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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7.7. 김상근 목사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고린도전서 14:34-36
디모데전서 2장8절과 더불어 오늘 본문 말씀은 많은 성도들, 특별히 여자 성도님들께 부담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이 권면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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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인 할머니 네 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자기 아들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제 아들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장로입니다. 제 아들이 이 방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일어나서 '장로님' 하면서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다른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제 아들은 큰 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제 아들이 지금 이 방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일어나서 '목사님' 하면서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아주 자신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말합니다. "제 아들은 연합 감리교회의 감독입니다. 무려 700개가 넘는 감리교회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이 방안으로 들어온다면, 사람들은 일어나서 '감독님' 'Bishop' 하면서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할머니는 아들 자랑을 할 게 없었습니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좋은 직업도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먹는 것만 좋아해서 몸무게가 300 파운드가 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아주 큰 소리로 아들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 아들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만 단지 먹는 것을 좋아해서 몸무게가 300 파운드가 넘게 나갑니다. 그래서 제 아들이 그 뚱뚱한 몸을 이끌고 이 방안으로 들어오면, 많은 사람들은 제 아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합니다, "Oh, my God!"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역사 공부가 지루하기 때문에 수업을 시작할 때 마다 학생들에게 조크를 해서 수업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가도록 노력했습니다. 하루는 방금 말씀 드린 조크를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큰 소리로 웃었고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여학생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들더니, 제가 한 조크에 대해서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학생의 입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의 배후에는 아주 고질적인 성차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의 핵심에는 자기 아들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는 여성들의 굴욕적인 삶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여성은 자신의 삶의 가치나 생의 업적으로 판단되지 않고 남성인 아버지나, 남편이나, 아들이 가진 인생의 가치나 생의 업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느냐고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냥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여학생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유교의 문화권아래에 있는 우리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니 여필종부(女必從夫)니 하는 말에 아주 익숙해 있습니다. 여성의 가치는 어릴 때는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시집을 가서는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장성한 아들에게 의지함으로 결정된다는 삼종지도의 가르침으로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제약되어져 왔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많은 성도님들께, 특별히 여자 성도님들께 불편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아주 듣기 거북한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이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 임이라." 어떻게 보면, 이 본문 말씀이야 말로 "고질적인 성차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들의 현실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말씀을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우리 신앙 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그 말씀은 2000년 전 그리스-로마 문화권에 있던 고린도 교회에 대한 권면이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현실에 적용될 수 없다고 단순히 부정할 수 있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오늘 말씀이 기록된 그대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 와싱톤 한인교회는 이미 1979년에 여자 장로님을 세웠고 지금도 두 번째 여자 장로님께서 시무하고 계십니다. 여자 목사님을 영어목회 담당자로 모신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70 여 개의 속을 섬기는 속장님들 중에는 많은 수의 여자 성도님들이 헌신하고 계십니다. 비단 우리 교회에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만이 아닙니다. 미국에 있는 수많은 신학교에 여학생들의 숫자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어떤 신학교에서는 여학생의 숫자가 50 %를 넘는 학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멀지 않는 장래에, 여성 목회자의 숫자와 남성 목회자의 숫자가 비슷해 지거나 어쩌면 더 많아 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현실에서 오늘 성경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 사도는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아주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디도서 2장 3절에는 교회 안에서 나이든 여성들의 의무에 대해 설명하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젊은 여성들을 가르치는 자가 되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권면과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바울 사도의 입장은 갈라디아 교회로 보낸 그의 편지에 한마디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복음 앞에 유대인과 헬라인인 동등함과 같이 남자와 여자도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통하여, 교회내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바울 사도는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에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디도서와 갈라디아서에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일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 때, 한가지 조심해야 할 점은,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의견을 획일화 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성경의 한 부분을 확대하거나,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진 여성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비교하여 볼 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여성들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일관성이 있음을 복음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시고, 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난 예수님과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를 먼저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 수가성 여인의 말대로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방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시기 위하여 우물가에서 있던 여인에게로 다가가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구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시면서 성난 무리들로부터 그 여인을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치욕과 불안에 떨고 있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고 하시면서 그 여인에게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는 여성의 사역을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 문둥이 집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에, 임박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한 여인이 귀중한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을 비난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그 여인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그 당시의 소외되었던 여성들에게 다가가시고, 쓰러져 있던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그들의 헌신을 축복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셨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인생의 문제들을 함께 고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성들에게 먼저 다가가셨고, 쓰러져 있던 그들을 세워 주셨으며, 그들의 사역을 축복하셨다면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더 많은 여자 성도님들이 자신의 정성을 바쳐서 마음껏 교회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여자 성도님들이 자신의 은사를 따라서 마음껏 교회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여자 성도님들이 자신의 믿음의 결단을 따라서 마음껏 교회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교회의 식당이 여자 성도님들의 주된 모임 장소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감사한 것은 우리교회의 주일 점심을 서브하고 설거지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경우 남자분들이란 것입니다. 속회별로 나누어서 앞치마를 두르시고 음식을 나르시고 설거지 하시는 남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성도님들을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자주 그렇게 하시고, 또 댁에서도 자주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 사도의 권면으로 돌아가십시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우리가 다시 본문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앞 부분,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표현의 중요성입니다. 다른 말씀으로 하자면, 본문의 의미는 "모든 성도들이, 남자나 여자나 모두, 교회에서 그렇게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남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잠잠함과 같이, 여자들도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 표현이 들어갔을까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권면을 하기 전에 왜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표현이 조건으로 먼저 권면되었습니까?
역시 바울 사도가 쓴 편지인 빌립보서 4장에 그 해석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2절과 3절에는 바울 사도가 함께 사역한 두 여성들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성들이었습니다. 빌립보서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바울 사도와 함께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부녀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 자신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을 추천하면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자신과 함께 복음 전파에 힘쓰던 부녀들을 추천하면서 그들과 함께 "같은 멍에를 메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수님 시대와 초대교회 시대에 사용되었던 멍에는 반드시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메고 함께 쟁기를 끌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메고 함께 땅을 파는 것입니다. 소 한 마리가 한 멍에를 메고 혼자서 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메고 함께 땅을 파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하여,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지고 같이 호흡을 맞추고, 발걸음을 맞추면서 함께 묵묵히 쟁기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와 복음전파에 힘쓰던 부녀들이 그러했듯이, 여인에게 다가가시고, 쓰러져 있던 여인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여인의 사역을 축복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같이, 아무런 차별 없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서, 함께 발걸음을 맞추고, 묵묵히 새 하늘과 새 땅을 일구어 나가는 것입니다.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지고 함께 땅을 일구어 나가면서, 한 마리가 오른 쪽으로 가자고 하고 다른 한 마리가 왼쪽으로 가자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눈에 보지 않아도 뻔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진 이 시대의 사명을 다하고자 할 때,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묵묵히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성도들의 헌신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묵묵히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것, 어떻게 보면 미련해 보이는 두 마리의 소가, 묵묵히, 잠잠한 가운데,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는 모습을 기억하시면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동반자로서, 파트너로서, 묵묵히, 잠잠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본문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자만 잠잠할 것이 아니라 남자도 잠잠해야 합니다. 온 천하가 잠잠해야 합니다. 묵묵히 그리고 잠잠히, 한 멍에를 같이 나누어 지고, 맡겨진 주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그렇게 결단하시는 저와 여러분께 성경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 지니라." (하박국 2: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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