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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3. 연속설교(4)/교회 설립 51주년 감사주일 - 조영진 목사
"왜 와싱톤한인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사도행전 6:1-7
한인교회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왜 우리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역사가 오래된 교회이니까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오늘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있어야 합니까?
교회 설립 51주년을 맞으며 우리 모두 씨름해야 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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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쁜 날입니다. 감사한 날입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는 날입니다. 6.25동란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이곳 Washington, D.C.에서 시작된 우리 교회가 쉰 한 살을 맞게 된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반세기 너머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도 넓기 때문입니다.
금번 교회 설립 51주년을 앞두고 저는 신앙과 교회생활의 근본적인 물음들에 대하여 말씀드려 왔습니다. 지난 9월15일 주일에는 "왜 그리스도가 필요합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인간 이해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죄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구원자,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9월29일 주일에는 "왜 믿어야 합니까?"의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죄인된 인생과 세상이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구원자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지혜로운 응답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보여주는 곳이기에,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위하여 오늘도 교회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이 연속설교의 마지막 주일로 조금 더 촛점을 좁혀서 우리 와싱톤한인교회의 존재이유 혹은 존재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I.
여러분, 왜 우리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는, 존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민법에 보면 무주물선점(無主物先占)의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인이 없는 물건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워싱톤 일원에서는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이기에 있어야 합니까? 다른 아무 한인교회도 없을 때 설립되었기에 존재해야 합니까? 역사가 반세기에 이른다는 이 사실이 우리 교회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까? 물론 역사가 깊다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연합감리교회 내에서 우리 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교회들이 간혹 문닫는 예를 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유럽에 가보면, 심한 경우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들이 문을 닫고 오락장이나 유흥장으로 전락된 경우를 보게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 와싱톤한인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들,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접근방법도 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미국 워싱톤에 세워진 한인 이민자들의 교회라는 특성 위에서 이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 주님의 목적의 빛에서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의 주인은 우리들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뜻이 있으시기에, 계획이 있으시기에, 우리 교회를 세우셨고, 또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존재 이유 역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우리의 존재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II.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우리 교회를 향해 갖고 계신 주님의 기대와 비젼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로 되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이같은 질문을 안고 묵상하게 된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 7:1-7에 이르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처음 교회가 부딪쳤던 첫 번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교회는 이 위기를 통하여 더욱 단단히 기초를 다지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발견하는 처음 교회의 위기는 제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생겨났습니다. 사도들이 가난한 과부를 구제해오던 중, 그 구제에 빠지는 사람들이 불평과 원망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가 시끌벅적, 소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내적인 불평과 불만을 사도들은 구체적인 봉사를 담당할 일곱 명의 일꾼들을 세움으로 극복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사도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게 되었고, 구제는 일곱 집사들을 통하여 빠짐없이, 공평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의 표현을 빌리면, 평신도사역을 개발함으로 교회는 내적인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고 새로운 도약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평신도들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문턱만 밟고 다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워서 헌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같이 평신도들의 잠재력이 무한하고도 풍성한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이 잠재력을 그냥 파묻어 둔다면, 저나 여러분은 모두 한 달란트를 받아서 땅에 파묻어 두었던 종처럼 주님의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슬피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꾸지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부르심을 깨닫고 평신도 사역의 활성화를 5년 장기계획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추진해 왔습니다. 행정구조도 바꾸고, 평신도사역 개발원도 만들고 사역한마당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멉니다. 새로운 방향이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의 혼선과 방황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이 길을 갈 것입니다. 평신도들을 깨우고 세우는 일은 option,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서적인 교회의 모습이고,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부들을 구제한 일 속에서 발견케 되는 일깨움입니다. 좁게 말하면 과부들이지만, 넓게 말하면 교회가 험한 인생길에서 상처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뒷받침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와싱톤한인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우리도 이 일을 하라고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우들 가운데서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우라고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돕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교회 밖에도 뻗쳐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보면, 많은 교우들이 이 일에 동참해 오셨습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외롭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격려하셨습니다. 가정이 깨어지는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워싱톤가정상담소를 세우는 일에도 많은 교우들이 헌신하셨습니다. 한미장학재단을 세우고 발전시키는데도 밑거름이 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는 비록 많지않은 예산이지만, 워싱톤한인봉사쎈타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 땅에도 빈민아동들을 돌보는 부스러기선교회, 나눔교회를 지원하고, 그밖에 한국치유목회연구원을 비롯한 교회와 기관들을 돕고 있습니다. 또 이곳 미국땅에 세워진 매맞는 여성들의 shelter인 Bethany House를 비롯한 기관들의 사역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선교비도 보내지만,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손길을 펴기도 합니다.
왜 우리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인생길에 지친 생명들, 상처받고 가슴아파하는 이웃들을 싸매어 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격려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기대입니다.
