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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10. 김상근 목사

우리도 안식합시다

마태복음 11:28-30

주님과 더불어 진정한 안식을 누린다는 것 - 그것은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름에 응답할 때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설교하는 사람에게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적절한 설교 제목을 정하는 일입니다. 주제에 맞는 설교제목, 성경 본문의 내용과 부합하는 설교 제목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입니다. 제가 이번 주 설교 제목을 "우리도 안식합시다" 라고 정했을 때, 주위의 많은 분들이 웃었습니다. 아마 조영진 목사님이 제일 큰 소리로 웃으셨을 겁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시는 순간, 이미 여러분은 제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자리에 섰는지, 어떤 내용의 말씀을 전할 지 대충 짐작하실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다음 주일 예배를 인도하신 다음 조영진 목사님께서는 6개월의 안식년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그동안 제가 가까이에서 관찰해온 결과를 고려해 볼 때 과연 조목사님께서 앞으로 6개월동안 안식년을 취하실지, 아니면 “안쉰년” ? "쉬지 않으신 한 해"를 보실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공식적인 안식년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차정옥 권사님이 위원장으로 계신 우리교회 목회 협조 위원회에서는 안식년을 계획하고 계신 조 목사님께 두 가지 특별사항을 주문하셨다고 합니다. 안식년을 마치시고 돌아오실 때는 체중을 10파운드 늘려 오시라는 것과, 안식년동안 우리 교회건물을 중심으로 10마일 이내에 접근하지 마시라는 두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합동임원회장이신 양 장로님은 조 목사님의 안식년을 위해서, 조 목사님의 교회 접근을 막기 위해서, 교회 열쇠를 모조리 새것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수 년 동안 열심히 회중을 이끌어 오시던 목자가 안식을 취하시게 되었습니다. 조 목사님,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다녀 오십시오. 여러분, 목자가 안식을 취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이미 오늘 설교 제목에 나와 있습니다 ? "우리도 안식합시다" 그것이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의 요지입니다.

"우리도 안식합시다" 안식한다는 것, 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늦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 그것이 안식입니까? TV 앞에 느긋하게 앉아 풋볼게임 보는 것, 그것이 안식의 의미입니까? 어느 속회에 참석하였더니 어느 분을 제게 소개하는 데, "저 분은 작대기로 땅을 파는,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라고 해서, 순진하게도 저는 진짜로 그 분이 농작물을 재배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아주 특별하게 생긴 작대기로 작은 공을 치시면서, 가끔씩 땅도 파는, 그런 농부셨습니다. 50년이라는 교회의 역사만큼이나 우리교회에는 은퇴하시고 인생의 황혼기를 특별한 작대기로 땅을 파시면서 안식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안식의 의미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안식에 대해서, 과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안식을 요구하고 계신지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 쉰다는 것은 중요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대로 성경은 그 첫 책의 처음 기사에서부터 안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 되시던 날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 2장 2-3절).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되는 날 안식하셨다는 것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계속해서 안식일의 중요성을 율법의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으며 (출 20:8), 사람만 쉴 뿐 아니라 경작하는 땅도 주기적으로 쉬게 할 것을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레 25장).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마태복음 11장에서는 안식한다는 것에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말씀은 쉰다는 것이, 안식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들이 그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릴 때, 주님은 인자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로 가는 것,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 그것이 안식입니다.

지난 날 어느 금요일 밤, 저는 참 부끄러운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주일동안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저녁마다 바나바 사역자 훈련, 교회사 공부, 속장 훈련과 전 교우 연합 속회 등으로 과로를 하였습니다. 계속되는 긴장,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스케쥴 - 몸도 지치고 마음도 다 지쳐버렸습니다. 금요일 저녁, 힘겹게 다음 날 토요 새벽기도 설교와 중보기도자 모임 설교 준비를 마치고 뉴스를 보기 위해 밤늦게 TV를 켰습니다. 일기예보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지아쪽에서 북상하고 있는 습한 공기가 버팔로 부근에서 동남쪽으로 불고 있는 찬 바람의 영향으로 다음날 오전 11시부터 와싱톤 일대에 큰 눈이 예상된다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11시부터야, 오전 11시면 다 끝난 시간인데. 오전 5시부터 쏟아져야지. 눈이 펑펑 쏟아져서 와싱톤 일대 교통이 마비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하루 쉴 수 있을 텐데. 주님 새벽부터 펑펑 쏟아 부어 주시옵소서. 생전처음으로 그런 한심한 생각을 했을 만큼 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커튼을 걷고 밤하늘을 보니, 웬걸, 밤하늘에는 별들만 빤짝이고 있었습니다.

