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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20. 부활절 - 조영진 목사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고린도전서 15:1-11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다면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교훈도, 사상도 믿지만 그분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며 교제입니다.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분과의 교제 속에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부활절을 맞이할 때 나누는 인사가 있습니다. 한사람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라고 인사하면, 다른 사람은 "주님은 과연 다시 사셨습니다. 할렐루야!" 라고 응답합니다. 우리 함께 이 인사를 서로 나누십시다.

오늘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날입니다. 참으로 신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날, 새로운 역사를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죄의 사슬은 끊어졌습니다. 불의가 이기는 것 같은 착각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끝이라는 절망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정의와 진리가 승리함이 입증되었습니다. 죽음너머 생명의 세계가 있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논란이 계속되는 성경의 증언도 많지 않습니다. 이같은 논란은 처음 교회 때부터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몰래 훔쳐다가 숨겨놓고 부활하셨다고 주장했다는 도난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졸도하셨었는데, 서늘한 돌무덤에서 깨어 나셨다고 가사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인들이 착각해서 남의 무덤을 찾아가고는 부활하셨다고 주장했다는 오인설을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모하다가 보니 환상 중에 예수님을 뵙고는 부활하셨다고 주장했다는 환상설도 있었습니다. 또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단지 제자들의 삶 속에서 믿음과 깨달음이 일어난 사건이라고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주장들은 가장 합리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수많은 논리의 과오나 무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능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이같은 주장들에 대하여 던질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사도행전 26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도 바울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아그립바왕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십니까? 부활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풀어 다시 살리신 역사입니다.

현재 CA에 있는 Saddleback Community 교회를 섬기는 Lee Strobel 목사님이 'The Case for Christ', 우리말로는 '예수사건', 최근에는 '예수는 역사다' 라는 제목으로 바뀐 이 책을 썼습니다. Strobel 목사님은 신문기자 출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기록들, 특히 부활의 사건을 면밀히 검토해 보았습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갖고 반론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분명히 믿을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임을 밝혔습니다. 그 자신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아내의 변화되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껴서 교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시대에 영향을 주는 목사로, 저술가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적극 권고해 드리고 싶습니다.

I.

오늘 봉독해 드린 본문 말씀은 부활장으로 불리우는 고린도전서 15장의 서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처음 교회의 초기 전승의 하나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누구의 전도도 받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색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받은 이 전승은 처음 교회가 증거하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처음 교회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전승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빈무덤 전승이고 다른 하나는 현현 전승입니다. 빈무덤 전승은 주로 공관복음서에서 발견되는데,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반면에 현현 전승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서나 사도 바울의 편지 속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현현 전승을 대표하는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 속에서 자신이 받은 것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셔서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살아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기도 하셨으며,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맨 나중에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난 사람같은 바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II.

오늘 이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구약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약속되었던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이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성경 속에서 예고된 사건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 백성들에 약속되어진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셔서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 주셨고, 그분은 오셔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리셨습니다.

부활의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생긴 일도 아닙니다. 이미 성경에서 약속하셨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약속하셨던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2) 둘째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이 일깨워 주는 중요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사상을 믿고 따른다는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을 추모하며 그분을 본받아 살아간다는 것입니까? 오강남 교수께서 쓰신 '예수는 없다'라는 책 속에서 주장하듯이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예수님이 지니셨던 믿음을 우리도 본받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까?

물론 다 중요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부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다면,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사상의 체계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신 분입니다. 부활 이후 다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오늘도 살아 계신 예수님과의 관계, 그분과의 교제입니다. 그분과의 교제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직도 초보적인 지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이 아니라, 정보, information으로서의 예수를 믿고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I & You의 인격적인 관계에 이르지 못하고, I & It. 나와 그것, 나와 지식의 비인격적인 관계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도 살아 계시다면, 그분을 믿는 믿음은 그분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5:5 이하를 보십시다: 게바에게 보이시고(게바는 베드로를 의미),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으며, 또 야고보와 만삭되지 못하고 난 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만남 속에서 그들을 격려하시고 그들을 세우시며 또 그들을 사명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에서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그들은 관계로서의 믿음,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세워지는 믿음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지식으로의 믿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되심을 맛보지 못하며 두렵고도 떨림으로 주님을 섬기는 신앙의 본질, 신앙의 생명을 맛보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은 필수적입니다.

