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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9. 조영진 목사

"풍족하신 주의 은혜"

고린도후서 12:1-10

몸의 가시가 제거되기를 세 번 기도했던 사도 바울, 그러나 주님의 응답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과 아픔의 해결에서는 나타나지만, 아픔이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며 더욱 풍성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고도 넉넉하게 느끼며 살아가십니까?
내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헤아려 보십시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은혜"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그만큼 자주, 그만큼 넓은 의미로 쓰여집니다. "은혜스럽다," "은혜 받았다," "은혜의 복음" 등 "은혜"를 빼놓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은혜라는 말은 본래적으로 유쾌함, 쾌활함의 뜻을 갖습니다. 또 어떤 때는 친절한 태도 혹은 호의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은혜라는 말의 의미를 가장 깊이 있게 또 폭넓게 발전시킨 사람이 있다면,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를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가장 현저한 특징으로 소개했습니다.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임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그 넓고도 크신 사랑, 대가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놀라운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 여정 속에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느끼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는 먼 거리에 있는 그런 쓰라린 삶의 경험과 현실을 맛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 것일까? 정말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실까?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이런 아픔이 내게 있는 것일까?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고난이 찾아올 때입니다. 비극이 찾아올 때입니다. 예기치 않았던 질병과 아픔이 찾아올 때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입니다. 세월이 흐르는데도 도대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더욱 가중되어지고, 이 고통을 넘어설 힘과 용기는 쇠잔해져 갈 때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신 것 같은 침묵만 느껴질 때입니다.

I.

오늘 봉독해 드린 고린도후서 12장의 말씀도 바로 이 고통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문 12:1-5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신비한 영적 체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셋째하늘 곧 삼층천에 이끌려 간 엄청난 은혜의 체험을 했습니다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길이 없는 이 놀라운 체험을 통해서 그는 말할 수 없는 말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신비의 체험과 대비되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몸에 있는 가시였습니다.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가시를 여러 가지로 추정해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질병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메섹에 가는 도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눈이 멀었다가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진 경험을 근거로 눈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그는 육체에 가시 같은 아픔,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능력의 종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여행길에서 그는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는 많은 병고침의 역사가 나타나서, 사람들은 바울의 몸에 걸쳤던 앞치마와 그가 사용한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자 위에 놓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행해 온 바울이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병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이 병이 떠나가기를 세 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전도에 어려움을 안겨주는 이 육체의 가시가 뽑혀지기를 하나님께 구하고, 구하고,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기대 밖이었습니다. 병은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픔과 외로움, 고통과 실망을 안겨주는 육체의 가시는 뽑혀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바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이 주님의 응답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병을 고쳐주시지는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하고 풍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병이 낮지도 않았는데, 은혜가 넉넉하긴 뭐가 넉넉합니까? 과연 이 사도 바울의 고백에 우리 모두도 동의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사도 바울에게 풍족한 것이었습니까?

II.

오늘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넓고도 깊은 은혜를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망했던 사업이 다시 회복되는 것, 잘 안되는 일이 풀려서 해결되는 것, 이런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고침받고, 형통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으로 병든 몸 고쳐주시고, 망한 것 일으켜주시고, 어려운 문제 풀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겠습니까? 만일 병이 그대로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간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버려진 존재들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분명히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No"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병고침을 받지 못해도, 사업이 망한 채로 있어도, 고난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고도 넉넉할 수 있다고 외칩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 하박국이 노래한 것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의 소가 없을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병이 낫지 않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사업이 여전히 부진해도, 청소년 자녀들이 자꾸만 곁길로 나가도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그리 아니하시는 이 때에야 말로 더 깊고 더 오묘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때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육체의 가시를 고쳐 주지 않으시면서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고도 넉넉합니까?

