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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16. - 조영진 목사

"역사를 건지는 사람"

출애굽기 32:1-14


한번은 어느 분이 이스라엘에 가서 택시를 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택시 기사가 이런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모세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아랍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현실을 놓고 불평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깜짝 놀란 택시 승객이 되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모세는 당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낸 민족의 영웅이 아닙니까?" 그때 운전기사가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후 모세에게 물으셨다고 합니다: "모세야, 이 백성들을 어느 곳으로 인도하고 싶으냐?" 그때 사실 모세는 땅도 넓고, 주변의 위협도 없는 카나다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입이 둔하여서 "카, 카, 카"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 가나안!" 하시면서 팔레스타인 땅으로 인도하셨답니다. 그때 모세가 생각대로 바로 "카나다"했더라면, 오늘 이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 그만 말을 더듬는 바람에 아랍족속에 둘러 쌓여 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내산 기슭에 머물 때였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모세는 부르심을 받아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랐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후, 구름이 산을 가리우며,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물렀습니다. 모세는 산 위에서 40일을 머물면서 장차 예배의 처소가 될 성막을 짓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모세가 40일동안 산에 머무르고 있을 때, 모세의 귀환이 늦어지자 불안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모세의 형인 아론을 위협합니다 .아론은 백성들이 내어놓은 금고리를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들은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낸 신이라고 하면서, 그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드리고, 먹고 마시면서 뛰놉니다.

I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는 결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이야기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으로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이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신을 갖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모세가 40일 동안 보이지 않는 현실에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 줄 보이는 신의 필요를 느꼈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우상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어떤 것에 신뢰를 두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어떤 무엇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안전이 하나님보다 보이는 현금, 쌓아놓은 예금에 있다고 믿으신다면, 우리도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금 구좌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보다 예금 구좌를 더 믿고 더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보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안락한 환경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도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인생이 변화 받고 구원받는 모습보다 더 웅장한 건물, 더 많은 예산, 더 많은 교인수 등 보이는 것에 매달린다면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지었던 성전이 여러 차례 무너진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또 교회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목사가 부흥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믿으면,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부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한 나라의 안전이 하나님보다 보이는 무기들, 혹은 군사력이나 사람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 역시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물론 국방의 준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안전, 궁극적인 안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방패, 우리의 산성이 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보다 보이는 무기, 보이는 사람들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는 우상숭배 하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4년 전 여름밤에 음주 운전자가 제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받는 바람에 큰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차가 total loss 되자, 저희 동역자들은 좀 튼튼한 차를 사라고 적극 권고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할 일은 해야 된다고 해서 Volvo 중고차를 샀습니다만, 그때 나눈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튼튼한 차도 있어야 하겠지만, 한 생명의 안전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대파되었지만, 저와 저희 딸은 가벼운 상처만 입고 보호함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2)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고 섬긴 금송아지 숭배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을 원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믿고 경외하며 복종해야하는 신보다는 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을 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을 깨뜨리시는 하나님 보다는, 내 생각에 Yes, Yes 해 주시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내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보다는 내 생각, 내 계획에 도장만 찍어주시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을 흔드시고 깨뜨리시는 부담스러운 하나님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주시는 좋으신 하나님만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회개를 요청하시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복만을, 그것도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복만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주님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 보다는 "내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 금송아지의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긴 이야기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오늘 우리를,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3) 셋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무신론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풍요의 신, 가나안의 신을 섬기자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 금송아지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절기에 그 금송아지에게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여호와의 절기를 지켰습니다. 여전히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금송아지였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헌금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섬기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형식만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실제적인 무신론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입으로는 주여, 주여를 부르고 있지만, 삶으로는 나여, 나여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명목상,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그 하나님을 섬김은 입술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습니까? 주일에는 하나님을 부르고 섬기지만, 주간 중에는, 평일에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실제적 무신론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입으로는 할렐루야를 말하지만, 삶으로는 No Hallelujah, 놀렐루야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도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은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4) 넷째로, 이 같은 금송아지 숭배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앞에 제물을 드리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그리고 나라가 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 때, 금송아지를 섬길 때, 빠져드는 것은 바로 향락주의입니다. 쾌락주의의 물결입니다. 건강한 믿음 위에서 살아가면, 우리의 인생은 건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건강한 경계선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하나님, 또 입술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우리는 이 향락주의, 쾌락문화의 물결을 막을 길이 없게 됩니다. 이것처럼 달콤해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처럼 자극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전에 저희 교회에서 믿음 생활 하셨던 분을 만나기 위해 일산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때 제게 교통편을 주시는 분이 큰 건물들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것들이 다 Love Hotel이라고. 여러분 왜 그런 호텔이 그렇게 많아야 합니까? 왜 한국 백성들이 그렇게 비싼 술을 많이 마셔야 합니까? 왜 인터넷상에 음란 싸이트들이 그렇게 많아야 합니까? 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섬기기 때문이 아닙니까? 참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의 우상을 오늘 이 시대가 섬기기 때문이 아닙니까?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로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II

이 같은 역사는 희망이 없습니다. 금송아지의 우상을 섬기는 인생, 그런 백성들이 가는 길은 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완악한 백성들을 심판하실 뜻을 세우셨습니다. 이 목이 곧은 백성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위기를 넘어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이 모습, 이 죄악을 넘어서서 또 한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또 한번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자비를 가능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출애굽기 32:11이하의 말씀은 모세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라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눈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건진 사람입니다. 우상숭배의 엄청난 범죄 속에서 민족의 새 출발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모세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시대의 모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금송아지의 우상을 섬기는 이 시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이 역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구해야 할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 아침 모세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맷세지에 함께 귀를 기울이십시다.

