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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13. 내 잔이 넘치나이다(3) - 조영진 목사
"회복의 은총"
시편 23:1-6
목자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우리의 인생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무의미와 방황, 연약함과 외로움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며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나는 회복의 길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총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 앞에 귀를, 가슴을 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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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제목 밑에서 드리는 시편 23편의 연속 설교의 세 번째 주일입니다. 그 동안 저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인생의 목자가 되실 때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이 시작됨을 말씀드렸고, 지난 주일에는 2절의 말씀, 주님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심에 대해서 전했습니다. 목자께서 인도해 주실 때 참으로 쉼이 있습니다. 목마르지 않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3절을 중심으로 목자되시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룩하시는 회복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걸어 온 목자의 인생과 경험에 근거해서 노래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I.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이 말씀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단순히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Moffatt 박사 같은 분은 이 부분을 "내 안에 있는 생명을 다시 살리시고(He revives life in me)"라고 옮겨 놓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성서학자는 "You restore my self" 내 자신을 회복시키신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목자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살리십니다. 우리의 존재가 참으로 인간답도록, 우리의 인생이 참으로 살맛 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 같은 다윗의 고백은 바로 그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있습니다. 양을 키워본 목자의 경험에 의하면 양은 자신이 길을 찾는 능력이 개나 고양이에 비해서 훨씬 뒤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들은 잘못해서 넘어져 두발이 공중에 들리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특별히 양털이 길게 자랐을 때든지, 또 살찐 양의 경우는 더욱 스스로 일어날 수 없어 날씨가 더운 경우는 하루만에 죽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목자의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는 양들 가운데 넘어져서 발이 허공에 들린 양들이 없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런 양이 있으면 곧바로 달려가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양을 진정시키고, 발을 땅에 딛고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목자가 양의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 속에서 넘어져 있는 양들을 목자는 찾아가서 일으켜 세움으로 생명의 회복을 가져다줍니다.
또 다윗이 이 노래 속에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범죄 했을 때의 경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에서 천하를 호령할 때입니다. 그는 순간의 유혹에 빠져서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자 이 범죄의 은폐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충성스러운 우리야의 삶의 자세 때문에 은폐가 실패로 돌아가자, 다윗 왕은 우리야를 최전방에 내보내 죽게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죄를 지은 다윗은 예언자 나단에게서 엄중한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의 수렁에 빠졌던 다윗, 그는 눈물을 쏟는 회개를 통하여 그 생명의 회복을 체험합니다. 바로 이 경험이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룩하시는 회복의 은총을 노래하게 된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II.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 올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에서 생명의 회복을 이룩해 주십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의미와 삶의 풍성함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생이 참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대신에 다른 대체물로 삶의 공허나 무의미를 채워보려고 하지만, 이것은 헛수고입니다. 다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Tolstoy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좋다 나는 지금 정부의 국채를 6000주나 가졌고, 300필의 말을 갖고 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자녀들은 좋은 학교에 보내서 공부시키는데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모두가 백성들의 번영을 말하고 있는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내가 만일 Gogel이나 Pushkin, Shakespere같은 작가들 아니 그들보다 더 유명해진다고 한들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무엇을 하던 나의 행동은 어느 땐가는 사라져 버릴 것이요, 나의 생의 조각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분주하게 살려고 뛰어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왜 나는 살아야 하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바쁠 필요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매일 움직일 필요는 어디 있는가? 