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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9. 부르심(2)/사순절 첫째 주일 - 조영진 목사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이사야 1:18-20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오라고 부르십니다.
와서 서로 이야기하자고, 문제를 해결 짓자고 말씀하십니다.
이 용서에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계십니까?
용서의 은혜에 감사하여 살고 계십니까?

지난 주일부터 저는 "부르심" 이란 제목 밑에서 연속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부르심을 여섯 번에 걸쳐서 살펴 볼 금번 연속설교는 부르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초점을 맞출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바른 모습을 찾는 길이며, 살맛 나는 삶에 이르는 길입니다.

지난주일 저는 창세기 3장에서 범죄 함으로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부르신 은혜의 역사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이 질문은 아담과 하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이 물음 속에서 우리는 네 자신을 알라는 주님의 권면을 듣습니다. 이제는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부르심을 듣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I.

오늘 봉독한 말씀은 주전 740년경부터 남왕국 유다를 향해 외친 이사야의 멧세지 가운데 초반부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1:18 이하에 기록되어있는 "오라"는 부르심 이전에 유다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 특별히 그들의 죄악된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18 이전에 기록된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요약해 보십시다.

(1) 먼저 이사야는 1:2 이하에서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소만도, 가축만도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소나 나귀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유다 백성은 그들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몰라본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뭘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의 무식함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으신 하나님을 몰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의 죄악도 지적합니다. 1:4의 말씀을 보십시다.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죄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과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를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어쩌면 이 죄악은 죄질이 더 나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는 믿는데, 그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별 것 아닌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이사야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면, 그 인생이, 역사가 매맞고 상처받고 깨어지는데, 그것도 모른 체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사야는 유다 백성들의 심각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더 맞을 일만 하느냐? 어찌하여 여전히 배반을 일삼느냐?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골병이 들었으며,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난 곳과 매맞은 곳과 또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 못하고, 싸매지도 못하고, 상처가 가라않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이사야 1:5-6, 표준새번역.)"

그들의 삶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온통 상처투성이 일뿐 아니라 또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자연까지도 피폐해져가는데, 이것을 모른 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고발은 계속됩니다: "너희의 땅이 황폐해지고, 너희의 성읍이 송두리째 불에 탔으며, 너희의 농토에서 난 것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이방 사람들이 약탈해갔다... 도성 시온이 외롭게 남아있는 것이 포도원의 초막 같으며, 참외밭의 원두막 같고, 포위된 성읍같구나(1:7-8, 표준새번역)."

그래도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이사야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었다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해 버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남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3) 셋째로 이사야가 고발하는 유다 백성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도 드리고, 절기도 지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대로 악한 삶을 살아가는 그 모습에 이제는 염증을 느낀다고 책망하셨습니다. 1:11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다: "무엇 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절기는 지키고 있습니다. 제물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삶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삶은 예배와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성전 뜰만 밟고 다닐 뿐입니다. 제사와 예배는 의식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믿음은 성전에 올 때와 성전 밖에서와 크게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신앙, 이분법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같은 유다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은 남의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까? 예언자 이사야가 만일 오늘 우리들의 믿음생활을 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사야에게서 책망이 아닌, 칭찬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사야의 책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습니까? 개는 주인을 알고 어느 때에도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충성하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습니까?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그만큼 반기고 충성하고 있습니까? 제가 너무 지나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편안하고 안락하면 다 된 것입니까? 문제없이, 적당히, 부담 없는 삶을 살아가면 그것으로 다 된 것입니까?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과연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영혼은 과연 건강합니까?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배 따로 삶 따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성전 뜰만 밟고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하는데, 예배는 드리는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잃어버린 현대의 크리스챤들을 최효섭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들은 모여 사랑을 토론하고 나의 굶주림에 대하여 이론을 전개해 주었다. 고맙긴 하지만.
내가 옥에 갇혔을 때 너희들은 조용히 기도실로 도망가 내가 풀려나올 것을 기도해 주었다. 고맙긴 하지만.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들은 패션(유행)을 연구하고 몸을 얼마큼 가리는 것이 도덕적인지를 토론했었다. 나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일이었으나 너희들에게 헛 시간은 아니었겠지.
내가 병들었을 때 너희들은 감격한 어조로 너 자신이 건강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었지. 남의 불행을 보고 자기의 행복을 알았으니 전혀 헛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내가 집이 없을 때 너희들은 참다운 우리의 집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설교했었지.
내가 외로울 때 너희들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하며 나를 혼자 버려두었었지.
너희들은 무척 거룩하게 보이고 하나님과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배고프며 외롭고 춥다. 그러니 너희 그 숱한 기도와 심각한 이론은 아직도 나에게 도달하고 있지 않구나.

