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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9 - 조영진 목사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1-8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일꾼을 부르셔서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오늘도 이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 부르셨기에 오늘 우리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가운데서 또 말씀을 전하는 일꾼들을 세우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바로 응답하고 있습니까?
일꾼을 길러내는 일을 힘껏 뒷받침하고 있습니까?

이런 싯귀가 생각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 외에 다른 손이 없으시고
우리의 발 외에 다른 발이 없으시며
우리의 입 외에 다른 입이 없으시다.

이 싯귀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이야기 된 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너무 제한하는 노래라는 비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과 발 그리고 입 외에는 다른 손과 발, 입이 없으시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일하시고 말씀하실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인간에 의해서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시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싯귀가 갖는 또 다른 의미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되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손과 발 그리고 입으로 쓰실 수 있도록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같은 주장 역시 맞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역사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특권, Privilege인 동시에 또한 사명, mission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시는 은혜가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어둠과 죄악의 길에서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지를 모른 채 떠밀려가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인생들,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헤매고 있는 인생들을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시고 부르시는 은혜는 예수님 안에서 결정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죽으심, 부활의 역사는 우리에게 새 날을 열어주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어제와는 다른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I.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외치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일깨우는 사명을 위하여 일꾼을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부름받은 일꾼들을 구약성경에서는 예언자라고 불렀습니다. 오늘의 교회에서는 목사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명의 경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예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주저하고 망서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 예언자의 길을 걸으면서 부딪치는 고난과 비웃음, 따돌림과 박해 앞에서 회의를 느끼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그들은 순종하며 예언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은 바로 그들이 사명을 감당해 가는 동기이면서 또한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예언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두 번째 특징적인 모습은 그들의 문체 혹은 어체입니다. 여러분, 예언자들의 글을 읽어보실 때 어떤 특징을 발견하십니까? 그들의 멧세지나 기록된 글은 결코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뜻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로 시작해서 멧세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말씀, 그 말씀이 바로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은 예언자들의 멧세지나, 글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같은 역사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목회자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 가운데서,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고 성례전을 행하며, 교회의 질서를 지켜가는 사역을 위해서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이 같은 사역을 위한 부르심이 있는가? 이런 부르심의 경험이 있는가?는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목사 안수의 과정에서는 언제나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확인을 합니다.

II.

오늘 봉독해 드린 이사야서 6장의 말씀은 예언자들의 소명을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전 742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40년 이상 예언자로 활동한 이사야는 유대 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 오늘의 본문 말씀 속에서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위기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 부르심을 느끼는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로 시작합니다. 웃시야 왕은 남왕국 역사에서 783년부터 742년까지 40년 이상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나라는 안정되고 국력은 부강하여졌습니다. 이런 강력한 왕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나라의 장래가 염려되고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위기, 이 어려움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위기의 때는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chance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위기를 헤쳐가고 계십니까? 앞길이 불확실한 불안과 초조의 날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때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 때입니다. 위기를 표현하는 한자는 참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위(危)"자는 dangerous, 위험스럽다는 뜻을 갖습니다만, "기(機)"자는 opportunity, 기회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위기란 위험스럽지만, 기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챤스입니다.

유대 백성들이 위기 속에 부딪친 그때,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임재하셨습니다. 이사야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를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직면한 이사야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 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웠음이로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참모습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 죄인된 나의 실상을 보게 합니다.

그냥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부족함이 없다고, 부끄러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실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고 보면 different story,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없이 부족한 인생, 입술의 부정한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없이는 설 수 없는 인생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참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책과 부끄러움 속에 몰아 넣으시지만은 않으십니다. 우리를 고쳐주시고 싸매어 주십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했을 때, 스랍 중 하나가 화저로 단에 있는 핀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대었습니다. 그리고는 네 악이 제해졌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쳐서 쓰시는데 명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만큼 온전한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지만, 모자라지만, 죄악되지만, 부르셔서 고치시고, 다듬으셔서 우리를 쓰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만나 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고치셔서 주님의 도구로 쓰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끝없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으십니다.

