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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5.11. 어머니 주일 - 조영진 목사

"가까운 곳에서 부터"

요한1서 4:7-12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참 사랑의 본보기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터전 위에서 만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가까운 곳에서 부터
진실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은 어머니날입니다. 자녀를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신 어머님의 사랑을 기리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그 표현으로 어머니를 주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는 그렇게 귀한 어머니의 사랑에도 점차 많은 의문부호(question mark)가 부쳐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잃어버린 왜곡된 사랑의 모습들이 많습니다. 기를 꺾지 않고 키우겠다고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하도록 내버려두다가 보니까 boundary, 경계선을 모르는 자녀를 키워내기도 합니다. 부모의 못 다한 꿈을 풀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몰아치다가 보니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고 방황하는 자녀들을 보기도 합니다. 공부, 공부, 공부만을 강요하다 보니까 균형 있는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머리만 커지는 자녀들을 길러내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넘어서서 가정의 뿌리가 되는 사랑의 문제를 말씀 안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사랑의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건강한 가정, 포근하고 기쁨이 넘쳐나는 가정의 비결은 서로 사랑함에 있습니다. 사랑이 메마른 가정은 사막입니다. 기쁨의 샘이 말라버린 거친 광야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말처럼 흔한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사랑하는 삶처럼 어려운 삶도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사랑하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사랑하는 삶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에서부터 사랑의 삶을 실천해 갈 수 있습니까?

I.

오늘 우리는 요한1서 4:7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요한1서는 사랑의 서신, 혹은 진리의 서신으로 불리웁니다. 5장 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의 글이지만,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표현이 6회, "사랑"이란 명사가 18회, "사랑하다"라는 동사가 29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리스도 인된 우리는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임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기에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우리의 사랑은 가까운 데서부터 실천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먼 데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먼 데 있는 사람은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은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담이 없고 편안하게 느끼는 가족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몇 해전 중북부 지역 목회자들이 "치유"를 주제로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침저녁으로 설교를 맡은 저는 목사님들께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목회자들의 부인되는 사모들도 그 이웃 속에 포함시키자고. 왜냐하면 목회에 쫓기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사랑의 삶에서 가장 소외되는 것이 바로 가장 가까운 배우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지만, 저 역시 이 문제에서는 낙제점 선상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저 자신을 포함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멀리 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 중요합니다.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삶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형제와 자매들을 향해 퍼져 가야합니다. 가까운 곳에서의 사랑은 제쳐놓고, 멀리 가서 사랑하는 일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까이서 깊은 사랑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멀리 가서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입니까?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합니까? 어떻게 하면 이 시대 속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진실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진정한 사랑의 삶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먼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생각대로, 우리 주관대로 사랑을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경험에 기초해서 사랑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 사랑의 원조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사랑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 참사랑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4:9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생각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Communication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전해져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남자들은 사랑의 표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염화시중의 미소한 말이 있듯이 말을 안해도 미소로 다 알지 않는가 말합니다. 물론 그런 면모도 있습니다만, 사랑은 표현되어야 하고 전해져야 합니다. 특별히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 이 점은 중요합니다.

지난 금요일자 한국일보 종교란에 이재철 목사님의 재미있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아리조나 주 피닉스에 갔을 때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교우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식당에 간 남자와 여자, 비싼 음식을 주문하면 두사람은 불륜의 관계이고 싼 음식을 시켜먹으면 부부지간이랍니다. 식사하는 동안 마주보고 내내 이야기하면 불륜이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안하고 밥만 먹으면 부부사이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 남자가 돈을 내면 불륜, 여자가 돈을 내면 부부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 멋진 코스로 드라이브를 하면 불륜, 곧장 집으로 가면 부부입니다. 차안에서 웃어가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 불륜, 그저 무표정하게 차창 밖만 보고 앉았다가 목적지에 도착, 말없이 내리면 그들은 틀림없이 부부랍니다.

무뚝뚝하기 만한 한국인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뚝뚝한 부부는 미국사람들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Valentine Day에 미국 교회에서 발간한 뉴스레터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결혼한 이후 한번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남편에게 드디어 아내가 항의를 했습니다. 당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어떻게 한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따지니까, 무뚝뚝한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결혼식날 내가 사랑한다고 이야기했지 않소. 아직 이 사랑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아무 말도 안한거요. 변화가 생기면 내가 말하리다."

가까이 있는 사람 사이에서 마땅히 나누어져야 하는 사랑의 표현이 불륜의 관계에서나 보여진다면 문제가 아닙니까? 이 목사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사모님과 나누니까 우리는 완전 불륜이라는 결론을 사모님이 내리셨다고 합니다. 또 아들도 엄마 아빠는 불륜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막내아들 녀석이 "그래도 행복한 불륜이잖아" 해서 온가족이 웃고 이 행복한 불륜을 즐기기로 하셨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표현은 꼭 돈이 있어야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랑의 관심, 짐을 나누는 사려 깊은 배려 속에서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오늘 부모들의 문제는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사랑의 표현도 돈의 액수로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착각 중의 착각입니다. 돈이 없어도, 찢어지게 가난해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못 사주어도 가슴 뭉클한 사랑의 표현은 할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오늘 본문 4:10 말씀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를 기다리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먼저 사랑한다는 이 말씀 속에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아직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는 이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자격 유무를 따지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할만한 인생이기에 사랑하신 것 아닙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이 모습을 지닙니다. 내 마음에 다 들지 않지만, 사랑할 만한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사랑합니다. 배우자를,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합니다. 장점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모습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모습, 모자라는 모습도 받아들입니다. 그 부족한 모습까지도 이해해 보려고 사랑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사랑할만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안 믿어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힘든 사람까지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할 때 온전한 사랑의 삶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러기에 이 같은 사랑은 끝없는 참음, 인내를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음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 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돌아가시기까지 참으셨으니 정말 무던히도 참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노래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주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말할 때 무엇으로부터 시작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참음으로 시작됩니다. 무엇으로 끝맺습니까?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참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랑은 참음으로 시작해서 참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저 역시 틴에이저 아들을 키우면서 참음의 훈련을 많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들과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 봅니다. 진정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최선의 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고 자기 주장을 하는 아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저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오늘 자녀들과 씨름하는 부모님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믿고, 조금 더 바라고, 조금 더 견디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 인생이 깨어남을 감사하면서 조금 더 기다려 보십시다. 진정한 사랑의 삶을 위하여 포기하지 마시고 조금 더 견디어 보십시다. 먼저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길입니다.