(1) 첫째로, 모세는 이 같은 금송아지 숭배에 No!, 아니오 했던 사람입니다.

수많은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놀고, 먹고, 마시며 춤을 추었습니다. 심지어 아론까지도 압력에 굴복해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이 우상 숭배 앞에 No! 했습니다. 32:19에 보면, 모세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고 크게 노하여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그는 결코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의로운 분노 속에서 이 길이 잘못된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 시대가 희망을 가지려면, 이렇게 "No!"하는 이 시대의 모세가 필요합니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지" 해 가지고는 이 역사에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개신교인들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까? 금송아지 우상을 함께 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떠밀려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거룩한 분노를 잃어버리고, 이 우상숭배에 대한 "No!"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을 가도, 외로워도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 금송아지 앞에서 "No!"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역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주님께서 와싱톤한인교회를 세우셨습니까? 왜 여러분을 McLean 동산으로 부르셨습니까? 금송아지를 섬기는 오늘 이 시대에 No!"하라고 부르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좀 다르게 살라고, 우상숭배가 아닌, 참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 아닙니까? 이 시대의 교회들이 금송아지를 섬기려 할 때, "No!"하라고 부르신 것 아닙니까?

(2) 둘째로 모세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부르짖었습니다.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백성들의 무지와 죄악을 안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 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 있는 한, 교회는, 역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을 때, 민족은, 나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참으로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32:31 이하를 보십시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으시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모세는 이 기도에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걸었습니다. 주님의 기록하신 책에서 그 이름의 지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영원한 멸망을 뜻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는 일에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걸었습니다. 백성들을 이 멸망의 수렁에서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영광의 그날을 포기해도 좋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결의를 안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도 이 시대는 기도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무릎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의 골방이야말로 역사에 희망을 주고, 교회에 갱신과 부흥을 가져오는 요인이 됩니다. No!라고 소리만 지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No!와 함께 목숨을 걸고 드리는 기도의 무릎이 있어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를 찾아간 분이 목사님께 부흥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 사람을 지하의 기도실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주일예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방문객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교회 부흥의 발전소입니다."

가정은 물론 오늘의 교회와 역사를 건지는 이 시대의 모세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무릎이 있어야 합니다. No!라는 외침과 함께 목숨을 걸고 부르짖는 기도의 무릎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무릎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3) 세 번째로 모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모세로 하여금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했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모세는 하나님의 체면을 염려합니다. 32:11이하를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집트 사람들에 의해 조롱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땅위에서 사라지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백성들의 회복을 위하여 모세는 진심으로 간구 하였습니다.

목회의 연륜이 쌓아지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목회가 무엇인가? 또 목회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매일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랑이 역사를 낳습니다. 같은 설교도 사랑의 가슴을 안고 하면 다릅니다.

미국 어느 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지옥간다는 멧세지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교인들은 교단에 새로운 목사님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새 목사님도 오셔서 보니까 이렇게 신앙생활해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셨습니다. 새 목사님의 설교도 전임 목사님과 똑같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믿다가는 지옥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교인들이 똑같은 설교를 듣는데도, 이번에는 불평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교인들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전임목사님은 늘 분노와 책망으로 설교하셨는데, 새로 오신 목사님께서는 같은 설교를 하시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설교하시기에 주일마다 은혜를 받습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 시대, 이 나라, 이 교회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No!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이 있을 때, 역사는, 세상은, 교회는, 또 가정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No!라고 큰소리 친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참으로 사랑의 마음을 안고, 안타까운 가슴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이 땅에, 그리고 교회들에게 또 한번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방언,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아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고, 이 시대의 금송아지 숭배에 No!라고 소리 질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부패를 날카롭게 말하고, 입에 침을 튀기며, 정의를 외쳐도, 교회와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건짐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만이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여러분, 와싱톤한인교회를 염려하십니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을 염려하십니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을 열려하십니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 위에서 No!하시며, 사랑 위에서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며,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III

금송아지 숭배, 그것은 옛날, 시내산 기슭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곳 미국 땅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려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찮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내가 지어낸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향락문화의 거센 물결이 이 시대를 휩쓸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모세를 찾고 계십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이 시대의 바람 앞에 No!할 수 있는 사람, 금송아지 숭배의 물결이 밀려오는 오늘 교회의 모습에 No!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또 이 시대의 교회와 역사를 사랑하는 가슴을 안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역사를 건져내는 일은 거창한 표어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금송아지 숭배를 거슬러 올라갈 때,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곳 미국 땅, 워싱톤의 한 모퉁이에서부터 이 일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아니 우선 나에게서부터 이 일은 시작되어야합니다. 모세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또 한번 건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계시기에, 와싱톤한인교회가 있기에 미국땅 오늘의 역사가 새로워지기를 빕니다. 우리교회가 있기에 이 시대의 교회들이 또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새날을 열어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모세들로 역사를 건지는 하나님의 도구들로 쓰임 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