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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7. 천국의 비유(3) - 장찬영 목사

천국은 왜 값진 진주에 비유되었을까요?

마태복음 13:45-46

천국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화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천국은 값진 진주 하나를 찾아다니는 장사꾼처럼 찾아나가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은 천국을 찾아다니고 계십니까?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지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천국은 왜 겨자씨에 비유되었는가와 '천국은 왜 누룩에 그리고 천국은 왜 감추인 보화에 비유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천국비유 그 네 번째 말씀 - "천국은 왜 값진 진주에 비유되었을까요?"에 대해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천국은 어떤 전문 진주 장사가 진주를 구하러 다니다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여 모든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값진 진주 하나의 비유는 쌍둥이 비유라 불릴 만큼 유사점이 많습니다. 둘 다 세상에서 지극히 귀한 것, 지극히 소중한 것을 발견하여 기뻐하였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아낌없이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몇 가지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그 보화를 발견하게 된 과정이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삶의 연속성 속에서 생각지도 않게 밭에서 보화가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나 값진 진주 하나의 비유는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 진주 장사가 진주를 구하려고 이곳 저곳을 애써 다니다가 드디어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극히 값진 진주 하나와 천국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고대 세계에서의 진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주는 다른 보석들보다도 뛰어난 가치가 있었습니다. 금이나 은, 다른 대부분의 보석들은 인공적인 가공을 필요로 합니다. 금은 녹여서 순수한 금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고, 다이아몬드는 갈고 닦아 어떤 형태로 만들어서 보석으로 완성시킵니다. 그러나 진주는 그 자체가 이미 완성품입니다. 더 이상 사람의 손이나 가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절대 완벽한 미적 가치를 그 자체가 아마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한번쯤 소유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인공으로 진주를 양식하던 시대가 아닌 그때에는 진주를 얻는다는 것이 정말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진주를 단순한 재물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보석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진주 장사는 보통 진주를 사고 팔고 하면서 이익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절대적으로 완벽한 진주 하나를 만났을 때 그것을 팔아 이익을 남기려 하는 것보다 그 진주를 소유하고 싶어 심지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았다고 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진주를 소유한 사람. 아마도 이 사람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그것이 얼마나 기뻤던지 그것을 숨겨두고 돌아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이 있던 밭까지 다 산것처럼, 이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 자기생애의 큰 목적으로 달성한 것 같은 감격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발견한 사람이 가지는 만족감, 황홀감, 자부심,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을 발견하는 순간에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습니다. 천국을 발견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좋을 만큼 그 마음 안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아침 우리 자신에게 솔직히 물어야 할 첫 번째 질문이 있다면, "나에게는 이 천국을 발견한 기쁨이 정말 있는가? 있다면 그 기쁨의 크기는 얼마만할까? . . .정말 값진 진주를 발견한 이 만큼의 기쁨인가?"

80년대 말에 동대문에 있는 시온교회에서 목회할 때, 전혀 교회에 나오지 않은 가정을 심방가게 된 일이 있습니다. 한 교우께서 자기와 함께 동대문 지하상가 앞 노상에서 장사하시는 아주머니 댁이라고 하시면서 꼭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심방을 가서 안 사실이었지만, 그 아주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소일거리 삼아 재미로 당시 유행하던 주택복권을 사오고 계시던 중 어느 날 그것이 당첨되었었는데 그것도 천만 원 짜리에 당첨이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돈으로 천만 원은 노상에서 장사하시는 분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분이 당첨되는 것을 확인한 순간, 너무 충격을 받고 놀라신 나머지, 그 얘기를 가족들에게 하다가 그만 실어증에 갈리게 된 것입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리고, 그 다음부터는 말을 심하게 더듬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복권 당첨 값 천 만원은 받았지만, 그 말 더듬는 것이 낫지 않고 오래 가게되자, 결국 그 돈을 치료비에 쓰게 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이분께서 이것이 동기가 되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고, 세례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감격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제가 보니까 하나님은 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생들을 부르시는 것 같은데, 저의 경우는 복권을 가지고 부르신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세례까지 받게 되었는데 제가 만약 제 인생에서 하나님을 몰랐으면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토를 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그때 복권 당첨되었을 때의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말이 나오지를 않더라구요?". . . 그래서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니 설마 천국을 발견한 기쁨이 복권에 당첨된 기쁨에 비할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진정 내 안에 천국을 발견한 기쁨이 있는가를 묻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쁨이 있습니까? 누가 뭐라 그래도 주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그 기쁨을 알고 있습니까? 이 기쁨은 과거에 일어나 기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내 안에서 이 기쁨은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에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 값진 진주를 찾은 기쁨이 회복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 값진 진주같은 천국의 기쁨이 일어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오늘 비유, 천국은 마치 값진 진주를 찾는 장사꾼과 같다는 비유에 서 몇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이 비유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천국을 소유하는 방법'에 대해서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처럼 천국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교회 한 번 와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아내가 교회 한번 가보자고 보채서 못 이기는 척 따라 갔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도 있고, 직장의 보스가 독실한 크리스챤이라 월요일마다 드리는 직장예배에 코가 꿰여져 다니다가 보화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고생하지 않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연이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2천 년 전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은 지금까지 나를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어찌 하였든지 은혜로 아무 수고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복음 안에 들어온 경우입니다.

