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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5.5. 부활절 후 다섯째주일 / 봄철 부흥 성회 - 김낙인 목사

은혜있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 가정같은 교회

에베소서 5:1-7

교회가 은혜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 은혜의 원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까?
세상의 원리는 힘과 다스림, 정치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은혜 위에 기초합니다. 또한 우리모두 주님의 교회임을 생각할 때 성도의 삶 역시 은혜 위에 기초합니다.
은혜,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주님의 은총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뉴저지에 있는 한인 연합 감리교회에서 전국 한인 연합감리교회 영어 사역 개발 위원회가 모였습니다. 영어 사역이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들, 기관의 기관장들, 2세 사역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현재 모든 이민교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어 사역을 바로 개발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필요한 사항들을 이야기하면서 먼저는 이미 영어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들을 엮어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서로 돕도록 하자, 캠퍼스 사역을 적극 추진하자, 신학교를 방문하여 신학생들에게 영어 사역을 위한 기회를 알리도록 하자, 전국적이고 전 교단 적인 영어사역 대회를 열고, 향후 4년 동안 전국 적으로 15개의 2세 영어교회와 20개의 캠퍼스 사역을 개발하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진취적인 일들을 의논하며 회의를 종결지을 때쯤이 되었는데, 성공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2세 사역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미래를 향한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비전을 잘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현재 영어 사역에 임하고 있는 우리들은 몹시 외롭습니다. 2세 사역이 개척기에 있기 때문에 숫자도 많지 않고 이해도 부족합니다. 그런 외로움 속에 2세 사역자들이 많은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싸움하고 있습니다. 고민과 아픔과 외로움과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서로 이해하고 함께 나누고 격려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여 미래를 향한 비전을 보면서도 현실에 탈진하여 실패감을 가지고 사역을 떠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한 그것을 보면서 두려워서 감히 사역으로 들어오지를 못하는 2세들이 많이 있습니다. 15개의 2세 교회, 20개의 캠퍼스 사역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현재 사역하고 있는 2세 사역자들이 함께 모여, 문제와 아픔을 이야기하고 울고 웃고 먹고 마시고 격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미래의 비전이란 그림에 가리워 현재의 아픔을 보지 못한 우리의 허를 찔리는 말이었습니다. 모두가 숙연하여졌습니다. 그때 연합 감리교회 본부의 제자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제자국 주관으로 곧 마련하도록 약속하였습니다.

그 2세 사역자의 고민과 아파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이들만 아픔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같은 아픔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2세는 2세대로 1세는 1세대로 외로움과 아픔이 있습니다. 이민자들의 아픔과 외로움이 있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아픔과 외로움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이 아픔과 외로움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아픔, 이 외로움이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아픔과 탄식으로 인하여 우리의 가슴은 까맣게 타고 원망과 후회와 짜증 가운데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작별을 고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102편에서 "나는 음식 먹기를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과 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와 같으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대를 넘는 아픔과 고독의 신음입니다.

걱정과 근심과 아픔을 함께 나눌 이웃 한사람 없이, 길 잃고 광야에 홀로 서있는 나그네 같이, 기력은 진한 가운데 홀로 우는 당아새와 부엉이 같이, 탄식하고 울며 외로운 밤을 지샌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외롭게 탄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앞을 향하여 살아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너희도 사랑가운데 행하라(5:1-2)" 말씀합니다. 외롭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며 소망가운데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닫고 그 사랑을 가지고 서로를 향하여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탄식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받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의 문제는 사랑 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사랑 받지 못해서 외롭고, 사랑 받지 못해서 슬프고 사랑 받지 못해서 상처가 되고, 사랑 받지 못해서 풀이 없습니다. 사랑 받지 못해서 용기를 갖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해서 한이 됩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가 없고 사랑하지 않아서 꿈이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보람이 없고 사랑이 없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랑을 경험하고 상처를 치유 받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보금자리가 있는데 그것이 가정입니다. 사랑은 일대일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이 그 사랑을 받고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부모를 주셨고 형제 자매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가정에서조차 상처를 받고 동상이몽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냐하면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치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한다(고전 13:4-5)"고 하였는데 우리는 정 반대의 취급을 받고 정 반대의 행동을 하며 가족을 대하며 산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의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삶은 우리로 참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가정들이 93%가 부부가 일하면서 생활합니다. 결혼한 가정의 50%가 이혼하고 있고 재혼한 가정의 60%가 또 이혼한다고 합니다.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재혼으로 함께 살게 되는 비율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15명 가운데서 1명은 미혼모 가운데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25%의 자녀들이 Single Parent 와 살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하루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적어졌습니다. 각 방마다 TV를 놓고 각기 원하는 프로를 봅니다. 자녀들이 어머니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일주일 평균 30분, 아버지와의 대화시간은 15분이 채 안된다고 합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경험하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외로움과 공허감, 군중 속의 고독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사랑에 목말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가정의 사랑을 채워주어야 할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성령님을 어머니로, 예수님을 형님으로, 주위의 교우들을 형제 자매로 삼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영적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내 모친과 내 동생이니라"(눅8:21)하시면서 영적 가정의 개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교회를 처음 주셨을 때 교회는 가정에서 모였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에베소 교회, 갈라디아 교회, 로마 교회 모두가 가정에서 모이던 작은 소그룹이었습니다. 이 가정 같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뜨거운 사랑의 교제와 가르침과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랑을 보고 받으며, 어린 신앙들이 사랑의 능력을 가진 성도들로 자라났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재주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구변 좋은 사람, 학식 높은 사람, 신앙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지식은 뛰어나서 모두가 자기 것을 가르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로써의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없는 교회를 보고 사도바울 선생은 너희는 예수를 헛 믿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였습니다(고전 15;2).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따르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고전 3:3). 모임에 유익이 없으니 차라리 모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1:7).

