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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6.1. 김상근 목사
"이 큰 광경을 보리라"
출애굽기 3:1-12
모세는 기적의 사람이었습니다. 열가지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애굽에서 구출하고, 홍해를 가르고, 구름 덮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기적의 인물이었지만, 그의 출발은 참으로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객지 생활을 하며, 장인의 양무리를 돌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버려진 땅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보잘 것 없고 초라한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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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올해 다섯살이 되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요즈음 한참 말을 배우고 있는데, 실없는 소리를 잘하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이 아이가 가끔 실없는 소리를 잘합니다. 언젠가 "Selfish" 라는 새로운 단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Don't be selfish!"라는 표현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희준이가 제게 묻는 겁니다. "아빠, Why is that there is fish in selfish?" 왜 Selfish안에 Fish가 있어요? 이렇게 묻는 겁니다. 여러분, 도대체 이런 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한참 있다가 "희준아, 묻지말고 그냥 외워, Selfish, Don't be selfish, OK?"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 주 전, 희준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다섯살짜리 아이를 위한 평범한 동화책이었습니다. 그 동화책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your life" "너의 인생에 놀랍고 신나는 일이 곧 일어날 거야" 이런 뜻이겠지요. 여러분, 참 멋진 말 아닙니까? 다섯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큰 격려와 교훈이되는 표현아닙니까? 이제 세상이라는 낯선 곳을 향해 첫 걸음을 옮기고 있는 다섯살짜리 어린아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욕심많은 아빠가 다섯살짜리 아들에게 무리한 요구했습니다. "희준아, 이거 외워야돼. 이거 진짜 멋진 말이야. 따라하세요.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아빠가 외우라니까, 중얼중얼 따라합니다.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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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표현이 마음에 드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고백을 하실 수 있습니까?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 내 인생에 놀랍고 신나는 일이 곧 일어날것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신나는 일이 내 삶속에서 전개될 것이다" 이런 신나는 고백을 여러분은 하실 수 있으십니까? 목사님, 젊은 목사님이야 그런 말씀, 신나게 하실 수 있지만, 저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습니다. 나도 목사님 나이때는 펄펄 날아 다녔어요. 목사님, 세대차 느낍니다…… 에이, 목사님. 이제 겨우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하는데 신나는 일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저 하루 하루 살기도 힘듭니다. 신나는 일요? 그런거 없습니다. 가끔식 한국 비디오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낙입니다. 매일 매일 다람쥐 쳇바퀴도는 이민 생활, 그저 지겹기만 합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에게나 물어보세요. 저는 매일 아이들 쫓아 다니면서 뒷바라지 하랴, 삼시세끼 밥타령하는 남편때문에 아주 귀찮아 죽겠어요. 신나는 일요? 다 그만 두고,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인생이 이렇게 별볼일없이 풀릴지 정말 몰랐어요. 제 자녀들이나 잘 됐으면 좋겠어요……혹시 저와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별볼일 없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흔히 모세하면,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대단한 지도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애굽에서 열가지 기적을 일으키고, 홍해를 가르고, 바위를 치면 물이 솟아나고, 구름덮힌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직접 받았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원래 모습의 모세는 평범하다 못해 나약하고, 오히려 초라하고 왜소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객지에서, 낯선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야했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이는 사고를 치고 미디안광야로 도망쳐서, 숨어서 살던 도망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이제 거의 80 노인이 된 모세가, 그래도 새로운 정착지에서 무려 40년가량을 살았는데, 자기 양무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장인의 양무리를 치고 있습니다. 처가신세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무려 40여년동안 처가신세를 지면서, 장인의 양무리를 쳐야했던 모세의 신세도 참 처량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애굽에서는 왕자로 살던 모세였습니다. 애굽에서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동, 그것도 자기 양무리가 아니라, 장인의 양무리를 돌보아주는 초라한 목동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모세가 장인의 양무리를 이끌고 호렙산에 가까이 왔습니다. 히브리어로 "호렙"은 "버려진 땅" 혹은 "황무지"(Wasteland)란 뜻입니다. 버려진 땅, 황무지, 너무 외져서 아무도 찾지 않는 그 험악한 산 중턱에서 모세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보잘것없고 초라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습니까? 기력이 없어서 이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버려진 땅, 황무지에서 어떤일이 일어났습니까? 가진 것이라고는 손에 든 꼬부라진 지팡이 하나 밖에 없는 초라한 목동, 장인의 양무리나 돌보고 있던 한심한 모세가,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땅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호렙산에서 모세가 발견한 것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던 떨기나무였습니다. 이상한 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타고 있는데 그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떨기나무에서 불타는 연기가 솟아나고 있는데, 나무는 타지 않고 그대로 있는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혼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리라" 그리고는 말 그대로 연기가 솟아오르는 떨기나무를 향해 한 걸음 한걸음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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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결심,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겠다"는 이 결심은 대단한 것입니다. 당시 모세의 삶이 얼마나 초라했습니까? 장인의 양무리를 치는 목동으로서의 모세의 삶이 얼마나 단조로웠겠습니까? 초라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무기력증, 의기소침, 게으름, 디프레션, 자포자기, 열등감, 이런 것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게 초라하고 단조로운 목동으로 살던 모세가, 40년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목동의 삶을 살던 모세가,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황무지에서, 불타오르는 떨기나무를 보고,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리라"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비록 지금은 내가 초라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비록 내가 가진 것은 손에 든 지팡이 하나밖에 없지만, 불타오르는 떨기나무를 보고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리라"고 결심했던 모세에게,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라고 고백했던 그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까? 2003년의 지금, 여러분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던지, 앞으로 5년후, 앞으로 10년후, 앞으로 40년후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습니까? 