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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 조영진 목사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5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고 증거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새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지난 1월 2일 California의 Santa Barbara에서 거행된 저희 장모님의 추모예배는 은혜 가운데 잘 마쳐졌습니다. 저희 집사람과 저희 가족들을 위해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교우 여러분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주일 그래도 3부 예배에는 참석하려고 L.A.에서 밤 비행기를 탔습니다만, 비행기가 Cargo에 문제가 생겨서 2시간 가까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Minneapolis에서 연결 편을 놓쳤고, 또 주일 오후 Washington에 눈이 내려서 도착이 지연되어 예배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제 잘못은 아닙니다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새로 밝아 온 2003년 저희 교회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표어 밑에서 한해를 기도하며 함께 노력하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평탄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신 교우들께서는 가슴에 와 닿으시는 것이 별로 없으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교우들의 삶은 모두가 그렇게 평탄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저희 목회실 staff들이 함께 새해를 준비하는 수양회를 가질 때, 오랜 시간 이야기된 것도 바로 오늘 교우들이 겪는 갈등과 아픔, 문제와 어려움들이었습니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나누는데 함께 힘을 모으기로 해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 라는 표어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I.

오늘 봉독해 주신 이사야 40장의 본문 말씀은 신약에서도 세례 요한의 사역과 연결되어 소개되는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사야서에 대한 이해에서 두 가지 다른 입장을 말합니다. 첫째 그룹의 학자들은 이사야서 66장 전체를 주전 8세기 중반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 이사야 한사람의 글로 봅니다. 반면에 다른 그룹의 학자들은 40장 이후에서 발견되는 역사적인 상황이나 문체의 상이함을 비롯한 여러 가지 차이점을 들어서 40장부터 66장까지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예언자의 저술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제2 이사야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아침 저는 이런 성서적인 연구의 자세한 내용을 소개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분명히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지금 고난과 역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의 멧세지를 선포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위로하면 좋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위로하도록 노력해 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름받은 종들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위로하라고,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위로의 멧세지를 고난과 역경,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진 백성들에게 외치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이 부분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이 말씀이 갖는 의미는 더욱 가슴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금 유대백성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 땅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든 고향, 다정했던 친구들을 떠나서 낯선 땅에서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유대백성들에게 예언자는 외칩니다: "이제는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하심을 받게 되었다." 고통의 날은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이제 새 역사를 이룩하실 것을 기다리며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로의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맛을 되찾게 해주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II.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변함없으신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시간도 성령을 통하여 위로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참된 위로는 바로 이 하나님, 이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만 깨닫고 체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진정한 위로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픈 가슴 싸매어 주시고 병든 인생 고쳐주셨습니다. 방황하는 인생 붙들어 주셨고, 주저앉은 인생 일으켜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비록 아버지께로 돌아가시지만, 우리에게 위로자 되시는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보혜사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helper, 도와주시는 분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comforter,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신 성령님은 오순절에 결정적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도 위로의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위로의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2) 둘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내 백성이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 그 모임은 바로 위로의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맛보고 또 그 위로를 나누는 공동체, 위로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공동체였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와싱톤 한인교회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나누고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고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교회를 통하여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위로의 사명을 우리 교회에 맡겨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나오시는 것이 얼마나 즐거우십니까? 교회 나오실 때 소가 고삐에 끌려나오듯 마지못해 나오셔서 여기 앉아 계신 분은 혹시 안 계십니까? 교회 안에서 믿음생활 하시면서 이 하나님의 위로를 얼마나 맛보고 계십니까? 또한 내 백성을 위로하는 일에 얼마나 참여하고 계십니까? 교회는 위로를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한 위로를 나누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 그 은혜 안에서 임하는 위로를 맛보고 나누라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를 세우시고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도 이 위로하라는 명령을 이루어 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일은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사명은 바로 우리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교회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위로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가 체험한 위로, 우리가 체험한 사랑을 나누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금번 저희 장모님의 장례 과정에서 저는 교회가 갖는 이 사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체험하였습니다. 주일예배 참석하는 사람들이 100명이 안되는 작은 교회였지만, 암으로 고통을 겪는 저희 장모님께 부어주신 교우들의 사랑과 위로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진실된 가슴을 안고 슬픔을 나누고,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늦게서야 예수님을 믿게되신 장모님께서 만일 교회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정말 교회의 존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새롭게 확인하고 느껴 보았습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우리는 좀 더 가슴을 열고 멀리 내다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위로의 역사는 교회 안에서만 머물 수 없습니다. 이 역사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 속에서도 증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거대한 물길은 세상 한복판으로도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내 백성의 의미는 좀 더 넓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의 백성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당신께서 지으신 모든 백성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깨닫고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명 사랑과 대견스러움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데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분명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을 위로하라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저들도 위로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소유에 소망을 걸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인생들을 바라보시며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부탁하십니다: "저들도 위로하라"

교회는 세상 속에 이 위로를 전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외롭고 힘들게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위로를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좌절과 낙심 속에서 주저앉아 있는 인생들에게 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바로 세상 속에 이 위로를 전하라고 세움을 입었습니다. 재물이나 소유가 주는 위로가 아닙니다. 참된 위로, 영원한 위로,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이 위로를 전하고 알리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아침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 위로를 전하라고.

