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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3 - 조영진 목사
"왜 속회에 참여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13:34-35
왜 속회에 참여해야 합니까?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도 함께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회는 제자로 자라가는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속회는 평신도의 지도력을 키워가는 최선의 훈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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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속회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가 이제 중요한 고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교우 여러분께서 속회 참여 신청서를 내주시면, 그것에 기초해서 새로운 속회 구성을 금주와 다음 주간 중에 준비할 예정입니다. 적어도 오는 3월 첫 주일에는 새로운 속회 구성 내용을 교우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3월 21일 다 함께 모여서 연합속회를 갖고, 새로운 출발의 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속회의 정비와 갱신은 작년으로 끝난 세 번째 5개년 장기계획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또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표어 밑에서 준비된 금년도 목회계획 속에서도 속회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속회, 속회를 수없이 외치고, 속회를 잘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 속회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우리 자신을 향해 다시 한번 묻고 다져야 할 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왜 속회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 우리는 속회에 참여해야 합니까? 속회가 무엇이기에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그렇게 강조되는 것입니까?
I.
(1) 속회의 정비와 새로운 출발은 우선 저희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된 현실적인 요청이었습니다.
100여명이 모이면서 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던 때는 이 문제가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었습니다. 교인들 대부분이 서로 알고 친숙한 관계 속에서 오랜 세월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인 수가 늘어나고 예배의 횟수도 주일에 한번 드리는데서 두 번, 세 번으로 늘어나면서 교우들간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에 같이 출석하고 있지만, 1부 예배에 나오시는지, 2부 혹은 3부 예배에 나오시는 지에 따라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식품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다 보니까, 같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는 말씀도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우간의 진정한 만남과 교제를 회복하는 길은 없는가? 라는 고민이 속회의 갱신 과제와 맞물려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늘어나는 교우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network로서 속회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주일예배에 출석하시는 장년들 700여명을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교우들끼리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본래 교회가 갖고있는 공동체 성을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구현해 갈 것인가? 이런 과제들과 씨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간섭이 없어서 좋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면서 교우들 간에 아무런 연결도 없고, 서로를 위한 기도와 나눔도 없다면 과연 그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이겠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그런 신앙생활의 모습과 자세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들은 앞서가는 교회들의 변화를 생각케 하면서 속회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2)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필요성이 있습니다. 교회는 단지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 인생이 새롭게 지어져 가는 변화의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인생의 변화를 싫어하신다면, 구태여 교회에 나오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교회는 취미생활의 장소도, 문화생활의 처소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곳입니다. 인생이 새롭게 지음 받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 뜻, 내 생각이 깨어지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여러분, 이 중요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교회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의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릴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주일날 한시간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는 엄청나게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변화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속회 혹은 구역 등을 통한 교회 갱신에 착안하고 시도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속회야말로 인생의 새로운 변화와 제자로의 성숙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이라고. 그렇습니다. 새로운 인생,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채널이 바로 속회입니다. 속회의 갱신은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외면할 수 없는 물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속회의 새로운 출발과 정비를 추구해 왔습니다. 속회의 갱신을 통하여 보다 힘있는 삶의 변화, 성숙한 교회로의 걸음을 재촉해 왔습니다.
(3) 그러나 속회 갱신이 요청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속회의 갱신이야말로 성경 적인 교회상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속회의 새로운 출발은 단순한 유행을 따라가는 것과는 구별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을 보면, 처음 교회는 3,000명이 넘는 교인들로 이루어진 대형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모일 뿐 아니라, 개인의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함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렸을 뿐 아니라, 흩어져서 각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가정에서 모일 때, 그들은 떡을 떼며 교제를 나누고, 말씀을 배웠습니다. 가정교회 운동은 이미 처음교회부터 있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묻혀있던 이런 교회의 모습은 John Wesley 목사님의 속회운동에서 다시 꽃을 피우게 되었고, 한국교회에서는 교파의 구별 없이 이런 작은 교회의 모습을 추구해 왔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의 지혜를 모아 새로운 독창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바로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함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갱신은 revolution, 혁명이 아니고 reformation, 개혁입니다. 속회의 갱신은 바로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오늘 21세기, 이 시대 속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자라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왜 속회에 참여해야 합니까? 왜 속회에의 참여가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중요합니까?
