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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7.21. 천국의 비유(1) - 장찬영 목사

왜 천국은 겨자씨에 비유되었습니까?

마태복음 13:31-32

왜 예수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요?
여기에 천국의 비밀이 있습니다.
겨자씨, 그것은 비록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천국의 모습을 가진 천국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천국에 대해 아십니까?

신약에서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천국은 대개 세 가지로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천국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예수께서 내 심령에 들어오신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뿌려지는 그 순간에 이미 천국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당에서부터 내 안에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것을 느낄 수도 있고,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하튼 천국은 이미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천국은 이미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현재 내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적인 천국입니다. 아무리 죄악과 불법이 가득 차고 그 안에서 내가 고통을 당한다 해도, 내 안에 시작된 천국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이 나의 현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믿음과 삶을 통해 체험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느껴지고 만져지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천국은 그 날에 완성됩니다. 천국의 완성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 천국은 영광 가운데서 그 날에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날에 천국에서 해처럼 빛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내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천국의 그림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그 그림의 끝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천국을 이해하는 사람은 현재의 천국을 맛보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천국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놀라운 천국을 그 작고 미미한 겨자씨 하나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하나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자란 후에는 놀랍게도 보통 나물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가 되어서 가지가 넓게 퍼지니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겨자씨가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작은 것을 비유할 때는 겨자씨와 같다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7:20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 믿음을 가리켜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라면 만물보다 커져서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겨자나무의 높이는 보통 사람이 말에 탔을 때의 높이보다 조금 더 높을 정도라고 합니다. 겨자씨는 보통 약 4M 높이의 숲을 이루기에 거기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겨자씨 비유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갑자기 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신비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1:6에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극히 작게 시작되었지만 결국 모든 열방이 모여들 수 있는 나라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지상의 교회가 지극히 작게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전 세계에 충만하게 퍼지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겨자씨 비유의 전부입니다.

