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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30. 사순절 넷째 주일 - 문형일 전도사
슈투룩 나훈테
에베소서 2:1-10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이름이 변해서 슈투룩 나훈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기 바랍니다.
착한 일 선한 일을 한 충성된 종으로 말입니다.
성공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눔입니다. 나눔이 없는, 사랑이 없는
성공은 실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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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부터 시작된 며칠 간의 아름다운 봄 날씨는 지난겨울, 많은 눈으로 고생한 저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새들의 노랫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길가에 핀 개나리는 그 강렬한 노란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락과의 전쟁과 테러의 검은 색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봄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이봄에 모든 것이 다시 자라나게 됩니다. 교회 마당에 겨우내 보지 못하던 이름 모를 풀들,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것은 추운 겨울을 이긴 살아있던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봄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잔치입니다. 모든 생물들이 소리지르며 자기의 생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competition 경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봄을 맞아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고 자라고 있는데 한가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 나입니다. 요 나는 이 봄에도 변함 없이 딱딱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선교를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 가면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갈망이 있었던 곳 두 곳이 있었는데 제가 어릴 때 살았던 홍제동과 제가 다녔던 인왕 초등학교였습니다. 홍제천, 지금은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를 탈수 있게 만든 시민 공원이 되었지만 예전에 그곳에는 새 절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이 있었고 그 물을 막아 빨래하던 빨래터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흘러내리는 물에 하얗게 빨래를 해서 해에 널던 모습과 시원하게 들리던 빨래 방망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 말라서 모래바닥이 드러나 버린 그 홍제천에서 저와 친구들은 여름이면 수영을 하고 붕어와 송사리를 잡았습니다. 장마철이 되어 물난리가 나면 떠내려오는 돼지나 공을 잡으러 다니고 햇볕 나는 오후에는 동네 한바퀴를 도는 마라톤을 하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밥이 다 됐다고 부르기 전까지 아이들과 웃으며 다방구 놀이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던 그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제 고향. 거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코를 흘리며 들어갔던 초등학교는 30년이 훌쩍 지나버린 세월 속에 이제 막 시작된 새 학기로 분주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처럼 큰길까지 선생님의 손을 붙들고 왼쪽 가슴에는 이름표를 단 1학년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선생님의 손을 붙들고 싶어하던 저의 옛 기억도 났습니다. 복도에서 교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옆에 앉은 짝이 금을 넘어오면 그것을 기회로 싸움을 하던 가운데 칼로 그은 굵은 줄이 있는 나무 책상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튼튼한 책상과 의자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작은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 아이들은 선생님으로 알았는지 인사까지 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은 서로에게 밥과 반찬을 나누어주고 맛있게 점심을 먹고있었습니다. 김치 냄새나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생각이 났습니다. 예쁜 선생님의 율동에 맞추어 나리 나리 개나리, 노래하던 그 높은 단상은 한 걸음에 올라갈 만큼 낮아져 있었고 뛰고 뛰어도 끝이 없던 운동장과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뱀처럼 철망사이를 지나다니며 놀던 정글짐도 제 커져버린 몸이 들어가면 빠져 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버려 기억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노래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
모든 것이 변하는 동안 나는 뭐하고 있었나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멀리 학교를 걸어 다니는 것 보다 싫었던 것은 홍제동 양철동네에 산다는 그 사실이었습니다. 7.4 남북 성명이후 북한의 방문단이 지나는 길에 위치해 있던 저희 동네는 정부에서 급히 보기 흉한 지붕들을 가리느라 온 동네 지붕을 모두 양철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개천가 모든 동네의 지붕이 양철로 바뀌었기 때문에 붙여진 양철동네 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또 가끔씩 트럭을 타고 와서 무허가 건물이라고 쓰인 빨간딱지를 붙이고는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게 서있던 저희 집과 제 친구들의 집들을 말리는 동네 사람들을 힘으로 밀치고 커다란 해머 망치로 부수고 돌아가던 구청 철거반원들이 싫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는 이 동네에 오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저희 집은 그 후 다른 곳으로 이사갔고 그리고 30년이 지났습니다. 성공하자 돈을 벌자 출세하자 이름을 내자 나도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자. 성공을 위해 상고 (business school, vocational high school)에서 대학을 가고 그리고 다시 시험을 보고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오로지 한가지 목표,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이 3번 바뀔 때 내 고향이, 내 친구들이 나를 잊기 전에 제가 그들을 잊었습니다.