모세가 가졌던 그런 희망과 기대를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리라"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 이런 가슴벅찬 고백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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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호렙산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땅, 그 황무지에서, 초라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있던 목동 한명을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내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세가 서 있던 땅은 거룩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버려진 땅, 황무지, 아무도 찾지 않는 후미진 산 중턱이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세는 거룩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사고를 치고 야반도주한 사람이었습니다. 80년의 인생을 살았지만 내세울 것 하나없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양 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장인의 양 무리를 돌보던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구부러진 지팡이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런 한심한 사람을, 그런 외딴 곳에서,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선포하셨습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여러분의 지금 서신 곳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이 서계신 곳을 한번 둘러 보십시오. 거룩한 곳입니까? 아니면, 초라하고 단조로운 곳입니까? 이민생활이란 것이 참 단조로운 것이 아닙니까? 한국에서 살 때처럼, 수다를 떨수 있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은 것도 아니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갈 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과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무미건조한 생활 아닙니까? 초라하고 단순한 삶, 계속해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부르시면서,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곳을 거룩하다 선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서 있다해도, 여러분이 지금 너무나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해도, 비록 우리가 무기력증, 의기소침, 디프레션, 자포자기, 열등감에 빠져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을 거룩한 땅이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시기 때문에, 바로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곳이 거룩한 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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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시카고의 윌로우크릭 교회에 갔을 때 일입니다. 조목사님과 저, 그리고 속회 사역자들과 함께 윌로우크릭 교회의 Small Group Conference에 참석을 했습니다. 토요일 모든 일정을 무사히 은혜롭게 마치고, 교회빌딩에서 나와서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서 중년의 미국 아주머니가 제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교회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기념으로 찍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크니까 별 희안한 잡상인이 다 있구나,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으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을 눈치챘는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일렬로 서서 교회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가 주소를 달라고해서, 제 집 주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몇 주가 지난 다음, 시카고에서 편지가 한통 배달되어 왔습니다. 윌로우 크릭 교회 주차장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가 정말로 그때찍은 단체 사진을 보내준 것입니다. 그리고 동봉한 편지에 이런 내용의 글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윌로우 크릭 교회에 다니는 평범한 교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체험하고, 무엇인가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저는 가진 것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제가 가진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오래됐지만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구식 사진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를 방문해 주신 분들에게 기념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사진이지만, 멋진 기념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를 찾아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섬기시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그 아주머니의 편지를 읽고 저는 왜 윌로우 크릭교회가 그렇게 부흥을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 교회의 철학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목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진 것없고 배운 것 없는 그 중년의 아주머니가, 별로 좋지도 않는 구식 카메라 하나로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것을 보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아주머니의 구식 카메라보다 더 좋은 Nikon 카메라를, 더 좋은 Sony 캠코더를, 더 성능이 좋은 디지털 캠코더를 가지고 있는데, 왜 저와 여러분은 남을 위해 살기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먼저 생각합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 아주머니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있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는데, 그 아주머니보다 더 의미있는 순간 순간을 살고 있습니까? 그 아주머니는 자기가 가진 구식 사진기하나를 가지고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데, 우리도 그런 부르심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더 배우고,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얼마나 더 많이 바빠져야,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모세를 불렀습니다. 애굽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모세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군사작전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막강한 애굽군대와 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와 수많은 군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엄청난 일을 위해 부르신 사람은, 보잘것 없고 초라한 목동, 모세였습니다. 지팡이 하나 손에 쥐고 있던 모세를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부족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의 약함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의 부족함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의 부족함을 들어서 이 세상 모든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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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와싱톤 한인교회에 큰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중국 연화마을에 교회당 건물을 신축하기 위하여 기도로 준비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귀한 물질을 바쳐서 이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특별히 박영환 장로님께서 지난 해에 직접 중국으로 가셔서 그 곳의 신체장애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생활관을 일차로 건축하셨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장애자를 위해서 교회당을 건축하겠다는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계십니다. 원래 은퇴하시기 전에 건축설계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이 귀한 사역을 직접 이끌고 계십니다.
