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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27. 내 잔이 넘치나이다(5) - 조영진 목사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1-6
목자되시는 주님께서는 원수 앞에 상을 베푸시고 우리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십니다.
위협과 대적에게서 지켜주시며 우리를 세워 주시고, 주님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는 차고도 넘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 은혜를 체험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잔이 넘치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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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말씀 가운데 가장 많이 암송되고 사랑을 받는 말씀을 택하라면 많은 사람들이 시편 23편을 꼽습니다. 이만큼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말씀이다가 보니 이 말씀과 연관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여러해 전에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다가 지금은 한국에 계신 김순규 교우가 - 지금은 김순규 권사가 되셨는데 - 계십니다. 그분께서도 시편 23편을 종종 암송하셨는데, 이 말씀을 외우게 된 이면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순규 권사께서 삼성에서 일하시다가 중동에 파견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게 되셨을 때입니다. 한국기업이 중동에 진출하는 초기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와 또 걱정도 많았다고 합니다. 떠나기 전 출석하던 상동감리교회에서 심방을 오셨는데, 그때 오셨던 장로님께서 시편 23편을 소개해 주셨다고 합니다. 김순규 권사님은 이 말씀을 붙들고 사우디에서 삶을 개척해 가셨다고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을 외우시면서 위로와 힘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특별히 삼성을 그만 두고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정말 외롭고 걱정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트럭을 몰고 끝없는 사막 길을 달릴 때면, 불안과 염려가 찾아들었는데, 그때마다 시편 23편의 말씀을 외우면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권사님의 삶을 붙들어 주는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I.
시편 23편 연속 설교의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저는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실 때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드리면서 연속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둘째 주일에는 목자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쉼과 안식, 셋째 주일에는 주님 안에서 임하는 회복의 은총, 지난 주일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함께 해주시는 주님의 보호와 위로에 대해서 각각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5절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말씀 속에서 다윗은 그가 체험한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의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머리에 바르셨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외치고 있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또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몇 가지로 말합니다.
(1) 먼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다는 말씀을 목자의 경험에 비추어 살펴 보십시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목자들은 여름철이면 양들을 높은 지대로 몰고 가서 풀을 뜯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풀밭에는 양이 먹어서는 안되는 풀들이 있었습니다. 이 때 목자는 원수들인 이 독초들을 다 뽑아서 양들이 마음 놓고 풀을 뜯도록 준비했습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준비된 풀밭을 미국의 서부지역이나 남부 유럽에서는 "Mesas"라고 하는데 이 말은 스페인어로 tables, 상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풀밭은 양들을 위해 상을 베풀어 놓았다는 의미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 다른 성서학자는 베두인 유목민들의 관습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찾습니다. 이 베두인 유목민들은 여행하는 사람들이 들리면 천막 안으로 받아들이고 이 손님 앞에 상을 베풀어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손님에게 상을 베풀면 그 손님은 그를 해하려는 모든 대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관습에 근거해 볼 때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들의 위협과 압제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다는 의미를 살펴보십시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목자가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일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찾습니다. 여름철에 양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파리같은 벌레들입니다. 특별히 양의 코에 파리가 기생하기 시작하면 양들은 간지러워서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의 코나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파리나 해충이 몰려드는 것을 예방했습니다. 양을 키울 때 기름은 이렇게 해충을 예방할 뿐 아니라, 양들간에 싸움을 줄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성서학자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연결시켜서 이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 속에서 세 가지 직분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왕, 예언자, 그리고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는 말은 특별한 직분을 위하여 거룩히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게 되면 단순히 거룩한 직분을 맡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새롭고 깊은 관계 속에 들어가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신의 감동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이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그들 위에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는 성경의 말씀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같은 배경에 비추어 볼 때 5절의 말씀,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대적과 위협으로부터 지키실 뿐 아니라, 기름을 부어 보호하시고 세워 주셨음을 말합니다. 특별히 다윗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바로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원수들로부터 양을 지키고 보호하듯이, 다윗의 생애를 지켜주셨습니다.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의 인생을 또한 세우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II.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십시다.
(1) 먼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원수들의 압제와 위협 속에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드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겹쳐지는 말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모든 대적과 원수로부터 지키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보호해 주시고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원수들 앞에서 잔치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인생 여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수많은 원수와 대적의 위협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지만, 사울왕의 시기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쫓기는 신세로 이곳, 저곳에서 머물고 식사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원수 앞에 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승리의 날을 주셨습니다.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그날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도 위협과 질시를 당할 수 있습니다. 아픔과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대적의 유혹과 도전에 맞서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위협과 유혹에서 무너지는 인생들이 아닙니다. 목자되시는 주님의 인도를 받는 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대적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침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목자되시는 주님께서는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그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사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미천한 목동 출신이었던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가장 뛰어난 왕이 되었습니다.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고 이스라엘 왕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여러분, 열왕기 상하를 읽으실 때 느껴지시는 것이 없으십니까? 다윗은 모든 왕의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왕은 다윗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기록한 반면, 못된 왕은 다윗같지 않게 하나님을 떠나 불충성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냥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명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을 기대를 갖고 지으셨고, 여러분께서 사명을 찾아 뜻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머리에도 기름을 바르셔서 구별된 백성, 거룩한 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전에는 "무능"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이 사명을 깨닫고 성령의 부으심을 힘입어 능력있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두 팔을 펴시고 이 은혜를, 이 역사를, 우리 가운데서 행하고 계십니다.