다시 양철동네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 살게 되면서 저는 양철동네를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서기까지 살아온 제 인생 주님이 인도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제동 양철동네에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이 바로 내가 아닌 하나님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달려왔던 그 성공의 길이 오늘 읽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사람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능력과 나의 성공이라는 우상을 믿은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1절부터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요한 일서 2장 16절에는 이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제가 이루고자 했던 성공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주님이 원하는 진짜성공은 무엇입니까? What is real success, o God ? 첫 번째 열쇠를 1절에서 찾았습니다. 우리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다. 저는 부활을 믿습니다. 여러분 중 아직도 부활의 확신이 없으신 분들은 자기 옆에 앉은 분을 한번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바로 죽었다 살아난 사람입니다. 부활한, 새 사람으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다시 살아난 사람, 마치 새 차 brand new car의 mileage가 주행 표시기가 새로 0000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인생을 새롭게 다시 살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오실 때 새 차를 몰고 오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운전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조심조심, 위험한 길로는 가지 않고 쓰레기를 실은 화물차 뒤는 따라 가지 않으실 겁니다. 차에 무리가 갈까봐 조심조심 브레이크도 밟고 자주 세차도 하실 겁니다. 새차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게 될 겁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정상입니다.
제 성공의 가치관이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됐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저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통해 성공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겠습니다. 주님도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 사셨고 똑같이 생각하셨고 똑같은 성공에 대한 꿈을 꾸고 사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야고보와 요한 두 아들을 데리고 주님을 찾아온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정권을 잡게 되시면 내 두 아들을 주님의 오른팔들로 만들어 주십시오. 듣고 계시던 예수님이 모든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4절부터 공동 번역으로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성공하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해 주십니다
28절입니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이제 곧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그 동안 예수님의 제자인 것으로 특혜를 받고 주요 요직에 임명되리라 꿈에 부푼 제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니 너무 충격적이라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죽은목숨들을 섬기는 것, 그것도 많은 사람을 저와 여러분 죄인들을 섬기시려고 오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공이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 예수의 섬김, 한 알의 밀이 되셔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은 것처럼 우리는 다 살게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은 온 땅에 전파되는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여기에 성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제가 비밀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아직도 이 비밀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공의 비결,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 모든 제자도의 비결이 바로 이 섬김에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남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 나를 위해 남이 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님이 남을 위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할 것이라 말씀했을 때 그러시지 말라고 말렸겠습니까? 아무도 하지 않는 일 또 가지 않은 고난의 길을 주님이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따라오라고 십자가에서 몸을 버려 피를 흘려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3월 6일부터 있었던 방글라데시 선교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도전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있는 곳,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것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곳, 아니 내가 미국에서 와 준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한마디로 VIP 극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 방글라데시입니다. 특별히 남자 분들 중에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찾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거기서 만난 네 분의 여자 선교사님을 생각해 봅니다. 한 분은 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방글라데시에 오셔서 이미 사역을 하신 지가 5년이 넘었고 디트로이트 연합감리교회 권사 님으로 지금은 나환자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기로 하신 분, 1년 간 기한을 정하고 온 대학 졸업생 자매와 대학원을 중단하고 온 자매들의 용기 있는 섬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으려고 하는 불모의 땅 방글라데시, 우리와 다른 종교를 가진 이슬람 사람들을 섬기려고 그곳에 온 이 선교사들. 몸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 대학원 학생, 유학 준비 생이었던 세분은 결혼과 취직과 다른 어떤 성공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 섬김으로 성공을 찾기로 결심했답니다. 유일한 남자 선교사인 장 선교사님, 지난 19년 동안 방글라데시에 복음의 씨를 심고있는 사람. 지난겨울 열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 고통의 시간, 집에 가지도 않고 자기를 위해 기도하며 병상을 지켜준 현지인 무슬림 형제 자매들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이 아직 제게 남아있습니다.
"선교는 말로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보여주되 현지인들 보다 앞서지 않고 한 걸음 뒤를 쫓아가며 도와주는 것, 그리고 현지인 자신들이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10명의 선교단원들과 현지 사역 자들이 함께 했던 아침 경건의 시간,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이슬람교도 직원들이 돌아가며 마침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베드로와 요한처럼 자기들도 남을 돕는 사람들이 되자고 다짐하는 것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의 변화에도 감동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저를 감동시킨 것은 이 현지인 들을 이만큼 자라도록 보살핀 선교사님의 사랑과 섬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가장 못사는 동네, 비행기에서 내려서 다시 2시간을 가야 나오는 방글라데시의 끝 찔마리 동네 (Chilmari village)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주님께 붙들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섬김을 통해 변화되는 복음의 힘을 보았습니다.
선교는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받는 것도 선교입니다. 말없이 기다리며 사랑을 주고받은 19년 간의 씨앗들이 자라나 알라신을 섬기며 가난과 싸우던 이슬람 현지 사역자들이 예수님의 복음 앞으로 나와 참으로 신실한 제자들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선교사님을 보며 부러웠습니다 또 한사람의 성공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의 인생의 목표와 성공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 격, 인 품, 살아있는 사람에게 격이 있고 품질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조상들은 알았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 이루었느냐, 가졌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냐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Doing 보다 중요한 것은 Being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를 살리셔서 brand new life, 새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주님의 뜻을 10절에서 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셔서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새 사람의 새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바로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미리부터 준비시킨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슈투룩 나훈테를 아십니까? 몇 년 전 흥행에 성공한 슈렉이 아니고 슈투룩 나훈테입니다.
