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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2. 교회설립 52주년 감사주일 - 조영진 목사

"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6-10

사도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부름을 듣고 유럽대륙으로 복음을 들고 건너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슨 뜻을 품고 미국 땅을 찾아왔습니까?
나 한사람, 우리 가족 잘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이 땅의 부름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으로 미국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어 주는 일에 우리 모두 참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기쁜 날입니다. 오늘 감사한 날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52주년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은혜가 너무도 크고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가 동족끼리 총칼을 맞대고 싸우는 아픔 속에서 신음할 때 이곳 워싱턴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 올랐습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쟁으로 시달리는 조국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기에, 그 땅의 평화와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하겠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화부 한인감리교회라는 이름을 짓고 기도의 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예배 출석인원은 32명, 첫 예배 헌금은 $17.05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예배를 위하여 보낸 초청장과 첫 예배 주보, 교회 설립을 결의한 회의록, 둘째 주일 주보는 저희 교회 일급 귀중 문서로 순원친교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 교회가 52년의 역사를 헤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약사에서 보신 것처럼 오랜 세월 자체 성전이 없어서 방황의 날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1960년 중반 이후 이민 문호의 개방과 함께 시작된 이민의 물결은 워싱턴 지역 한인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우리 교회는 이 와중에서 분열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괴로운 날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참으로 찬양드릴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또 한번 새로운 도전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52년 이란 역사를 자랑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반세기의 역사라는 뿌리 위에서 새로운 내일을 꿈꿀 때입니다. 변화의 물결을 헤쳐가면서 오늘의 도전 앞에 지혜롭게 응전할 때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에 따라 새로워 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역사의 유산 위에서 새롭게 일어설 수 있을까? 기도하고 힘을 모을 때입니다. 교회는 끝없이 갱신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에 따라 스스로 갱신의 고비를 바짝 조여야 할 때입니다.

I.

이같은 고민과 과제를 안고 묵상하게 된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16:6-10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에 올랐을 때입니다. 그는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를 떠나서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들은 16:5의 말씀처럼 믿음이 튼튼해지고 그 수가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터키지방에서 계속 전도하려고 했지만, 그리스도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드로아 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그러니까 오늘의 지명으로 표현하면 그리스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말합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이 환상을 본 후 사도 바울의 계획은 전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이 부르신 줄 믿고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 땅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바울 당시 이 걸음은 별 볼일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도 바울의 첫걸음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II.

오늘 먼저 저는 사도 바울이 환상 속에서 들었던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이 호소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호소는 2000여 년 전 사도 바울에게 보여지고, 들려온 소리이지만, 이 호소는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를 향하여 호소합니다. 외칩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1) 이 탄식은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서 들려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오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장래를 위하여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우리를 향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밀려오는 유혹의 물결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학교공부 하라고만 하지 마시고 내 영혼을 채우는 공부도 할 수 있도록 와서 도와 주십시오. 낯선 땅에서 부모님들만 힘드신 것 아닙니다. 우리도 힘듭니다. 와서 도와주십시오.

(2) 이 탄식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인동포 사회에서도 들려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한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미국 땅에 그래도 빨리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아픔이 많습니다. 돈은 좀 벌었지만 흔들리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부부관계는 냉전이 계속되고 자녀들은 방황을 계속하고 있기도 합니다. 힘써 노력해 이제는 살만하다고 할 때 건강에 이상이 찾아와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인동포 사회는 오늘 우리를 향해 호소합니다.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3)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 미국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미국은 대적이 없는 초강대국으로 세계역사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기회의 나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탄식의 소리는 들려오고 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부르짖음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문화역사 학자인 Morris Berman은 "The Twlight of American Culture(미국문화의 몰락)" 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문명이란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겪기에 미국의 문화도 소멸의 날이 올텐데, 이미 몰락의 징조들이 보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책의 서론을 포스트맨의 말로 시작합니다: "대중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온통 정신이 팔리거나 문화적인 삶이 끊임없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그 국가는 분명히 문화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오늘의 미국은 고대 로마제국의 말기 현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면서 몰락의 징조로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 흔들리는 사회보장제도, 지적수준의 하락, 그리고 소비주의 문화와 정신적인 죽음입니다.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은 감각적인 자극에 매어 달리고 무엇이 참으로 가치 있고 진실된 것인지 판단의 기준들이 모호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 미국도 탄식하며 호소합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이 땅의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이 땅 백성들이 깨어나도록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호소합니다.

(4) 오늘의 세계도 예외 일 수는 없습니다. 지구촌 구석 구석에서 우리에게 호소하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부르짖음 아닙니까? 와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 달라는 간청의 소리 아닙니까? 우리는 이 소리에 응답해서 지구의 모퉁이들을 찾아갔었습니다. 멕시코의 유까탄 반도를 찾아갔었고 도미니카공화국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방글라데쉬를 찾아갔고 중국 연화마을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금년 가을에는 아프리카의 한 모퉁이를 찾아가기 위한 답사가 계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지구촌 구석 구석에서는 우리를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손짓하고 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우리를 도와 바로 세워 달라고.

III.

