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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9.1. 조영진 목사

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3:10-16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 어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가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은 과연 인생을 걸만한 푯대입니까?
진정한 성공이란 어떤 것입니까?
위대한 인생을 낳는 위대한 푯대란 어떤 것입니까?

교우 여러분들의 염려와 기도 속에서 안식년 6개월을 잘 마치고,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동안 변함없이 저희 교회와 부족한 저를 붙들어 주신 우리 주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 흔들림없이 교회를 지켜 주신 목회실의 동역자들과 교회 장로님들, 임원 여러분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께 마음 깊은 곳에서 두루 두루 감사를 드립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오랜만에 강단에 서게되니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체중을 10파운드 늘려서 오라고 당부하셨는데, 저희 집 저울이 고장났는지 도대체 140파운드를 넘어가지 않아서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 또 모세는 40일 기도한 후에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가리웠다고 했는데, 저는 6개월을 쉬면서 기도했는데도 제 얼굴에서 별로 광채가 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또 오늘은 6개월 쉬고 돌아오는 첫 주일이니까 명설교를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점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 6개월 쉬고도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모자라는 점이 많을텐데, 계속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인생은 없다. 위대한 꿈이 있을 따름이다" 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꿈 혹은 푯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이 아침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써보낸 편지의 한 부분을 함께 읽었습니다. 비록 길지 않은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과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옥중에 갇혀있습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푯대는 분명했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달려가는 인생의 목표는 뚜렷했습니다. 유럽대륙에서 제일 먼저 개척된 빌립보 교회, 사도 바울을 염려하며 격려와 기도를 아끼지 않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의 푯대, 그의 인생의 목표를 그는 담대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I.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슨 푯대, 무슨 목표를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 바라보고 달려가시는 푯대가 있으십니까? 목표도 없이, 지향점도 없이 떠밀려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날벌레들의 생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날벌레들이 앞에 있는 한 녀석이 돌기 시작하면, 그놈을 따라서 다른 날벌레들도 무턱대고 그냥 빙빙 돈다는 것입니다. 방향도, 이유도 없이 그냥 먼저 돌기 시작한 놈을 따라서 도는 이 날벌레들은 눈앞에 먹을 것을 주어도 거들떠 보지않고 계속 돌기만 하는데, 무려 7일 동안을 돌다가 결국은 굶어 죽고 만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이 날벌레들에게서만 보여지는 것이겠습니까?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파브르가 관찰한 날벌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전체 인류의 87%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니까 그저 따라서 돈벌고, 출세하고, 즐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지, 무엇을 위해서 내 인생을 걸 것인지, 무슨 목표, 무슨 푯대를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라고 접어놓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고민해 보았자 뚜렷한 대답이 없다는 체념 속에서 인생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입니까? 삶의 푯대에 대한 질문 없는 인생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까? 개나 고양이는, 잘은 모르지만, 무엇을 바라보고 살 것인지 묻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이기에, 이 물음을 물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푯대를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고민에 관심이 없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도 날벌레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기록한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듣습니다. 이 도전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까? 과연 바라보고 달려가는 푯대가 있습니까? 내 인생을 걸고 추구해 가는 목표가 있습니까?

II.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푯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가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목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푯대 삼아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을 마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성공,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푯대입니다. 직장에서의 승진과 성공, 이것 역시 우리 모두 원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이것 역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은밀히 꿈틀거리는 푯대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성공의 푯대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어떤 때는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미하게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묻어둔 채 더 많이, 더 높이, 더 넓게를 추구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 성공이란 푯대를 엄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무엇이 성공입니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그 성공을 우리는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성공은 과연 우리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그 성공이 과연 내가 바라보고 달려 갈 푯대가 될 수 있습니까?

이같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위하여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에 초점을 옮겨봅시다. 여러분, 사도 바울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인생, 성공한 것입니까? 그가 바라보고 달려간 푯대는 과연 따를만한 것입니까? 내 인생을 걸만큼 가치가 있는 목표입니까?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권력의 힘을 휘두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인기의 정상을 누린 사람도 못되었습니다. 도처에서 얻어터지고 반대와 비판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가난과 궁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그 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푯대, 주님께서 약속하신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며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그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다가 감옥에 갇히고 끝내는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쳤습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인생 성공자였습니다. 진정한 성공, 영원한 승리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아침 우리는 사도 바울이 바라보고 달려간 진정한 인생 성공이라는 푯대 속에서 세 가지 중요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1) 첫째로 바울이 추구한 진정한 성공이란 나만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세우고 일으켜주는 성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나 한몸 진리되시는 예수님을 만나 새인생을 찾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 진리의 길을 함께 걷기 위해 땅끝까지 나아가 전했습니다. 이 일을 위한 온갖 고난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웃을, 가족을 희생시키는 때가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보다 앞서고, 보다 빨리 달려가기 위하여 짓밟기도 하고 속이기도 합니다. 성공이란 우상을 섬기기 위해 이웃을, 친구를 희생 제물로 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거둔 성공, 잠시는 기쁨과 만족을 안겨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뿐, 이어서 찾아오는 것은 불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를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 자신이 올라서기 위하여 나를 희생 제물로 삼으려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나 자신이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짓밟고 올라선 사람은 언젠가 자신도 짓밟히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성공은 나만의 성공이 아니라 모두를 세워가는 성공, 함께 나누는 성공이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추구한 진정한 성공은 외면적인 성공보다는 내면적인 성공, 내면적인 풍요함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공을 너무 밖으로 나타난 모습에서만 찾습니다. 그러나 높이 올랐어도 기쁨이 없다면, 과연 진정한 성공입니까? 많이 가졌어도 허무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성공입니까? 유명해졌어도 내면적 풍요함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성공입니까?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챤 의사인 아버지와 자식을 믿음 안에서 양육하려했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어렸을 적에는 충실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하나님을 떠난 후 그의 인생은 부와 명성은 걸머 쥐었지만, 늘 허무와 공허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즈음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전지(Battery)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으려고 해도 꽂을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 진공관처럼 외로움과 공허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물론 그의 문학적인 공헌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풍요함을 잃어버린 그의 인생을 과연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한편 한국의 천상병 시인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면서 시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나의 가난함" 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여러분 누가 진정한 부자입니까? 누가 더 내적인 풍요함을 누렸습니까? 누가 더 진정한 성공의 길을 추구했습니까? 헤밍웨이입니까? 천상병 시인입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 속에서도 엄청난 내적 풍요함을 누렸습니다. 외적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과 감사를 안고 살아갔습니다.

