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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4.28. 부활절 후 넷째주일 - 김상근 목사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

빌립보서 2: 1-11

우리는 자주 '마음을 비운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과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비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 -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가끔 "마음을 비운다"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멕시코 단기 선교 기금 마련을 위해서 오는 6월 1일, 골프 대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함께 골프를 치다가 같이 치는 사람의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헛 스윙을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한 마디 거들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십시오." 마음을 비우지 않고, 너무 공에 집착하거나, 승부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스윙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히 골프를 칠 때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골프를 치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주제넘는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이 없을 때에는 마음을 비우고 자유롭게 스윙을 할 수 있는데, 막상 공이 앞에 놓여 있으면, 마음을 비우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이야 쉽지, "마음을 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텅 빈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입니다. 텅 비어 있음을 뜻하는 한문의 공(空) , 그 "공"의 가르침이, 자기 마음을 비우는 것이,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 마음을 비우는 "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전은 "금강경"입니다. 한국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의 하나로 간주 되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자기의 마음을 비우는 것" 입니다. 불교 경전은 보통 끝 부분에, 그 경전의 내용을 압축한 "게송(偈頌)"이란 것이 있는데, 많은 경우에 네 글자의 묶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구게(四句偈)"라고도 합니다. 금강경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사구게"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凡所有相 하니 皆是虛妄 하다 若見諸相非相 하면 卽見如來 하리라
"무릇 세상의 모든 보이는 모습들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보이는 모습들이 원래의 모습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텅 빈 상태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 아니 지금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 그 생각조차 버릴 때, 진정한 깨달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지배하는 것,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욕심, 나의 의욕, 나의 계획을 다 버릴 수 있을 때, 마침내 진정한 깨달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한국의 아름다운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사찰에서 많은 스님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수도와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질긴 업보를 끊고, 오늘도 성불 (成佛)의 그날을 위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고행에 고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마음을 비우는 종교라면, 기독교의 복음은 그 반대로, 마음을 채우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비우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 마음을 채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이, 저와 여러분이 믿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집사님께서 봉독해 주신 본문 말씀 7절에 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본체이셨던 분이, "자기를 비어"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자기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 종의 형체를 가지시기까지, 자신을 "철저하게" 비웠습니다. 이 "비우셨다"는 동사는 헬라어 "케노시스"를 번역한 말입니다. 자신을 비우시고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아니 낮고 천한 종의 모습으로까지 자신을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케노시스" 하셨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 비움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완벽한 자기 비움, "케노시스"는 오직 예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비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의 성자들이 자신을 비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관계를 위해 사막으로 떠났던 초대 교회의 성자 안토니도, 아버지의 재산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버리고, 철저한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았던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도, 로마 귀족의 자리를 버리고 인도 남부의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던 17세기의 성자 로베르토 디노빌리도, 7년 동안 단 한명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지만, 죽을 때까지 선교지를 지켰던 윌리엄 캐리도, I Have a Dream, "나는 한가지 꿈이 있습니다" 라는 와싱톤에서의 명 연설로 미국의 양심을 깨웠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 어느 누구도, 자기를 완벽하게 "케노시스"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완벽한 자기 비움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5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채우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것, 그것이 우리들 앞에 놓여있는 선택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 -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산 속으로 들어가 고행하고 참선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의 2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라." 무엇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까?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우고 계십니까? 사랑의 마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고 계십니까? 아니면, 남아 있는 사랑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비우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1000명의 믿음의 식구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채워지고 있습니까? 목사님들과 교인들과의 관계에 "그리스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채워지고 있습니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과의 관계에,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의 관계에, 속장님들과 속원들과의 관계에, 사역장님들과 팀원들간의 관계에 "그리스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채워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랑하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사랑하는 부모님께, "그리스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채워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비워지고 있습니까? 어느 집사님께서 몇 일전 제게 카드를 한 장 보내셨습니다. 다른 주로 출타하시기 위해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시다가, 카드를 적어 제게 메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 카드에 이런 내용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몇 일전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으셨다고 합니다. "Do you love me?" 그러자 남편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니 뭐 잘못 묵었나?" 한바탕 웃고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들의 싸늘해진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은, 또 다른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의 마음"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의 마음입니다.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겸손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운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신 수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제가 절대로 잊지 못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프린스턴 신학교의 Andrew Walls 박사님이십니다. 이미 은퇴하신 지 오래 되셨지만 여러 대학에서 초빙을 받아서 가르치시고 계시고, 한번은 한 학기에 하바드와 예일 신학대학,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동시에 강의를 하시는 진기록으로 세우셨던 분이셨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그 박사님의 책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100권의 책 중의 하나로 선정되는 등, 학문적으로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제가 감동받은 것은 그 분의 학문적 업적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의 겸손한 마음이 프린스턴의 모든 제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 분의 연구실로 찾아 갔습니다. 제가 쓰고 있던 논문에 대해서 상의하러 약속시간에 맞추어 제가 찾아 가자, 교수님은 연구실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가 노크를 하자, 교수님은 특유의 인자한 웃음으로 저를 반기시고는 문 밖으로 나오셔서 제 손을 잡고 자신의 연구실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연구실 안에는 안락한 일인용 소파가 가운데 놓여 있었는데, 교수님은 제게 그 푹신한 의자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앉자, 그 연로하신 교수님은 밖으로 나가서 고물 철제 의자를 하나 들고 오셨습니다. 제게 안락한 소파를 양보하시고, 당신은 불편한 철제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그 소파에서 일어나 양보를 했지만, 이미 70을 휠씬 넘으신 교수님은 그 불편한 철제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겸손의 마음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 겸손의 마음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

