 대개 겨울철이면 집에 오셨는데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면 어머님은 늘 개를 잡고 산에서 캔 약초를 넣고 푹 달여서 개엿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오지 항아리에 담아 아버지만 드시게 하셨는데, 형제들은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모님 가정은 장모님이 약하셔서 장인 어른께서 손수 약을 달이시면서 극진히 돌보셨다고 합니다. 또 장모님께서 몸은 약하셨지만 교회를 개척하실 정도로 강한 면모가 있으셔서 장인 어른은 장모님 앞에서 죽는 시늉 하셨답니다. 교수님께서는 결혼하시면서 겨울철이 되면 개엿을 해주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셨는데, 개엿은 종래 나타나지 않아 실망이 크셨답니다. 또 사모님은 사모님대로 남편이 극진히 섬겨줄 것을 기대하셨는데 교수님은 도저히 기대치에 못 이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 초기에 많이 다투셨다고 합니다. 성장 배경이 다름에서 오는 역할이나 기대의 차이가 보여주는 갈등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III.
여러분, 이렇게 다름에서 오는 갈등과 아픔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넘어설 수 있습니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서로 다름을 넘어서서 아름다운 조화와 성숙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까? '행복한 부부 대화의 열쇠' 라는 책을 쓴 H.Norman Wright 박사의 충고를 중심으로 몇 가지 조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첫째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을 모두 독특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2) 둘째로, 서로 다르다는 것은 결혼생활에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강점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조화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서로 다른데서 옵니다. 서로 다른 색깔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서로 다른 음성이 합창의 아름다움을 가져다줍니다. 서로 다름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우선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남편상, 혹은 아내상은 빨리 버릴수록 지혜롭습니다. 이상적인 남편상에 비추어 보면 지금 내 남편은 모자람 투성이로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적인 아내상을 붙들고 있으면 지금 내 아내에 대한 불평만이 무성하게 솟아오릅니다. 남편을 있는 모습 그대로, 아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숙해 지는 결혼생활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4) 넷째로, 그러나 있는 모습 그대로에 머물기만 하면, 실망과 충돌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자란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람의 과정은 언제나 아픔 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살면서 내가 편안하고 익숙해온 삶의 스타일이나 패턴을 깨뜨려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의 많은 부분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데서 생겨납니다. 보다 아름답고 성숙한 미래를 위하여 자라가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됩니다.
(5) 다섯 번째로 서로의 기대와 생각을 나누는 대화는 다름에서 오는 아픔을 극복하는 묘약입니다. 정직하게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 가정은 문제의 대부분을 극복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솔직히 나누고, 원하는 변화의 모습을 함께 그릴 수 있다면 그 가정은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6) 여섯 번째로, 서로 변화를 요청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그 변화를 바라는 나의 동기입니다. 내가 원하는 이 변화가 나의 편리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참으로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인가? 그리고 이 변화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까?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만을 위해서 요청하는 변화라면 그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7) 일곱 번째로, 변화는 쌍방통행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청한다면, 나도 상대방의 요청에 응할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는 괜찮으니까 당신만 변하면 된다는 생각은 혼자만 옳다는 독선입니다. 세상에 항상 옳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부부 관계에서는 이 열린 마음, Flexibility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서서 보면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변화의 요청을 두려워 마시고 솔직한 대화 속에서 자신을 열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저의 집사람은 신학대학에 다니면서 만났습니다. 1970년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4년을 같이 공부했습니다. 처음부터 연애를 한 것은 아닙니다. 4년 같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이상할 정도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비만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야윈 몸매라는 것도 비슷한 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때 폐 수술을 받다가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났기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 결혼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었습니다. 그저 덤으로 사는 생명, 하나님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불탔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기에, 또 친구가 중간에서 바람을 불어넣고 지원사격을 하는 바람에, 4학년 때 가까워져서 대학원에 재학하던 1975년 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나와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선 신앙적인 배경이 달랐습니다. 집사람은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이었고, 저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 문제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게 불거졌습니다. 저는 목사들이 쉬는 월요일에 결혼식을 해야된다고 우겼고 집사람은 집안 형편상 토요일에 하면 좋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다투다가 결별 일보 전까지 갔는데, 결국은 월요일에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좀 마음이 굳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살다가 보니까 다른 점도 많았습니다. 저는 많이 아팠고 또 목사가 되었으니까 집사람이 그저 섬겨주고 뒷받침해 주기만을 바랐는데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또 무슨 말을 하면 저는 대답을 안 하거나 늦게 서야 반응하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었는데, 집사람은 이 점에 대해서는 무시당한다고 느끼며 엄중 항의해왔습니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28년의 세월이 너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서로를 많이 알고 살아가지만 아직도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혼식 주례 때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배우자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배우자가 되기 위하여 자라갈 따름입니다. 또 행복한 부부의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배우고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부부들이 서로를 고마워하며 행복한 관계를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결혼제도를 우리에게 주신 우리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다른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에 있습니다. 이진관 님이 쓴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를 소개해 드리며 제 설교를 줄입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 가야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 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세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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