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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10. 내 잔이 넘치나이다(6) - 조영진 목사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시편 23:1-6

여호와께서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시인의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영원히 거하리라고.
주님의 전에 영원히 거함은 어떤 삶을 의미합니까?
오늘 나는 주님의 전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 내 인생에서 목자이십니까?

며칠 전 저는 저희 교우 한 분으로부터 감사의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시편 23편으로 처음 설교하셨을 때 그 설교는 성령께서 제게 주시는 말씀이었다고 믿습니다. 설교 후 목사님께서 기도 받으실 분들을 앞으로 초대했을 때 저는 그때 나의 인생에 "Something renew, reborn, revitalize"라는 urge, 촉구하는 감동에 따라서 용기를 내고 나아가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나는 나의 대장암 소식을 몰랐습니다. 위기를 겪어 가는 동안 시편 23편은 제게 많은 위로와 확신을 주었습니다. Best friend,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며칠 전 의사로부터 대장암으로부터 cure, 치유되었다는 최종 결과를 받았습니다. 은혜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credit을 드립니다. 목사님 방문을 감사합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 감사합니다.

장암 환자들을 다루는 부서에서 일하시는 간호사이셨기에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그 불안과 염려는 누구보다 크셨습니다.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되시는 이 과정 속에서 시편 23편의 말씀은 바로 위로와 확신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붙들어 주시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시편23편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난 6월 15일부터 시작된 시편23편 연속설교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 동안 저는 여호와께서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실 때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드리면서 이 연속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푸른 초장에 눕히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는 진정한 쉼과 안식의 삶,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회복의 은총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7월 20일 주일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는 보호와 위로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7월 27일 주일에는 우리 주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는 승리와 능력 있는 인생, 내 잔이 넘쳐흐르는 충만한 삶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I.

오늘 시편 23편의 마지막 절, 6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살아갈 때 누리는 부족함이 없는 삶의 내용을 2절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노래한 다윗은 6절에 와서 이를 다시 요약하면서 다짐합니다. 나의 평생에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나의 평생에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를 것이라는 이 믿음의 고백은 단순한 서술이 아니었습니다. 이론이나 추상적인 생각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걸어온 인생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 그 분께서 이끌어 주신 삶에서 피어난 확신 위에서 외치는 고백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인생 속에서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갖게된 확신이었습니다. 이 확신 위에서 그는 내일에 대한 염려와 불안을 떨쳐 버리고 외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를 것이라고.

그런데 여기에서 열쇠가 되는 단어가 선하심과 인자하심입니다. 여러분, 선하심이란 말의 뜻은 인간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나 착함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뜻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선하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의 선하심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고통도 없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선처럼 생각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어떤 때 우리에게 고통과 역경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그 아픔도 목자되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합동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작자 미상의 "나는 구했지만"이라는 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의 선함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성공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구했지만
    겸손하게 순종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약함을 주셨습니다.
    나는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 있는 건강을 구했지만
    더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나는 행복할 수 있는 부를 구했지만
    지혜로울 수 있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수 있는 권력을 구했지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부족함을 주셨습니다.
    나는 인생을 즐기기 위하여 모든 것을 구했지만
    나는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생명을 주셨습니다.
    나는 내가 구한 것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지만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드린 모든 기도들이 다 응답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나는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렇게 우리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선함보다 100배, 1,000배 낫습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함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인자하심"이란 말의 뜻을 살펴보십시다. 본문의 인자하심이란 히브리어의 hesed란 말인데 Steadfast love, 변함없는 사랑을 뜻합니다. 신약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를 의미합니다. 감정에 따라 좌우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기복이 심하고 변덕스러운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조건이 갖추어 졌기에 주어지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비록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받아주시는 넓고도 크신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이 사랑은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아니 흔들릴 수도, 변질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 안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II.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면, 이 선하심, 이 인자하심이 평생 우리를 따른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1) 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이 평생 나를 따를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여러분, 평생입니다. 내 인생이 다 할 때까지입니다. 내 생명이 존재하는 한 이 놀라운 사랑이 함께 해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이 잘 되고 평안할 때만 하나님의 함께 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생에 어려움과 실패, 고난과 아픔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떠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그렇게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평생 함께 하십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숨쉬는 동안 한 순간도 떠나지 않습니다. 괴로울 때도 슬플 때도, 떠나지 않습니다. 목자되시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오히려 괴로울 때 연약할 때 더 가까이 계십니다. 이제는 더 내려갈 곳도, 나아갈 곳도 없다고 할 때, 그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신 때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가까이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때입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평생토록 우리의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아니,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죽음 너머까지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세상 모든 것 끊어져도, 모든 관계에 종말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 순간에도, 그 호흡이 멎은 이후에도 목자되시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이지만 담대하고 용기있게 개척해갈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2) 그런 이 놀라운 사랑이 정녕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따른다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기서 나를 따른다는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pursue, 추구한다, 구한다는 뜻입니다.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 나를 pursue, 구하고 찾으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고, 평생을 찾으시고 따라 다니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시지 않고 그 사랑이 나를 따른다는 것은 부담일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입니다. 목자되시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 인생에서 최선입니다. 인간의 지혜로움은 하나님의 어리석음보다 훨씬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은 우리 인생에서 최선입니다.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 생애에서 최고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나를 따를 것이라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우리를 따르는 정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나를, 나를 따릅니다. 오늘 이 시간도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포기하시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나란 존재는 광대한 우주에서 보면 한 순간의 먼지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찾으십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포기하시지 않고 나를 따라 오십니다.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Chicago의 Ernest Title이란 사람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날 Title씨는 몽유병자처럼 밤거리를 헤맨 적이 있습니다. 해가 떠오를 때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어느 강가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돌아서려고 했더니 바로 자기 뒤에 연노하신 아버지가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위로할 길 없었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밤새도록 아들의 뒤를 따라 다닌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과 염려를 가슴으로 느낀 Title씨는 훗날 보혜사 성령은 바로 아버지와 같다고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자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이렇게 나를 따르십니다. 오늘도 나를 포기하시지 않고 나와 함께 해 주십니다. 비록 모자라도, 비록 변변치 못해도 우리 목자되시는 주님께서는 나를 찾으십니다. 나를 구하십니다.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III.