(3) 셋째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처음 교회는 부딪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일깨움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51년의 우리 교회 역사는 결코 평탄치 않았습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작게, 크게 네 번 분열의 아픔을 맛본 것 같습니다. 중요한 이슈 앞에서 교우들의 의견이 분열되어서 안타까움을 느꼈던 적도 많았습니다. 새로운 한인사회의 현실 앞에서 선교적인 안목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부족한 모습도 있었습니다. 분열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진 적은 있지만 40년 동안은 우리 교회가 주도적으로 개척한 한인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부족함과 아픔의 경험들은 오늘의 우리를 낳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역사가 더욱 감사함은 지난날의 아픔과 역경을 turn around, 전환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끌어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 반세기가 넘는 길다면 긴 역사를 지닌 우리교회가 왜 있어야 합니까? 이 역사의 교훈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역사의 물결에 휩싸였던 우리의 경험과 은혜를 따라오는 후배 교회들에게 전승시켜주기 위함입니다. 처음 교회가 내적 위기의 극복으로 본을 보여 준 것처럼 우리도 turn around, 새롭게 전환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물론 후배 교회들 가운데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회들도 많을 것입니다. 억지로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 우리는 이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세워진 교회로서의 경험과 자산을,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함께 나누고 격려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지난 9월 우리 교회가 30대, 40대 젊은 목사님들을 모시고 Vision Conference를 가졌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Vision Conference는 먼저 세워진 교회로서 나이 값을 하라는 주님의 요청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응답이었습니다.
(4) 넷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는 내부 분열의 위기를 극복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고,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고(continued to spread)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이 사명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힘있게 펼쳐나가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구원의 도,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우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왕성하게 퍼져가기를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지난 주일 주보에 삽지로 나누어 드렸던 설문조사의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자세한 분석결과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 윤광석 집사님을 통해서 아가페에 보고해 드리겠습니다만,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1,2,3부 합해서 323명이 응답해 주셨는데, 어떻게 우리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는가? 를 물은 첫 번째 질문에는 50%가 친구의 권고를 듣고 였고, 41%가 목회자들에 대한 평판을 듣고, 24%가 가족을 따라서, 21%가 교회에 대한 평판을 듣고, 그리고 20%는 감리교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방송을 듣고 오신 분이 5%, 16가정이었고, Internet을 보고 오신 분은 2%, 8가정이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계속 나오시는 요인에 대해서 물은 두 번째 질문에는 응답의 79%가 목회자들의 설교 때문이라고 대답하셨고, 53%가 은혜로운 예배 분위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21%는 교우들의 사랑과 격려 때문이라고 하셨고, 거리가 가까워서와 속회 때문에 그리고 자녀들의 신앙교육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대답하신 분들이 각각 17%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 없어서라고 표시하신 분도 15%였습니다. 이 통계는 여러 군데 표기하신 것을 모은 결과였고,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만을 선택하시라고 했을 때는 응답자 276명 가운데 목회자들의 설교 때문이라고 대답하신 교우들이 64%였고, 은혜로운 예배 분위기는 10%, 가족을 따라서와 가까운 거리 때문에 그리고 교우들의 사랑과 격려 때문이라고 표시한 분들이 4%였습니다. 지나친 간섭이 없어서는 2%였습니다.
이 설문조사에서 다시 확인 된 것은 교회 안에서는 말씀의 증거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갖는 중요성, 말씀이 왕성하게 퍼져 나가야함의 중요성을 우리는 이 조사를 통하여 새롭게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말씀의 증거는 예배의 설교에만 국한될 수는 없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복음증거 사역 전체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왜 와싱톤한인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말씀을 왕성하게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어 가기 위함입니다. 오늘 이 시대,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왕성하게 전해가기 위함입니다.
III.
51주년을 맞는 우리 와싱톤한인교회는 단순한 인간의 조직이 아닙니다. 와싱톤한인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세우셨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십이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고, 인생길에 지친 이들을 싸매어 주고 격려하며, 교회 역사의 경험과 교훈을 함께 나누고, 주님의 말씀을 왕성하게 펼쳐가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 때문에 우리 교회는 존재합니다. 이 사명 때문에 오늘 이 시대 속에 우리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참으로 교회가 될 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내적인 분열을 극복하고 바로 섰을 때, 제자의 수는 더욱 심히 많아지고 많은 제사장의 무리까지도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51주년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는 이 숙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참 교회가 됨으로 복음의 능력, 복음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한인교회들은 이민자들의 교회로 동포사회를 섬기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울타리를 넘어 설 때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 미국교회 나아가서는 세계를 향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때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영향력을 증거할 때입니다. 51년의 역사를 이끌어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이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해 갈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 교회가 이같은 주님의 기대에 응답해서 거둔 열매의 하나이신 이광숙 교우께서 나오셔서 우리 주님께서 와싱톤한인교회를 통해서 교우의 삶 속에 이룩하신 역사를 증거해 주시겠습니다.