작년에 박장로님께서 중국으로 들어가실때가 생각이 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때 장로님 건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중국으로 떠나시기 전에 신경계통의 문제인지, 장로님 몸에 마비가 왔습니다. 안면이 한쪽으로 조금 돌아가서 뵙기가 조금 민망했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장로님 건강을 크게 근심하셨고, 저도 장로님께서 중국에 들어가시는 것을 조금 연기하는 것이 어떻시냐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래도 장로님은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중국으로 들어가셔서, 일을 마무리지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장로님께서 중국에 계시는 동안 장로님의 사역을 위해서 새벽시간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장로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제게 한가지 교훈을 주셨습니다. 장로님을 위해서 한참 기도하던 중에, 제가 6-7년전에 아틀란타에서 만났던 한 의사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에모리 대학교 대학병원의 어린이 암병동에서 일하시는 암전문의였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은 에모리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 암 치료에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항상 머리를 항상 빡빡 깍고 다니는 걸로 또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왜 그 의사 선생님이 머리를 항상 빡빡 밀고 다녔는지 아십니까? 그 의사선생님은, 치료를 받는 어린이 암환자들이 방사선 치료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니까, 자기도 그 어린 환자들을 위해서 자기 머리카락을 깍았던 것입니다.
독한 방사선 치료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져버린 어린이들의 기분을 살려주기 위해서, 의사인 나도 머리카락이 없으니까, 슬퍼하지말고 용기를 가지라는 뜻으로 자기도 머리를 깍고 항상 밝게 웃는 얼굴로 어린이 암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제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은 이렇습니다. 우리 장로님께서 중국의 장애인들을 섬기기 위해 가셨는데, 입이 한쪽으로 삐뚤어지고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을 섬기러 가셨는데, 하나님께서 얼굴에 마비가 온 장로님을 들어 사용하시는구나. 장애인을 섬기는데, 신체가 건강한 젊은 건축가를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은퇴한 건축가를, 얼굴에 마비가 온 분을 들어서 사용하시는구나. 그 장애인들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하라고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부르셨구나, 그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약한자를 들어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들의 부족함을 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들의 부족함을 들어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이, 지금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우리들이지만, 초라한 것 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나이가 드셨다고, 은퇴하셨다고 그 부르심을 외면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세의 나이, 80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배운 것이 없다고해서 그 부르심을 외면하실 수 없습니다. 윌로우크릭 교회의 주차장에서 사진기 하나로 이웃을 섬기던 그 아주머니보다 여러분은 더 많이 가지셨고, 더 많이 배웠습니다. 건강때문에 그 부르심을 외면하실수 없습니다. 장애자를 더 많이 이해하고, 장애자를 더 많이 사랑하라고, 몸이 불편하신 장로님을 부르셨던 하나님이 지금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 그 큰 광경을 보리라, 부족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 큰 광경을 보리라.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가진 것 없는 우리들이지만, 초라한 것 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정녕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바라봅시다. 그 큰 광경을 함께 보십시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십시다. Something exciting is about to happen in my life!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나눔을 위한 질문들
- 지난 이주일간의 삶을 나눕시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발견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불타오르는 떨기나무"(Burning Bush)는 무엇입니까?
- "부르심의 경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나눔의 시간을 가지십시다. 소명의 체험이 있으십니까? 우리 영혼을 때리는 "주님의 소명"과 우리가 잠재적으로 원하고 있던 것을 발견하는 "육신적인 바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모세의 소명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 부르심의 경험이 있었다면, 어떤 실천의 각오가 있었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하여 여러분은 이번 주 동안 어떤 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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