(1) 무엇보다도 먼저 속회의 참여는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과 일치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물론 결혼제도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 공동체적인 존재임을 깨우쳐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익명성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말합니다. Harvard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는 Harvey Cox의 이 같은 주장에 많은 사람들은 공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함으로 맺어지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고독입니다. 외로움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쓸쓸함입니다. 익명성 속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이 같은 주장은 어쩌면 진정한 공동체를 맛보지 못한데서 나오는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왜 속회에 참여해야 합니까? 함께,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우리 인생들이 갖는 자연스러운 욕구, 소속감, 연대감, 나누는 삶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본래 갖고있는 공동체에 대한 염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많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속회 참여만이 공동체 성을 회복하는 길인가? 가정도 역시 그런 공동체가 아닌가? 속회말고도 진정한 소속감, 이웃을 느끼는 모임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2) 둘째로 속회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다 의미 있는 교회생활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혹시 주일에 예배보고 가시는 것만으로도 내 믿음의 생활은 충분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바로 서면된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믿음생활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나바 사역자 훈련때 소개해 드린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미국교회의 통계입니다만, 이 통계는 교회 안에서 교우들 사이의 깊이 있는 사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새로운 교인들 가운데 6개월 동안에 뒷문으로 빠져나간 사람 50명, 정착한 사람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인데, 6개월 동안 친구를 한사람도 못 사귄 8명, 한사람을 사귄 13명, 두 사람을 사귄 14명은 모두 뒷문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친구 7명을 사귄 13명, 8명을 사귄 12명, 9명 이상을 사귄 12명은 모두가 다 새 교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CA에 있는 Saddleback 교회를 섬기시는 Rick Warren 목사님은 교회 안에 있는 교우들을 참여의 상황에 따라 다섯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믿지 않거나 가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community가 있고, 둘째는 정기적으로 예배에만 출석하는 Crowd(군중), 셋째는 교회에서 교인된 의무를 잘 감당하는 Congregation(회중), 영적인 성숙을 향해 자라 가는 The Committed(헌신자), 마지막으로 평신도 목회자로 헌신하는 The Core(핵심 그룹)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의미 있는 믿음생활이 되려면, 가장 큰 원인 Community에서 조금 더 작은 원인 Crowd로, 더 작은 원인 Congregation으로, 더 작은 원인 The Committed로 그리고 The Core로 자라가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디에 속하십니까? 여러분, 뜻 있는 교회생활, 속회의 참여를 통한 더 의미 있는 교회생활의 추구로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흔히 하는 말로 더 의미 있는 교회생활을 해서 남 주십니까? 속회에의 참여는 더 작은 원, 더 의미 있는 교회생활을 위한 중요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속회에 참여하시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내용입니다만, 건강한 속회생활 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서 저희들이 발견한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속회의 목적을 계속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의식화가 되도록, 강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과거를 반성하면서 속회사역에서는 속회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속회란 무엇인가? 속회는 "제자로 자라 가는 나눔의 공동체" 라고 정의했습니다. 속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 제자로 자라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나눔입니다.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눔이란 무엇을 나누는 것입니까? 이 나눔은 세상에서 나누는 것과 무엇이,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는 제자로 자라가도록 뒷받침하는 나눔을 네 가지로 제안하였습니다. 그 네 가지란 말씀 안에서의 삶과 기도, 사역, 그리고 복음입니다. 말씀 위에 세워지는 우리의 삶을 나누고, 기도를 나누며, 사역을 나누고, 복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 교회가 지향하는 속회입니다. 속회의 목적이며 길입니다.
속회는 나눔 속에서 제자 됨을 추구합니다. 속회를 통해서 우리는 제자의 길을 배우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격려합니다. 물론 속회에서의 삶이 평탄치 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고,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 제자가 살아야 할 삶을 배워간다면 이 또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속회는 제자훈련의 가장 중요한 장(Context)입니다. 속회에 동참하시지 못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 귀한 기회를 갖지 못하심을 의미합니다.
