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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5. 그리스도인과 재물(6)/강림절 셋째주일 - 조영진 목사
재물의 상속에 관하여
레위기 25:8-12
청지기의 마지막 숙제는 재물을 자녀들에게 상속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멧세지를 전해줍니까?
재산 상속의 문제에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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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첫 주일부터 "그리스도인과 재물"이란 큰 제목 밑에서 드려온 연속설교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연속설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함께 생각하며 동참해 주신 교우 여러분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연속설교의 마지막 주일 저는 재물의 청지기,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숙제, 재산의 상속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동양과 서양, 좁혀 말해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혹은 정서적인 차이 가운데 하나로 유산의 상속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많이 달라져서 재산의 사회 환원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평생 모은 재산은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양, 특별히 미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은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보다는 사회에 환원해서 의미있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미국에서는 대를 이어서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기업이 자손들에게 상속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 아침 저는 재물의 상속 문제에 대하여 동,서양을 분석 비교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그럴만한 실력도 없습니다. 제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이 재산의 상속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재물의 관리인 된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속관에 대한 문제입니다.
I.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군데군데 말씀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또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구절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김동호 목사님께서 쓰신 깨끗한 부자 라는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김 목사님께서는 유산 상속의 문제를 구약에 기록되어있는 희년과 연결 지으셨는데, 이것은 참으로 탁월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레위기 25장 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희년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안식년에는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는 일을 금함으로 땅을 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일곱 번 지킨 후, 50년째 되는 해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년으로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희년이 되면 그동안 가난해서 종이 되었던 사람들은 풀려나서 자유인이 되었고,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땅의 경작권을 빼앗겼던 사람들은 자기 땅을 다시 찾아 농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다만 경작권만이 오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희년의 제도는 성경적인 경제법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1) 첫째로 희년 제도는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돈이 많다고 해서 땅을 살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땅의 경작권만을 취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취한 경작권도 희년이 되면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부동산 투기가 일어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땅을 살 수도 없었고, 또 설사 샀다고 해도 50년째 되는 희년이면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여러사람의 땅의 경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희년이면 다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부익부,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익빈,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 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희년 제도는 부가 일부에 편중되는 것을 막고, 50년에 한번씩 나라의 부가 공평하게 배분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2) 둘째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 제도는 언제나 희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게 살아도, 토지의 경작권을 빼앗기고 종으로 살아도, 희년이 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인생이 실패했어도 그들은 또 한번의 기회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한번 가난해지면 영원히 그 굴레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희년을 통해서 그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3) 셋째로 희년 제도는 하나님께서 땅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생명은 온전히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믿음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식년을 맞아서 농사를 짓지 않게 될 때, 왜 그들에게 먹고 살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또 희년이 다가와 모든 것이 원상 복구 될 때, 그동안 누리고 가져왔던 사람들에게 왜 불평과 불만이 없었겠습니까? 그들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넉넉히 공급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년, 희년 제도는 단순한 경제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세워진 경제법 혹은 토지법이었습니다.
II.
여러분, 이같은 희년의 제도가 재산 상속의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희년 제도를 오늘 이 시대에 그대로 실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의 사회 구조나 경제 제도가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년 제도가 지녔던 그 근본정신은 오늘 이 시대 속에서도 실현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가지지 못한 사람, 불우한 형제와 자매를 돕는데 쓰는 것입니다. 희년 제도의 초점은 바로 부의 상속을 막음으로 빈부의 격차가 사회 속에서 심해지는 것을 막는데 있었습니다. 우리도 재산을 자녀들에게 상속시키지 않는다면, 부의 상속을 막을 수 있고, 환원된 유산으로 빈부의 격차를 줄여가는 데 이바지 할 수 있습니다. 또 희년 제도가 많은 가난한 사람, 종된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처럼, 사회로 환원된 부는 바로 많은 가난한 사람, 갇힌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 희망을 불어넣는 데 쓰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1) 이렇게 볼 때 재물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희년의 정신을 오늘 이 시대 속에서 실천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관리인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혜롭게 감당해야 할 마지막 숙제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한푼도 남겨주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조금 남겨주는 것까지 탓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조금이 얼마인가가 사람에 따라서는 다 다르겠습니다만 제 힘으로 굳게 서서 살아갈 수 있는 자녀라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재물의 관리인된 우리가 주인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는 길입니다.
(2)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희년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물려 준 재물이 우리의 자녀들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자신의 땀을 쏟지 않은 재물을 상속받음으로 그 인생이 망가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습니다. 또 남겨준 재물 때문에 형제 혹은 자매 사이가 깨지고, 서로를 원망하고 질시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유산을 남겨주면 자녀는 사라지고 상속자만 남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백만장자였던 강철왕 Andrew Carnegie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전능한 돈(Almighty dollar)을 맡기는 것은 almighty curse, 전능한 저주이다. 어느 누구도 많은 재물과 같은 burden, 짐으로 자녀를 핸디캡으로 만들 권리가 없다. He must face this question squarely; will my fortune be safe with my boy and will my boy be safe with my fortune? 우리는 이 재물이 내 자녀들 손에서 안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지만, 내 자녀들이 이 재물로 안전할 것인가?도 물어야 한다."