빌립보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마음은 또한 "기쁨의 마음"입니다. 기쁨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슬픔의 마음이 아니라, 좌절의 마음이 아니라, 기쁨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의 그릇을 채워야 합니다.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빌립보서의 별명은 "기쁨의 편지"입니다. 전체가 4 장으로 구성된 짧은 빌립보서에 "기쁨" 혹은 "기뻐하다"라는 단어가 무려 16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이 빌립보서는 기쁨으로 가득한 편지입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의 바울은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빌립보서는 로마의 감옥에서 씌어 졌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감옥에서 쓴 글이 어떻게 "기쁨"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찬송가 261장 "어둠밤 마음에 잠겨"는 한국의 김재준 목사님께서 작사하신 곡입니다.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어둠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이 찬송의 1절, 2절은 김재준 목사님이 작사하셨지만 3절은 문익환 목사님이 작사하셨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감옥에 갇혀 계실 때 작사 하신 그 3 절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맑은 샘 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에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 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감옥에 갇혀 계시던 분이셨지만, 그의 눈 앞에는 기름진 푸른 벌판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어떻게 기름진 벌판을 바라보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구와 함께 있든지, 무슨 일을 하던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믿는 주님은 세상을 이기신 분, 죽음을 이기신 분, 우리의 영광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쁨의 근거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도 바로 이 이유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내가 갇혀 있지만, 지금 비록 내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되시기 때문에 - 바로 그 이유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동료 목회자들에게도, 섬기는 속장님들께 자주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기쁨의 목회를 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역하고, 기쁨이 넘치는 신앙을 갖자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의 기초는 성경입니다. 목회와 사역의 기초는 헌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는 기쁨입니다. "주님 주시는 참된 평화가 내 맘 속에 넘치네" - 우리 마음 속에 주님 주시는 평화,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

빌립보서는 로마의 감옥에 갖혀있던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 편지 안에는 사랑과 겸손과 기쁨의 권면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오늘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를 빌어서, 사랑하는 와싱톤 한인교회 교우 여러분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냅니다. 사랑의 편지지 위에, 겸손의 펜을 들고, 기쁨의 우표를 붙입니다. 그 사랑의 편지지 위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우리 같이 그 사랑의 편지를 읽어봅시다. 신약성경 319 페이지, 빌립보서 2장 1절부터 11절까지 입니다. 그 사랑의 편지를 함께 교독하십시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천천히 그 사랑의 편지를 함께 읽어보십시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멘, 아멘.

비우는 것보다 채우는 것이 낫습니다. 이왕 채울 바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웁시다. 사랑의 마음, 겸손한 마음, 기쁨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