(3) 셋째로, 이렇게 고침받은 이사야를 새로운 사명에로 부르십니다.

고침받은 이사야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그때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듣지않는 백성들이지만 나가서 외치고 깨우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물론 목회자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이 시대에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이 시대의 파숫꾼,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주시는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어쨌든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명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보낼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목사와 평신도는 단지 사역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유명한 구약성서 학자는 이 본문을 해석하면서 4C로 요약했습니다: Crisis(위기), Confrontation(만남), Confession(고백), Commission(파송) 대단히 적절한 요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백성들을 위기 속에서 부르시고 만나주시며,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시고 고치셔서,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III.

다음 주일은 장학주일로 지킵니다. 저희 교회 1.5세대 혹은 2세대 가운데서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며 또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봉헌하는 주일입니다. 그동안 지원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 가운데 Young Park, Peter Ahn 군은 목사 안수를 받고 2세들을 위한 영어목회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또 유희자 전도사, 최동진 전도사는 VA연회에서 목사안수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저희 교회가 많은 내일의 지도자를 훈련하고 배출하는 터전이 된 것입니다. 알리는 말씀에 실린 것처럼 김상근 목사님, 김유민, 장기옥 전도사가 정회원 안수를 받게 되었고, 황의경 전도사는 준회원 허입을 위한 인터뷰를 3월에 가질 예정입니다. 또 한어청소년 사역을 돕는 이강욱 전도사도 목사 안수 준비과정을 시작했습니다.

한인이민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민 1세대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내일의 일꾼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 아니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미국교회를 변혁시킬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이 일은 결코 포기하거나 미룰 수 없는 우리의 과제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한인 이민자들을 위한 제일 먼저 문을 열었던 연합감리교회가 오늘에는 많은 한인 목회자들을 위하여 문을 열고 있는 사실입니다. 현재 한인 목사로서 미국인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회자의 수는 200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저희 VA연회에만 해도 6명의 목회자들이 미국인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모두들 열심히 헌신하고 있어서 미국인 교회를 새롭게 하는 역사를 낳고 있습니다. 전에 우리 교회를 섬기셨던 이효중 목사님도 작년에 미국인 교회로 파송을 받으셨는데, 아주 좋은 목회를 하고 있어서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시대를 이끌어 갈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 것인가? 찾고 계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한 한사람의 이야기를 이제 들으시겠습니다. 현재 Wesley신학교에 재학 중인 최동진 전도사님은 그동안 저희 교회 장학사역팀에서 지원해 온 전도사님으로, 어린이 교회와 캠퍼스 선교의 사역에 헌신하고 계십니다.

최동진 전도사 간증

지금 까지 제가 지내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끝이 없는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 까지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은 저를 돌보심에 소홀한 적이 없었습니다. 전 한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생각이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저로썬 감당하기 힘든 특혜를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전 목사의 자녀로 태어난 것에 대해 최근 3년 전 까지는 전혀 감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벗어나 보려고 애를 써온 것이 사실입니다.

전 지난 10 여 년을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끊임없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이 날 더 이상 간섭하시지 않을 만한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멀고도 먼 길이었고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전 그 과정 중에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 자신은 정말로 하나님과 멀리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사실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바로 생명의 끝임을 전 느낄 수 있었고 그 무섭고 두려운 느낌은 제가 다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언제나 죽고 싶은 게 사실이었지만 어쩐지 이것은 육체의 단순한 죽음과는 다른 그 무엇이었습니다. 제가 멀리 온 거리를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전 낙심해 있었지만 제 생각은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달리고 있는 동안에 제 곁에서 같이 달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다고 확신한 그 순간에도 바로 제 곁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을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은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탕자처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멀리 떠나 타국, 미국에 홀로 온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가 싫어서라기보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너무나 싫어서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겐 언제나 공급해 주시고 도와 주시고 대신해서 나의 짐을 짊어지시는 그런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하나님을 언제나 좋아했고 의지하고 따르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전 무슨 일이든 물건이든 필요하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반복된 응답 가운데 저와 하나님의 끈끈한 관계는 단 두 번의 걸친 하나님의 거절 이후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차가워 졌고 전 그 때 그 달음박질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전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되길 꿈꿔왔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나빠진 시력 때문에 전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 후 음악에 대한 열정에 사로 잡혀 작곡을 하기 원했지만 그 때도 주위의 반대 가운데 시작한 공부가 대학에서 낙방하는 결과로 또 한 번 좌절해야 했습니다. 그 때마다 전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든 탓을 하나님께 돌려 버렸습니다.

