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Fax: (703)448-5384  contact@kumcgw.org

Mission Statement
History of KUMCGW
Worship Services
Directions to Church

Korean Ministry
English Ministry
Children's Church
Youth Church

Profile and Photo

Photo Album
Sharing


Sharepoint Home
Contact Information
Resources and Links
Connectional    Churches
Korean Bible Study


Archive | Home | audio video-56K video-230K

2002.8.4. 조영준 목사(정동감리교회)

변화산과 사망의 골짜기

누가복음9:28-43

사망의 골짜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보여주신 변화산의 체험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의 소망과 함께 현실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실패와 좌절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최후 승리는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그 어떤 충격적인 인상이나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될 때에 이 경험이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제 어머님께서 제게 하신 가장 인상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머님께서는 그 관 앞에서 맹세하시기를 "내가 다른 것은 다 못해도 당신의 아들 하나만은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소" 하고 다짐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린 마음에도 굉장한 충격과 감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머님의 이 말씀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은 정말 저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 하신 분이었고, 저도 또한 어머님과 같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듣는 한가지 말, 보는 한가지 인사, 경험하는 한가지 사건이 이렇게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변화산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갔다가, 예수께서 거룩하고 신성한 모습으로 변화하시고, 그 환상 중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구약에서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요,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이 둘이 함께 나타난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환상에 베드로는 너무 흥분해서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하고 말합니다. 이 때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며 말하기를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변화산 체험을 통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예언된 메시야요, 예수께서 인간의 육을 쓰고 계시지만, 그 분의 본질은 초월적인 분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황홀한 체험 중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환상은 사라지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내려와서 발견한 그 세계는 참으로 변화산과는 정반대 되는 세계였습니다. 죽음의 골짜기였습니다. 귀신들려 고생하는 소년의 아우성 소리가 들립니다. 귀신이 그를 잡아 소리지르게 하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거품을 흘리게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누가복음 9장을 계속 읽으면,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음모가 점점 굳어지고 구체화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44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셨습니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을 더 읽으면 실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앞으로 올 고난을 생각하시면서 내적으로 극심한 고통 중에 계실 때에, 제자들의 관심사는 "누가 더 크냐"고 하는 서열다툼이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 골고다로 가시게 되는데, 그들의 관심은 "누가 더 잘났느냐," "누가 더 인정을 받아야 하느냐" 하면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가소롭고 기막힌 일입니까? 실로 세상은 변화산과 정반대인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귀신과 질병과 악한 마음과 시기와 질투가 편만한 곳---이곳이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변화산에 올라가 놀라운 체험을 맛보고 다시금 이 세상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변화산은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경험이었습니다. 너무나 짧은 순간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체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변화산 체험의 가장 중요한 점은 비록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들은 이 경험을 통해서 예수님의 실제, 예수님의 본질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이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그들을 예루살렘과 소아시아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핍박을 당하고 드디어 순교를 하면서도 그들은 변화산의 그 황홀한 모습을 기억하고, 그 영광이 자기들의 영광이라는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그의 뇌리에는 변화산의 황홀한 경험이 뚜렷하게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꿈을 주고,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는 message를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변화산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지루한 것 같고 밋밋한 것 같지만, 그 어떤 계기에 변화산의 신비체험을 할 때, 우리는 변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는 좀 다른 의미에서 이 변화산의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6월 한달 동안 우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에서 느꼈던 것 같이 황홀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이러다가 우리는 World Cup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닐까? 우승하게 되면 이 뜨거운 열기와 energy가 이 사회와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과 빛을 보면서 두려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두려운 마음까지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높아진 위상, 갑자기 커진 자신감, 그래 "대-한-민-국", "오 필승, 코레아"가 우리의 귓전을 뱅뱅 돌 정도로, 우리는 World Cup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아마 지난 수 십 년간 그렇게 마음이 시원하게 나라사랑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분열과 음해로 가득찬 정치와 사회, 혼돈된 가치관과 흔들리는 사회질서 IMF의 쓰라린 고통-- 이 것들을 다 떠나서 한마음이 되어 정말 같이 울고 같이 웃는 동포가 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느 외국인이 쓰기를 "이 열광적인 응원은 한국인들이 축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이다"--이렇게 썼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다른 경기를 했어도 우리는 열광적으로 응원했을 것입니다. 이상스럽게 전에 못 느꼈던 뿌듯한 마음, 자랑스런 마음, 하나 된 마음, 주고싶은 마음, 이런 행복감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6.25의 참담한 기억도 거의 잊을 정도로 World Cup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독일에게 한 골로 지면서 우리는 우승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알았고, 6월 29일 터키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중국언론이 이상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기사를 쓸 때마다, "같은 아세아 사람들로서 이럴 수가 있는가"하는 모욕감도 느꼈고, 이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라고 하는 것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냉혹한 것은 바로 우리가 3, 4위를 다투던 6월 29일 아침, 서해안 연평도 근처에서 발사된 포탄들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젊은 청년이 죽고, 19명의 젊은이들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북한 젊은이들의 사상자 수는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죽고, 사지를 잃고, 장애자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너무나도 실망했고, 너무나도 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축하는 못할지언정, 대포를 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패배와 우리의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피를 나눈 동족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엄청난 아픔을 느낀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꿈같이 한 달을 지나는 동안 이 세상은 무엇 하나 바뀐 것이 없는 냉혹한 세상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이 잡혀가고, 우리 나라 외교관들이 구타를 당하고, 국회는 식물화되고, 파업은 계속되고, 무엇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된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사망의 골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죽이고 그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고, 계속 지배하려는 악의 세력이 편만해 있습니다. 제자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변화산의 꿈에서 깨어났듯이, 우리도 이 세상의 냉혹한 현실에서 다시금 깨어나게 됩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역사가 집요하게 움직이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악의 세력이 집요하게 행패를 부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교만과 시기와 질투로, 서로 의심하고 신뢰의 줄을 끊고, 서로 싸우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편지 5:8,9에 쓰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무엇이 근본문제입니까? 어떻게 하면 근본적 해결책을 발견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러한 사망의 골짜기를 보시면서 한탄하셨습니다. 4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의 관계가 문제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예외 없이, 죄의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교회공동체 안에도 죄의 세력은 항상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 외에는 이것을 물리칠 도리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과 마귀를 번갈아 섬기고 있습니다. 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사람이 오늘은 마귀의 종이 됩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 열매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출발하지 않는 말과 행동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요, 성령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변화산의 체험이 있는 까닭입니다.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까닭입니다. 꿈이 있는 한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용기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 죽는지 아는 사람은 왜 사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죽을 이유를 찾는 사람은 살 이유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4:8-10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곤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장 16-18절에서 아주 위태한 선언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정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없어져도, 우리가 믿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1930년이 발표된 감리교 교리적 선언 맨 마지막 절은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와 영생을 믿노라"하고 끝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의의 백성입니다. 승리의 백성입니다. 영생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변화산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기쁨으로 자신 있게 살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산의 신앙체험을 간직하시고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