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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6. 부르심(5)/사순절 다섯째 주일 - 조영진 목사
모세야, 모세야
출애굽기 3:1-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위하여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든지, 작든지, 사명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나는 이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사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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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맞아서 "부르심"이란 큰 제목 밑에서 드리는 연속설교의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그동안 3월 첫째주일에 저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네가 어디 있느냐?"는 말씀 속에서 삶의 깨어남을 향한 부르심, 두 번째 주일에는 이사야서 1:18 이하에서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용서와 사죄에의 부르심을 전해드렸습니다. 셋째 주일에는 마태복음 11:28 이하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향한 쉼과 안식에로의 부르심, 넷째 주일에는 요한복음 7:37에서 목마른 자들을 의미 있고 풍성한 삶으로 부르신 초청에 대해서 각각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사명에로의 부르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번 연속 설교는 다음 주일 십자가를 통한 영원한 생명에로의 부르심에 대해 살펴봄으로 끝을 맺게 되겠습니다.
I.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넘쳤던 40대의 모세, 에집트왕 바로를 피해서 도망 나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생활을 한지도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흘러간 40년의 세월은 바로 후회와 좌절로 얼룩진 시간들이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기력은 시들어 가고 넘치던 정열도 식어갔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민족을 건지려던 꿈은 접어 둔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호렙산에 이르러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불이 사라지지 않고 나무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신비한 광경을 바라보다가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모세야" 두 번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아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운 마음, 경외감 혹은 복종과 헌신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거룩한 땅에 선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소개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익히 알고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역사를 위하여 모세를 부르셨음을 밝히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7 이하를 보십시다. 이 말씀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동사 단어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집트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시고, 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생을 아시고,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집트의 압제에서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불붙는 떨기나무 속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에집트의 압제에서 건져내는 이 사명에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1)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역사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과 절망에 눈을 감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 우리의 탄식을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아픔, 우리의 절망을 알고 계십니다. 알고 계실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그 고통, 그 절망, 그 좌절로부터 건져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 새로운 내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역사를 위하여 일꾼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건져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일들을 부르신 사람들을 통하여 이룩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쓰여지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모세만 사명에로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사명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II.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면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그저 편안히, 즐기며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어둔 세상 비추는 빛으로, 썩는 세상 가로막는 소금으로 우리 모두는 부름 받았습니다. 모세처럼 민족을 구원하는 거창한 사명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있는 땅,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 복음으로 이 세상 역사를 새롭게 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부르심이 있었기에 오늘 여러분과 저는 여기 모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 아침 타오르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를 부르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께서 모르실 만큼 무명의, 이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이미 모세는 세상 적으로 보면 잊혀져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떨기나무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려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셨습니다.
사실 모세는 자신을 부르시는 분이 누구 신지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가 아직 세워져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면서 3:6에서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이 말씀을 듣고도 모세는 3:13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를 하나님께 여쭙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아직 온전히 정립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아셨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구상에 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 우주는 무한히 광대한데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 기억하실까? 하나님께서는 나라는 존재를 아실까? 여러분, 걱정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이름도 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결코 무명의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고귀한 존재이십니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은 알아주십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해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기에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43:1b)."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명을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 부르실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든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너무 늙었기 때문에 부르심을 포기하시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부름 받은 이 일은 모세가 몇 살 되었을 때 일어났습니까? 80세 때입니다. 모세의 인생의 황금기는 40대가 아니었습니다. 에집트왕 바로의 궁전에서 보낸 화려한 젊은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모세가 된 것은 바로 80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70대만 되면 은퇴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시는 사명에서도 일찍 은퇴하시는 분들을 종종 뵙습니다. 물론 옛날처럼 일하실 수는 없으실 지 모릅니다. 일의 사이즈나 범위는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생명을 살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면제된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라 하실 때까지 사명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얼마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최신애 권사님께서는 84세 되시는 해에 글을 모으셔서 수상집 노인아파트를 내셨습니다.
New York주 Long Island에 있는 Oyster Bay감리교회에 Charles McCoy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인도에서 오신 선교사 한 분이 설교를 하면서 교인들에게 선교사 지망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한사람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McCoy 목사님은 가실 의향이 없으시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나이가 71세인데, 너무 늦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대답했습니다: "늙은 나무에 더 좋은 열매가 맺힐 수도 있습니다." 이 날 결심하고 선교사가 된 McCoy목사님은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년간 중국에 가셔서 아편중독자들을 위하여 놀라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부르실 수 없을 만큼 나이 드신 분은 한 분도 안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생명을 살리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위하여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3) 셋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실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모세는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80대에 이른 모세는 달랐습니다. 민족을 구원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너무 무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위대한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쓰실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양하고 스스로 무능하다고 자신을 판단하는데 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습게 여기는, 가볍게 여기는 미숙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는 다 뜻이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부르시는데 왜 사양하십니까? 왜 거절하십니까? 모자라면 하나님께서 채우셔서 쓰실 것입니다. 무능하면 능력 있게 하셔서 쓰실 것입니다. 부족하면 넉넉하게 보태셔서 쓰실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일꾼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위대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ability, 능력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얼마나 자신을 드리는가, availability일 뿐입니다.