사랑에 메마른 사람들에게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교과서적인 지식을 아무리 이야기하여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지식은 사람을 각박하게 만들뿐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배고플 때는 집에 가서 밥 먹으라고, 추울 때는 옷 입으라고 하는 이론적인 이야기가 무슨 도움이 됩니까?

가르치려는 스승보다 부모의 사랑으로 함께 아픔을 나누고 격려하고 붙들고 기도며, 옷을 가져다주고 밥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깊은 목마름과 굶주림은 해결되지 못합니다.

얼마 전 밸리교회의 한 선교회에서는 건강보험이 없이 병이 들어 정말 힘든 교우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헌금을 하여 병원비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것을 받은 당사자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동하여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힘입어 용기와 소망을 갖고 회복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세상 적으로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학교 선생님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은 지식을 주었지만 부모는 실천하며 보여주는 사랑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Yada, Oida" 라는 말은 체험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교과서적인 지식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담이 이브를 알았다는 말은 이브를 경험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하였기에 생겨지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기에, 그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과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체험적인 사랑이 나누어 질 때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기름지고 아름답고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밝고 명랑합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지난 달 동안 갑자기 우리 교회의 여러분들이 한꺼번에 병이 드셨습니다. 그분들을 심방하면서 경험하는 것은, 교회의 많은 분들이 병 문안을 와주셔서 너무나 송구스럽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외롭고 두렵고 약해져 있는데 속회와 선교회에서, 찬양단이 방문해 주어서 큰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아플 때 나는 가지 않았는데 내가 아플 때 이렇게 와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귀한 사랑을 교우들이 베풀어 주셔서 이제 나가면 나는 다른 것보다 병든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보는데 열심을 다할 것이라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다짐들을 하십니다. 그것이 가정 같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의 돌봄을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 하노라(갈 4:19)고 말합니다.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또 그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로 자라나게 하는 일들이 교회 내에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떤 교회는 60만이나 되는 교인 수를 가진 교회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지만 교인들이 그 안에 그렇게 끈질기게 머물러 있는 이유는 교우들간의 관계가 뜨거운 사랑으로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의 많은 교인들이 병들고 실패하였을 때 성도들의 철야기도, 금식기도와 도움을 받고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병들어 죽음을 보며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저들을 교회에서 찾아와 먹을 것을 주고, 가정을 돌보아 주고, 실패하여 자살하려고 하였는데 속원들이 돈을 모아 새로운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 다시 일어난 사람들이 의욕을 가지고 옛날의 자기처럼 병들고 실패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기 것을 드려 뜨겁게 기도하며 돌보고 세우는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낳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기르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 건강, 물질, 정성을 드립니다. 때로 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을 소원하고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며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가정의 사랑을 교회에서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사를 치르기 위하여 모였다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속회나 선교회에서, 성도간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때에 우리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가 되어지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고치며 성숙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성도 서로간을 통하여 은혜가 느껴지고 경험되어지고 보여지는 교회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와싱톤 한인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