나의 삶이 나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하나님을 즉시 원망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은 나의 실패와 좌절의 원인이자 이유라고 결론 지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와 축복만을 주어야 하고 난 그것들을 받기에 너무나 당연한 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의 이 오만한 믿음이 제 자신을 지금의 이 자리까지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꿈들이 모두 사라지고 전 제 삶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거나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자. 전 진지하지도 신중하지도 않게 계획 없이 미국 와서 그냥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별로 관심도 없던 호텔경영이란 공부를 하게 되고 졸업을 위해 전 호텔에서 인턴으로 잠시 일해야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아리조나 주립대학교를 졸업 할 즈음, 하게 된 한 호텔에서의 그 인턴 일은 제가 앞으로 평생 동안 가야 할 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거의 인턴을 마치어 가던 어느 날 날마다 저와 함께 일하던 멕시칸들을 바라보며 왜 이들이 이런 노예 같은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미니멈 페이에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을 하루 종일 닦고 치우고 머리카락 하나만 나와도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멕시코 여인들의 불쌍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한편 전 하룻밤에 $5000 짜리 방에서 자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일을 안하고 부모가 준 돈으로 평생을 호텔에서 살다 죽어가고 있던 한 외로운 노인도 보았습니다. 전 그 때까지 $150,000 짜리 풀장이 있는 새집에 토요타 캠리 그리고 단란한 가족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제 인생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위해 바둥바둥 대는 나에게 하나님은 그 모든 제 꿈보다 훨씬 화려한 삶을 보여 주시고 또 훨씬 비참한 삶도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지만 제가 선택한 삶은 그 후자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전 6개월 동안 손님들 중에 단 두 사람 빼고는 그 호텔에서 진정 행복한 얼굴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 유일한 두 사람도 그리 세상이 볼 때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결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 호텔의 가장 싼 방에서 고작 2박3일 지내고 간 노부부이었습니다. 그 방은 창문이 뒷산 절벽을 2미터 간격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캄캄한 방입니다. 전 마음 속으로 ‘차라리 이런 곳에서 지낼 거면 조금 덜 비싼 호텔의 전망 좋은 방에서 지내다 가시지’ 라고 속으로 그들을 얼마나 처량히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제가 우연히 그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 오히려 그들의 미소가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발견한 또 다른 진정한 행복은 오히려 노예같이 일하는 멕시코 노동자들에게서 입니다. 멕시코 여인들은 언제나 스트레스에 절어 있는 그 보기 흉하게 찡그린 제 얼굴에 언제나 미소로 대했고 오히려 위로해 주곤 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전 그들을 채찍만 안 들었지 채찍 같은 제 권한으로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전체의 생계를 위협도 하고 다그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언제나 공평한 것, 근면한 것, 성실한 것, 뭐 그런 것들만이 제가 남을 평가하는 가치관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이지도 모르고 살았음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가족이 있었습니다. 돈보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버는 얼마의 돈은 그들이 가진 소중한 행복을 지키기에 충분했던 것이었습니다. 가끔 바쁠 때 오버타임할 사람을 찾으면 두 배로 페이한다고 해도 다들 정시에 퇴근해 버렸습니다. 결국 매니저 여럿이 모여 방청소를 해야 하는 일이 거의 주말마다 벌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반면 그 돈 많은 게스트들은 욕심과 교만에 늘 얼굴이 어두웠고 불만족이 가득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전 왜 그들이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저렇게 짜증을 낼까 매일 보면서도 신기해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아이들의 표정마저도 늘 짜증스러웠습니다.