너무 거창한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곳 저곳에서 부르짖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탄식과 호소 앞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호소를 외면하고 그냥 살아갈 것입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처럼 응답해서 우리의 손길을 내밀 것입니까? 그 안타까운 부르짖음에 응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먼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민자로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이해가 분명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한걸음 한걸음은 바로 그를 만나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인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땅을 찾아와 살게 된 이면에는 여러분의 꿈과 계획이 있으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 꿈, 그 계획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여기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 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이 땅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괜히 듣기 좋으라고 갖다 부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동안 100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들이 태평양을 건너 이 땅을 찾아왔습니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 땅을 찾아와 살게된 것은 분명히 민족 이동입니다. 여러분, 이 민족이동의 배후에 하나님의 뜻이 없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잘먹고 잘살라고만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 하셨겠습니까? 이 땅에서 혜택이나 누리라고 우리를 인도하셨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민족의 미국으로 이동하는 배후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땅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탄식에 응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이미 이 땅을 찾아와 살아가는 선배 이민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도구로 이 땅을 고치시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명의 사람들입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탄식에 응답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바로 이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 사명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2) 둘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한 바울과 실라는 소아시아 땅을 떠나 유럽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서 저들을 도우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우리도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우리가 이미 한국 땅을 떠나 이곳에 왔는데 무엇을 더 떠나야 합니까? 질문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많은 경우 우리는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떠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은 한국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미국 사회를 향해 조금 더 깊이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을 배워야 합니다. 영어도 좀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설교를 드릴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 도전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저와 함께 동역하면서 2세 목회를 했던 신영각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그 목사님은 제게 이렇게 요청하셨습니다: "목사님, 자녀들 보고 한국말 배우라고만 말하지 마시고 부모님들도 영어와 미국 역사를 좀 배우라고 부탁드려 주세요." 맞는 말씀입니다. 한국 비디오만 보지 마시고 미국 비디오도 좀 보셔야 합니다.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만 보지 마시고 미국의 신문들도 좀 보시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역사는 팔짱낀 구경꾼에 의해서 고쳐진 예가 없습니다. 책임있는 참여자만이 세상을 고치고 탄식을 싸매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왕 미국에 사시기로 결심하셨다면 다 시민권 신청하시고 투표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서툴고 잘 몰라도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을 고치는데 참여하시는 하나의 길입니다. 미국 땅의 구경꾼이 아니라 책임있는 참여자가 되어야만 우리는 와서 도우라는 호소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가서 돕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같은 일꾼을 기르는 것입니다. 우리 1세대는 이 땅의 아픔을 고치는 일에 언어로나 문화로나 한계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꾼을 길러내는 일입니다. 바울같은 지도자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야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외침에 응답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히브리어 뿐 아니라 희랍어에도 능통하였습니다. 이중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유대교의 신앙에 투철하면서도 희랍의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중 문화에도 익숙했습니다. 거기다 로마의 시민권자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은 마게도냐 사람의 탄식소리에 응답하기에 유익했습니다.

우리도 길러내야 합니다. 우리도 다가오는 미래를 내다 보면서 일꾼을 길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위대한 역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준비 될 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이민 1세대는 씨만 뿌리고 갈 지 모릅니다. 자라고 열매맺는 것은 2세대 3세대에 가서 이루어 질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우리 시대에 열매를 보지 못한다해도 우리는 사람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이 땅의 탄식에 응답할 일꾼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이 외침의 소리에 응답할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배출해내야 합니다.

(4)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호소에 응답하여 건너갈 때 무엇을 가지고 건너갔습니까? 그 탄식의 소리를 잠재울 무슨 대책을 가지고 빌립보에 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들을 도와 줄 최고의 명약은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자녀들의 탄식에 무엇으로 응답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한인사회의 탄식에 우리는 무엇으로 응답할 것입니까? 복음입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이 땅, 미국의 탄식소리에 무엇으로 응답할 것입니까? 복음입니다. 지구촌 구석 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탄식 앞에 우리는 무엇으로 응답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보다 더 뛰어난 명약은 없습니다. 이 복음은 오늘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우리 자신과 역사를 변혁시키고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52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깨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확신이 세워져야 합니다. 적당히, 엉거주춤 믿는 신앙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Charles Allen 목사님께서 교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이렇습니다. 20%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25%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30%는 바로 기도할 줄 모르고, 35%는 성경을 읽지 않고, 40%는 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고, 60%는 신앙서적을 읽지 않으며, 70%는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75%는 교회에서 책임진 것이 없고, 85%는 한사람의 불신자도 인도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100%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국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 가지고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외침에 바로 응답할 수 없습니다.

오늘 기쁜 날입니다.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또한 하나님 앞에 새롭게 헌신하는 날입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외침을 듣고 응답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교회 설립 52주년을 이끌어 주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부탁하십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탄식의 소리에 이제는 응답을 하라고. 복음을 들고 가서 도우라고.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요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시인은 자기 집 마당을 깨끗이 청소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이 쓸었노라고.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도 서있는 이곳에서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어야합니다. 지구의 한 모퉁이에 복음을 들고 가서 도와야합니다. 복음의 진리로 생명과 세상을 살리는 이 일에 나서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부탁하고 계십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외침에 응답하라고. 복음을 들고 가서 저들을 도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