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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6. 연속설교(3) - 조영진 목사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사도행전 2:42-47

오늘 우리는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습니다.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여기 저기서 듣습니다.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인간들이 모여서 세운 조직체에 불과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서 세워진 것입니까?
오늘 교회는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제가 아는 은퇴하신 선배 목사님께서 특이한 책을 쓰셨습니다. 책의 제목은 기독교 죄악사입니다. 한 권으로는 기독교의 죄악을 다 담으실 수 없으셨던지 상,하 두 권을 쓰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책 속에서 기독교의 이름 아래 자행된 여러 죄악들을 고발하셨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목사님의 저술 내용에 100% 다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기독교 신앙의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기독교 죄악사 라는 말보다는 교회 죄악사 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께서 지적하고 계신 부끄러운 모습들은 기독교의 죄악이라기 보다는, 기독교를 앞세워서 교회들이 저질러온 죄악이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는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교황들의 횡포, 마녀사냥, 근세의 식민지 확장과 연관된 남미의 선교정책 등 많은 부끄러운 역사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오늘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는 교회는 종종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잦은 분열, 개교회주의, 그리스도의 교회답지 못한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또 한국에서도 교회는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정화시킬 수 있는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비판과 탄식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오늘의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고있는데, 그래도 교회가 필요합니까? 그래도 교회가 존재해야 합니까? 왜 이 땅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교회는 우리 인생들에게 과연 꼭 필요한 것입니까?

I.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존립하는 근거에 대한 물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어떻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까? 교회란 단순히 인간들이 모여서 조직한 단체입니까? 아니면 이 교회의 존립 근거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까?

(1)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단순히 인간들이 모여서, 인간들이 조직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서 세워졌고 또 존재해왔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대화하는 가운데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반석이란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 곧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이 믿음으로 개신교 신앙의 전통은 이해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이 믿음 위에, 이 기초 위에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태어남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세운 단체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가지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더구나 교회가 건물이나 어떤 조직체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교회는 단순한 인간들의 모임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그리고 교회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셔서, 성령을 통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우리는 그 머리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지체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신다는 성경의 증언은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이룩한 역사를 증언해 주지만, 실상은 성령행전, 성령께서 행하신 역사를 전해주는 책이라고. 그렇습니다. 중요한 고비, 고비마다 교회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제자들을 핍박을 통하여 흩어지게 하셨고, 고넬료가 세례를 받고 이방인으로서 첫 그리스도인이 된 이면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들고 유럽대륙에 건너간 역사도 성령께서 이끌어가시는 역사의 열매였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그리스도의 뜻과 계획 안에서 세워졌고,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계속 발견되는 모습의 하나는 교회의 갱신운동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갱신운동 속에서 새롭게 그 생명을 간직해 왔습니다. 교회가 너무 가슴 뜨거운 쪽으로 가게되면, 한쪽에서는 냉철한 이성을 중요시하는 운동이 싹트면서 건강한 균형을 이루어 갔습니다. 저 세상만을 바라볼 때는, 이 세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개인의 구원만을 강조하게 되면,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는 물결이 일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2000년 역사는 바로 His Story. 그가 이끌어 오신 역사의 증언이었습니다.

교회가 단순한 인간들의 조직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그분의 섭리 안에서 존립의 근거를 찾게된다는 이 사실은 왜 교회가 필요한가? 라는 문제에 대하여 중요한 해답을 제공해 줍니다. 비록 교회가 타락했어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포기하시지 않는 한, 교회는 존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비판과 지탄을 받는다해도 교회는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워졌다가 사라져 가는 인간들의 조직체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버리시지 않는 한, 교회의 모습이 좀 부정적이라고 해서 교회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답게 개혁되어지는 것이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교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II.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세워졌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뜻과 계획을 갖고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어떤 역사를 펼쳐가기를 기대하고 계십니까?

