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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3. 문형일 전도사
변화, 주님의 기쁨
요한복음 4:3-14
여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변화의 계절입니다.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수가성의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이 여인이 어떻게 한 마을을 변화시키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제자로 변하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여름 얼마나 주 안에서 변화되고 자라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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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긴 여름방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때 여름 방학이 되면 담임 선생님이 나누어주시는 수 우 미 양 가 빼곡이 적힌 성적표를 손에 들고 문방구에 들러 일년에 단 한번 소년 중앙 여름 특집호를 사서 부록으로 주는 선물을 자랑하며 일부러 동네 친구들이 많이 있는 골목을 돌아 집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6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에 제가 가장 부러워했던 직업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동네 어귀에서 빈 병이나 고무신을 들고 나가면 저를 반갑게 맞아주던 번데기 장수. 뜨거운 햇볕을 시원한 밀짚모자로 가린 번데기 장수 아저씨가 돌리는 그 뺑뺑이는 어린 저에게 뜨겁고 맛있던 번데기와 함께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 이 사람은 더운 여름철에만 만날 수 있었는데 뜨거운 오후, 네모나게 만든 양철 가방을 들고 시원한 목소리로 아이스깨끼를 부르며 저를 유혹했습니다. 께끼 장수- 혹시 그 께끼가 지금 와 생각하니 아이스 케이크인지 크림인지 그 발음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졸라 오원에 하나 십원에 세 개인가를 했던 그 신비의 께끼통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스티로폴로 사방을 막은 그 께끼 통 속에는 드라이 아이스를 넣은 고무 주머니와 함께 통속 가득히 분말 주스를 타서 얼린, 혹은 팥물이든 얼음 과자 께끼가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녹을 것 같지 않던 그 께끼를 먹고 동네 친구들과 앞산을 흐르는 개울에 나가 물장구를 치다가 신발과 옷이 젖으면 널찍한 바위 위에 올라 옷을 널고 물에 젖은 고무신을 손에 들고 해야해야 나오너라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장구 치고 나오너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여름 방학에 외할머니 댁인 화문석의 고장 강화도로 내려가 낮에는 냇가에서 수영을 하고 배가 고프면 가지고 간 그물을 가지고 붕어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고 돌아오는 길에 매미를 잡거나 땡볕에 길 한 복판에서 말라 가는 쇠똥을 들추고 구멍을 찾아내고 주전자의 물을 구멍에 집어넣어 쇠똥구리, 혹은 말똥구리라고 하는 장수벌레를 잡았습니다. 저녁에는 맵게 타는 모깃불을 맡으며 누런 보리밥에 박힌 흰 감자밥을 먹었습니다. 깜깜한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그 별들을 보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방학이 끝나기 1주일 전, 한달 동안 밀려있던 그림일기와 숙제를 하루만에 다 해치우고 나면, 친구들이 선물로 잡아준 여치를 대나무로 만든 여치 집에 넣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간 것이 슬펐습니다. 사랑하던 친구들 산, 들, 냇가가 헤어지기 싫어 어머니께 몇 번 전학을 시켜 달라고 졸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어린 날의 여름은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비슷한 경험들이 다 있으실 것입니다. 그 아름다웠던 여름의 추억이 우리를 자라게 했습니다. 그 여름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여름이 지나면 우리는 그 전과는 다른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변화의 계절입니다. 변화를 위해 하나님은 이 여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매년 여름 우리 교회에서는 가족 수양회를 갖고 있습니다. 만남. 회복. 자유의 주제로 지금 이 시간 블렉스톤 수양관에서 또 이 아침 이곳 멕클린에서 우리는 이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름의 특징은 한마디로 뜨거운 햇볕 즉 강한 빛입니다 이 빛이 여름을 여름이게 하고 이 강한 빛 때문에 모든 만물이 변화됩니다. 빛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라는 성장과 변화가 이 빛으로 시작됩니다. 창세기의 시작은 빛이 어둠을 밝히면서 시작됩니다. 빛은 변화입니다.
오늘 읽어주신 요한 복음 4장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을 만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2장과 3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요한이 4장에 이 여인을 등장시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장은 가나의 혼인잔치로 시작됩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처음 기적으로 주님은 12명의 제자들을 얻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모든 장사꾼들을 내 쫓은 성전 정화를 하십니다. 흥분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헤롯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겠다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요한은 유대인들이 이 표적을 보고 믿었다 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2장의 결론입니다.
3장은 유명한 바리세인 관원 니고데모와의 대화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볼까 염려하여 한 밤중에 예수님께 나온 니고데모는 영생을 얻기 위해 거듭나야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이 두 번 태어날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답답하신 주님이 3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3장의 결론 역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입니다. 이 유대인들이 누굽니까?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장도 있었고 서기관도 있었습니다. 잘사는 사람도 있었고 관원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율법이나 전통, 재물이나 지식이 그들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변화의 빛을 눈으로 보긴 보았으되 마음으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믿지 못하는 유대인에게 실망하신 예수님. 요한 복음 2장과 3장의 결론입니다.
4장은 오히려 그래서 이름도 없는 사마리아 수가성에 사는 한 여인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여인이 이름도 없이 등장할까? 이 여인과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 나와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보겠습니다.
3절과 4절에,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6절에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무슨 말입니까?"
