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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20. 내 잔이 넘치나이다(4) - 조영진 목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시편 23:1-6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도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그리고 위로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렵고 힘든 인생의 골짜기를 걸어가고 계십니까?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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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말씀 가운데서 시편 23편 만큼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구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시편 23편을 검색해 보니 얼마나 많은 찬양과 글들이 실려있는지 조금 보다가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얼마전에 유행된 시편23편의 사투리 버전이 인터넷에 실려있는 것이었습니다.
전문들을 다 소개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첫절을 보면 전라도 버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는 거시기 머냐, 내 목자분께, 내가 시방 모지런거 한개도 없어부러야!" 경상도 버전은 "여호아가 내 목잔데 내가 머가 부족할끼 있겠노? 마, 내사 더 이상 바라는 거 엄따!" 충청도 버전은 "여호와는 염생이 같은 지를 키우시고 멕이시는 분이시니 지가 부족한 것이 없네유" 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시편 23편을 여러 가지로 각색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A Psalm of Summer(여름철의 시편)이란 것이 있습니다.
신나는 휴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집에 머무르지 않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슬리핑백 속에 눕게 하시고, 주말마다 고속도로로 인도하시는도다. 나의 피부를 검게 소생시키시고, 나의 즐거움을 위하여 State Park 공원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거룩한 주님의 날, 내 비록 방황하며 신나게 놀지라도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즐거운 휴가가 나와 함께 있음이라. 긴 낚시대와 낚시줄이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의 피부를 위하여 기름을 바르고, 자동차의 가스통은 텅비어 가는도다. 여름내내 트레일러가 내 차 뒤를 따르리니 가을철이 되어서야 주님의 전으로 돌아가리로다! 그러나 가을철은 사냥의 계절이 되리니 머지않아 또 다른 노래로 변명의 찬양을 주님께 드리게 되리라! - 작자 미상 -
I.
시편 23편 연속설교의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4절의 말씀을 함께 살펴 보시겠습니다.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노래를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다윗은 바로 목자 출신입니다. 그는 양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경험에 의지해서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목자들은 여름철이 되면 보다 높은 지대에 있는 풀을 찾아 이동했습니다. 양떼를 데리고 가다보면 아무래도 골짜기를 통해서 보다 높은 지대에 이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골짜기의 길은 대부분 좁고 험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풀을 찾아 산 길을 오르는 여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습니다. 또 언제 공격해 올 지 모르는 늑대와 들짐승의 위협에 맞서 싸워야 하는 위험스러운 길이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다윗은 누구보다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의미를 잘 알았습니다.
이 아침 본문 말씀 속에서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목자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가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해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 모든 일이 평탄하고 잘될 것이라고. 여러분, 그렇습니까? 하나님 믿으면 정말 만사형통합니까? 어느 목사님은 만사형통이란 모든 일이 형을 통해야 이루어진다는 의미라고 농담하시기도 하였습니다만, 어쨋든 예수님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됩니까? 병에도 걸리지 않고, 사업은 성공의 길을 고속으로 달리고, 가정은 화기애애하고, 자녀들은 신통하기만 하고... 그렇습니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안믿을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어도 실패와 낭패의 골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 충성해도 어려움과 고통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또 해 받을 수 있습니다. 질병, 암이 찾아와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살아도 해 받을 수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 그들의 삶은 평탄하기만 했습니까? 아무런 어려움도, 음침한 골짜기도, 해 받음도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따랐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 많이 고생하고, 더 많이 당했습니다. 모세의 인생,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 그 능력의 예언자의 생애에도 수많은 좌절과 낙심의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해 받기도 하고, 쫓기기도 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지만, 그의 생애에는 수많은 고통과 역경, 해 받음과 외로움의 날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그분은 태어날 때도 말구유에서 나셨고 또 곧바로 에집트로 쫓겨가셨어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따르고 순종하셨지만, 십자가에서 처참한 고통을 겪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고통이 비켜가거나 면제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살아도 오늘 우리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해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실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외로움과 억울함에 울 수 있습니다. 건강이 흔들리고 죽음이 가까이 찾아와 우리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부진하고, 우리의 자녀들이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어려움이, 힘든 일이 밀려 쌓이면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II.
여러분, 그렇다면 주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benefit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고통 당할 수 있고, 어려움과 역경을 만날 수 있다면, 하나님 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해 받을 수 있다면, 과연 목자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은 대답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1)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외로움과 염려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자께서, 우리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걸음 속에서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의 면제를 약속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약속해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아니 오늘 우리들에게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실 때 마태복음 28:20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여러분, 이 우주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하나님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도피할 곳이 있습니까? No! 없습니다.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도망갈 곳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안 계시다고 해서 안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외쳤지만, 죽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니체였습니다.