성경에 교회를 표현하는 말 가운데 중요한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라는 말입니다. Adam Hamilton 목사님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 말을 "The Church as The Continuing Incarnation of Jesus in the World," 이 세상 속에서 계속되는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보았습니다. 매우 적절한 이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살아가신 구체적 한 분, 하나님의 아들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사랑, 그 풍성한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사랑을 보여주는 성육신의 처소입니다. 몸이 그 실재를 보여주는 것처럼,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곳으로 이 땅에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귀절입니다. 이 처음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역사를 보여줄 뿐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참 모습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1) 첫째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는 공동체였습니다.

교회는 바로 생명을 살리는 곳이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그 복음에 응답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곳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받아 어찌할고 하는 역사, 이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이 역사가 처음 교회 안에서 능력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어제의 삶에서 돌아선 이들을 가르쳐서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이 역사를 처음 교회는 능력있게 수행해 갔습니다. 세상에 계실 때 우리 주님께서 행하셨던 이 역사를 처음 교회는 이어서 감당해 갔습니다.

왜 교회가 있어야 합니까? 생명을 살리고 양육하는 이 일을 위해서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살려야 할 생명들이 남아있는 한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교회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은 교회로 하여금 이 역사를 계속 이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역사를 위해서 교회는 필요합니다. 이 땅에 꼭 존재해야 합니다.

(2) 둘째로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이기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처음 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46을 보면,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들이 떡을 함께 뗀 것은 저녁식사를 같이 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가서 음식을 나누며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미했으며 사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었습니다.

교회는 예배의 공동체입니다. 예배 속에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마음을 모읍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성찬을 나누면서 우리를 위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오늘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이 예배를 위하여 교회는 필요합니다. 함께 드리는 이 공동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새롭게 체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예배드리고 믿음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젊은이가 교회 나가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이 젊은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목사님께서는 심방을 오셔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교회 이야기는 피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벽난로에서 불이 잘 붙은 석탄덩이 한 개를 꺼내 놓으셨습니다. 잘 타오르는 석탄덩이는 얼마가지 않아서 불이 꺼졌습니다. 반면에 벽난로 안의 석탄덩이들은 계속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불이 꺼진 석탄덩이를 바라보던 젊은이가 입을 열고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또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생명의 삶 7-15-2002).

  • 주일 아침, 남편, 아내, 자녀 모두가 컴퓨터 앞에 모여 앉습니다.
  • 남편: 자, 우리 주일예배를 드리자.
    전원을 키고 인터넷에 들어가 00교회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거기에서 주일예배라고 쓰여진 곳을 클릭해서 그 날 말씀이 나와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설교 말씀을 다운받아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생생하게 듣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다시 예배순서로 들어가 제시된 찬송가를 함께 부릅니다. 딸아이는 벌써 곁에서 졸고 있습니다. 친교실에 들어가서 잠시 교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 아내: 여보, 기도 제목이 많이 올라왔어요
  • 남편: 우리는 뭐라고 올릴까?
    그동안 궁금했던 여러사람들의 소식을 훑어 본 다음 초기 화면으로 복귀하려고 합니다. 그때 남편이 무엇을 빠뜨렸는지 다시금 마우스를 잡았습니다.
  • 남편: 참, 헌금하는 걸 잊을 뻔했네!
    그리고 온라인 구좌를 클릭해서 헌금을 하고는 그날의 모든 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예배를 주님께서는 어떻게 받으실 지 궁금합니다. 여러분, 이같은 예배가 과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겠습니까?

(3) 셋째로, 교회는 바로 자신의 목숨을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 사랑은 처음교회 성도들의 나눔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끈질긴 욕망, 소유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2:44 이하의 말씀은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가진 것을 팔아서 필요에 따라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결코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행동이었고 삶이었습니다. 처음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함께 나누었습니다.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이 사랑, 이 나눔의 삶을 위해서 교회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사랑이 메마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없어 굶주린 영혼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찬송가 373장은 이 탄식을 잘 묘사해 줍니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냉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 채우는
    사랑 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위해 저희들 오래 참고 있었네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 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

이런 세상이기에 교회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나눔, 진정한 섬김,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공동체,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메마른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찬송가 373장의 이어지는 가사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희 소리 들을 때 가서 도와줍시다
    만민 중에 나가서 예수 사랑 정하세
    예수 사랑 전하세 예수 사랑 전하세
    만민 중에 나가서 예수 사랑 전하세

교회는 이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하여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III.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구원받은 생명들이 함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기 위하여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입이며, 손이며, 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필요합니다. 있어야 합니다.