(3) 셋째로 진정한 사랑이란 그 인생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반복해서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보내주신 그 사랑은 바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었다고(4:9).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속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상대방의 육신을 살리는 것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지능을 살리는 것 중요합니다. 상대방에게 정서적인 만족을 주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생명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는 이 사랑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이던 인생들에게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죽음의 사슬에 매인 인생들에게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존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역사를 이룩하셨고 오늘도 이룩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형제와 자매, 부모와 친구들을 사랑한다면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아무리 공부 잘하도록 뒷받침해서 그 자녀가 IVY리그의 학교를 다닌다해도 그 영혼이 하나님을 모른다면, 과연 참으로 그 자녀를 사랑한 것입니까? 아무리 알뜰하게 살림하고 내조를 해서 남편의 성공을 뒷받침했다해도, 그 남편이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그 사랑은 충분한 사랑입니까? 부부가 아무리 재물을 쌓고 노후를 대비하여 착실하게 준비했다해도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면, 과연 남편을 혹은 아내를 최선을 다해 사랑한 것입니까?

아브라함 링컨을 우리는 잘 압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세상을 떠나면서 링컨에게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사랑하는 에이브야! 이 성경책은 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여러번 읽어 많이 낡았지만 우리 집안의 값진 보물이란다. 나는 너에게 100 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에이브야! 너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약속할 수 있겠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들어오신 새 어머니도 링컨을 믿음 안에서 양육했습니다. 하루는 링컨을 무릎 위에 앉히고 성경에 기록된 아부라함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는가를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커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깊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훗날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또 링컨의 전기작가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될만한 조건은 한가지도 주지 않으셨다. 다만그에게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만을 주셨을 뿐이다."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머리도 살리고, 재능도 살려야 하지만,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III.

성경은 이 아침도 권고합니다. 사랑하며 살라고. 서로 사랑하라고. 이 사랑은 멀리서도 해야겠지만, 우선 가까이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이 사랑을 가까이서부터 나누어 가야 합니다.

5월 낮은 울타리라는 잡지에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군복무 관계로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아들과 며느리를 딱하게 여기신 시어머니가 온갖 집안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시누이는 새언니에게 전화로 한바탕 퍼부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착하다고 무시하는 거냐고. 엄마랑 같이 살면 며느리답게 굴어야 하지 않느냐고. 언니는 양심도 없느냐고. 그 날 저녁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한바탕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걸려온 엄마도 시누이면 언니한테 잘해야 된다고 꾸지람을 했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 엄마가 바로 뛰어 오셨습니다. 엄마는 딸의 두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너희 아빤 고아나 다름없었다. 나한테는 시댁이 없었어. 네 아빠가 일찍 죽은 후,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웠는지 구박해도 좋으니 의지할 시어머니가 있으면 좋겠다 그랬었지. 니 새언니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더 잘해주고 싶은 거야. 결혼해서 신혼을 즐겨야 할 때에 남편과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외롭겠냐. 넌 아직 결혼을 안해서 몰라." 그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독이셨습니다. "게다가 그 날은 네 올케가 많이 안 좋았어. 전날 밤에 내 방에 와서는 제 남편 보고싶다고 우는데 얼마나 찐하던지... 그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냐. 난 내가 시에미가 될 때 약속했었다. 내 며느리한테는 내가 받았던 설움은 안겨주지 않으리라고. 그래서 그 날은 일부러 아무것도 못하게 한거야."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언니에게 했던 심한 말들이 떠올라서 미안했습니다. 사과는 해야겠는데 막상 전화 걸기가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루를 넘기고 다음날에도 선뜻 사과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형만한 아우가 없다더니 오후 늦게쯤 언니가 찾아왔습니다. "어, 언니, 내가 전화하려고 했는데..., 미 ...미안해요. 어젠 내가 오해했어요." "나두 미안해요, 아가씨. 자 이거... 선물이에요." 언니가 내민 것은 장미꽃 다발이었습니다. "뭐하러 이런걸... 이럼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요." "아가씨, 오늘이 만난 지 200일 되는 날인거 알아요? 어제 오빠가 우리 결혼 200일 기념이라며 꽃하고 케익을 사왔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아가씨랑 한 식구 된지도 200일이나 됐어요. 아가씨 나한테 언니! 하고 불렀을 때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 200일 밖에 안된 올케라 많이 서툴러요. 그러니까 아가씨가 많이 도와줘요."

이런 가정,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랑하는 것, 멋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아침도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