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Fax: (703)448-5384  contact@kumcgw.org

Mission Statement
History of KUMCGW
Worship Services
Directions to Church

Korean Ministry
English Ministry
Children's Church
Youth Church

Profile and Photo

Photo Album
Sharing


Sharepoint Home
Contact Information
Resources and Links
Connectional    Churches
Korean Bible Study


Archive | Home | audio video-56K video-230K

2002.2.24.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여덟가지 성품(1)/사순절 둘째주일 - 장찬영 목사

가난한 마음

마태복음 5:1-12

흔히 '팔복'이라고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여덟가지 성품'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정한 복은 내면의 변화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마침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마음으로 주님은 당신의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마음은 가난하십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첫 번째 마음의 열쇠가 산상수훈을 보물상자를 푸는 열쇠입니다.

이번 주부터 조 목사님께서 안식년에 들어가시게 되면서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저와 김상근 목사님께서 번갈아 가면서 주일강단을 맡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이 있기에 교우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조 목사님께서 안식년을 끝마치시고 돌아오시는 9월 첫째 주까지 27주 정도가 남아있고 그중 봄철 부흥회라든지 가족 수양회등 정기적인 행사를 빼면 김 목사님과 제가 맡을 주일 설교는 12-3번 정도가 될 듯 싶습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 3, 4회 정도는 교회절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지만 그 나머지 9번 정도는 마태복음을 5장 1- 12절을 중심으로 한, 흔히 '팔복'이라고 말하는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중 오늘 말씀은 그 '여덟가지 복'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여덟가지 성품'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예수님께서 축복의 산이라고 일컫는 곳에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치셨던 유명한 말씀, 즉 산 위에서 말씀을 전하셨다해서 '산상설교'라고 합니다. 그중 5:1-12 절까지의 오늘 본문말씀이 앞으로 9주 동안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입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 중 5장 3절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가 오늘 설교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먼저 기억하실 것은 5장 1-12절 까지의 '팔복'은 산상설교를 여는 열쇠가 되고, 그중 5장 3절 '가난한 마음'은 바로 팔복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의 산상설교 특히 팔복을 읽거나 들을 때 우리는 베토벤이나 바하의 기막힌 음악이 연주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또 어떤 때는 마치 미켈란젤로의 살아있는 조각을 보는 것 같은, 마치 고호의 영감있는 작품을 대하는 벅찬 감동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음악과 작품들이 너무 좋고 완벽하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그와 같이 연출할 수 없다는 좌절감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기막히게 좋은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느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주님으로부터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격려와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팔복'이라기 보다는 '크리스챤이 갖추어야 할 여덟가지 모습', 곧 '크리스챤의 참된 성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성품들의 일반적인 다섯가지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특성은, 이 말씀은 어떤 특수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바울이나 루터, 죠지 뮬러나 웨슬리 같은 사람들만이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2) 두 번째 특성은, 이러한 성품은 동시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첫 번째, 두 번째 특성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번째의 특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품 중 하나를 성취하고 그 다음에 또 다른 하나를 성취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마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동시적인 것처럼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탄생되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여덟가지의 축복과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애통하지 않을 수 없고 애통하는 사람은 온유하지 않을 수 없고 온유한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마음의 가난함이 없이 청결함이나 화해자의 모습이나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특성은, 이 여덟가지 성품 중 어느 하나라도 생래적(生來的)인 성품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천성적으로 소유된 성품은 한가지도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안 믿고도 천국 갈 것 같은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온유하다는 것과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록된 여덟가지 성품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특별히 거듭난 사람,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입혀주는 옷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에게는 본래적으로 선함은 없습니다. 악이 잠깐 감추었을 뿐이고 그것이 훈련에 의해서 노출되지 않을 뿐이지 인간의 죄성은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착한 사람일수록 내적인 심한 갈등과 고민이 있고 지성인일수록 남들이 깜짝 놀라는 위선적인 모습 또한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네 번째 특성은, 세상사람들과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세상사람들이 교인이라고 하는 우리에게 실망하는 이유는 너나 나나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산상설교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챤은 세상과 달라야 된다고 하는 점입니다. 외적인 면보다 내적인 면에서, 특별히 우리 삶의 기본적인 사고방식, 가치관, 사물을 보는 시각에서 달라야 되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 여기서 강조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보면 세상과 우리는 섬기는 대상이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돈이나 물질, 명예나 성공에 관심이 많고 그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의 섬기는 대상은 그런 물질이나 세상이 아니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입니다. 또한 세상과 우리는 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세상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나라와 의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행동에 있어서도 다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능력과 힘을 자랑하고 마음의 가난함보다는 부유함을 자랑하고, 온유함보다는 강력한 것, 영웅적인 것, 카리스마적인 지도력 등을 강조합니다. "할 수 없다고 하면 너는 패배한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라.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라. 생산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라. 그것만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다." 세상은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상설교에서 보여준 크리스챤의 모습은 반대로 자기의 철저한 무능력, 자신의 한계, 자신의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소위 세상사람들이 일컫는 바보나 무력함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이 산상설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다섯 번째 특성은, 이 성품들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내면적이고 영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겉모습, 미모, 지위, 계급에 관심이 많습니다. 계급이 높아지면 목소리도 커지고, 의자가 커지면 행동도 달라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팔복의 관심은 내적인 가치관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어떤 성품을 소유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이상적인 크리스챤의 성품은 어떤 것입니까? 그 첫 번째가 바로 5장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크리스챤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성품은 마음의 가난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니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남에게 줄 것이 있고 베풀 수 있을 때는 떳떳하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줄 것이 없으면 미안하고, 주장할 것도, 충고할 것도, 남에게 모범을 보일 것도 없으므로 뒤에 숨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진실로 죄인이라는 것과 기도, 전도, 십일조, 직분, 봉사가 자기의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겸손히 머리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은총, 사랑과 용서 밖에는 기다릴 것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입니다.