전광 목사님께서 쓰신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분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링컨의 생애에는 많은 어려움과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했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후에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일곱 번이나 낙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자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서 다시 일어서서 미국을 분열의 위협 속에서 건지고 수많은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안겨주었습니다. 링컨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따르는 삶 속에서 여유와 유머 감각도 뛰어났었습니다. 그가 상원의원 선거에서 유명한 정적이었던 더글라스 후보와 맞섰을 때입니다. 합동 유세를 하는 날 더글라스 후보는 링컨의 과거 경력을 문제삼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링컨 후보는 그가 전에 경영하던 상점에서 팔아서는 안되는 술을 팔았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법을 어긴 일이고, 이렇게 법을 어긴 사람이 상원의원에 당선된다면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링컨은 상원의원이 되어서는 절대 안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이번에는 링컨이 더글라스 후보의 공격에 꼼짝없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걱정스럽게 링컨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전혀 당황하거나 흥분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더글라스 후보가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그 상점을 경영하던 당시 더글라스 후보는 저의 가게에서 가장 술을 많이 사먹은 최고의 고객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확실한 사실은 저는 이미 술 파는 계산대를 떠난 지가 오래되었지만, 더글라스 후보는 여전히 그 상점의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청중들은 링컨의 재치있는 답변에 큰소리로 열광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더글라스 후보는 신속하게 화제를 돌려 다시 링컨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링컨은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 인격자입니다." 링컨은 이번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음성으로 응수했습니다. "더글라스 후보가 저를 두고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몰아 세우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러분께서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 왜 제가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여러분, 링컨의 유머, 그의 너그러움, 그의 정직함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왔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사명도 주시고, 능력도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원수 앞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고 우리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는 이 은혜의 역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새롭게, 결정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선한 목자되시는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죄인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과 조반을 나누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시면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찬을 행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강단에 놓여있는 성찬상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시는 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진리로, 사랑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진리는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은 무력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습니다. 진리와 사랑의 길은 세상에서 그냥 당하고 무너지는 별 볼일 없는 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죄와 어두움의 승리는 잠깐이었습니다. 사흘 후 무덤 문은 열렸습니다. 진리는 무너질 수 없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랑은 마침내 승리함이 외쳐졌습니다. 진리나 사랑의 길은 십자가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열린 무덤문, 부활의 아침이 그 마지막이었습니다. 바로 이 승리를 우리의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도 상을 베푸시고 이 사랑을, 이 승리를 보여주십니다. 이 상 앞에 나아올 때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생명의 삶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이 승리의 길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명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III.
다윗은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이 사랑을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대 중동에서는 잔칫날 넘치는 잔으로 손님을 향한 환영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잔이 빈 채로 채워지지 않으면 이제는 그만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싸인이었습니다. 주인이 정말로 함께 즐기고 싶은 손님들에게는 흘러 넘치도록 잔을 채워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환영하십니다.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모자람이 없습니다. 결코 인색함이 없습니다. 그 은혜는 말할 수 없이 풍성하고 넉넉합니다. 다윗이 고백했던 그 흘러 넘치는 은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체험하셨습니까? 이 은혜를 맛보셨습니까? 과연 나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남의 잔이 아닌 내 잔이 흘러 넘침을 맛보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1999년 7월4일 주일날 아침이었습니다. Chicago 인근에서 대학을 마치고 Bloomington, IN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던 26세의 윤원준이란 청년이 Bloomington한인연합감리교회에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 문턱에 이르렀던 때였습니다. 차를 몰고 지나가던 백인우월주의자인 Benjamin Smith가 자동차 창문을 열고 무차별로 총을 난사했습니다. 4대 독자이었던 꿈 많던 청년 원준 군은 그만 이 총격에 쓰러져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총을 난사한 Benjamin Smith는 경찰에 쫓기게 되자 자신을 향해 총을 쏘아 자살했습니다.
일주일 후 인디아나 대학 강당에서 추모예배가 드려졌습니다. 자넷 리노 법무부 장관, 인디아나 주지사, 대학 총장 등 수많은 조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윤원준 군의 외사촌 형인 박승호 목사는 가족을 대표해서 인사했습니다. 그는 먼저 Benjamin Smith의 유가족들 위에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대표해서 원준 군을 죽인 Benjamin Smith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용서한다는 요지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 뒤에 70세가 넘으신 원준 군의 아버님이 나오셔서 마이크 앞에 서셨습니다. 아버님은 또박또박 영어로 시편 23편을 외우셨습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히시며 잔잔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주님께서는 4대 독자를 잃은 그 아픔 속에서도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슬픔, 그 안타까움 속에서도 잔이 넘치는 은혜를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넘치는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도 붙들어 주고 계십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우리는 이 고백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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