(4) 넷째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제자들에게 새날을 열어 주었습니다. 새 인생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변화된 삶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어 보아야만 믿겠다던 도마가 어떻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까지 오고 또 이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쳤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정신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는가 염려하던 동생 야고보가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헌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특별히 사도 바울의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문 15:10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주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겠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는 자신이 사도라고 불리움을 감당치 못할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놀라운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어느 사도보다도 더 많이, 더 열심히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넓고도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III.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과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물어야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났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셨기에 오늘도 살아 계신 이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이 예수님 안에서 새 인생을 오늘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은 바로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분과의 교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덤문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이후 다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무덤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믿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내 인생 속에서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이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내 인생을 다스리시며, 변화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그냥 가만히 앉아 계시다는 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오늘 우리 인생과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는 오늘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우리를 새롭게 지어가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도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만남은 우리의 인생에 깊은 영향력을 주며,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걸음을 바꾸어 줍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세례를 받으시는 교우들께서는 6주간의 준비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신앙고백서를 쓰시며, 또 저와 문답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한 분 한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살아 계심을 새롭게 느껴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변화의 역사 앞에 깊은 감동을 느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과연 살아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을 만나주시고, 새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 주고 계셨습니다.

NJ에 계신 최효섭 목사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임하는 변화를 열망하시면서 이런 기도의 시를 쓰셨습니다.

    다시 나게 하소서

    땅만 내려보고 허무함을 찾아 헤매는 내가
    높은 곳을 바라보는 독수리로 다시 나게 하소서.
    남의 약점과 실수를 기뻐하는 내가
    상처를 싸매주고 함께 우는 자로 다시 나게 하소서.
    울적하고 고독하게 한숨짓는 내가
    이웃까지 즐겁게 하는 종달새로 다시 나게 하소서.
    죽는 순간까지 예수를 비방하던 강도가 아니라
    회개하고 매달리던 구원받은 강도가 되게 하소서.
    욕심껏 내 뜻대로 망아지 처럼 뛰던 내가
    아버지 뜻에 항복하던 예수를 닮게 하소서.
    움켜 쥐는 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생각하던 내가
    나를 비우고 내어 주는 사마리아인이 되게 하소서.
    나의 작은 상자에서 벗어나
    넓게 보고 높이 볼 수 있는 새 사람으로 다시 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언제나 평화롭게 하시고
    십자가를 찾아서 지게 하시며
    비구름을 뚫고 소망의 태양을 보게 하시고
    무엇보다 먼저 주님 말씀에 순종케 하소서.
    죽음이 영생의 출발이 되고
    무덤이 천국의 문이 되던 부활의 새벽을 나에게도 주셔서
    고치 벗은 나비처럼 다시 나게 하소서.
    다시 사신 주님 나를 다시 나게 하소서. 아멘.

한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제 설교를 줄이겠습니다. 작년 안식년 기간 중 Edinburgh에서 열렸던 국제 설교 Conference에서 Duke 대학교 교수로 계시는 William Willmon 목사님께서 하신 설교 속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Duke대학 채플에 매주일 참석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목사님께서 우리 집에 와서 sandwich나 나누며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목사님 집에 와서 목사님께 꼭 드릴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이 젊은이는 청소년기를 참으로 방황하며 보냈습니다. 어찌나 부모님을 괴롭혔든지, 16살 되었을 때 정신병원에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후 Hitchhike를 해서 Chicago에 갔습니다. 3개월을 창녀촌에서 일하면서 길거리를 헤맸습니다. 그러던 중 손님의 Credit Card를 훔쳐서 쓰다가 경찰에 붙잡혀서 중범죄 판결을 받고 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감옥생활은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감방 안에 있던 나이든 죄수가 이 젊은이를 불쌍히 여기고 감싸주었습니다. 젊은이는 나이든 죄수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매일 저녁 나이든 죄수가 읽어 주는 성경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성경책을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든 죄수는 매일 밤 자기 전 성경을 한 장씩 읽어주었는데 그는 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 한 장을 읽으려면 무한정 시간이 걸렸습니다. 누가복음을 택해서 읽어 나가다가 15장의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의 이야기, 그리고 탕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는 예수님께서 바로 그 감옥 안에 임재해 계심을 느끼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한쪽 벽으로 밀치고 계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젊은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You owe me something(너는 내게 갚을 것이 있다. 너는 내게 빚을 지고 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현존 앞에서 이 젊은이는 새 삶을 찾았습니다. 참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젊은이는 모범수가 되어서 6개월을 감옥에서 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와서 밀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후 전액 장학생으로 Michigan State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그 이듬해 그는 늘 가고 싶던 Duke대학교에 편입을 했습니다. 그는 Duke 대학교에서 All A student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목사님께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왜 제 자신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는지 아세요? 몇주 후면 부활절이 다가오는데, 부활절때면 목사님들께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을 증명하고 또 예화를 찾느라고 애쓰지요. 제 이야기를 예화로 써 주세요. I am your proof of Easter. 저는 부활절의 증거입니다."

예수님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사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 살아 계신 우리 주님 만나보셨습니까?
그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찾으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