(1)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고난과 아픔의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진 때가 아니기에 그 은혜는 넉넉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인생에 어려움과 역경이 몰아쳐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병에 걸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까? 사업에 실패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의 손길을 거두신 것입니까? 직장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분 따라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존재에 기초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은 외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 안하실 수 없습니다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이 사랑 위에 기초하기 때문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변덕스러울 수 없습니다. 그 은혜는 꾸준합니다. 여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공의 때만 그 은혜가 넉넉한 것이 아닙니다. 변함이 없으신 우리 주님의 은혜는 실패의 때에도 넉넉합니다. 질병의 때에도, 고난의 때에도 넉넉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을 부르짖은 사도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2)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을, 질병을 제거하여 주시지는 않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질병을 고쳐주실 수도 있지만, 질병은 그대로, 낫지 않은 채 있지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심으로 넉넉하게 임할 수 있습니다. 고쳐 주시는 것도 은혜이지만, 그대로 두고 이길 힘을 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기억케 되는 어른이 계십니다. 그분은 오래 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이규택 박사님이십니다. 이규택 박사님은 이종호 집사의 부친으로서 동맥경화증의 연구로 널리 알려진 병리학자이셨습니다. 성격도 좋으시고, Golf도 잘 치시며, 승마도 즐기셨던 선생님께서는 은퇴하신 후 워싱톤에 이주해 오셨습니다. 한국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장으로 후배들을 길러내시던 중, 어느 여름방학 때 그만 간암이 상당히 진행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미 늦어서 수술을 받으실 수 없게된 상황에서 선생님은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시며 마음을 여셨습니다. 추수감사절 오후 George Washington 대학 병원 병상에서 우리 주님을 영접하시고 세례를 받으신 선생님께선 고통속에서도 학교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쯤인 것 같습니다. 병원으로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께선 고통을 다스리기 위하여 상당량의 진통제를 맞으시면서 싸우고 계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야기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통제 때문에 잠깐 잠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다시 성경말씀을 읽고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내가 참 행복합니다." 저는 평생 이 말씀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 속에 계십니까? 정말 행복할 수 있는 때입니까? 간암의 마지막 단계에서 고통을 느끼고 계신 상황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선생님께선 "행복하다"는 이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암이 나아서 행복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암은 그대로 있었지만, 생명의 불꽃은 꺼져가고 있었지만, 이 고통을 뛰어넘는, 훨씬 뛰어 넘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셨기에 행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박사님을 추모해서 가족들이 바쳐주신 저 성전 안의 피아노를 볼 때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느끼고 새겨 봅니다. 그리 아니하심에도 불구하고 넉넉한 우리 주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3) 셋째로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가 넉넉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가시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가시가 유익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비록 육체의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가시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외칩니다: 이제 나는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약함이야말로 나를 겸손케 만들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약함과 내가 받는 고난, 핍박, 가난함, 이 모든 것을 기뻐합니다, 자랑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야말로, 약함 속에 머무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내가 참으로 강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유익함을 가져다 줍니다. 좋은 일만이 아닙니다. 모든 일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실패도, 질병도, 좌절도, 고난도 다 유익함을 가져다 줍니다. 비록 우리가 실수하고, 우리가 저지른 얼룩과 실패라 해도 주님께서는 이 아픔, 이 얼룩을 아름다운 것으로, 유익한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니 이 은혜가 넉넉하지 않습니까? 이 은혜가 풍성하지 않습니까?

시편기자는 119:71, 72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금은 보다 승하니이다." 고난 당한 것이 오히려 유익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주의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육신의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세 번 부르짖었어도 여전히 떠나지 않는 그 가시 속에서, 넉넉하고도 풍족한 주의 은혜를 깨달은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James Packer, Gordon McDonald, John Maxwell 같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믿음의 사람들 9명의 고백이 담긴 "The Desert Experience", 우리말로는 "광야의 은혜" 라고 번역된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모두가 버려지고 분리된 것 같은 광야의 경험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괴롭고 힘든 고통의 순간들이야말로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자신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음을 하나같이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야의 때야말로 우리 주님의 은혜, 그 넉넉하신 은혜를 더 깊고 더 넓게 그리고 더 뜨겁게 느껴본 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가시가 우리를 괴롭혀도 여전히 주님의 은혜는 풍족하십니다. 풍성하고도 넉넉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는 족합니다.

III.

2002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희망과 기대를 안고 시작된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평탄한 한해는 아니었습니다. 굴곡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교우여러분 가정가운데도 고난과 아픔이 멈추지 않았던 가정들도 많았습니다. 일년을 줄기차게 기도했는데도, 세 번이 아니라 열번, 백번을 기도했는데도, 응답의 음성은 들려지지 않는 안타까운 한해를 보내신 가정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일이 형통하고 잘 풀린 가정도 있으실 것입니다.

이 한해를 보내는 송년주일,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한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의 은혜는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은혜는 오늘도 넉넉합니다. 가시가 뽑혀도, 아니 뽑혀도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된 분들이 아니십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셨기에 울면서라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아픔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시도 그리스도안에서는 유익한 것입니다. 그 유익함은 먼 훗날 깨달아질지 모릅니다. 지금 아니면 먼 훗날 우리도 바울처럼 외치게 될 것입니다. 이 가시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 통로였다고. 내가 약할 그때 정말 나는 강했다고. 그분의 넉넉하신 은혜 때문에. 그분의 풍족하신 은혜 때문에.

독일의 한 중년 그리스도인이 대학병원 수술실에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혀에 암이 퍼져서 부득불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이 없으십니까?" 이제 수술을 받으면 글로는 쓸 수 있겠지만, 혀를 사용해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간호원, 조수, 집도 의사 등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습니다. 둘러선 사람마다 나라면 무슨 말을 할까? 누구를 부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환자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함으로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풍족하신 은혜 앞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바로 그 말입니다.2002년 한해를 마감하면서 드릴 수 있는 말도 바로 그 말입니다. 비록 가시가 우리를 찌르고, 고통이 우리를 괴롭혔어도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 말입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