(3) 사도 바울이 바라보고 달려간 진정한 성공의 세 번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영원 속에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 주님 앞에서의 성공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귀를 누렸다해도, 요단강 건너가서 주님 앞에서 인생 결산할 때, 우리 주님께서 모르신다고 하면, 여러분, 우리는 인생 실패자입니다. 영원한 실패자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되풀이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나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동참하기 원하는 부활, 그가 바라보는 푯대, 부름의 상은 모두가 영원을 포함하는 푯대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는 한순간 돈을 벌었다고 결정되는 것 아닙니다. 어느 한때 유명해졌다고, 널리 알려졌다고, 결정되는 것 아닙니다. 인생에서 높이 출세했다고, 남들이 알아준다고 해서, 결정되는 것 아닙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필요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 모든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성공과 실패는 종점에 가보아야 압니다. 이 땅에서의 여정이 끝나고 우리 주님 앞에 서보아야 압니다. 너무 조급히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푯대의 거듭남을 뜻합니다. 하나님 믿고 살아간다면, 진정한 성공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거듭나야 합니다. 바울이 가슴에 품고 달려갔던 그 푯대가 우리의 가슴 속에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진정한 성공의 푯대를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III.

한가지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푯대를 품고 살아가게 될 때 지니게 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 속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달려간다고 증언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3:13에서 고백합니다. " ....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뒤에 있는 것이란 사도 바울의 부끄러웠던 과거 뿐 아니라, 자랑스러운 충성의 자취도 포함됩니다. 그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과거에 매인 인생이 결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민생활의 정착과정에서 이 사실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내가 그래도 한국에서는 이러이러 했는데" 라고 태평양 건너오기 이전을 돌아보는 사람일수록, 새로운 이민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물론 과거 역사의 교훈까지 잊어버리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과거의 자랑스러움에 매여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뒤에 있는 것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부끄러움에 매여 좌절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뒤에 있는 것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2)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3:12,13절에서 반복해서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

이 말씀은 자신을 열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바울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영원의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이 열린 마음, 이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미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인생은 정체상태에 접어듭니다. 이미 잡았다고 생각하면, 우리 인생은 더 이상 앞을 향해 나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아내 자랑하는 것이 팔불출 가운데 하나인줄 알지만, 제가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저희 집에 야당이 있는 것입니다. 제 처인 장전도사가 이번 안식년 기간에 한가지 일깨워 준 것이 있습니다: "당신 나이 들어가면서 굳어지는 것 같다"는 경고였습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계획을 향해 열려있어야 하는데, 과거의 경험, 과거의 목회모습, 과거의 생각에 매여 닫혀서는 안된다는 고마운 경고였습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시작하면서 저는 계속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달려가려고 합니다. 제 나이가 이제 5학년 6반이 되는데, 법정은퇴연령까지 목회한다 해도 14년, 좀 일찍 은퇴한다면 10년도 남지 못했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정신 차려야 할 때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다시 시작하면서 매일 되풀이해 드리는 기도의 제목을 정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게 하소서". -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바로 목회의 근본이며 젖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하게 하소서" - 목회는 바로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끝까지 신실하게 하소서" - 중간에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달려가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진정한 성공의 푯대를 가슴에 품고 달려가십시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웃을 가슴에 품고, 외면적인 것을 넘어서는 내면의 성공을 추구하며,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영원한 성공의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십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말고, 앞을, 영원을 바라보며 달려가십시다. 거듭난 영원한 성공의 푯대를 바라보며 오늘 내 인생을 바꾸어가는 그 삶을 살아가십시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속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몇 해전 포르투갈의 유명한 국민가수인 로드리게스 아말리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르투갈 내각은 사흘동안의 조의 기간을 공포했고, 온 국민들은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리스본 대성당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엄수된 후 여섯명의 운구위원이 아말리아의 관을 어깨에 매고 나서자, 성당안에 있던 모든 조객들은 일어나 관을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긴 복도를 걸어 나가는 동안 계속된 박수는 성당문을 나서자 운집한 조객들에 의해 더 큰 박수소리로 이어졌습니다. 아말리아에 대한 사랑과 애도를 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제게 소원이 있습니다. 제 인생 끝날 때 남아있는 성도들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더욱 원하는 것은 내 인생 마치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주님께서, 그리고 앞서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영해 주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사십시다. 그날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우리 살아 보십시다. 그런 푯대를 바라보고 오늘을 살아가십시다. 여러분, 오늘 내가 바라보고 달려가는 푯대는 거듭났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