(3) 또 남겨준 재물이 내 뜻과는 관계없이 잘못 쓰여질 가능성도 우리는 배제할 수 없습니다. 땀과 눈물을 쏟아 모아온 재물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죄악된 길에 쓰여진다면, 이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회 속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쾌락과 타락의 도구로 쓰여진다면, 재물의 관리인된 우리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다한 것이겠습니까? 청지기로서 주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170억불을 출연해서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웠습니다. 이 재단의 첫 사업으로 빌 게이츠는 어린이용 백신을 위한 재단에 7억5천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훌륭한 것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부쉬 대통령이 재산세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제안하자, 이를 제일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이 빌 게이츠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재산세와 상속세를 폐지하면, 부자들의 자손들만 더 부자로 만들고, 노력하는 서민들에게는 피해를 줄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와 경제 그리고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 반대했습니다. 그는 재산세를 위한 백만장자 모임을 조직하고, 데이비드 록펠러, 조지 소로스 같은 부자를 설득하여 재산세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이를 알리는 광고를 신문에 싣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큰 부자들 120명에게 이 반대 청원서에 서명해 줄 것을 권유했는데,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의 4대 부자 가운데 한사람이고, 투자의 천재로 알려진 웨렌 버펫이 이 청원서에 서명을 거절한 이유입니다. 그는 재산세와 상속세의 폐지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여기에 반대하는 청원서가 보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거부했습니다. 그는 상속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세금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세습하는 부자 귀족을 만드는 것으로, 이것은 2020년 올림픽의 대표선수를 2000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큰 아들로 선발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았습니다.
멋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미국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희년의 정신에 비추어 보아도, 자녀들을 생각해 보아도, 또 물려준 재물이 뜻없이 낭비 될 위험성을 생각해 보아도 재물을 물려줄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우리 청지기들, 관리인들이 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재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III.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모아온 재물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청지기의 길이겠습니까?
(1) 첫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살아계실 때 값있고, 뜻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쓰시기 바랍니다. 다 쓰시면 물려 줄 걱정을 안하실 수 있습니다.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신 Wesley 목사님은 이면에서 탁월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많은 책을 쓰셔서 약 5만 파운드에 해당되는 큰 돈을 버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실 때 남긴 것은 28파운드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poor Planning, 계획을 잘못하신 때문이 아니라 good Planning, 계획을 너무 잘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버신 많은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다 쓰셨습니다. 말년의 일기를 보면, "나는 유언에 누구에게도 돈을 남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길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아낌없이 드려서 남길 것이 없이 사신 Wesley 목사님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드리기를 주저하면서 자신을 위해 많이 쌓아 놓고 있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주인 뜻에 따라 다 쓰는 사람입니다.
(2) 둘째로, 우리 인생은 누구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동안 가지고 계신 재물이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시는지 분명히 계획하시고, 유언으로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통계에 의하면 10명 가운데 3명은 은퇴하기 전에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10명 가운데 죽지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먼저 가든지, 나중에 가든지의 차이만 있을 뿐, 10명 가운데 10명 모두가 죽습니다. 그런데 10명 가운데 7명이 유언이 없이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유언이 없으면, 결국 재판을 통해 남긴 재산이 분배되게 되는데, 이것은 경비도 많이 들고 많은 부분이 정부에 귀속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관리인의 모습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청지기 인생의 마지막 숙제인 재산 처리 문제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표현될 수 있는 분배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관리인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미국 교인들을 보면 유언을 통해서 많은 부분을 교회나 선교단체 혹은 교육기관에 남김으로 이 마지막 숙제를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우리도 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불원간 유언장 작성에 대한 세미나를 저희 교회에서 또 한번 열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저는 별로 가진 것이 없어서 유언장 작성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저도 많이 깨닫고 배웠습니다.
(3) 셋째로, 참으로 우리가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태인들의 지혜를 모은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면 한번 먹고 끝나지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 고기를 잡아 먹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재물보다 귀한 것은 재물을 바로 쓸 수 있는 믿음, 탐욕을 극복하는 내면적인 힘입니다. 믿음이 바로 서게되면 인생을 재물의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관리인으로 지혜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물질주의의 포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가치있게, 영원한 성공의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부모님들이 물려주어야 할 유산입니다. 재물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부요한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사는 길입니다.
몇해 전 서울대학교 동창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된 김선용이란 할머님이 계십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시는 이 할머니는 1999년 8월 서울대학 병원을 찾아가 불우한 환자의 치료와 질병 연구비로 써달라고 잠옷 장사 등으로 평생 모은 10억 원을 기탁했습니다. 할머니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와 하나님의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잠시 돈을 맡아 놓았을 뿐이고 이제 그 돈은 당연히 사회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할머니는 40대, 50대에 입던 옷을 아직도 손질해서 입고 계시다고 합니다. 당뇨병을 앓고 계시기에 주위에서 입원 치료를 권하지만, 거절하시면서 통원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젊은이들이 많은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내게 돈을 쓸 필요가 없다." 가 바로 통원치료를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여섯 번에 걸쳐서 그리스도인과 재물이라는 주제 밑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의 돈지갑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 회개는 바로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청지기, 관리인이라는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이 새로운 인식의, 이 믿음의 고백으로 우리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봉헌은 십일조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돈을 버는 목적도, 버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자녀들에게 재물을 남기기 보다는 재물을 바로 관리한 선한 청지기의 모습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 관리인 직분에 대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결산해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믿으시는 분답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유, 여러분의 check book에서도 그 믿음이 고백되는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금번 설교를 통해서 도전을 받으셨습니까? 깨달음을 붙들고 새롭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럼 없이 서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촉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 저곳을 눌러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프지 말아야 할 곳이 아프면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의사가 너무 강하게 눌렀던지 아니면 그곳에 이상이 있든지 말입니다.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서 말씀을 통하여 이곳 저곳을 눌러 보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아프지 말아야 할 곳이 아픈 분은 안 계십니까? 제가 그렇게 강하게 누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아프게 느끼셨다면, 더 정밀검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의사되시는 우리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고침받으셔야 합니다. 재물의 영역에서도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걷도록 고침받으셔야 합니다. 오늘이 우리 주님께 나오실 날입니다. 오늘이 주님 앞에서 새롭게 시작하실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재물의 영역에서도 부끄럼 없이 살아가도록 고침받는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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