그러기에 이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다윗은 외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이라고. 여기서 여호와의 집이란 몇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막,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집에 함께 모이는 공동체, 신약에 와서는 교회라는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좀더 넓은 의미에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나를 포기하시지 않고 붙들어 주시는 그 사랑을 깨달았기에, 이제는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심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인생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목자 앞에서의 삶이야말로 가장 좋은, 가장 행복한, 최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삶은 영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셨습니까?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목자의 인도하심 속에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셨습니까?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의 삶이야말로 뜻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 인생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지난 5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기사의 주인공되는 김미애 씨의 고향은 경북 포항시 구룡포의 작은 어촌마을입니다.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가정에 큰 변화가 온 것은 12세가 되던 해 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배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망해 빚만 잔뜩 지고 잠적했습니다. 어머니가 해녀로 살면서 5남매를 먹여 살렸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가 병원에 갔습니다. 몇 달 후에 돌아온 어머니는 자궁암 말기로 의사는 길어야 세 달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그녀에게 함께 교회에 다니자고 했습니다. 오로지 어머니 병을 낫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녀는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구역예배를 다녔고 인근 7-8개 교회 부흥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4년을 더 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김미애씨는 포항여고에 입학했으나 입학금만 겨우 낼 수 있었습니다. 오직 한 분, 고향 교회의 류광하 목사님만이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돈을 털어 주셨지만, 그 돈으로 일주일을 겨우 버텼습니다. 그해 5월 김미애 씨에겐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불우이웃돕기 시즌이었는데, 반 친구들이 그녀에게 나가 있도록 권하고는 돈을 모아 건네줬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학교를 그만두고 김미애 씨는 그 길로 교회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방직공장에 취직해서 3교대로 일하며 야간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나이 스물둘이 되자 위기의식이 생겼습니다. 아무 것도 해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는구나! 싶어서 관광 통역가이드가 되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통역가이드는 제 길이 아닌 것 같아 일본인 관광객 대상 쇼핑센터에서 일했습니다. 월급이 50만 원이었는데, 3년 동안 이 악물고 1,000만 원을 모았습니다.

그 돈을 밑천 삼아 부산에서 15평짜리 초밥집을 냈습니다. 그녀의 나이 24살이었습니다. 시장도 직접보고 초밥도 만들었습니다. 혼자서 다 하다보니 일주일만에 살이 10파운드 이상이나 빠졌습니다. 직접 찾아다니면서 홍보를 했더니 사람들은 "나이 어린 아가씨가 기특하다"며 자주 찾았고 단골도 생겼습니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벌 정도로 수입이 괜찮았습니다. 어느 날 장을 본 후 가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차도로 내려가는 순간 양 벽이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경험 후에 9년 동안 다니지 않았던 교회에 다시 나갔습니다. "지금 하는 것 다 청산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김미애씨는 정말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찾게 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선교사를 할까, 법관을 할까 고민하다 법대를 택했습니다. 그 동안 장사하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27살에 대입 수능 공부를 시작해 동아대 법대에 입학했습니다. 학교 고시반 입실시험에서 1등을 해 숙식 면제와 보조금 혜택을 받았습니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수업시간이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의 말씀을 듣고 공부한 것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혼자서 웃고 다닌 적이 많았습니다. 태양이 나만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2001년 1차 시험에 합격해 동아대에서 매달 보조금 42만 5,000원을 받았습니다. 김미애씨는 2002년 2차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시험 합격 후 고향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시골 교회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도로변에 '장길교회 출신 김미애 사법시험합격'이라는 현수막도 결려있었습니다. 동아대에도 보답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형법 무료특강을 해줬습니다. 그녀는 지난 2월21일 서른 다섯에 학사모를 썼습니다. 3월부터 연수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김미애씨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습니다. "저는 깨끗한 부자가 되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한비야씨처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프리카에 가서 난민들에게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요." "결혼은 안 할 거냐"는 질문에 "하겠죠 뭐"라며 웃었습니다.

김미애씨는 인터뷰를 한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한 인간을 완전히 낮춰서 독자의 흥밋거리에 기여하는 수준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냥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소개 정도, 그리고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그 이유, 하나님과 엄마... 지금 어려움에 빠져서 우울하고 힘든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다만 저를 크게 포장하거나, 아주 추락시켰다가 영웅 만들지는 말아주세요. 아직 내면의 세계를 채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이렇게 밖으로 내놓으면 안되는데..."

우리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그 분은 오늘도 우리 인생의 목자이십니다. 그 분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시면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시편 23편을 다시 한번 천천히 묵상하면서 함께 읽으심으로 금번 연속 설교를 끝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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