그러나 진주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진주 장사는 마음속에 항상 내 생애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값진 진주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 좋은 진주가 있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그 길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진리에 이르기 위하여 참으로 구도자적인 삶을 살며 진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생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수없이 많이 방황하며 구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불교를 거치고, 온갖 철학과 종교를 거치고, 수많은 사상의 강을 건너서 휴머니즘을 추구합니다. 그런 인간의 선에 구원이 있지 않을까 하여 많은 세월을 보내고, 물질을 쓰고, 고행도 하며 보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얻기 위해 실로 피나는 삶을 헤쳐 나온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또는 가정이나 개인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여 고난의 폭풍과 지진을 겪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미 믿음 안에 있는 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 성경공부, 저 성경공부, 이 기도원, 저 기도원, 이 부흥회, 저 부흥회 그렇게 은혜를 사모하며 다니다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발견한 사람, 그의 신앙의 고통과 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찬송을 불러도, 그렇게 기도를 하여도, 그렇게 설교를 들어도 마음에 기쁨이 없었던 그 사람이 어느 날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그 많은 죄가 값없이 사해진다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감격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이렇게 수고하고 애쓰고 찾고 두드리다가 드디어 만난 보석과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양면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혜는 감추인 보화처럼 어느 날 우리에게 우리의 아무 공로와 상관없이 그렇게 다가오지만, 또한 그 은혜는 값진 진주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천지를 헤매는 장사꾼의 열심처럼 그렇게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신앙의 한 속성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며 또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찾고 두드리는 이런 적극적인 면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이 값진 진주를 찾는 장사군의 열심히 비유되는 천국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진주를 찾기 위해,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애쓰고 있습니까? 교회에 몇 번 참석하고, 설교 몇 차례 듣고, 성경공부에 몇 번 참석한 것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대단히 교회에 열심 있는 자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그 열심은 한낱 과거의 열심이 치부되어,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열심히 했었지 라는 생각은 없으십니까? 얼마나 진지하게 무릎을 꿇고,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였습니까? 교인이 된 것으로 혹 종교적인 의무를 다한 것으로 그치시면 안됩니다. 찾아야 합니다. 두드려야 합니다.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의 위대한 발견을 위해서 과학자들은 수 만 번의 시험과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그래서 드디어는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기다림과 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이 비유에서 배우는 것은 '천국을 원하는 자의 태도'에 대해서 입니다.

이 비유에서 연상되는 천국에 대한 태도는 바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마11:12)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침노한다는 의미는 마치 전쟁에서 그 자리에 앉아 성을 지키는 수비적인 자세와 상대방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겠다는 두 입장 중 후자를 선택하는 적극적인 입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실 천국은 결코 쉽게 아니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이 땅위에서, 아니 우리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는 장사군의 열성과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천국은 그 결과보다는 천국을 얻기까지의 삶의 태도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부터 출발하는 산상수훈의 말씀,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여덟 가지 성품 역시 그 열매보다는 삶의 과정, 즉 변화된 성품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로 천국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천국은 우리에게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되든지, 아니면 지극히 종교적인 추상적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문제 그 문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보는 시각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시각으로 인생을 보는가?" "나는 천국을 진정 소유할 수 있는 건강한, 성경적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각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고, 결정하는가?"