* 주의 은혜는 항상 우리 보다 한 걸음 앞에 있습니다
주님은 고향 갈릴리로 가기 전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이 여인보다 보다 먼저 우물에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주의 은혜는 항상 우리보다 한 걸음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이 늦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은 결코 늦으시는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보다 이 예배 시간에 먼저 오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를 대동하고 이곳에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왜 입니까? 우리를 만나시려고 미리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습니다. 미리 나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고싶어서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은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시려고 주님은 자신의 목마름도 배고픔도 생각하시지 않고 먼저 오셔서 우리를 그리고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 주님은 우리의 부정함을 정결케 하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9절에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 믿기 전 우리는 다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한국의 남과 북처럼 생각의 차이로 오래 동안 서로 미워하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유대인 남자는 사마리아 여자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 죄인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놀란 것처럼 우리 부정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유대인 남자가 자기의 정결함을 버리고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의 틀을 깨뜨려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정결한 하늘에서 내려와 부정한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성육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이 당황한 것은 자기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 바로 자기의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이 아침 여기에 나와 있는 것도 사실은 이 여인의 놀람과 비교할 만 합니다. 이 더운데 시간들이고 헌금 내면서 여러분 왜 여기 오셨습니까? 시원한 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집에서 쉬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오셔서 나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이 그리스도 복음의 놀라움, 그 파격성 때문에 그 신비함 때문에 우리는 여기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주님은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인은 지금 자기 앞에 서서 물을 좀 달라고 하는 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때로 큰 기적을 보면 믿겠다고 아니면 도마처럼 주님의 못 자욱과 창 자욱에 손을 넣어 확인한 후에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다 주님을 모르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네가 몰라서 그래,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내가 줄 수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정말로 알면 그러지 않을텐데 ... 우리의 믿지 못함까지 주님은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믿지 못함 때문에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선물을 거두어 가시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그것이 나와 주님의 다른 점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실망할까봐 염려하고 계십니다.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 주님은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 하신다는것입니다.
주님은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을 긷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여인으로부터 저와 여러분으로부터 물을 얻기 원하십니다. 이물은 이 여인이 저와 여러분만이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물이 무엇입니까? 14절에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주를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마음을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주께 우리의 빈 마음, 상한 마음을 드리면 주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성령의 생수로 씻어주시고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죄인인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단 한가지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십자가에서 남기신 마지막 일곱 말씀 가운데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두 자기를 배반한 것 때문에 목마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좌절감이 주님의 사랑 대신 주를 믿는 기쁨대신 두려움이 주인이 된 것에 더 목말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주님을 떠난 것이 주님을 목마르게 했습니다. 지금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물을 좀 다오" 이 한마디 말이 여인을 변화 시켰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로 주님과의 만남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된 적이 없는 이 여인에게 주님은 도움을 청합니다. 내게 물을 좀 줄 수 있습니까? 이 물음은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내가 살아야 할 존재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하신 질문입니다.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준 적이 언제인가? 아니 누가 나에게 무엇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가?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인가? 자기 존재에 대한 변화 없이 아니 존재의 변화 자체를 부정해버린 죽어있던 자기 자신에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소리는 그렇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존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그런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나의 존재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내 이름을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calling,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하고 매일 현상유지, 'status quo' 에 만족하며 살던 이 여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두 번째는 간절히 구할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15절에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7장 7절 8절에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이사야서 58장 9절에는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또 예레미야 33장 3절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주님이 나를 알아주실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16절에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물을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주님은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십니다. 여기서부터 이 여인의 과거가 치유됩니다. 이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대답합니다. 어떤 이유인지 나오지는 않지만 이 여인은 과거의 상처가 있는 사람입니다. 5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니 6명의 남자들을 가졌던 셈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혼 증서를 받고 합법적으로 이혼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한 집안의 많은 남자 형제들이 차례로 죽는 바람에 계속 대를 잊기 위해 결혼을 해야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여인은 이것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과거를 나의 상처를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슴 깊이 묻어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과거를 묻어두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도록 여인을 도와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이 맞는 대답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너는 남편이 없다. 너는 한번도 제대로 결혼한 적이 없기 때문에 네가 지금 말한 대로 너는 남편이 없는 것이 맞다. 주님은 한번도 이 다섯 번의 결혼이, 그리고 지금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는 것이 죄라고, 부도덕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한번도 회개하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네 말이 옳다" 즉 현재의 나를 나로서 인정해 주고 계십니다. 나를 알아주신 것입니다. 내가 다 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내가 다 알아. 그것으로 이 여인은 치유되었습니다. 숨기고 싶은 나의 과거를 알고 나를 그 과거로부터 건져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그 다섯 번의 결혼 생활, 그때도 주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오늘, 남들이 다 점심을 먹고 쉬는 이 한 낮에 물을 길을 수밖에 없는 나를 알고 계신 주님. 다른 사람들은 나의 마음 몰라줘도 주님은 나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25절에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오시면 이 내 마음을 알아주실 겁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 주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의심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로 과연 주님이 살아 계시고 나를 생각하셨는지 의심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마음에 풀리지 않는 눈물나는 한이 맺혀있습니까?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네 말이 다 옳다." 나의 편, 우리편이 되 주십니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편이 되 주십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만나주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사람을 주님이 쓰십니다.
여인은 바라던 주님, 나의 구원자,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나의 상처를 아시는 주님, 나를 알아주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인은 달리기 시작합니다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며 숨이 차게 수가성으로 달려가며 외쳤습니다.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변화된 여인의 이 외침에 수가 성이 변화되었습니다. 30절에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한 사람의 변화가 온 성을 전염시켰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기뻐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름 없는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한 낮의 더위를, 목마름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오랜 여행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드렸고 배부르게 해 드렸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로 온 성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주님이 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40절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므로, 예수께서는 이틀 동안 거기에 머무르셨다."
성경에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틀동안 웃고 기뻐하신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영적 추수를 위해 주의 종들로 사용하십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의 기쁨이 되는 변화 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주는 이 엄청난 힘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여인처럼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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