"한번 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니라."

II.

이사야의 책망을 받은 유다 백성들, 아니 오늘 우리들, 과연 길이 있습니까? 희망이 있습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까?

여기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여기 희망의 길이 있습니다. 여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해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방법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발하는 측에서 이야기하면 고발당한 측에서 답변을 하고 이 두가지 입장을 듣고 재판관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유다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검사이신 하나님께서 피고인 유다 백성들, 아니 우리 모두를 향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와서 변론하자고, 와서 함께 이야기하자고. Today's English Version은 "Let us settle the matter!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옮겨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문제를 해결 할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 이렇게 이어집니다: "너희 죄가 주홍빛과 같다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 용서의 소식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습니다. 여러분, 용서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용서가 없다는 말은 죄를 짓는 족족 처벌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살벌한 세상입니까? 얼마나 두려운 세상입니까? 용서해 주신다는 말은 2nd chance, 또한번의 기회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용서받기에 합당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용서받기 위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그 사랑, 우리의 넘어짐을 아파하시는 그 사랑 때문입니다. 또 한번 기회를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죗값을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길, 2nd chance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의 사랑을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 용서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2) 그리고 이 말씀 속에서 주시는 또 하나의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홍빛같이 붉을지라도,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주홍빛이란 살인자의 손에 묻어있는 피를 연상케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 용서 못하실 사람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그 죄가 크고 심각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 못하실 죄가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이같이 놀라운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모습 속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 자신을 못박는 사람을 위해서 까지 기도하신 주님의 이 모습은 용서 못할 죄가 없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미국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먹기까지 했던 제프리 다머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이 용서의 은총에 참여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그 유명했던 지존파라는 폭력그룹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성폭행하고 정말 한국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잡힌 후 현장검증을 할 때, 압구정동의 돈 많은 청년들을 못 죽인게 한이라고 발악을 하였습니다. 산사람을 곡괭이로 찍어 죽이고 각을 떠 화장까지 했으며 또 인육을 먹었다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한 녀석은 어머니를 못 죽인 것이 한이라는 말 같지 않은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온 국민들이 저런 놈들은 당장 한강 고수부지에서 공개 처형해야 된다고 소리를 높였던 그 지존파, 그들도 결국은 이 용서의 은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사형이 확정되어서 집행이 되었는데, 죽기전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주홍같이 붉은 피로부터 씻음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김현양이란 죄수는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크고 넓고 깊어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감옥은 저에게는 천국입니다. 강동은이란 범인은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이 선생님이 넣어주신 방한복을 몸이 약한 분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주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흰눈같이 씻어 주십니다. 진홍같이 붉더라도 양털같이 희게 씻어 주십니다.

III.

이 용서의 하나님, 이 크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오라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 짓자. 너희 죄가 주홍빛 같다해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어디서 죄의 문제를 해결 지으실 것입니까? 어디서 새롭게 변화되는 인생의 길을 찾으실 것입니까? 어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인생의 모습을 찾으실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오늘도 여전합니다. 이 부르심 앞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를 향해 경고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살기 위해서 생명의 길을 택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위하여 주님의 은혜를 힘입을 것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나오면, 와서 변론하면,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오면 오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길 시간에 늘 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신실한 믿음의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종종 환상 중에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교는 이 같은 신앙체험의 진위를 가리고자 이 여인을 불렀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후 주교는 이 여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다음에 주님을 만나면, 이 주교가 신학교 다닐 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좀 여쭈어 보라고 말했습니다. 참 묘한 질문입니다. 주교가 신학교 다닐 때 지은 죄는 그 주교만이 알기 때문에, 잘못 말하면 이 신앙의 경험이 거짓된 것으로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이 여인이 다시 주교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교는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뵈었는가고 그리고 지난번에 말한 내가 신학교 다닐 때 무슨 죄를 지었는가고 물어 보았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이 너무나 귀하고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I don't remember." 주교가 신학교 다닐 때 지은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안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라고, 와서 함께 이야기하자고. 와서 주홍빛 같은 죄의 문제를 해결 지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 아침도 우리를,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