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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6. 권사취임/장로장립 예배 - 조영진 목사

"너희도 이렇게 행하라"

요한복음 13:1-15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씻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또 세상 속에서 발 씻어주는 사명에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의 본을 따르고 있습니까?
진실된 사랑과 섬김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요즈음 목회자나 평신도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들을 뽑는다면, 그 단어들 속에 꼭 포함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leadership, 지도력이란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Spirituality, 영성이란 단어입니다. 제가 Wesley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1980년도 초 만해도 이 두 단어는 그렇게 널리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이 두 단어를 빼어 놓으면 목회나 신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단어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최근에 들어와서 leadership, 지도력에 대한 관심은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아니라, 사회전반, 특별히 기업에서도 이 말은 폭넓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leadership에 관한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던 교회가 새로운 목회자가 부임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 가는 모습들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지도력의 문제는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평신도의 지도력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목회자가 좋은 교회로 자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좋은 교회 곧 좋은 평신도들이 좋은 목회자를 길러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력의 문제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통털어서 중요한 과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권사님들과 장로님들을 세우는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있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I.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을 말할 때마다 강조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섬김의 지도력, Servant leadership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섬김을 받는 사람이 크지만, 너희 가운데서는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사람은, 위대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은 세상의 지도력과는 다른 모습을 갖습니다. 섬기는 종으로서의 리더쉽,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준 리더쉽의 참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 섬김의 지도력을 말할 때마다 인용되는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12제자 가운데 이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하게되는 단계에 이른 이때, 주님께서는 저녁을 잡수시던 중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 차례가 되자 그는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신다는 사실에 당황하여서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말씀에 따라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청했지만, 발만 씻으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 발씻김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 사건은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3:1을 보면; "유월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들,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가장 귀한 사랑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행동 속에 나타났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끝까지"라는 말을 성경학자들은 두가지 의미로 이해합니다. 첫째는 최고의 사랑으로, 비할데 없는 가장 큰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to the last moment,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예수님 안에서 씻김을 받았습니다.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씻어주심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여기 함께 앉아서 예배드린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씻어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예수님의 정결케 씻어주시는 역사 때문에 세워졌고 또 오늘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황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씻어 주시지 않았다면,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보배스러운 피로 씻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는 인생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인생들입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씻어 주신 그 사랑 때문에, 그 대야 아니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씻김을 받았습니다. 용서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제를 용서받고 오늘을 그분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내일을 소망 중에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드릴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II.

이렇게 큰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하여 너희도 행하게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기에 발을 씻어 주셨을 뿐아니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발을 씻어주는 이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본받아 발을 씻어주는 삶이란 어떤 삶을 뜻합니까? 피할 수 없는 주님의 이 명령 앞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형제의, 자매의 발을 씻어 주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줍니다. 당시에는 오늘처럼 양말도, 구두도, 운동화도 없었습니다. 맨발에 sandal같은 것을 신었기 때문에 먼지 가득한 길을 걸은 그 발이 어떠했겠는지는 여러분께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손님이 오면 먼저 발을 닦을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때묻고 먼지 투성이인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발을 씻어주는 사랑이란 어떤 사랑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얼룩지고, 때묻고,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감싸주고 씻어주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사랑은 예수 안믿는 사람도 합니다. 이런 정도의 사랑을 위하여 예수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은 이런 5리 가는 세상의 사랑에서 한걸음 나아가 10리가는 사랑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마음에 안드는 사람, 추하고 더러운 삶의 모습, 그 모습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의 발을 씻어 주셨겠습니까? 안씻어 주셨겠습니까? 씻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후 가롯 유다의 반역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한조각 찍어서 가롯 유다에게 주시자 그가 떡을 받은 후 나갔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의 발도 씻어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대적하는 반역자까지도 발을 씻어 주신 사랑, 이런 사랑의 삶을 살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2) 둘째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 사건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주님께서는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그 표현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을 뿐 아니라, 끝까지, 마지막까지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표현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끝까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명령하신 그 밑바닥에는 바로 이 끝까지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하루 사랑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한달 사랑하는 것 할만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to the last moment의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사랑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다가 지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성질대로 한번 내뱉고 싶은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사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사랑은 참을 수 밖에 없습니다. 참음이 없는 사랑은 결코 참 사랑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 13:4 이하에서 사랑은 무엇으로 시작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참음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13:7에서 사랑은 무엇으로 끝납니까?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참음, 견딤으로 끝납니다. 참음에서 시작되어 참음에서 끝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은 바로 이같은 사랑입니다.

