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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4.7. 부활절 후 첫주일 - 김상근 목사
Are You Ready?
시편 23편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시편 23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시편 23편은 장례식을 위한 성경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도전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게 고백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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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와싱톤 한인교회는 참 설교하기 힘든 교회입니다. 물론 설교자인 제가 부족한 것이 첫째 이유입니다만, 예배에 참석하는 회중의 성격이 너무나 다양한 까닭도 있습니다. 와싱톤 지역 최초의 한인교회로 5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우리 교회에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 하신 분들과 최근 2-3년 사이에 이민을 오신 분들이 함께 모여 회중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적 배경과 다른 연령층이 모여 함께 회중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포커스를 맞추기가 때로는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앉아서 예배 드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싫어도, 그것을 아무리 부정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한 시점에,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현재 얼마나 건강하시던, 여러분이 어떠한 사회적 위치에 오르셨던,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재물을 소유하셨던, 분명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인생의 한 시점을 지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이 점을 분명히 우리에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3장 2절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편 90편 10절은 더욱 구체적으로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맥시멈도 80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몇 년 남았습니까?
2001년 9월 11일의 참사는 우리 모두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천하의 위용을 자랑하던 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그 속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는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깨달았습니다. 죽음의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II.
오늘 함께 읽은 시편 23편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성경 말씀입니다. 주로 장례식 때 목사님들이 이 말씀을 읽고, 사망과 이별의 슬픔 속에 있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천국에서 누릴 고인의 안식에 대해서 설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라는 표현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묻히게 되는 아름다운 자연 속의 무덤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 다 벗고,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에 묻힐 수 있다면 -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 모두, 그 그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인자한 모습의 예수님이 푸른 초장에서 어린 양들을 돌보고 있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그 그림의 이미지를 통해서 오늘 본문 시편 23편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의 시"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시편 23편은 항상 양을 돌보는 목동의 전원적이며 평화로운 모습과 함께 기억됩니다. 마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기 전에 다윗의 직업이 목동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의 시편 23편 읽기에, 조금 다른 생각과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편 23편이야 말로, 장례식과 죽은 자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시편 23편이야 말로,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풍경과는 거리가 먼, 삶과 죽음의 긴박한 갈림길에 서 있는, 위기의 순간을 위한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살아 있는 저와 여러분을 위한 위기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일 마지막 절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구약시대에, 다윗의 시대에, 그 누구도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제사장 만이 레위기에 정해진 제사법에 따라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의 절기 동안 제사장외에 아무도 장막이나 성소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시편 23편의 저자는 "여호와의 전에 영원히 거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습니까?
단 한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성전으로 도피하여 왔을 때, 그 사람은 "여호와의 집"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전, 혹은 성전에서는 절대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역대하 23장 14절을 보면 전쟁 중이라도 성전 안에서는 절대로 적을 죽일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시편 23편의 기자가 성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 시편 23편을 보다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의 집"으로 도피하기 위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달려왔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지팡이와 막대기"를 품고 다녀야 했던 지난날의 아픈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그 사람이 성전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성전 밖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셨다"는 고백을 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숨어 지내는 날들에 대한 감사가 또한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것이 다 여호와의 은혜였다는 고백이 계속됩니다. -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삶과 죽음의 양자택일이라는 위기의 순간에, 이제 한 발짝만 성전 밖으로 옮기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위기의 고백인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평화의 시편이 아니라, 위기의 시편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원수의 피의 보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위기의 사람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곁에 서 있을 때, 지금까지 내 곤고한 삶을 인도하여 주셨던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위기의 시편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위기로 다가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죽음이라는 손님을 평화롭게, 우아하게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슬픔과 이별, 고통과 상처, 상실과 아픔, 이것이 죽음이라는 이름의 손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들입니다. 지난 9월 11일의 대 참사는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슬픔과 이별, 고통과 상처, 상실과 아픔, 그 모든 것을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에 남겨 놓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Depression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하고, 높은 빌딩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만 봐도 공포에 사로잡힌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날 비행기 안에서 최후를 맞이 한 사람들, 그 날도 분주한 하루의 업무를 위해 세계 무역 회관으로 출근 했던 사람들, 펜타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과 저는 수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바로 지금이 그 마지막 순간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순간이라면, 나는 누구와 마지막 대화를 나눌 것인가? 아내? 남편? 아들? 딸? 부모님? 그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슨 말을 할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 마지막 순간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그 마지막 순간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렇게 고백하실 자신 있으십니까? 그 마지막 순간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랐다"고 고백하실 수 있으십니까? 감리교회의 설립자 존 웨슬리 선생은 임종을 맞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았던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고백을 하실 자신이 있습니까? 심방 사역하시는 장로님과 어느 널싱 홈에 방문하여, 이제 천국 가실 날을 기다리고 계신 한 연로하신 권사님을 심방하였습니다. 그 할머니 권사님은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고 날 위한 장례식 때, 꼭 이 찬송 불러줘 - (1) 만세만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2) 빈 손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 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 여러분은 이런 고백을 드릴 준비가 되셨습니까?