외로운 인생 길이지만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으면 외로움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불안한 인생 길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으면 노래를 부르며 달려갈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은 미미하고 쉽게 찢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이가 반석 위에 놓이면 결코 찢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석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해주심을 깨달으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무서워 떨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 되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보호와 인도하심, 그리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해 주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목자에게서 지팡이와 막대기는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지팡이로 비탈에 굴러 떨어진 양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 곁길로 나가는 양들을 바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막대기는 자신과 양을 지키는 일종의 무기였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권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늑대가 달려든 다든지, 양이 위험한 지경에 놓이면 이 막대기로 대적을 물리쳤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또 해 받을 때 위로하고 건져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통과 질병, 실패와 좌절로 주저앉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내 지식 때문이 아닙니다. 내 소유 때문이 아닙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 때문입니다. 우리의 패배를 그대로 두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분 때문에, 목자 되시는 그분 때문에 우리는 안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삼켜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 앞에 무릎꿇는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난과 아픔을 무릎꿇게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헤치고, 고난의 유익함을 오히려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외쳤습니다: "We are more than conquerors!,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주님께서도 외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여러분, 이긴다는 것은 해 받음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해 받음을 받아도 그 해 받은 그 고난, 그 실패에 포로가 되지 않고, 고난의 고통을 이길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니면 고통은 그대로 있지만, 암은 낫지 않았지만, 실패는 성공으로 바뀌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 수 있음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하박국의 노래는 이러한 승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하박국 3:17-19a)
(3)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뿐 아니라 사망, 죽음마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나 혼자서 가는 길입니다. 어느 누구도 내 대신 갈 수 없고, 또 함께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절대 고독을 느낍니다. 그리고 죽음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또 경험해 볼 수도 없었던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을 피해보려고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죽음과의 만남을 연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가 찾아오면 우리는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죽음을, 죽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찬송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끊어져도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은 요단강을 건너가는 죽음의 여정에도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그 죽음 속에서도 함께 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맞이해 주십니다. 그 목자께서는 우리의 있을 곳을 예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안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 대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강자입니다. 무서운 사람은 죽음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싸울 때 너죽고 나죽자고 덤비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목숨을 걸고, 죽음을 걸고 덤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이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과는 이별하게 되어도, 이별하지 않는 목자 되시는 그분의 보호, 그분의 인도하심 때문에 우리는 죽음너머 내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III.
9.11 테러사건 당시 NJ의 Newark 공항을 떠나 San Francisco로 향하던 United Airline 93번기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비행기를 납치한 범인들은 Clebrand 상공을 지날 때 기수를 돌려 워싱톤으로 향해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Pentagone이 불길에 쌓인 상황 속에서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이 공격받을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 탑승객들은 힘을 모아서 납치범들과 싸웠습니다. 결국 비행기는 PA의 Shanksville에 추락했고 승무원과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Chicago에 있는 GTE Airfone Center의 Lisa Jefferson과 Todd Beamer와의 전화 통화는 비행기의 마지막 순간을 전해 주어 우리의 가슴속에 깊은 감동과 함께 안타까움을 안겨주었습니다. Wheaton College를 졸업한 신실한 크리스챤이었던 Todd Beamer는 마지막 순간,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납치범을 공격하기로 하고 비행기의 운행이 엉망이 되어져 승객들의 비명과 부르짖음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교환원이었던 Lisa Jefferson과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Todd Beamer는 먼저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얼마 전까지 그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12주에 걸친 주기도문 연속설교를 하셨기에 이 기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후에 Todd Beamer는 시편 23편을 외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른 사람도 이 암송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전화기로 안도의 숨과 함께 심호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Todd Beamer는 말했습니다."Are you ready? Okay, Lets' roll!"(준비되었습니까? Okay 시작하십시다!) 그때가 오전 10시였습니다. 전화기를 끊지 않았기에 전화기 속에서는 접시가 깨어지고 비명과 외치는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10시3분 전화기에서는 더 이상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Shanksville에 추락한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Todd Beamer는 시편 23편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동료 승객들과 함께 일어나 납치범들과 싸움으로 비행기의 Washington D.C.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여호와는 참으로 그의 인생의 목자이셨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그를 붙드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고 당시 복중에 아기를 갖고있던 Todd의 아내 Lisa 역시 목자 되신 주님 안에서 이 절망과 좌절의 골짜기를 헤쳐갈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쓴 Let's Roll!이란 책을 읽으면서 저는 주님을 목자로 삼는 인생의 소망과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추락해 가는 UA 93번기에 탄 승객들, 그들만 죽음의 골짜기를 향해 달려갔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도 추락해 가는, 죽음을 향해 가는 이 여정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모든 인생들이 이 여정을 오늘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사망의 음침한 그늘, 이 골짜기에서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도 함께 하시는 우리의 목자, 우리 주님께 길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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