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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16. 부르심(3)/사순절 둘째 주일 - 조영진 목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마태복음 11:28-30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께 나아오면 쉼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쉼을 누리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가벼운 멍에를 메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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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이란 주제 밑에서 드리는 연속설교의 세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3월2일 주일에는 창세기 3:8-21 말씀을 중심으로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는 하나님의 질문은 오늘 우리의 삶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이사야 1:18-20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홍같이 붉을지라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용서와 새로운 출발에로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 못하실 죄악은 없습니다. 주님께 나아오시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오시면 희망이 있습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I.
오늘은 마태복음 11:28 이하에 기록된 우리 주님의 위대한 부르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본문 말씀 속에는 우리 주님의 위대한 초청, great invitation과 위대한 약속, great promise가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위대한 초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 이 짐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께로 나오라는 초청입니다. 위대한 약속, great promise는 무엇입니까? 내게 나아오면, 와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면,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대담한 초청이며, 대담한 약속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 가운데 이런 초청과 약속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말은 보통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제가 만일 내게 오면 쉬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여러분 믿으시겠습니까? 여러분 나아오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어느 그리스도인의 고백처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신이상자이든지, 아니면 정말 쉼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든지. 여러분 예수님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정신이상자입니까? 아니면 참으로 쉼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까?
역사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경험은 분명히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결코 정신이상자가 아니시라고. 그분만큼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는 없으셨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예수님이 정신이상자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훌륭한 분, 4대 성인 가운데 한사람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만일 그분이 정신이상자였다면, 혹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이었다면 2000년 교회의 역사는 달랐을 것입니다. 아니 2000년 동안 오히려 교회의 역사가 이어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도 달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팔레스틴 땅을 거니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내게로 오라고, 내게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배우면 너희가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부르심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저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게로 와서 쉬라고, 그 무거운 짐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참으로 위대한 초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무거운 짐입니까? 무엇이 우리 인생의 걸음을 힘들게 만듭니까? 그리스도께서 맡아주시는 짐이란 무엇입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학자들은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의 삶을 억누르는 율법의 멍에를 말합니다.
본래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역사에 응답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지침이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안고 지키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감사의 마음, 율법을 지켜야하는 동기는 사라져가고 계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기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점차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바리새파 운동이 일어나면서 율법에 대한 랍비들의 구전 전승까지도 지켜야함을 강조하게 되면서 이 멍에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안식일을 거룩이 지키려면 하지 말아야 할 일만해도 39가지에 달했습니다. 그러니 율법이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과부가 두 딸과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조그마한 밭이 전부였습니다. 농사철이 돌아와 밭을 갈려고 하니까 소와 나귀가 함께 밭을 갈아서는 안 된다는 율법이 생각이 났습니다. 씨를 뿌리려 하니까 종자를 섞어서 뿌리면 안 된다는 율법이 기억났습니다. 추수 때가 되니까 거두다가 한 단을 밭에 두었으면 다시 가지러 가지 말라는 말씀과 밭의 일부를 거두어들이지 말고 남겨두라는 율법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추수한 후에는 감사의 예물과 함께 첫 번째, 두 번째 십일조를 드려야 했습니다. 가난한 여인은 결국 밭을 팔아서 양을 두 마리 샀습니다. 양털을 깎아서 옷을 해 입고 또 양이 새끼를 낳으면 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양이 새끼를 낳자 제사장은 첫 소생은 하나님께 바쳐야 된다고 가져갔습니다. 양털을 깎게 되니까 그 처음 깎은 양털은 제사장에 주라는 신명기 15:4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양을 잡아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을 잡으니까 제사장은 신명기 18:3의 말씀에 따라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를 가져갔습니다. 여인은 참다못해 양을 잡아도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아예 모두를 제물로 드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이 말하기를 민수기 18:14 말씀에 따르면, 이런 제물은 모두 제사장에게 속한다고 하면서 가져갔습니다. 가난한 여인과 딸은 울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라고 주어진 율법이 백성들을 억누르는 무거운 짐, 올무가 되어버린 것을 빗댄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의 짐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율법의 규정을 지켜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혜, 그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이제는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 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삶을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 하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종이 되는 삶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기록했습니다. 또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을 깨우쳐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케 해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쉽습니다. 이 "쉽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꼭 맞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멍에, 꼭 맞는 이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면 우리는 율법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그 짐, 그 부담을 내려놓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쉼,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우리 인생이 지는 무거운 짐으로 탐욕을 꼽을 수 있습니다.