직접 본인이 남긴 비문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슈투룩 나훈테, 위대한 땅 일람을 다스린 안샨과 수사의 왕,
나의 신 인슈시낙의 명을 받들어 씨퍼를 파괴하고 나람-씬의 기둥을 빼내어 이 위대한 도성 일람에 가져와 나의 위대한 신 인슈시낙에게 나의 제물로 드렸다
슈튜룩 나훈테 1158. B.C.
I am Shutruk-Nahhunte, King of Anshan and Susa
sovereign of the land of Elam.
I destroyed Sipper, took the stele of Naram-Sin,
and brought it back to Elam,
where I erected it as an offering to my god, Inshushinak.
--Shutruk-Nahhunte, 1158 B.C.
구약 사사시대, 여호수아 이후에 하나님이 일으킨 삼손과 기드온 같은 사사들이 활약하던 동일한 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일람왕국의 정복자 슈투룩 나훈테. 그는 큰 성 바빌론을 점령하고 수도의 심장부에 놓여있던 기둥들-그 기둥 중에는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적혀있던 기둥들도 포함되었습니다-을 자기에게 승리를 안겨준 신 인슈시낙에게 바쳤던 왕, 그리고 자기의 아들을 바빌론 왕으로 임명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제가 설교를 끝내면 아니 지금 이 순간 벌써 여러분은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셨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것이 제 설교의 핵심입니다.
이 슈투룩 나훈테의 이름은 잊혀지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슈투룩 나훈테 그는 전쟁에 승리하고 이웃 나라들에게 위협이 되고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전쟁만 하다가 죽은 사람 이것이 그의 삶의 평가입니다. 그도 살았을 때 먼 훗날 자기의 이름과 성공을 알리기 위해 성대한 축하를 하고 큰 무덤에 비문을 남겼겠지만 그가 이룬 그 모든 위대한 업적은 역사 속으로 모래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설교 제목으로 삼은 이 슈투룩 나훈테의 의미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이 사람을 기억하고 새 삶을 사는 우리에게 경고의 목적으로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가능합니다
Great accomplishment without contribution is failure.
섬김 없는 성공은 실패다 또 그래서 반대의 결론도 가능합니다.
Great accomplishment with contribution is success.
섬김이 바로 성공이다
예수님과 슈투룩 나훈테 성공과 실패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방글라데시는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못사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불안한 정치와 이슬람 종교 때문에 선량한 대다수 국민들이 가난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쌍하고 못사는 그 방글라데시 국민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저와 여러분 중에서 말입니다. 슈투록 나훈테, 위대한 전쟁의 성공은 이루었지만 섬김 없는 인생, 남을 위해 산, 선한 일 없는 성공 때문에 그 이름이 잊혀져버린 불쌍한 인생을 산 사람. 성공이 좋은 것이고 모두 성공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성공이 자기만족의 성공으로 끝나면 그것은 실패한 성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슈투룩 나훈테 같은 의미 없는 이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헐벗고 굶주린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최고인 것을 아십니까? 무슨 말입니까?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을 못 먹는 것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불편함입니다. 그러나 성공하고도 그 성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슈투룩 나훈테는 지금 이 시간에도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열고있는 방글라데시 국민들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지막 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죽은 데서 살리시고 새 삶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많이 맡긴 자 들에게 많은 것을 찾으리라, 많은 달란트를 맡은 자에게 많은 선한 것을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은 것 이것 보다 더한 성공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덤입니다, extra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많은 달란트는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은사를 그래서 Gift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주셨습니다. 부자만, 많이 배운 사람만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잘 생기고 키가 큰 사람한테만 주신 것이 아니고 지금 어떤 일을 하시던 그것을 주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은 달란트를, 성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예배가 끝나면 여러분 모두는 저 문을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길을 가게 됩니다. 여러분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든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길의 처음은 다 볼 수 있는데 그 끝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 길을 먼저 지나갔던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까지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슈투룩 나훈테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리고 몇 천년이 흐른 오늘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낯설고 물 설은 이 미국 땅에 와서 온갖 차별 대우를 참아가며 이루신 그 모든 업적을 존경합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그 성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십시오.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나누십시오. 사랑은 나눌수록 섬기면 섬길수록 기쁨이 커집니다. 우리가 가야할 좁은 길 그 끝에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다 부르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슈투룩 나훈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선물로 받은 새 생명으로 무엇을 할 지 몰라 방황하고 계신다면 저 십자가의 예수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분을 따르는 것 보다 더 큰 성공은 없습니다.
지금 어느 길로 가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이름이 변해서 슈투룩 나훈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기 바랍니다. 착한 일 선한 일을 한 충성된 종으로 말입니다. 성공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눔입니다 나눔이 없는 사랑이 없는 성공은 실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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