목회자에게서 깊은 좌절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는 교우들의 삶 속에서 좀처럼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만큼 설교했으면 변해야 되지 않을까? 그만큼 신앙생활 했으면 이제는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데, 변화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내가 뭐하고 있는가? 자책해 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속장님들, 평신도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점차 깨달아 가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격 형성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처럼 변화도 서서히 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왜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변화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기다림과 참음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사랑, 이 끝까지의 사랑을 행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씀 속에서 이 끝까지의 사랑을 부탁하셨습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진정한 사랑, 우리 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낮아짐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당시 관례에 의하면 발을 씻어 주는 일은 종이나 낮은 신분의 사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일 이었습니다. 당시의 관습과 전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낮추심 때문이었습니다. 겸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낮추심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주님께서 자신을 비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6 이하의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과 같은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시지 않고 그 영광, 그 특권을 비우시고, 포기하시고, 종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오셔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정도로 낮추셨습니다. 아니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 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 모든 낮추심은 바로 비움에서 가능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위하여 겉옷을 벗으셨다는 이 말씀 속에서 바로 이 비우심을 새롭게 느껴봅니다. 계급장을 떼신 것입니다. 낮아지시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섬김의 삶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시렵니까? 낮추셔야 합니다. 낮춤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낮춤을 위해서는 비우셔야 합니다. 학벌도 비우셔야 합니다. 경력도 비우셔야 합니다. 비움이 없이는 낮춤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낮춤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랑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지난 1996년 9월 세상을 떠난 Henry Nouwen 교수는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또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명성을 날리던 그였습니다. 그가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울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혼을 옥죄어 오는 허탈감과 무력감 속에서 Upward Mobility,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던 삶을 멈추었습니다. 유명 신학대학원 교수직을 사임하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정서장애인들이 모여사는 Daybreak Community에 가서 남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Upward Mobility가 아닌 Downward Mobility, 저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는 바로 저 낮은 곳을 향한 삶 속에서 진정한 평안과 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참된 사랑의 삶을 위하여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낮아진 삶을 위하여 타이틀도, 명예도, 자부심도 비웠습니다. 비움으로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III.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진정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이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씻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스스로를 비우고 낮아져서 추하고 아픈 인생의 모습을 용납하고 감싸며 씻어주고 참고 기다리면서 끝까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리더쉽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의 리더쉽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봉사할 수 있지만, 그 근본은 바로 사랑입니다. 성도들을 사랑함이 없다면, 여러 가지 봉사와 사역이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지도력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지도력이란 바로 사랑 위에 세워지는 지도력입니다.

(2)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지도력은 바로 본을 보여줌에서 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섬기라고 말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서로 씻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본을 보여주는 지도력,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지도력입니다. 말만 앞서는 지도력은 결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먼저 본을 보여줄 때, 먼저 앞장서서 걸어갈 때, 그 지도력은 능력있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열매맺는 새 날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세움을 입으시는 권사님들, 장로님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세우심을 받은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도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교우들도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전임 목회자들도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교회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셨던 다일교회 최일도 목사님의 말씀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 목사님께서는 "섬김이 무엇입니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다일공동체가 점차 알려지면서 교회들 가운데서 그곳으로 수련회를 오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연세가 지긋하신 장로님께서 청년 39명을 데리고 다일공동체로 수련회를 오셨습니다. Homeless People처럼 길에서 자면서 고생을 하는 수련회인데 잠자리는 그냥 길에서 잔다고 해도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최목사님께서 하루는 일찍 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가셨는데 벌써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금방 뒤로 두 명이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신 분이 도무지 나오시지를 않는 것입니다. 앞에선 학생이 장로님께서 들어가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장로님, 대강 끊으시고 나오시지요. 지금 다섯 명이 줄을 섰습니다." 장로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납니다." 그리고는 또 2분이 흘렀습니다. "장로님, 급합니다. 대강 끝내시고 나오시라니까요." 그런데 장로님은 "조금만 .., 조금만 더 .."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참다못해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문 좀 여시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문이 조금 열렸습니다. 보니까 놀랍게도 장로님께서는 맨손을 넣고 막힌 변기를 뚫고 계셨습니다. 누군가 넣지 말아야 할 것을 넣어서 변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장로님께서는 최목사님을 보시며 "이제 됐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께서 "장로님, 우리 공동체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그걸 맨손으로 뚫으셨어요?"라고 말하자 장로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목사님, 장로가 뭡니까? 궂은 일 하는 게 장로지요. 죄송합니다. 조금 빨리 했어야 하는데." 최목사님께서는 그 장로님을 보내고 목이 매여 기도하셨습니다. "아! 아! 세상에, 한국교회에 아직도 이런 장로님이 계시다니." 그리고 그날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께는 제가 아무런 설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장로님만 본받으면 됩니다. 이런 장로님과 함께 신앙생활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진정 행운아입니다."

다 화장실 달려가실 필요 없습니다. 사랑의 삶은 장로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삶을 살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