이 말씀은 구약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점점 영토가 넓어지고 가축이 많아지게 되었고, 같이 살고 있는 자기 조카, 롯과의 갈등이 생기게 되자, 아브라함은 일대 큰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조카 롯과 자신 앞에 펼쳐진 땅을 바라보면서, 먼저 롯에게 어떤 땅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롯이 결정한 대로 자신은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굳이 경영적인 측면으로 보지 않더라도, 목축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같은 아브라함의 태도는 백퍼센트 후회할 일임에 분명합니다. 결국 롯은 초보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기름지고 물이 많은 땅, 성경은 그 땅이 얼마나 좋았던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 같더라고 까지 말씀하셨던 그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성공과 실패의 문제는 땅이 좋고 나쁘냐의 땅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땅을 부여받았을지라도 그 땅을 어떻게 바라 보느냐 하는, 인생을 풀어 가는 시각의 문제였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롯이 선택한 땅은 훗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 버렸고, 그곳에서 그는 자기의 가족들까지 잃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중국에서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왕은 한쪽 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내 놓았을 때, 왕은 대단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느 화가는 왕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 두려워 온전하게 두 눈이 다 있는 모습으로 그렸지만, 왕의 생각에는 이것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어떤 화가들은 목숨을 내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그렸지만, 솔직히 한쪽 눈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왕의 마음에 들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한 화가가 왕에게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왕의 얼굴도 속이지 않고 그대로 그리고, 한쪽 눈이 없는 부끄러움도 감출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의 초상화를 정면에서 그리는 것이 아닌, 성한 눈이 있는 쪽의 얼굴 옆모습을 그리는 측면의 모습, profile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왕 역시도 그 제안에 크게 만족했다는 얘기입니다.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체 그림은 새로운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한 속장님과 함께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속장님께서 저에게 들려준 한 부부간에 있었던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분들께서는 중년의 나이에 미국에게 정착하면서 조그만 가게 하나를 운영하시면서 생활하게 되셨는데, 많은 분들이 그러하시듯이 참 힘든 시간을 보내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때 딸아이가 성장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딸 아이를 대학교 기숙사에 데려다주면서 어머니는 그 딸에게 단 몇 불의 돈도 쥐어줄 수 없는 당신의 처지가 너무도 괴로워서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나를 엄마라고도 부르지 마라. 너에게 아무 도움이 될 수 없는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그러니 너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된다. 알았지?" 그리고 차로 돌아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울음이 나오는지, 계속 흐느끼자 옆에서 운전을 하시던 남편이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제 그만 울어. 내가 아버지에게 적금을 둔 것이 있는데 아직 사인을 안해서 그렇지, 이제 내가 사인하면 돼. 너무 염려하지 마" 이러는 겁니다. 아니 당신이 아버지에게 적금을 들었어요? 아니 왜 여태껏 그 얘기를 안했냐고, 도대체 그게 얼마 짜리 적금이냐고 의심 반, 놀램 반으로 되묻자, 남편께서 하는 말이,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지난 시간 속에서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어도 어김없이 십일조를 했잖아. 그러니 아버지가 다 아시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이제 내가 사인하고 달라고 할게. . . .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잖아?" 아마 아내는 울음을 멈추고, 피식 웃었을 겁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정말 자신도 모르는 적금을 아빠가 들고 있었나 하는 순간의 기대감도 한순간에 무너졌겠지만, 사실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을 아빠에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내는 모든 아픔이 다 씻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부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딸 아이에게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현실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는데, 남편의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아내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을까? "그래 아버지가 다 알고 계셔..."

천국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값진 진주 하나를 찾아 온 땅을 찾아다니는 장사꾼의 열심처럼, 아무리 고된 환경 속에서도 나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서로가 어렵고 힘들 때 말 한마디라도 격려하고 붙잡고 나가는 그 사랑이, 상처가 많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지만, 또 보람되고 기쁜 시간도 많았음을 잊지 않고 드리는 감사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국은 값진 진주 하나를 찾아 온통 헤매이는 장사꾼과도 같다는 이 비유가 여러분의 삶 속에도 구체적으로 일어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