III.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표어 밑에서 저희들은 2003년을 열었습니다. 금년 한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계획들을 통해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전할 것입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이 위로의 역사를 우리들 가운데서 맛보고 나눌 뿐 아니라, 눈을 들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 이 위로의 소식을 전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이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위로하라"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위로하는 사역은 결코 option,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수적인 것이고, 마땅한 것입니다. 당연히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원목실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김복남 전도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병으로, 절망으로 고통하는 많은 사람들을 오늘도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도구로 헌신하고 계신 분인데, 그분이 쓰신 "아침은 늘 눈부시다"라는 책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 전도사님의 남편은 농협대학의 교수로 가르치시면서 신실한 믿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사십이 넘으면서 직장암의 발병,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다시 재발해서 결국은 죽음의 날이 가까워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도사님의 남편은 환자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자기가 아팠기 때문에 자기와 같이 아픔을 겪는 다른 형제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 그대로였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 남편이 하루는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여보, 나 하나 살아보겠다고 이 기도원 저 기도원 다니고 이사람 저사람 찾아다니면서 안수받을 게 아니라 죽기 전에 전도를 해야겠어. 그래도 전도하다가 죽으면 순교가 아니냐구." 그때 전도사님은 웃었습니다. "당신이 전도를 하다니요? 전도도 건강할 때 이야기지, 지금 그 몸을 해 가지고 어떻게 전도를 한다고 그래요, 당신은 누가 보아도 죽어 가는 암환자인데... 해골같이 비쩍 마른 당신이 어디서 어떻게 예수를 전한다는 말이에요?" 남편의 제안은 믿음 없는 나로서는 터무니없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이 오히려 딱하게 여겨졌습니다. "암이 낫게 되면 그때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세요. 하지만 그 몸으로는 절대로 안돼요. 오히려 하나님 영광만 가린다구요.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했는데도 왜 낫지 않느냐?고 하면 뭐라고 할래요? 한 발짝도 떼기 힘든 당신이 어떻게 전도를 한단 말이에요? 여보, 하나님의 은혜로 암이 나으면 그때 우리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 다니면서 간증하고 전도합시다. 그때까지는 안돼요."

전도사님의 말은 무척이나 논리적으로 들렸겠지만 남편의 신앙은 논리를 떠나 있었습니다. "전도가 뭐 내가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인 줄 알아? 전도는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구, 병들었으면 병든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신다구."

남편은 고집을 부리며 가까운 일신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갈현동에 위치한 그 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들이 많은 준 종합병원이었습니다. 워낙 진지하게 간청하는 바람에 데려다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환자들 앞에서 남편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버티고 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불광동에 있는 은광교회 이한태 집사입니다. 저는 86년도에 결장암에 걸렸다가 직장암으로 전이가 된 사람입니다. 수술을 세 번 받고 방사선 치료도 40여 회를 받았지만 낫지 않아서 지금은 병원치료를 중단한 채 기도에 전념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기저귀를 차고 삽니다. 지금 이 시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한 통증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아픔 가운데서도 평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자기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는 남편을 별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함께 갔던 교회의 집사님과 권사님은 무안하기도 하고 남편이 안타깝기도 했던지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서 계셨습니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에 남편은 다시 그곳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지난번 그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도저히 갈 수 없다고 남편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집사님과 함께 그 병원으로 갔습니다. 남편은 지난번에 갔던 병실을 다시 찾아가서는 지난번과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 속이 상했기에 앞으로는 남편이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3일 후 남편은 또 고집을 부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그 병실에 데려다 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줄기차게 부탁을 하는지 어쩔 수가 없어서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그 병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마치고 병실을 나서려 하자 환자 한사람이 따라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이 선생님이라고 했지요. 이제 그만 오세요. 내가 예수 믿겠습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전하는 예수라면 진짜 예수입니다. 그동안 저는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길거리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동네에서도 전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심지어 암도 낫는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암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예기하며 예수를 전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그렇게 아픈데도 여기까지 와서 전하는 예수라면 믿어야 할 가치가 있는 예수입니다. 당신이 믿는 그 예수를 내가 이제부터 믿겠습니다." 암이 나아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암이 나아야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비록 암으로 죽어가고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했을 때, 그 위로를 나누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생명을 건져내는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집안 어른들은 "너희들이 그렇게 예수 열심히 믿고, 아범이 그렇게 '예수 예수' 했는데 왜 죽느냐? 예수가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전도사님은 예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소망이요, 예수님이 생명이요, 예수님이 갈 길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은 예수 잘 믿던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도 여전히 예수를 믿고있는 나를 이해하기가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난 어느 날 시댁 어른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굉장히 완고하여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그토록 예수님을 전해도 꿈쩍도 안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분이 전화를 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범이 죽었을 때는 예수 믿을 필요없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아이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신 것 같구나. 아범이 죽은 뒤에도 너희 교인들이 한결같이 너를 도와주고, 너에게 신학교 공부시켜주고, 너희 집에 와서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는 그 모습을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나도 이제부터 예수님 믿어야겠다." 결국 시어머님부터 시작해서 시동생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지금은 다들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위로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의 고통보다 훨씬 위대하고, 훨씬 깊고, 훨씬 풍성합니다.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니 명령하고 계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교회는 바로 이 놀라운 위로가 맛보고 체험되는 곳입니다. 이 위로가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놀라운 위로는 교회 밖을 향해서도 증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세상의 사람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위로,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 앞에 나아오십시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를 나누십시다. 그리고 전하십시다. 주님은 오늘도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