제가 평생 벌어도 벌지 못할 그 돈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본 후 전 그들이 가진 그 돈에 대한 입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부와 명예 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그 절대적이었던 가치관을 전 깨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전 그 때부터 돈 많은 자들을 위해 또 돈을 지불하는 자들을 위해 내 인생을 사용하기보단 돈 없는 자들을 위해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내 인생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 보람 있고 후회 없는 일,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내게 그런 보람을 가져다 줄까? 전 많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또 나의 아버지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그 목회자의 길을 저도 가기로 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또 나의 아버지가 갔던 그 길이 분명히 나에게도 후회 없는 인생을 가져다 줄거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절대적인 확신의 소명이 없으면 아예 목회 할 생각도 못하게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소명, Calling from God, 저에겐 특별한 소명이 없었습니다. 그때 만해도 무엇인가 기도원에서 받아야 하는 죽었다 깨어나는 뭐 그런 하나님의 음성 같은 것이 제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아도 전 자격이 눈꼽만큼도 없는 자이었습니다. 제 주위의 사람들은 “니가 이제 진짜 할 일이 없구나” 라고 경멸하듯이 말하며 제발 그 일만큼만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 자신이 생각해도 전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때까지 한번도 제게 목회자가 될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반대하시던 분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신도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인생이 얼마다 비참했을까? 하시면서 허락을 하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진 한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목회는 다른 일과는 달리 “There is no turning back!” 한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경고 하셨습니다.

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 기도 아닌 조건 비슷한 협박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마지막 선택이자 결단입니다. 전 이 목회의 길을 갑니다. 아시지만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어서 갑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걸 아시죠? 하지만 전 갑니다. 하나님, 제가 이 방면에서 반드시 진짜로 크게 성공하게 해 주세요. 아니면 전 하나님을 아마도 다시는 찾는 일이 없을 겁니다. 아멘” 아마도 나의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어처구니가 없어 제 기도에 응답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워싱톤으로 온 이후 하나님은 제가 구하는 모든 것을 즉시 즉시 들어 주셨습니다. 제가 지난 30년 동안 경험한 그 어떤 은혜와 축복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을 제게 부어 주셨습니다. 제 자신의 부족함은 언제나 제가 넘어지고 쓰러지게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그 쓰러짐을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셨습니다.

우연히 웨슬리란 신학교를 알게 되고 얼마의 장학금이 있다고 해서 이곳 워싱톤까지 삼천 마일을 운전해 왔지만 그 장학금이란 게 사실과 달리 많이 부족한 것을 알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고 학업을 즉시 중단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 절망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못하는 금식을 했습니다. 왜냐면 전 여기서 돌아가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금식을 오래 안 한다는 것을 아셨는지 즉시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기도한지 이틀만에 조목사님의 전화가 바로 그 응답이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모아준 장학금으로 전 지난 2년 동안 학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전 지난 2년 반을 제가 그전까지 살아 온 30년 보다 더 소중히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 삶 속에 실제로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전 한마디로 앞으로 넘어져도 축복이고 뒤로, 옆으로 어디로든 제겐 축복 뿐 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불행이 행복으로 절망이 기쁨으로 실패가 감사로 되어지는 이런 제 삶을 말입니다. 전 고난이 감사합니다. 그 고난은 제겐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전 그동안 그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오히려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를 아무거로든지 사용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전 하나님의 뜻을 평생에 처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단 한번의 그 순종이 제가 완전히 제 삶 전체에 대해 생각을 바꾸게 했습니다. 불만에서 만족으로 말입니다. 만족은 곧 감사로 이어졌고 그 감사는 기쁨이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제겐 또 다른 한가지 큰 감사이자 자랑이 있습니다. 전 와싱톤 한인교회에 교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 자랑입니다. 한인 연합 감리교회에서 이 보다 더 큰 자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자랑하는 이유는 여러분 때문입니다. 전 실지로 여러분에게서 신학교에서 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전 여러분의 겸손을 배웁니다. 여러분의 감사를 배웁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배웁니다. 그리고 전 여러분의 하나님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보답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대를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사랑을 증거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여러분과 함께 살아있는 하나님의 증거자로 부르셨습니다. 전 이제 그 소명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 길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