이제 남아있는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속에서 교회가 진정 교회되게 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교회로 새롭게 개혁해 가는 일입니다.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교회가 필요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조급한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땅의 교회는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교회의 존재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한 갱신을 통해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가 늘 잘못만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잘못보다는 훨씬 더 많은 아름다운 역사를 기록해 왔습니다. 문제는 끊임없는 갱신을 통하여 참 교회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9월 저는 Washington, D.C.에 있는 Church of the Saviour, 구세주의 교회와 Chicago에 있는 Willow Creek Community 교회를 방문하면서 진한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한 교회는 교인 수가 100여명 남짓한 작은 교회이고, 다른 한 교회는 20,000여 명이 출석하는 초대형 교회입니다. 그런데 두 교회의 밑바닥에 공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교회됨의 추구, Authentic Community를 향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참된 교회상의 회복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 이 두 교회는 생명을 살리며, 세상 속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회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교회의 모습은 제게 새로운 도전과 일깨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여러분, 비록 온전치 못해도, 비록 좀 모자라는 구석이 있어도 교회는 여전히 이 땅의 소망입니다. 이 땅의 내일입니다.

Willow Creek교회를 섬기시는 Bill Hybel 목사님의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우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 젊은 부부가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포대기에 쌓인 아기를 목사님 손에 안기우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Hybel 목사님께서 아기의 이름을 묻자, 엄마는 포대기를 열어서 아기를 보여주며 대답했습니다. 이 아기 이름은 Emily라고.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아기를 보는 순간 그만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습니다. 목사님께선 "oh my ... oh my ... oh my"를 되풀이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기의 얼굴은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기형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그러진 아기의 얼굴을 목사님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아기의 아빠는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들은 바로는 Emily는 6주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Emily가 죽기 전에 우리의 사랑을 느끼고 알게 되도록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Hybel 목사님께서는 Emily를 두 팔에 안고 부모님과 함께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Emily를 부모에게 넘겨주면서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우리 교회가 어떻게 당신의 가정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때 Emily 아빠가 말했습니다. Hybel 목사님은 그 말에 지금도 감격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목사님, we're okay. 우리가족은 괜찮습니다. 저희는 여러해 동안 small group(우리 교회로 말하면, 속회)에서 함께 믿음생활을 해왔습니다. 속원들은 임신했을 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소식을 들은 날 밤 우리 집을 찾아왔었습니다. 속원들은 Emily가 태어난 날 병원으로 찾아왔었고, 이 아픔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Emily가 퇴원하는 날도 집에 와서 집안 청소를 해주었고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줄 뿐아니라, 매일 전화해줍니다. 속원들은 우리 Emily의 장례식 준비하는 일도 벌써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때 세 커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와서 Emily와 그 부모를 둘러쌌습니다. "우리는 한 속원들로 항상 함께 예배에 참석해 왔습니다." 한 속원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한 후, lobby를 향해 걸어 나갔습니다.

Hybel 목사님은 이렇게 사랑으로 맺어져서 인생길에 불어온 가장 혹독한 고통의 짐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목사님은 스스로를 향해 물어 보았습니다. 만일 교회가 없었다면, 그들은 어느 곳을 찾아갔을 것인가? 어떻게 이 아픔을 극복해 갈 것인가?

교회는 이렇게 생명을 살리라고 주님께서 세우셨습니다. 함께 예배하며,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우리 주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부단히 스스로를 갱신함으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간다면, 교회는 이 시대를 밝힐 수 있습니다. 인간 생명을, 역사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이 사명 때문에 있어야 합니다. 이 주님의 기대를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있어야 합니다. 고통과 방황 속에서, 죄 가운데서, 부르짖는 수많은 생명 때문에 교회는 있어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