"지극히 작은 데서 시작되어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을 이룬다. 그리고 큰 것을 이룬 그 속에 많은 새들이 깃들인다"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1) 첫 번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작게 시작해서 크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게 시작하지만, 엄청나게 거두어들인다는 진리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위대함에 대한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인류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민중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옆에 있는 부인도 사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착각입니다. 가장 위대한 것은 큰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도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 자존심 상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 교회는 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섬기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시교회는 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시골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기가 있는 곳에서는 전도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광야에서 전도하기는 고독하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곳에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에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한 과부의 엽전 두 닢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황금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지위가 높고 세상적으로 훌륭한 사람, 외적으로 크고 화려하고 좋은 것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또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돌보지 않고 관심 갖지 않는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과 같다고 하셔/씁니다. 여기에 진정한 천국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출발은 지극히 작은 유대 땅 베들레헴인 것입니다. 그분은 화려하고 인기있는 장소에서 태어나시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험한 곳에서 태어나 가장 이름 없는 갈릴리에서 자라신 예수님, 역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를 보면 학벌도 지위도 없는 어부들이었고,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전부를 이들에게 쏟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천 명, 만 명 모이는 민중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고관들과 같이 있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창녀와 같이 계셨고, 죄인들, 세리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는 학교도 괜찮은 일류학교, 직장도 우구나 인정해 주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씁니다. 의미 있는 것에 시간을 바치지 시시한 데에는 시간을 바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위 괜찮은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지만 소위 시시한 사람과는 시간 내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성공적으로 했는데 왜 내 마음속에는 천국이 없는 것일까요? 그것이 예수님의 생각도, 예수님의 방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천국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고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되었을 때 초대교회는 얼마나 미미하였습니까? 백 이십 명으로 시작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핍박 속에서 이리 저리 도망 다녔고 감옥에 갇혔고 사자에게 먹혔습니다. 그러나 모진 학대와 고난을 받으면서 초대교회는 잡초처럼 자라났습니다. 삼 천명이 모였습니다. 남자만 오 천명이 되었습니다. 허다한 무리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던 이 땅위에 한 집단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로 인해 이제 세계의 최대강국이 될 때까지 복음은 그렇게 번져 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조국은 어떻습니까? 백여 년 전 아펜셀러, 언더우드에 의해 전해진 복음은 한국땅을 세계 기독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의 시대를 갖게 했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은 개인을 변화시키며, 그렇게 말씀은 공동체를, 나아가 사회와 민족을 더 나아가 복음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세계의 역사가 바뀌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가 얼마나 성장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천국, 그 씨앗이 심기어지기만 하면 도대체 나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인생을 살지 우리도 알 수 없는 그 능력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것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배움의 정도와도 상관없습니다. 당연히 소유의 크기와도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의 씨앗이 떨어지기만 하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이것은 나의 인간적인 기대와 계획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내가 작은 일을 한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내게 작은 일이 맡겨졌다고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로 남들이 하지 않는 작은 일을 맡는 순간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위치에 있다고 좌절하지도 마십시오.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것은 올라갈 곳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월급이 남들과 비교하여 적다고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 . .천국은 자라나는 곳입니다. 천국은 희망이 있는 곳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을 맡은 사람에게는 천국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2) 두 번째로 이 겨자씨 비유에서 배우는 것은 천국은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결코 갑자기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방언을 받고 기가 막힌 은혜 속을 지나면 그 다음날 천사가 된 줄로 압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그렇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게 계속적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셨듯이 우리가 신령한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만 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전통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는 어제의 사람이 아니며, 과거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이 중요하고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 얼마큼 자랐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자라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허물을 벗듯이 날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과거를 벗어버리고, 새롭게,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나는 것처럼 하늘을 향하여 새롭게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비록 과거에 우리가 무슨 죄가 있었다 할지라도, 무슨 허물이 있었고 무슨 상처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벗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옷을 벗어버리듯이 그 허물을 벗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과거에 갇혀서만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일전부터 기승을 부리던 한 이단교파에서 "만약 당신은 언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셨습니까? 다시 태어나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 날짜와 시간을 모르면 당신은 거듭나지 못한 것이라고 자기교파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내가 비록 언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는지 그 장소와 일시를 기억하지 못한다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 뿐 더러 더 중요한 것, 즉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나는 날마다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처럼 날마다 거듭나는 것이 천국의 이치인 것입니다. 아들의 형상을 닮기까지 우리는 날마다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온전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도 거룩해 질 것입니다. 성장과 변화,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겨자씨 비유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그러나 하루도 쉬지 않는 변화,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장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바로 생명입니다. 겨자씨 안에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천국은 성장과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생명은 죽음을 삼키고, 없는 것을 있게 합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어떤 절망과 어두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때는 느껴지지 않지만, 끊임없이 꾸준히 계속해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숲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그들이 백여 년 전 조선 땅에 찾아와 씨를 뿌렸습니다. 이미 그전에 여러 선교사들을 통해 그 땅에 대한 보고에는 대략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조선 땅은 극단적인 계급제도와 너무도 뚜렷한 빈부의 차이, 대부분의 백성들은 글을 모르며, 그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리는 야만인들이다. 이 땅에는 복음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유능하고 똑똑했던 엘리트 선교사들은 조선땅을 회피하고 일본과 중국땅을 향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선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년 후에 오늘날처럼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온 세계에 흩어지는 곳마다 그곳에 교회를 짓고 예배드리는 도무지 세계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황량하고 가난한 농촌과 어촌에 복음을 들고 찾아가는 전도자들,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오지에서 평생을 복음을 위해 사시는 선교사들.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지극히 작은 사람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 때로 투자의 가치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뼈를 그곳에 묻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그 한사람의 헌신이 중국을 변화시켰고, 윌리엄 케리, 이 한사람의 헌신이 인도를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시 티 스터드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켐브리지를 나온 소위 켐브리지 7인위의 한 명입니다. 그는 켐브리지를 졸업한 후, 그에게 내려졌던 백작의 칭호를 내려놓고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그 후, 허드슨 테일러과 함께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자리가 잡히자 중국을 테일러에게 맡기고 당시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던 아프리카로 들어가 평생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 열병으로 그렇게 죽었습니다.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한 선교단체의 사무실에는 두 장의 사진만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쓸쓸히 죽어갔던 움막과 또 하나는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영국 런던의 3층 짜리 저택 사진이었습니다. 그는 누릴 수 있는 모든 자격과 여건이 있었지만 누리는 것을 포기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고상하게 살수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아프리카의 움막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땅에 중국땅에 아프리카에 복음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그때에 천국에서 만날 열매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 인종들이, 지구상에 태어났던 구원받은 모든 인류가 구름 떼처럼 모여 서서 주님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히브리서 12장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야 합니다. 만약 내 안에서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가시밭과 같은 마음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옥토일 것입니다. 천국은 쑥쑥 자라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게 화려하게 자라지 않습니다. 천국은 언제나 조용히 자랍니다. 식물을 보십시오. 낮에 태양을 흠뻑 받아서 밤에 조용히 자랍니다. 성장과 변화란 매일매일 조금씩 그러나 변함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변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변화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지금 예배드리고 있다고 하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말씀을 듣고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지금 나는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려한 것을 찾다가 가장 화려하지 않은 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을 사모하다가 가장 유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돈으로 모든 가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고, 세상에서 조롱하는 것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는 사람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천국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언제나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씨앗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매입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씨앗을 보시면서 그것의 열매를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 작은 씨에서 그 엄청난 열매가 나올까요? 이것은 신비입니다. 그러나 유능한 농부는 이것을 알기에 , 아니 씨에서 그 아름다운 열매가 나오는 것을 분명히 믿기에, 아니 보아왔기에 그는 서슴지 않고 좋은 땅에 씨앗을 심고 부지런히 밭을 갈며 물을 대고 가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농부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씨를 심어주시고, 그것을 자라게 화십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요? 겨자씨! 그것은 씨 중에 지극히 작지만 결코 작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 겨자씨에는 생명이 있기에 땅에 떨어져 심기우면 자라고 마침내 새들 와서 깃들이는 나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한국의 '겨자씨'라는 한 장애인 모임에서 발행한 그들의 책자에 나온 '겨자씨 믿음' 이라는 제목의 기도문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세상의 작고 천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무시하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것들이 싫었기에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 자신을 무시하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내가 열등감을 갖는 이유도 내가 작고 천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내 얼굴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예쁘지 않다는 것 때문에,
내가 자라온 배경이 너무 불행했다는 것 때문에,
내가 배우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내가 돈이 없다는 것 때문에,
내가 유명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내가 성취감을 갖지 못한 것 때문에,
무엇보다 제가 다른 사람처럼 온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저는 저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며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주님, 저는 왜 주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셨는지를 조금은 알게된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저의 모든 부족한 것들과 제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여건들이 천국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얘기하기에도 버거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삶의 모습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이 마음을 갖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평화와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제는 주어진 환경을 감사하며, 비록 작은 것을 맡았을지라도 그것이 천국의 시작임을 알고 기뻐하며 일하게 하옵소서.
그 속에서 천국이 자라는 것을 보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며,
날마다 천국의 기쁨 속에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