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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8. 성령강림절 - 조영진 목사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21
교회는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거하고 계십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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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이 모습 저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열흘째 되는 날 제자들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바로 이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구약성경에 따르면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7주만에 맞이하는 명절로서 첫 곡식을 거두고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또 후대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의미가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유월절 후 7주만에 갖는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불렸던 이 명절은 성령님의 강림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강림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확신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비록 하늘에 오르셨지만, 이 시간도 성령을 통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강림을 통하여 Living Presence of Christ,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현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성령의 강림은 교회를 낳았고, 선교를 낳았습니다.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능력 있게 외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옴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선교, 복음의 증거가 활발히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생일이며 또 선교의 출발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이 뜻깊은 날에 저희 교회는 금년에 선교 축제를 열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펼치는 모든 선교사역들을 교우 여러분께 알려드리며, 또 함께 사역에 헌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택일을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I.
이 뜻깊은 성령강림절에, 선교 축제의 날에, 우리는 에베소서 5:18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옥 중에서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써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을 말하면 우선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정적이고 열광적인 신앙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꼭 그렇게 믿어야 하는가? 좀 점잖게, 고상하게 믿을 수는 없는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령의 충만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거리를 두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령의 충만은 과연 나하고 상관이 없습니까?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접어놓아도 됩니까?
물론 성령의 충만을 지나치게 열광적이고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에만 치중해서 이해해 온 것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좀 더 균형 있고 깊이 있는 성령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나하고는 관계없는 사항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열심 있는 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극복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역사처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처럼 우리의 믿음과 교회에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1)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믿을 수도 없고, 성숙한 믿음을 향해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생각해 보십시다. 2000여년 전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그분이 나를 위하여, 내 죄를 지시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으실 수 있습니까? 맨 정신에 믿어지십니까? 여러분, 이해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요즈음에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2000여년 전, 옛날에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먼 유대땅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도대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 과거의 사건이 내 인생하고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이 믿어지는 것은 어찌 된 영문입니까? 그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눈물을 쏟게 됨은 무슨 까닭입니까? 어떻게 2000년전 갈보리 언덕의 그 십자가를 나를 위한 십자가로 믿을 수 있습니까? 성령님의 감동과 도우심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깨우쳐 주심과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오늘 우리는 2000년전 유대 땅에서 사셨던 예수님을 추모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 때문에, 우리 구원의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따르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 때문에,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주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가 외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성령님의 역사를 나하고는 관계없는 것으로 제쳐놓을 수 있습니까?
(2) 둘째로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살라고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말씀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인간의 의지와 능력은 분명히 한계를 갖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한 것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오늘도 우리 주님은 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지 않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한 인생이 아닙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얘야 저 정원에 있는 돌을 좀 들어서 옮기거라." 아들은 돌을 옮겨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여러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옮길 수 없음을 깨닫자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옮길 수 없어요.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꿈쩍도 안해요." 그때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너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아들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아빠 보셨지 않아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너는 나보고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한 너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란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최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외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성령님의 역사를 나하고는 관계없는 것으로 제쳐놓을 수 있습니까?
(3) 셋째로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나서기 전, 주님께서 부탁하신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49에 보면,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1:4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또 1:8에서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전파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불가능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초대 교회의 능력있는 복음 증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선교의 전제 조건이면서 능력의 원천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외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성령님의 역사를 나하고는 관계없는 것으로 제쳐 놓을 수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믿음의 빈약한 모습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중적이고 무력한 삶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전도 한번 못하는 열매 없는 우리의 믿음생활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변화될 수 있습니다.
II.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는 물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능력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회답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삶의 길을 돌이켜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어찌할꼬 부르짖는 이들에게 베드로는 사도행전 2:38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회개는 성령을 받는 열쇠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한 것을 뉘우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회개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살던 내가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던 내가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을 믿는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회개, 이 방향 전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을 믿음을 곧 영접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교훈을 영접하는 것도 넘어섭니다. 예수님에 관한 정보, 지식을 영접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살아 계신 예수님, 그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누가 우리 안에 오십니까? 성령님께서 오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거하십니다. 이 성령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다스려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방향을 돌이키는 회개는 성령을 받는 첫걸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합니다.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선 우리의 삶 속에 오십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역사 하시기 시작하십니다.
(2) 둘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케 하심을 사모하여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만함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많은 경우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들이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고. 성령의 충만은 일생 계속해야 할 기도의 제목입니다. 평생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3) 셋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를 물리쳐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했습니다. 방언이 터진다든지, 병고침의 역사가 나타난다든지, 예언이 선포되는 것과 같은 현상들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그런 은사의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의 진정한 의미는 성령께서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심을 의미합니다. Oswald Smith 목사님은 성령 충만 이란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더 많이 소유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성령께 방 한칸을 드리기는 하지만, 모든 방의 열쇠를 드려서 어디든지 마음대로 들어가시게 하지는 않는다. 성령께선 모든 것을 소유하셔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손님이 아니시라, 그 집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령께서 참으로 우리 인생의 주인 노릇하심을 뜻합니다. 그런데 주님께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드리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지 않습니까?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는 그 장애를 물리쳐야 합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어떤 습관일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 담겨있는 미움일 수 있습니다. 소유나 재물에 대한 사랑과 집착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믿는 자신감이나 교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이 충만한 삶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다면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성령님의 충만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우리의 믿음생활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III.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아니 21세기 워싱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 권고하십니다. 아니 명령하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이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Oswald Smith목사님은 이 명령이야말로 성경에서 우리가 순종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도 중요하고,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도 지킬 수 있고,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이야말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이야말로 우리 인생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최고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끌어 가는 삶보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인생이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수천배, 수만배 낫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나의 능력보다 수천배, 수만배 낫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인생보다 훨씬 똑똑하십니다. 훨씬 유능하십니다. 그러니 성령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시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 인생이 최선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령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낫다고 믿으시면, 그렇게 믿고 살아가시려면, 여기 앉아 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 어디다 쓰겠습니까? 나만도 못한 하나님 믿어서 무엇하시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하여 지어낸 우상일 뿐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오셔서, 여기 함께 하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한사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제 설교를 줄이겠습니다.
플로리다의 감리교 목사인 Billy Lewter는 [다락방](감리교 기도서)에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대공황 때(1930년대) 먹을 것이 없이 어머니와 삼남매는 구세군 급식소에서 연명했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에다가 도박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여섯 살이었던 자기와 밑으로 두 남매를 바라보며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군."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도박하다 진 빚을 갚기 위하여 도둑이 되었고 경찰서에도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자살하려고 하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하여 눈물을 흘리며 함께 교회에 나갈 것을 애원하였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오직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못된 아버지,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쓰레기 인간이 예수를 믿고 자기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고백하면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를 2년 밖에 다니지 않은 무학이었으나 성경 말씀 5백 구절을 암송하고 매일 저녁 유치장, 교도소, 병원을 방문하여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미국 대교회의 목회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류터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기적이다. 성령을 받을 때 이런 능력이 주어졌다고 하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삽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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