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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3. 사순절 셋째주일 - 김상근 목사
여리고를 지나서
누가복음 19:1-10
예수님은 오늘 여리고 성을 지나셔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십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 고난의 도시에 도착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여리고 성에서 키 작은 세리장 삭개오를 만납니다. 뽕나무 위 위에 앉아 있던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동안 뽕나무 위에 앉아 있는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합시다.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2월을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보냈습니다. 지난 2월로 제가 미국에 온지 정확히 10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 동안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든 내 나라, 사랑하는 가족들,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날 그 때를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처음 뉴저지 뉴왁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생소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은 겨울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과 하나 둘씩 공항을 빠져나갔지만, 미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던 저는 그냥 우두커니 서서 비 내리는 활주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빗물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그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 날부터 저는 이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보잘것없지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지난 10년 동안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Full Time 목회지인 이곳 와싱톤 지역으로 이사 온지 벌써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버지니아 한아름 옆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전형적인 이민자들의 마을입니다. 저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는 약 40개국에서 온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그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American Dream을 이룩하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활력이 넘치는 동네입니다. 이민자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보시려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는 "한아름"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 가면 고향의 맛을 볼 수도 있습니다. 비싼 값을 기꺼이 치르고도, 한국의 고추장, 된장, 오징어, 김치, 초코파이, 새우깡 같은, 고향의 맛을 기억하고자 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있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다운 장터입니다. 그 곳을 지나서 Gallows Road를 따라 조금 더 가면 아난데일이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한국 사람들의 거리입니다. 한국서점, 한국식 자장면 집, 한국 빵가게,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식당과 미용실 등이 즐비한 곳입니다. 부지런한 우리 한국 동포들이 이 지역에서 오늘도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한국 동포를 볼 때마다 마치 고향에 와 있는 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아난데일을 지나갈 때마다, 한국사람들을 비롯한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북적대는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곳이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지나가셨던 여리고 성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불과 27KM (16마일) 떨어져 있던 여리고 성은 예수님 당시 아주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기록을 보니까 헤롯대왕이 구약 시대의 여리고보다 조금 남쪽에 신도시를 신축하고 그 곳을 여리고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곳을 헤롯대왕은 겨울철동안의 수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요단강 기슭과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도로에 위치해 있던 이 도시에는 각 처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몰려든 사람들로 분주한 도시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와싱톤처럼, 예수님 당시의 여리고 성은 각 지역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주민들의 도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 이야기는 이 여리고 성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복음서에서, 아니 신약성경 전체에서, 여리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세 번에 걸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 시대의 여리고 성과 지금 이곳 와싱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비슷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여리고 성에서 일어난 사건은 마가복음 10장 4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 성에 지나가실 때에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번잡한 길에서 소경 거지가 앉아서 구걸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경 거지가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몰라보았는데, "눈 먼 거지"가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큰 목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지만 주위에 있던 여리고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여리고 성 사람들은 소경 바디매오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10장 48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여리고 사람들은 소경 바디매오에게 꾸짖으며 윽박질렀습니다 - 잠잠하라, 조용히 해라, 시끄럽게 굴지 마라!
우리는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여전히 피부색깔에 의해서 차별 받는 일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와싱톤은 전 세계에서 파견된 외교관들이 많이 사는 곳이고, 미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이민자들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편입니다만, 시골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참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장돈식 집사님이 속장으로 계신 한마음 속을 방문하기 위해 가다가 급히 교회에 전화연락을 할 일이 있어서 근처에 있는 Gas Station에 가서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근데 어디서 싸우는 소리와 함께 여자아이의 우는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주차되어 있는 차안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40대의 여자분과 딸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말이 싸움이지 일방적으로 구타를 하고 있었고 그 여자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가가서 열려져 있는 차 창문 너머로 그 여자분께 때리지 말라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우고 있던 모녀가 일제히 차 밖으로 나와서 제게 온갖 욕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You are a foreigner, go back to your country!