부활을 믿은 우리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아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그 마지막 위기의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 온다면, 여호와는 나의 선한 목자이심을, 내게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와 함께 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았던 일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이런 고백이 없다면, 살아 있을 때, 아니 지금 이 순간,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다면,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이런 간증을 할 수 없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이런 고백은 불가능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내 자신, 내 자녀들, 내가 가진 것이라면, 어떻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에 대한 분노, 남에 대한 증오, 자신에 대한 열등감,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삶을 살면서,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와 함께 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주일 날,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 드리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았던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로 준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까 인용한 시편 90편 10절은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80을 산다고 할 때, 그 절반, 사십 이상을 사신 분들은 이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셔야 합니다. 건강한 인생을 80으로 볼 때, 이제 나이 40이 지났으면, 인생의 전반전이 끝난 것입니다. 이제 후반전만 남았습니다. 언젠가 심판이 휘슬을 불고, 전광판의 불이 끄질 것입니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한다면, 이제 나이 40이 지나신 분들은 반환점을 돌아서 이제 마지막 골인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도착 테이프를 끊으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 고백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았던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아니, 여기 앉아계신 모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Are You Ready? 여러분은 준비가 되셨습니까?
III.
지난 해 9월 11일 모두 네 대의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뉴욕으로 날라갔던 두 대의 비행기와 펜타곤에 떨어졌던 비행기에 탔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다른 한대의 비행기, 뉴왁 공항에서 출발하였던 United Airline 93 호기는 테러리스트에 의해 공중에서 납치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와싱톤으로 날아 오다가 승객들의 저항으로 도중에 펜실바니아의 한 시골에 떨어졌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이야기는 그 United Airline 93호기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비행기가 떨어진 다음, 2001년 12월 3일자 Newsweek 지는 블랙박스에 남아 있는 녹음 내용과 승객들의 셀 폰 전화 내용, 그리고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였습니다. 그 비행기는 스케줄대로 오전 8시 42분, 뉴왁 공항에서 이륙하였습니다. 그러나 비행이 시작되자 말자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의 세계 무역회관에 충돌하였다는 것을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로부터 약 40분 후, 9시 28분의 녹음 테잎에는 테러리스트의 고함소리와 이를 저지하려는 조종사들간의 몸싸움 등이 녹음되었습니다. 그리고 무기를 든 테러리스트들이 조종석을 차지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서부로 향하던 비행기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와싱톤을 향해 비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승객들은 이미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각자의 셀 폰과 비행기 내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기를 통해 자기들의 가족들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San Francisco 에 사는 디나 버넷이라는 분은 자기 세 딸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비행기에서 걸려온 남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뉴욕에 사는 리즈 글맄이라는 분은 12주 된 아기를 자기 어머니에게 맡기러 가다가 남편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 제러미는 아내에게 비행기 안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한 다음,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I love you. I love you. 그리고 자신의 삶에 아내와 12주된 딸 에머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지 대해 말했습니다. 눈물의 마지막 대화가 이어진 다음, 남편 제러미는 아내에게 다른 승객들과 함께 결정한 내용을 알려 주었습니다. 여승무원들은 뜨거운 물로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하기로 하고, 나머지 남자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비행기 납치범들에게 대항하기로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내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Go for it. Do what you have to do. 승객들의 마지막 저항이 시작되기 전 샌프란시코의 디나에게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부탁했습니다. "Just pray, Deena, pray!"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제 37명의 승객들과 5명의 여승무원들은 최후의 공격을 위해 뒷좌석에 모였습니다. 토드 비멀 (Todd Beamer)라는 젊은이가 일어나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다른 승객도 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쳤을 때 비멀은 외쳤습니다. Jesus Help Me! 옆에 있던 다른 승객, 제퍼슨이 말했습니다, "Are you guys ready? Let's roll"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37명의 승객들과 5명의 여승무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굴하게 앉아서 죽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9시 58분부터 10시 6분까지의 마지막 8분 동안 승객들과 테러리스트들 간의 격투가 좁은 비행기 안에서 벌어졌습니다. 그 마지막 8분 동안의 소란과 대화 내용이 켜져 있던 전화기를 통해서 녹음이 되었습니다. 조종석을 다시 뺏기 위해 삶과 죽음을 건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바로 그 최후의 8분 동안 여러 승객들의 음성이 녹음되었습니다. 마침내 최후의 순간을 맞으면서, 비행기가 떨어지는 동안, 그 승객들이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함께 외우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Are You Ready?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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