이런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기 위하여 그 간부 요원으로 열두 제자를 뽑고 경영상담소(Management Consultants)에 그들의 자격 심사를 의뢰했다면 어떤 회답을 받았을까? 아마도 이런 회답을 받았을 것입니다.
나사렛 목공소 요셉의 아들 예수 귀하
귀하가 의뢰한 12명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와 직업 적성검사를 모아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뽑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귀하가 계획하는 새 단체의 간부 사원으로 자격 부족입니다. 학력이 너무 낮고 경험 부족입니다. 그들은 단체 관념이 없고 협조정신이 약하여 경영 관리자로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정서적으로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고 성격이 너무 과격합니다. 안드레는 한마디로 무능력자입니다. 남을 지도할 사람이 못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회사의 이익을 제쳐놓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사람들입니다. 도마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질문 뿐이요 추진력이 없습니다. 마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무슨 짓이나 할 사람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이 두사람은 사회 혁명을 노리는 과격한 불온사상에 감염되어 있어 귀하가 생각하는 온건한 집단에는 해로울 것입니다. 귀하가 추천한 12명 중 긍정적인 해답을 드릴 유자격자는 1명 뿐입니다. 가롯 유다입니다. 그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고 사회 지식도 풍부하며 예민한 실업인의 감각과 판단력이 있습니다. 사교성도 있어 상류 권력층과 접촉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강한 동기와 의욕에 차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상담회사는 가룟 유다 1명만 추천하고 남은 요원은 다른 사람들 중에서 찾아보도록 권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은 모두가 유능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신실 되이 응답한다면 모두가 큰 일을 하실 분들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인생을 살아가실 분들이십니다.
III.
"모세야, 모세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을 부르셨습니다. 아니 지금도 복음 안에서 인생을 참으로 자유케하고, 새로운 역사를 세우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명의 백성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모세처럼 거창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보면 미미하기 이를 데 없을 지 모릅니다. 보잘것없고 알려지지도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염려와 걱정, 불안과 무의미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풀어 자유케하는 이 사명보다 더 귀한 사명은 없습니다. 생명을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손과 발, 입과 귀가되는 이 사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사명의 백성으로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격려의 말들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생각 없는 말 한마디가 한 인생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못을 박기도 하지만, 격려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살리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정태기 교수님의 책 속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경상도 안동에 권 장로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권 장로님은 안동지역에서 이름 있는 크리스챤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이 권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권 선생님의 명성은 안동에서 70여리나 떨어진 궁벽한 시골에 살던 어느 농부에게도 들렸습니다. 농부는 자기 아들이 권선생 밑에서 배웠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농부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권선생이 근무하는 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너무나 기쁜 농부가 계란 한 줄을 짚으로 꾸며서 들고 아들과 함께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길을 나서는 바람에 학교에 그만 새벽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부자는 교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권선생이 첫 번째로 출근하다가 이 부자를 보고 웬일로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권선생인지 알 리 없는 농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권선생이 계시다는 이 학교에 합격을 해서 입학식 하러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그 사람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추위를 녹이십시다." 교무실로 들어온 권선생이 따뜻한 차를 끓여 대접하면서 그 부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농부의 어려운 형편이 드러났습니다. 사실 농부는 아들을 멀리 안동까지 유학 보낼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대학은 어림없어 보였습니다. 농부의 형편을 알게 된 권선생은 농부의 아들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리면서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육군사관학교에 가도록 해라. 그래서 장군이 되는 거야." 이 간단한 격려의 말 한마디가 농부의 아들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벽에다 이런 말을 써 붙이고 밤낮 없이 책과 씨름했습니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장군이 될 것이다." 6년 후 농부의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십수년이 흐른 후 장군이 되었습니다. 처음 별을 달게 되자 농부의 아들은 맨 먼저 안동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모자를 벗어 권 선생님에게 바치면서 말했습니다. "이 별은 선생님 말씀 한마디로 달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별을 달 때도 농부의 아들은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격려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 것입니다. 삶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긴 격려의 말 한마디, 미미해 보일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에 매인 인생을 풀어 살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인생을 일으키고 세울 수 있습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살리고 새 날을 여는 이 역사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생명과 역사를 살리는 위대한 사명에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명의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역사의 씨앗을 뿌리는 사명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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