탐욕은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언제나 배고픔으로, 좀 더, 좀 더의 갈망으로 무거운 짐을 안겨줍니다. 이 탐욕은 우리의 인생을 얽어매는 사슬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탐욕의 종이 되어서 인생을 망쳤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탐욕에 매어서 부끄러운 인생의 자취를 남기고 갔습니까? 그 탐욕 때문에 법을 어기고, 가정을 깨뜨리고 후회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 많습니다. 탐욕의 무거운 짐 때문에 우리 인생의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한 사람들 많습니다. 육신의 정욕 때문에 가정을 깨뜨리고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물질에의 욕심 때문에 수단방법 가리지 않다가 많은 사람들 마음 아프게 하고, 자신의 인생도 무너지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New Jersey Hackensack이란 도시에서 한 도둑이 잡힌 적이 있습니다. 밤 11시쯤 어떤 사람이 큼직한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가는 것을 보고 경찰이 수상히 여겨서 "여보쇼!"라고 불렀더니 이 사람이 곧장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 도둑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잡힌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그는 허리띠를 매지 않고 바지를 입었는데, 가게에서 훔친 동전을 두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달리다보니 자꾸 바지가 흘러내려서 더 이상 달려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마이클 베일리라는 이 도둑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5전 짜리 니켈 36개, 10전 짜리 다임 30개, 25전 짜리 쿼러 22개 그리고 수없이 많은 1전 짜리 페니였습니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인데, 어쨌든 탐욕의 짐은 우리의 길을 가로막기 쉽습니다. 다스려지지 않는 욕망은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욕망의 짐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님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욕망을 다스려 가는 삶인 것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짐, 이 짐도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쾌하고 가벼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우리의 인생을 억누르는 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짐입니다. 이 문제는 지난주일 말씀드렸기 때문에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죄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용서의 은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긍휼히 여기시는 그 크신 사랑 안에서 우리는 무거운 죄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눈같이 희어집니다.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희어집니다.
(4) 한가지 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와 걱정의 짐입니다.
이 세상에 걱정이 없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걱정이 많고 적음이나, 가볍거나 깊음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걱정은 우리의 인생을 따라 다니는 귀찮은 동반자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고 문제가 없는 집처럼 보여도 그 어느 구석엔 가는 걱정이, 염려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아침 말씀하십니다. 그 걱정의 무거운 짐, 내게로 가져오너라. 그 염려의 짐도 내게로 가져오너라. 그 짐 내려놓고 쉼을 얻어라. 내게 와서 가볍고 꼭 맞는 멍에를 배우고 기쁘고 감사하며 인생을 살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1) 염려의 정복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첫 번째 처방은 바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염려함으로 키 작은 사람의 키를 한자나 크게 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염려의 한계를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걱정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Welch 감독은 101세 되는 생일에 기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101세란 나이에 대해 목사님께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Welch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30년 전 70세 때 은퇴를 했는데, 그때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걸어온 과거를 돌이켜보니 많은 걱정과 근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사실 따지고 보니까 그 근심이나 걱정은 실제로 생겨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생기지도 않은 일 때문에 헛된 근심을 너무 많이 하며 살아갑니다. 근심도, 걱정도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걱정하는 일에 부지런합니다. 그 일이 생기면 어떠할까 하는 미리 염려하면서 걱정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염려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깨우쳐줍니다.
2) 그런데 우리의 고민은 염려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염려가 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들 걱정하고 싶어서 걱정합니까? 걱정이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두 번째 염려에 대한 처방을 들려줍니다. 그것은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그 염려의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내려놓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가 붙들고 내가 걱정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물론 걱정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는 열심히 걱정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걱정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이 붙들고 있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보다 훨씬 똑똑하신 분 아니십니까? 우리 보다 훨씬 능력이 많으신 분 아니십니까?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왜 맡기시지 못하십니까? 왜 맡기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계십니까? 왜 내가 걱정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막연한 착각을 벗어버리지 못하십니까? 물론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그 결과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과 염려를 지고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맡기시려면 결과까지도 맡기시기 바랍니다. 꼭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집착, 그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꼭 이대로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우리 생각이지,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고 쉼을 얻기보다는 끝까지 내 뜻을 붙들고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 길이 하나님 보실 때 최선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짐도 내려놓아라. 그 결과도 내려놓아라. 그 결과에 대한 너의 집착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 멍에가 아닌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감사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III.
역사 속에서 내게 오라고,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분은 별로 없습니다. 이 초청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나, 아니면 참으로 쉬게 하실 수 있는 분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율법의 짐, 탐욕의 짐, 죄와 죄책의 짐, 염려와 걱정의 짐을 내게 와서 내려놓으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한국여자탁구대표팀 선수 가운데 김무교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대한항공 소속인 이 선수는 전국 탁구선수권대회 단식을 제패하기도 했고 아시안 게임, 세계 올림픽, 또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때 남자부 김택수 선수와 함께 결승에 진출, 세계 혼합복식 1위인 중국의 선수와 금메달을 놓고 겨루게 되었습니다. 김무교 선수는 경기 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크고 비밀한 것을 주리라." 금메달의 예감이었습니다. 모두가 질 것을 예상했지만, 잘 싸워서 1:1 타이를 이루었습니다. 마지막 3세트에서 16:19로 지고 있을 때, 김무교 선수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경기만 이기게 해주시면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던 탁구를 평생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도의 힘인지 19:19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19:21로 지고 말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너무 허무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같으면 분한 마음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어쩔 줄 몰라 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탁구를 죽자 사자 해왔는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금메달, 우승, 승리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기면 이긴 대로, 지면 진 대로 항상 걱정이 떠나지 않았던 날들을 돌이켜보니 한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승패가 나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이제는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즐겁게 탁구를 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거로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크고 비밀한 그것이 바로 이 같은 편안함, 자유로움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북받쳐 오르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김무교 선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김무교 선수의 생활은 달라졌습니다. 성격도, 얼굴의 표정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승패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겹던 탁구가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탁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계획하신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 선수는 오늘 "예수쟁이"로 불릴 만큼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기쁘게 탁구를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서 발견한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이 아침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진정한 안식, 참된 쉼의 길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여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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