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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2. 부르심(1) - 조영진 목사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8-21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하고 불순종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오늘 나는, 우리는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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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수요일부터 세계의 교회들은 사순절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사순절이란 Ash Wednesday, 성회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부활 전 토요일에 이르는 46일 가운데서 6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말합니다. 이 기간 동안 전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기도에 힘씁니다. 천주교인들 가운데서는 이 기간 동안 육식을 하지 않고 금식하기도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저희 교회에서는 복음서 가운데 한 권을 택하여 새벽기도회 시간에 묵상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일에 힘써 왔습니다. 올해는 마가복음서를 사순절 기간 동안 함께 읽어 나갈 예정입니다. 또 이 기간 동안 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초점을 맞추어서 여섯 번에 걸친 연속설교를 드릴 계획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부르심과 신약성경에 나타난 부르심을 살펴보게 될 금번 연속설교와 또 사순절 새벽기도회를 위하여 교우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I.
이 아침 우리는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먹은 후에 일어난 일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각종 나무 실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주어서 함께 먹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으며,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유혹에 빠져 그 과일을 따먹은 하와와 아담,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벗은 몸을 가리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저는 이 아침 이 본문이 과학적으로 옳은 것인가? 또 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실을 만드시고 먹지 말라고 하셔서 아담을 유혹에 빠지게 하셨는가? 이런 물음들을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문들은 희랍적인 사고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물음들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사고는 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진리를 말하고자 했습니다. 이야기를 분석하고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말씀하신 것처럼, 히브리 사람들은 이 창조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들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먼 옛날 첫 인간의 이야기지만, 이것은 또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실낙원의 이야기는 태고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오늘 여러분과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는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옛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오늘 여러분과 저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II.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멧세지에 우리의 마음과 귀를 여십시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피해 숨어있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후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징계가 임할는지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어디 있느냐?"고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이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아담을 부르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성경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고집 부릴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이 안계시느니, 하나님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느니 할 때, 하나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한 문학인은 "내가 하나님이라면 벌써 분통이 터져서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때문에 그렇게 속 썩으시는데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3:21에 보면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으시면서도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 주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 입이 있어도 그 입 다가지고 그 사랑, 그 은혜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까?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 인생이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2) 둘째로,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물음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멧세지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바로 너 자신을 좀 보아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라는 이 물음은 location, 위치나 살고있는 주소에 대한 질문입니까? 아닙니다. 이 질문은 바로 네 인생이 지금 어떤 자리, 어떤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느냐? 라는 삶에 대한 물음입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네 자신을 좀 살펴보아라, 네 자신을 좀 알아라 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 계십니까?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두려워 숨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은 없습니까? 지금 살고있는 내 모습, 내 인생, 과연 하나님께 부끄럼 없이 보여드릴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왜 사는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참으로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한 채, 떠밀려 인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란 노래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강물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여러분, 인생은 구름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까? 강물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가는 것입니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사는 것이 인생입니까? 사람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묻게되면 벌써 40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40대에 들어서야 삶을 생각한다면,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생각 없이 사는 인생이 있다면, 이런 인생처럼 안타까운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시려고 그렇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삶이 무한정 계속될 것 같은 착각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죽음의 위협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게 되면, 많은 경우 그 인생이 깨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벨상의 설립자인 알프렛 노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노벨은 1882년 아침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유명해졌고 많은 돈을 번 그는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호텔에 배달된 아침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문에는 큰 활자로 알프렛 노벨이 어젯밤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문사 측의 실수였습니다. 알프렛의 형이 사망한 것을 잘못 알고, 동생의 이름을 신문에 올린 것입니다.
알프렛 노벨은 이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하루 종일 호텔 방에 틀어박혀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이대로 그가 죽는다면 다이나마이트 발명가의 명예나 재물은 한갓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다이나마이트가 이미 무기로 쓰여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놓아 노벨상을 제정하기로 결심을 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습니다. 노벨상 제도는 바로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노벨상 제정까지 안가도 좋습니다. 꼭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깨어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또 한번 블레이스 파스칼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기하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인생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엔지니어링 공부하는 사람 많습니다. 컴퓨터 공부하는 사람 많습니다. 경제학, 경영학 공부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삶을 공부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아침 우리 모두에게 한사람, 한사람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 자신을 좀 살펴보아라. 네 자신을 좀 알아라. 네 인생을 살펴보아라.
(3) 세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이 말씀 속에는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참 모습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내가 가야할 길,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어디서 이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까? 길은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무관심으로 가로막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넘어서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해답을 찾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저절로,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볼 때 추상화는 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추상화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왜 그런 그림이 그려졌는지를 알려면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합니까?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에게 물어 보면 그 그림을 그린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로 알려면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인생의 목적도, 길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생명의 길, 이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한 찬송가로 317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영택 목사님께서 작사하신 이 찬송가는 부를 때마다, 부르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끼게 해줍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감당하고 못 받으시리오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스스로를 살피고,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향해 이 아침도 묻고 계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III.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이 아침도 우리를 향해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비록 얼룩지고 뒤죽박죽 된 삶일지라도,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딴 길을 걸어가는 인생일 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부르십니다. 지금 네 인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르십니다. 돌아오라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9.11 테러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한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어에서 현재라는 말과 선물이란 말은 똑같이 "Present"라고 합니다. 즉 현재, Present는 바로 주님께서 주시는 Present, 선물이란 뜻입니다. 이 선물로 주시는 현재를 바로 뜻있게 살아야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Present, 선물로 주시는 Present,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아침 우리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 계십니까?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부르십니다. 돌아오라고, 지금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자비한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지금 오라고. 지금 오라고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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