인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불가피한 죽음으로부터 모면할 그 무엇이 있는가? 삶의 깊은 회의 속에서 Tolstoy는 자살을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결행 할 수 없는 유약한 자신임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허무 속에서 방황하던 톨스토이는 이성으로 진단한 이런 삶의 현실에서 신앙의 세계로 걸음을 옮겨놓습니다. 그는 신앙이란 "인생의 의미에 관한 지식으로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고 살게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이 신앙 안에서 인생의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결론을 발견하고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할 때, 나는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으려는 희미한 소망이 없었던들 나는 벌써 오래 전에 내 자신을 없애버렸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탐구할 때에만 우리는 참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허무와 무의미 속에서 생명의 회복을 이룩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생명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외로움과 고독, 깨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건지셔서 생명의 회복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현대인의 고독은 외딴섬에서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와 같이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입니다. 오늘의 인간관계가 그만큼 깊이를 잃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있는 많은 관계들이 시기와 질투, 미움으로 얼룩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인들의 가슴 아픈 문제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기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국인들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가장 가깝게, 서로가 가슴을 열고 도우며 붙들어 주면서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마저도 오늘날 많은 흔들림과 깨어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서로를 탓하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쁩니다. 관계의 깨어짐과 단절은 고독과 외로움을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상실은 교회마저도 외롭고 쓸쓸한 사막으로 변화시켜가고 있습니다.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깨어진 관계, 이 흔들리는 공동의 삶 속에 회복의 역사를 이룩하십니다. 가정을 세우시며, 서로를 세워주는 살맛 나는 인생, 살맛 나는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 Habitat Humanity 운동을 이끌고 있는 Millard Fuller란 사람이 바로 이 소생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1935년 Montgomery, Alabama의 한 독실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오로지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Auburn대학 법과대학원에 재학할 때부터 친구와 사업을 시작한 그는 29살 때 벌써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초호화 주택과 별장, 두 대의 스피드 보트, 링컨컨티넨탈 자동차, 세 개의 목장을 소유하고 살았습니다. 막대한 재산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자녀, Millard Fuller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사업은 번창했지만, 그러나 결혼생활에는 문제가 발생, 아내와 자녀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65년 11월이었습니다. 돈만 추구하는 의미 없는 삶은 더 이상 살수가 없다면서 아내가 별거를 요청해 왔습니다. 아내의 요청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두사람은 뉴욕에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내 린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우리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말을 받아들인 Millard Fuller는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의미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Montgomery로 돌아와 자기들이 살던 옛집만 남겨놓고 전 재산을 처분하여 자선단체에 기증했습니다. 그해 12월 Florida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Georgia주의 Americus 근방에 있는 Koinonia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Clarence Jordan 목사의 지도 아래 시작된 흑인 백인이 함께 소유를 나누며 살던 공동체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Fuller부부는 그들의 사역에 동참키로 결심했습니다. 1969년 세상을 떠나기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줄 것을 역설한 Jordan 목사의 외침은 바로 Millard Fuller 부부에게 이어져서 바로 오늘의 Habitat Humanity 운동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Fuller 부부의 깨어져 가는 관계를 소생시켜 주셨습니다. 또 회복의 은혜를 체험한 그들을 통해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운동을 펼쳐가고 계십니다.