제 이름은 이광숙이고 제가 와싱톤한인교회에 출석한지는 2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이미 아가페를 통해서 말씀드린 적도 있고, 또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교회 설립 51주년에 제 마음도 다시 갱신하는 자세로 임하다보니 다시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일요일 아침 실수로 저의 집 문이 잠기는 바람에 이웃집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기에 매일 지나다니면서 본 한국교회가 생각나서 그곳까지 걸어가서 전화를 빌려 써야겠다는 생각에 평생에 처음 교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교회 사무실에 계신 분(생각해보니 박철 장로님)의 친절로 제 처한 상황을 해결한 후에, 교회 주인은 목사님인줄 알고 집주인에게 인사나 하고 간다는 식으로 목사님께 인사드리고 올려했는데, 담임목사님은 휴가 중이셨고, 부목사님(이효중 목사)께서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때 이 목사님께서 조영진 목사님의 설교테입(위대한 진리)과 mug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라 하시기에, 그냥 나오기 민망스러워서 교회 구경이나 하고 가지요 했습니다. 아래층, 위층으로 구경시켜 주시는 동안 제가 사업상 안면이 있는 분(이성자 집사)을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또다시 지나다니면서 쳐다보는 한 건물에 지나지 않는 일상생활이 3주 정도 지났습니다. 3주 째되는 금요일 거래처에서 온 영수증에 메모쪽지가 붙어있었습니다. 바로 복도에서 만난 그분이 보낸 "교회를 나오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새인생을 창조해 나가세요" 그리고 전화번호가 전부였습니다. 버리기에는 안되겠고, 생각하다가 책상 앞에 꽂아놓고 일하는 중간 중간 다시 읽어보고 음미를 하자,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분께 전화를 걸고 한번 새로운 힘과 능력을 설명해보라고 하였더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면서 내일 다시 전화하겠답니다. 다음날 세분의 여자분들이 저의 사업체를 방문하셔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우선 교회를 나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알게 된다는 바람에 이틀 후에 금요찬양예배부터 나왔지요. 뭐가 뭔지 모르고 이상한 모습,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또 일요일 2부 예배에 나오라기에 또 왔습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3주 하다가 금요일 찬양예배시간에 앞에 있는 스크린에 보이는 찬송가 가사에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흘리는 눈물이 매번 연속되었습니다. 더 궁금해졌습니다. 새로운 힘과 능력은 무엇이며, 눈물은 왜 나며, 새인생은 무엇인가. 그때부터 저는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을 하면서 교회생활을 하려니 정말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눈물은 끊임없이 흘렀고 매번 목사님의 설교는 제 가슴을 메어지게 하면서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어떻게 목사님은 내 마음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고 설교를 하실까? 매주 매주 내 이야기만 하시더라구요. 시간만 있으면 성경책을 보고 다른 분들의 신앙간증 책도 보고 그 좋아하는 TV도 전혀 안보고, 새벽에도 나오고, 수요일도 나오고, 밤에도 들여다 보고, 신앙강좌에도 참석하고, 다른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도 가보고, 그 대답을 찾고 싶어서 할 것을 다했습니다. 대답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듯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하라기에, 있는 것 없는 것 생각나는 대로 모조리 하였고, 값없이 이웃을 사랑하며 주라기에 그리도 하였고, 성경을 넘길 적마다 이 page에 해답이 있을까? 아니면 다음 page에 있을까? 기대 속에 읽다가 빨리 대답이 안 나타나면 체념하고 그냥 읽는 데까지 읽어보자. 그 김에 통독이라도 해야겠다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장님이 눈이 떠지듯, 귀머거리가 귀가 들리듯, 앉은뱅이가 일어나 춤을 추듯 저의 모든 궁금증이 한번에 풀렸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 해답을 얻고싶어하는 마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는 새로운 힘과 능력이라는 것, 오 하나님, 하나님은 항상 저와 함께 계셨는데 제가 미쳐 알지 못한 것입니다. 작년 연말에 공연한 연극을 기억하시는지요? 그 마지막 대사가 바로 제가 하나님께 한말입니다. 대답을 찾아 헤매던 그 새벽, 그 밤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와싱톤한인교회가 내 아버지 집임을 믿고 선포하기로 한날입니다. 이 집은 내 집이고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임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향기를 깊이 간직하고 계신 장로님들, 권사님들, 항상 격려해주시고, 저의 어리석음과 우둔한 말들을 사랑으로 들어주신 집사님들, 속원 여러분, 모자라는 점 많지만 또 저를 환영해주시는 동생같은 자매님들, 매번 설교 때마다 저를 울게 하신 목사님들, 이 넓고도 깊은 사랑이 우리 교회에서 벌어진 많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지나온 2년을 되돌아보니 2년 전 그날은 제게는 구원이 정해진 날이었습니다. 2년 전 그때 제 마음은 답답하고 절망적이며, 이 세상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집은 불타고 있는데 저는 그 안에 앉아서 탓만 하고 있었습니다. 칼을 창공에 높이 들고 질주하며 달려오는 그것을 손발이 묶인 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제 영혼을 들어 올리셔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자동차로 그냥 지나쳐 다니던 이 교회는 제 인생길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이 구원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시오. 희망을 갖고 참여해 보세요. God bless everybody.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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