낯선 미국 땅에서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서로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 딸을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 분의 눈에는 제가 한국이나 중국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모양입니다. 얼마 전 스파이 혐의에서 무죄석방 되었던 중국계 과학자 Wen Ho Lee 박사의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Los Alamos의 국립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던 그 분이 미국의 국가정보를 중국으로 넘겼다는 스파이 혐의를 쓰고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무죄석방이 된 Wen Ho Lee 박사가 최근에 쓴 My Country versus Me 라는 회고록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분이 감옥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기가 막힌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Buffalo New York 에서 온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 "Once a Chinese, always a Chinese, and that goes for your children, too. They are Chinese just like you. There is no place in America for them to hide the fact that their parents are Chinese spies who have betrayed the USA. Your whole family is hated. You need to go back to China. We don't want your people." (My Country versus Me, p. 259)
그래도 이 곳에서 정 붙이고 열심히 한번 살아보려는데, 먼저 이 곳을 차지한 사람들이 우리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잠잠하라, 조용히 해라, 시끄럽게 굴지 마라! 여리고 성에 앉아서 소리치는 소경 바디매오에게서, 그 주위에 서있던 여리고 사람들의 태도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2) 두 번째 나오는 여리고에 대한 말씀은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 시작되는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예루살렘과 여리고의 거리가 16마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강도 만나 거반 죽게된 사람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이, 당시에 천한 이방 사람으로 간주되던 사마리아인이 선행을 베풉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 주고 주막으로 옮겨주는 선행을 베풉니다. 저는 이 여리고 길에서 일어난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물론 이 비유의 주인공은 선행을 베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만, 여리고 길에서 강도 만나 거반 죽게된 그 사람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1992년에 일어났던 LA폭동 사건은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과연 어디에 살고 있는지, 과연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백인 경찰들이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을 집단구타 하면서 시작된 그 사건은, 엉뚱하게 LA 다운타운에서 장사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과 흑인 커뮤니티 간의 문제로 발전되었습니다.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이룩한 가게가 폭도들에 의해서 약탈당하고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LA 동포들의 좌절을 통해서, 과연 이 미국 땅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리고 길에서, 강도 만나 쓰러진 그 사람의 슬픈 모습에서 저는 그때 우리 한국 동포들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3)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 19장의 본문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여리고 성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예수님은 지금 여리고 성을 지나서 16마일 떨어진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기 직전에, 제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방문하셨던 도시가 바로 여리고 성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여리고 성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이 삭개오의 모습과 행동에서 우리 한국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을 발견합니다. 여리고 성에서 살고있던 삭개오의 모습에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국 동포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선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평균 신장을 볼 때 우리들은 키가 작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180CM 정도 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평균으로 볼 때 작은 키가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던 미국 친구들이나 교수들은 대부분 저보다 키가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지도 교수였던 Richard Young 이라는 분은 190CM 가 넘는 분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분을 항상 우러러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상 미국 사람들을 우러러보는데 자존심이 상한 저는, 네 살 난 제 아들 희준이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목표는 190, 하루에 우유 2잔!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마침 여리고 성을 지나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사는 키 큰 사람들이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꾀를 내었습니다. 옆에 있는 뽕나무 위에 올라 간 것입니다. 기가 막힌 꾀를 낸 것입니다. 키 큰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까, 키 큰 나무 위에 올라가면 잘 보이니까,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참 좋은 꾀를 내었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쌍기역으로 시작되는 몇 가지 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먼저 성공하려면 "꿈"이 있어야 합니다. 또 "끼"가 있어야 합니다. 또 "깡"이 있어야 합니다. 성공하려면 "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뽕나무로 올라갔던 키 작은 세리장 삭개오는 꾀가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헤롯대왕의 겨울철 수도였던 여리고 성에서 꾀를 내어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삭개오의 앞을 키 큰 사람들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처음 이민생활을 시작할 때에 수많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꾀를 냅니다. 오늘도 우리는 삭개오처럼, 극심한 이민 사회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우리 주위에 어떤 뽕나무들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뽕나무를 찾고 계십니까?
제가 아는 분 중에 미국의 어느 주립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한국 교수님이 계십니다. 주로 이민자들의 사회생활 양식을 연구하는 분이십니다. 한번의 그 분과 이민자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미국 아니라 어느 나라에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있다. 차별을 받지 않고 싶거든,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 많이 벌어라. 커뮤니티의 정치적 힘을 키워라. 싸구려 레스토랑에 가서 불친절한 대우를 받지 말고 돈 많이 벌어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비싼 음식 사먹으면 그런 불쾌한 경험을 피할 수 있다 - 뭐 그런 논리였습니다.
여러분, 그 교수님의 뽕나무는 어떻습니까? 그럴 듯 하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좋은 차를 타고, 저택에 살면서, 비싼 식당에 가서 수십 불 하는 음식 시켜 먹으면 그런 구차한 차별, 경험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공하면, 돈 많이 벌면, 출세하면, Ivy League 졸업장이 있으면, 남에게 대접받고, 인정해 주니까, 그것을 향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혹시 여러분이 올라타고 있는 뽕나무가 이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뽕나무에 올라앉아 계십니까?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출세의 뽕나무위에, 성공의 뽕나무위에, 물질의 뽕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Hurry and Come Down!
출세의 뽕나무 위에 앉아 있으십니까 -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성공의 뽕나무 위에 앉아 계십니까 -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물질의 뽕나무 위에 앉아 계십니까 -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삭개오로 하여금 지금 당장 뽕나무에서 내려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셨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뽕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직접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나무에서 내려온 삭개오를 직접 만나 주셨던 예수님은 그때 여리고 성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누가 복음 19장 뒷부분, 28절을 보면, 이제 여리고성을 지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배신과 고통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여리고 성을 지나 가셨고, 바로 그 마지막 도시에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셨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왔던 삭개오를 만나 주셨던 예수님,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책임을 지셨습니다. 삭개오로 하여금 지금 당장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신 예수님은, 삭개오 대신에 자기 자신이 나무에 오르셨습니다. 삭개오로 하여금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신 예수님 자신이 그 나무에 달리심으로,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다"는 그 말씀에 책임을 지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뽕나무 위에 올라앉아 계십니까?
당장 그 나무에서 내려오십시오.
당장 그 나무에서 내려와서 우리를 친히 만나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시다. 당장 그 나무에서 내려와서, 우리 대신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주위에 어떤 뽕나무가 있나, 두리번거리지 마시고, 이제 우러러 십자가를 보십시오. 우리를 대신하여 나무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출세의 뽕나무, 성공의 뽕나무, 물질의 뽕나무를 찾기 전에 갈보리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 중에, 여러분을 갈보리로 초대합니다. 이제 여리고 땅에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고난과 십자가의 땅으로, 갈보리 산으로 가십시다. 고난의 갈보리 산 위에 우뚝 솟은 십자가를 찾아갑시다. 우리를 대신해서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저와 함께 이제 여리고성을 떠나서 갈보리로 가시고자 결단하시는 분들은, 그 곳에서 우리를 친히 만나 주시는 예수님을 뵙고자 하시는 분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나무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시는 분들은, 함께 일어나 저와 함께 찬송가 135장을 힘차게 부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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