(3)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하고 병든 육신에도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여러분, 험한 인생 길을 헤쳐 가는 우리들에게 질병이나 아픔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작든지 크든지, 아프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자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병든 우리의 육신 속에서도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룩하시는 회복의 역사는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현대의학과 의사의 손길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채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고쳐주시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생명을 회복시키시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너무 좁은 생각입니다. 여러분, 현대의학을 발전시킨 인간의 머리는 누가 주셨습니까? 인간을 치료하는 약물의 성분은 누가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현대의학의 발전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회복의 비법을 발견하고, 발전시켜간 것에 불과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직접 역사 하셔서 우리의 생명을 소생시키실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건강한 삶의 습관을 갖게 하심으로 고쳐 주실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병은 그대로 있지만,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과 위로를 주셔서 고통 속에서도 꾿꾿이 회복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생명을 살리시는 회복의 운동을 펼쳐 가십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생명도 소생케 하시며 새롭게 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4)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길을 걷다가 지치고 미끄러진 인생에도 다시 소생시키시는 역사를 이룩하십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이 고속도로와 같이 확 트여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앙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길이 아무런 어려움도, 장애도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흠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2000년전의 죄악된 세상의 모습은 오늘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살기가 힘듭니다. 정직히 살려면 비난과 어려움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너만 깨끗하냐? 하면서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따르다가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지치기도 합니다. 그만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목자되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이 같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영혼, 우리의 인생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이 생명의 길, 이 영원한 승리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고 세워주십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겨루어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도, 지쳐서 쫒기는 엘리야를 먹이시며 소생시켜 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안에도 회복의 손길을 펴주십니다. 우리 인생을 어루만져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 믿음을 세우셔서 또 다시 이 길,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III.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른 번역에 의하면 right way, 옳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때문에, 그 끝없으신 자비 때문에 우리를 옳은 길, 생명이 회복되는 은혜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생의 역사 앞에 우리의 인생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명의 회복을 이룩할 수는 없습니다. 양이 넘어졌을 때 자기 스스로 못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일을 서두르고 계획하기 전에 먼저 조용히 목자의 음성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주님께 도장 찍어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계획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목자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내 계획 내려놓고, 목자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목자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지난번 워싱톤을 다녀가신 오제은 교수님 편에 지선아 사랑해 라는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되는 이지선양의 이야기는 지난 목요일 중앙일보 종교면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꿈 많은 소녀로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던 2000년 7월30일, 그날은 지선양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날이었습니다. 밤 10시쯤 도서관에서 나와 기다리던 오빠와 함께 집에 돌아오던 지선 양은 신호등 앞에 기다리고 있을 때, 술에 만취한 운전자의 자동차가 오누이가 탄 차에 돌진해 들어오면서 6중 추돌 사건에 휩싸였습니다. 오빠는 열린 창문으로 빠져 나왔지만, 지선 양은 두 자동차 사이에 낀채, 연료통이 터지면서 일어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오빠가 옷을 벗어 급히 불을 껐지만, 지선 양은 옴 몸의 55%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름답던 얼굴은 흉측스럽게 일그러졌고, 온 몸은 화상으로 얼룩져버렸습니다. 7개월간의 입원, 11차례의 수술을 견디면서 지선 양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보는 사람은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선 양은 하나님 앞에 많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나 어떡하실 거예요? 이제 어떡하실 거냐고요? 하나님 살아 계시지 않나요? 전지 전능하시잖아요. 나좀 도와주세요! 나 좀 도와주세요."
성가대에는 서지도 못하고 남이 볼까봐 모자에 가면까지 쓰고 흐르는 침 때문에 수건을 문채 웅크리고 앉아 예배드리던 지선 양은 설교를 마친 목사님께서 단상에서 내려와 두팔로 감싸안고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지선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세상 가운데 세우리라. 아프고 병든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리라."
자신의 처절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고 고통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소개했을 때 전국의 관심과 사랑이 몰려들었습니다. KBS에서는 인간극장에서 5부작으로 지선 양의 이야기를 방영하였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소생한 이야기를 담은 지선아 사랑해 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과 일깨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화상으로 상처투성이인 지선 양의 삶 속에서도 회복의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책의 첫머리에 2001년 1월11일 사고 후 처음 쓴 글이 실려져 있습니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지만...
가고 싶은 교회도 성가대도 학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지만...
그렇게 모든 걸 잃은 것 같지만...
약함 가운데, 상처투성이 몸 가운데, 짧아진 손가락에도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며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손들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내가 기도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삶을 누리게 하시며,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며칠 전부터 산책을 시작했어요.
병원 로비에서 뛰기도 하고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밀기도 하고
거의 한달 만에 밖에 나갔어요.
병원나무에 걸린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도 보았고요.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봤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 있어서 흰눈도 보게 하시고
추운 겨울을 다시 맞게 하시니!
지선이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 인생의 목자이십니다. 주님 안에 우리의 잔이 넘치는 풍성한 삶이 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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