(4) 넷째로 속회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 평신도 지도력을 발전시켜 가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만큼 평신도들의 잠재력이 무한한 교회도 많지 않다는 말씀을 자주 드려왔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지도력이 잠재력으로만 머물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님께로부터 책망을 모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 잠재력은 반드시 개발되고 꽃 피워져야 합니다.
여러분, 평신도 지도력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회의를 잘 이끌어 가는 것 중요합니다. 부서를 활발하게 움직여 가는 것 중요합니다. 빈틈없는 행정능력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가자는 것입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가자는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쉽은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리더쉽의 핵심이 바로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빼어 놓는다면 예수님의 지도력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속회는 바로 이 사랑의 지도력을 키우고 발전시켜 가는 최선의 바탕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속장으로 헌신해 오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미 체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속원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 속장님들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속원들의 가정이 어려움을 겪을 때 속장님들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분명 속장의 직분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감당키 어려운 일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지난 3년동안 헌신하셨던 대다수의 속장 님들이 계속해서 헌신하실 뜻을 표명해 주신 것입니다. 쉽지 않지만, 내 영혼이 텅 빈 것 같은 안타까운 때도 있었지만, 이 사랑의 지도력을 위해 또다시 헌신하시는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어렵더라도 이 길은 속원을 살리는 길일뿐 아니라, 내가 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이란 사랑의 지도력이기 때문입니다. 포기함으로 채움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썬다 싱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가 친구와 함께 추운 겨울에 히말리야 산맥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잔뜩 움츠리고 가던 그들은 눈길에 쓰러진 한 나그네를 보았습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썬다 싱은 이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가던 친구는 우리도 추워서 죽을 판인데, 어떻게 데리고 가느냐고 거절했습니다. 거절한 친구는 먼저 떠나고 썬다 싱은 쓰러진 나그네를 들쳐업고 눈길을 헤쳐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무거워 내려놓고 싶었지만, 끈기 있게 참고 견디며 발걸음을 옮겨 놓았습니다. 썬다 싱의 몸에서는 땀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땀이 솟는 썬다 싱의 몸의 열기에 업혀있던 나그네도 온기를 느끼고 깨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부담을 거절하고 먼저 떠났던 친구는 얼마 못 가서 눈길에 쓰러져 발견이 되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역설입니다. 그러나 죽고자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속장 님들, 힘드시지만 여러분의 헌신은 여러분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가꾸어 갈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기회입니다. 속회는 속장 님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힘, 사랑의 지도력을 개발하고 발전 시켜 가는 최고의 훈련장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속회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속회에의 참여를 사양하실 수 있습니까? 미루실 수 있습니까?
III.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3:34, 35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니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가장 확실한 표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세상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됩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 이익관계에 매달리는 사랑을 넘어서는 사랑으로 사랑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자로 자라 가는 나눔의 공동체, 무엇하자는 것입니까? 서로 사랑함으로 제자의 참 모습을 이루어 가자는 것입니다. 700명 교우들을 다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을 포함해서 70명 정도가 maximum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속회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멀리 가서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면 세상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먼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 됨의 첫 번째 관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속회 안에서부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가족 그리고 속원부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사랑을 배우고, 받고, 실천하는 곳이 속회입니다. 이 속회를 통해서 우리는 제자의 삶, 사랑의 삶을 향해 자라갈 수 있습니다.
제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0년 넘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이었습니다. 이 분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문제에 부딪쳤을 때가 있었습니다. 함부로 나누기 어려운 문제 속에서 고민하고 가슴 아플 때, 그분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30년 넘게 걸어온 믿음의 길,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제해 왔지만 이 아픔, 이 문제를 정직히 나누면서 기도를 부탁할 믿음의 형제가 있는가를. 곰곰이 꼽아 보았지만 정말 어려운 이 문제를 나눌 형제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30년 넘게 교회를 다닌 나의 믿음생활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를 향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외로울 때, 여러분의 깊은 문제가 앞길을 가로막을 때, 함께 나눌 믿음의 동지가 있으십니까? 참으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어줄 믿음의 형제가, 자매가 있으십니까?
왜 속회를 해야합니까? 왜 속회에 참여해야 합니까? 해답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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