구약에서 가난의 의미는 물질적 가난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갖도록 율법에 명했습니다. 신명기 15장 11절에 보면,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그러나 단순한 물질적 가난 외에도 시편 34편 6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향하여 "곤고한 자"라고 표현했고, 이사야에서는 41장 17절에 "가련하고 빈핍한 자"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가난이라는 말이 단지 물질적 가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내면의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이 가난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단순히 물질적 가난을 가지고 얘기하신 적은 거의 없고 영적인 마음의 가난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가난함." 이것이 곧 천국의 모습이요, 크리스챤의 참된 성품의 기초인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의 뜻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첫째로, 가난한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와 무능력을 발견하는 테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거룩과 영광을 보면서 그 앞에서 산산 조각난 자기자신, 죽음과 진노와 심판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느껴지는 심정이 바로 마음의 가난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는 살인자의 모습으로 말 못하는 짐승들과 풀 한 포기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삶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삶이었습니다. 모세는 어느 날 호렙산에서 "네 백성을 탈출시켜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라고 네 번씩이나 거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손을 문둥병이 걸리게 했다가 고쳐주시기도 하고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게 되는 기적도 보여 주십니다. "이런 기적을 내가 보여 줄테니 네가 가라" 그래도 모세는 못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모든 것을 다 소유할 수 있었던 애굽의 왕자 시절 40년 동안을 '모세의 ANYTHING의 시간'이라고, 처절한 외로움과 낙담과 그리고 실패 속에 있었던 광야에서의 40년 동안을 '모세의 NOTHING의 시간'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NOTHING의 시간은 마침내 그를 한 시대를 이끌었던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즉, '모세의 SOMETHING의 시간'으로 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신약에 나오는 가난한 마음의 대표적 인물은 역시 베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힙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주여 나를 떠나시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거룩과 영광을 보면서 자기의 죄와 무능과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영적인 태도, 진실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태도, 이것이 겸손한 크리스챤의 태도입니다.

(2) 둘째로, 가난한 마음은 단순한 마음입니다. 복잡한 마음도 아니오 두 마음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주장할 수 없는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입니다. 더 이상 자랑할 것도 치장할 것도 없습니다. 여기에 겸손이 있고, 온유가 있고, 그리고 순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며 자랑할 것도 주장할 것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 확인될 때, 그 영혼은 단순하고 깨끗해지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마음의 사람은 물질이 그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야망이 그의 비젼이 될 수 없습니다. 계산과 음모가 없는 마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마음에서 가난한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비참하고 열등한 삶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실하고 깨끗한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능하면 자신의 삶을, 자신의 물질을,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생활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 이상으로 그들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며, 나아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셋째로, 가난한 마음이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탁하고 사는 삶입니다. 그의 은혜와 긍휼을 날마다 바라보며 사죄의 은총을 감사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사람, 그래서 그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영적파산을 깨닫는 순간 그의 마음은 가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단순하고 순진하고 순종하는 태도가 생깁니다. 이때 그는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가난한 마음의 크라이막스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열망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숨쉬고 살 수 없는 절박감입니다.

이런 가난한 마음을 실제로 완벽하게 가지고 사신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8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겸손을 봅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요 가난한 마음의 전부입니다.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예수님, 그리고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실로 가난한 마음의 전부입니다.

또 누가복음 22장 42절을 보면,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자기의 뜻과 계획을 포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여기서 만나게 됩니다. 포기하고 순종하는 예수님의 마음속에서 가난한 마음의 실체를 봅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을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진실로 단순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마음이 가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