다음 월요일 저녁 12시쯤, 생전 처음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오면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의식을 잃고 방바닥에 넘어졌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기어서 베란다까지 갔습니다. 찬 바람을 쐬면 나아질까 싶어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다시 쓰러졌습니다.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아버님이 깨셨습니다. 아버님은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냉장고에서 김치국물을 꺼내서 마시라고 주셨습니다. 미국에도 연탄깨스가 있는지 어쨌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 마셨습니다. 그 김치국물 때문이었는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의사 선생님께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국 남자로는 특이하게 혈압이 100정도밖에 되지 않고, 간에 조금 무리가 간 것 같다는 소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간에 조금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조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나도 잘만 하면 유명한 목사가 될 수 있겠구나. LA에 있는 제 친구 목사에게 제 쓰러진 얘기를 했더니, 하는 말이 "정말 아깝다" 였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 - "이왕 쓰러질 바에야 설교하다가 쓰러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날 밤의 경험이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주위의 목사님들, 의사 선생님들과 건강문제로 말씀을 나누면서 제 자신의 삶과 목회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지는 것이 제 삶에 주어진 의무라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지면" 밝은 내일이 제 앞에 펼쳐지리라는 저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제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무엇인가를 성취(Achieve)하여야만 만족을 얻는 제 삶의 자세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와싱톤 한인교회 부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지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전 교인들의 속회 참석률을 올해 안으로 80%로 올리기 위해서 이런 행사를 계획하고, 저런 Review Process를 거치고, 새 신자 정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행사를 계획하고,,, 제가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은 모두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저는 저만의 계획과 방법을 고집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를 부르시며 지금 말씀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내게로 오라"는 그 부름에 응답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 입니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 특별히 우리와 같은 이민자들은 "당신은 Workaholic 이다"라는 말을 은근히 듣고 싶어하거나, 심지어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성공적인 삶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 간다고 잘못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말로 남들과 경쟁해서 살아 남으려면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Workaholism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우리 이웃과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아주 무서운 질병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만" 져서 우리네 살림살이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드는 Workaholic의 자세 한 가운데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자기자신에 대한 과신이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무를 수행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열심만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자만하게 되고 나와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가족간의 대화가 사라지고, 이웃과의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당연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안식일의 의미도 그렇습니다. 지난 주에 한지박 장로님께서 우리 교회의 주차문제에 이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안식을 지킨다는 의미에 대해서, 엿 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난 후에 안식일 하루, 주일 하루를 지킨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안식일의 개념에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한 다음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즐거운 안식일 하루를 위해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안식한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목적인 것입니다. 주님과 안식하기 위하여, 주님과 즐거운 안식을 위하여, 우리는 6일 동안 세상에 흩어져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 내 맘을 편케 하니 즐겁고 기쁜 날 ? 이 날에 천하만민 다 보좌 앞에서 ? 참되신 삼위일체 거룩타 부르네" (찬송 57장)

얼마 전에 한 교우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제 막 한국에서 이민 와서 직장을 찾고 있는데, 알아보고 있는 직장에서 주일날 일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별히 힘든 이민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날 하루를 주님과 더불어 안식한다는 것은,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날 하루 못 벌어도, 가게 문을 닫아서 영업상에 손실이 오지만, 주일날 일하지 않음으로 그 직장을 잡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신다고 믿기 때문에 주일 성수할 수 있는 다른 직장을 알아 보시라고 조심스럽게 말씀 드렸습니다. 이 날 이후부터 그 집사님이 끼니를 거른다는 소식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항상 기쁨으로, 웃는 얼굴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시는 그 믿음의 부부를 볼 때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주 예배를 마치고 두 부부가 정답게 앉아서 여러분이 제출하신 출석 번호와 출석부 통계를 맞추고 계시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든지요. 저는 그 부부 집사님들께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읽어 들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 풀도 하나님이 이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마태 6장 25-30절 발췌)”

안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살림살이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Surrender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불경기에 고전하고 있는 사업체입니까? 매달 어김없이 다가오는 Mortgage Payment 입니까?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Lay-off 통지서 입니까? 남들이 알지 못하지만 우리 집안의 인간관계 때문에 초래되고 있는 갈등입니까? 남편과 아내간의 불신? 시부모와 며느리간의 갈등입니까? 문제를 일으키는 자녀들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시고자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진정한 안식을 취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 지역에서 소에게 멍에를 지울 때는 반드시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리의 소에게 멍에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의 소에게 한 멍에를 씌운다는 것입니다. 한 멍에를 지고 두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멍에를 지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멍에를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지친 어깨와 나란히 하시고 같은 멍에를 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삶의 무게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릴 때,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 인간관계에서 깨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칠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들에게,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멍에를 지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시기 때문에 그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구"입니까?
우리 가운데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구"입니까?

하지만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 품에 안기어 참된 위로 받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원하십니까? 찬송가 487장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예, 그렇습니다. 시험 걱정 모든 괴롬, 근심 걱정 무거운 짐 다 주님께 맡깁시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한 멍에를 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내 인생의 무거운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맡기고 주님과 더불어 진정한 안식을 얻기 원하시는 분들은 저와 함께 찬송가 487장을 힘차게 부릅시다.

적용을 위한 질문들

1.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봅시다.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하루 하루 쫓기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너무 바쁘고 너무 할 일이 많아서 가족들과의 관계가, 이웃들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은혜스럽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습니까?

2. 진정한 안식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 우리가 가진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3.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한 멍에를 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살아 오신 삶의 여정에서 이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