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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29. 최지훈 전도사
"은혜로 받는 구원"
에베소서 2:8-9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은 우리의 행위나 쌓은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자비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이 사랑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응답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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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씨맨즈 (David Seamands) 라고 하는 분은 목사로서, 또 신학교수로서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도움을 준 분입니다. 이분의 책 가운데 하나인 "성과의 덫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the Performance Trap)" 에서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의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치유에 있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요소는 바로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발견하였다. 상담과 내적 치유의 주된 일은 사람들이 은혜, 즉 받을 자격이 없고 가치가 없는 이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을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용서를 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Early in my ministry I discovered that the experience of grace is the most therapeutic factor in emotional and spiritual healing...the main task in counseling and inner healing is to remove the barriers to forgiveness so that people can receive grace-the gift of God's love freely offered to the undeserving and the unworthy)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란 무엇입니까? 신약성경에 보면 은혜라는 말은 기쁨이라는 말과 관계가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말과도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는 "기쁘게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슨 댓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얼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주고 받는 기쁨을 위해서 무언가를 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은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사실은 무슨 조건을 가지고 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언젠가는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내 자신이 사랑하기에 주고 베풀고 심지어는 야단도 치는 줄로 압니다. 그리고 줄 때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엊그제 여름 성경학교에 온 아이 하나가 집에 가기 전 저에게 와서 꼭 풍선 하나를 줄 수 없겠느냐고 와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주었습니다. 말을 잘 들어서 준 것이 아니고 상으로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줄 수 있기에 기쁘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죄악된 생활을 벗어나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우리의 자랑할 만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쁘게 주신 은혜의 결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우리 스스로 깨닫고 죄악을 벗어나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세상에 주시고 예수께서 우리 인간의 온갖 슬픔과 죄악을 지시고 십자가에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에서 주님이 받으신 아픔과 슬픔과 죽으심을 볼 때 죄로 죽었던 우리의 양심과 속 사람이 살아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 아들을 주셨다는 것이 첫째로 도저히 값으로 계산할 수 없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은혜이고 죄책과 불안으로 죽었던 우리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힘입어 함께 더불어 살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자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가장 근본적인 하는 일은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희생도 있고 선한 일도 있고 상 얻기를 소원하여 달음박질하는 일도 있습니다. 나 자신의 결단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의 중심에는 먼저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 안에 있기에 담대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고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 어머님께서는 "아이는 다섯 살이 되기 전에 그 고집을 철저히 꺾어야 한다"고 했던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의 말을 따르셨던 보수적인 분이셨고 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비교적 모범생으로 자랐습니다. 특히 학생 때에는 Youth Group의 리더가 되어서 수백 명이 되는 학생들과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한번은 "속이 빈 사람이 겉을 꾸민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교회 갈 때에는 허영의 죄를 지을까 두려워서 학생시절 항상 검은 가방에 똑 같은 멋없는 옷만 골라서 입고 교회를 다닌 적도 있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썼던 그 때의 저의 사진들을 보면 얼굴에 별로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철이 없고 지혜가 부족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양심을 속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찾아 만나려고 열심히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삶 속에 있는 죄가 하나씩 숨길 수 없이 드러나면서 고민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는 칭찬을 듣고 신학생까지 되었지만 나와 가장 가까이 있어 사랑해야 할 가족들을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이 말씀에 비추면 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이 때 가장 나에게 도전이 되었던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하던 자유와 기쁨을 가졌던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들의 가정생활이었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더 기도하고 성경을 잘 알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듯이 보였지만 내 삶을 진실하게 들여다보면 참 사랑이 없었기에 오히려 거짓과 미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교회는 옛날에 예배당 안에 소위 '회개자석 (mourners' bench)'라는 곳이 있어서 특별히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고 회개할 필요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만 앉는 의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당시에는 제가 어디에 앉았던지 바로 그 자리가 바로 회개자석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율법과 형식과 제사가 아닌 자비와 믿음과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에 나도 참여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다윗의 기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말씀이 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것이냐 아니냐에 대한 질문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네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믿겠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장래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율법의 계명들을 열심히 지켰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예수님을 찾아온 한 젊은 관원에게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결국은 네가 아니라 하나님을 네 삶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십자가에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고 그 순간 용서하심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를 용서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제 속에 찾아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생각에 사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저의 삶을 돌아볼 때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지만 무어라고 보여드릴 것도,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아직도 너무나 배우고 자라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넘어진 적도 많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참 소망을 둘 곳이 없습니다. 그 한순간 하나님께 드린 그 믿음의 고백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믿음의 고백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용서함이 있고 사랑의 회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소명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지으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들을 그 은혜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은혜 안에 있을 때 사랑 안에서 일하게 하시고 선한 일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떡을 떼며 봉사의 일을 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비밀스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우리들의 눈앞에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혹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보기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혹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혹 견딜 수 없는 어려움과 낙심에 부딪히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이 느끼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혹 율법적이고 바리새인들과 같은 겉모습만의 신앙으로 고민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삶에 회의를 느끼고 참 의미와 목적을 향한 결단을 위해 고민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가난함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의 의를 세우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참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인도사람의 아들이 진주조개를 캐러 갔다가 진주조개를 입에 물고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큰 진주알이었는데 이 사람은 아들의 생명처럼 여기고 가지도 다니다가 먼 여행길을 떠나기 전에 자기를 항상 도와준 선교사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보니까 너무나 큰 진주라 그냥 받지 않고 값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노발대발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들의 생명이고 선물로는 줄 수 있지만 절대로 돈을 받고 팔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선교사는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 하나뿐인 아들의 생명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 사람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를 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나게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값으로 칠 수 없고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은혜에 힘입어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로 모시는 믿음의 결단을 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 가운데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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